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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특위 공동백서(3)-미군의 야수적폭격과 포격 고발
 (평양 12월 12일발 조선중앙통신)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가 11일 조선전쟁시기 공화국북반부 지역에 대한 미군의 야수적폭격과 포격만행가운데서 그 일부를 묶은 공동백서(3)를 발표하였다.
 올해 4월과 5월에 이어 세번째로 발표된 장문의 이 문건에는 1951년 1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의 자료들이 들어 있다.
 공동백서(3)은 다음과 같다.

 미제침략자들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공화국북반부를 일시적으로 강점하였다가 쫓겨 난 이후에도 전선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하고 조선민족을 멸살하기 위하여 공화국북반부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을 더욱 발광적으로 감행함으로써 희세의 살인마,극악한 야수로서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는 1951년 1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 공화국북반부 지역에 대한 미군의 야수적폭격과 포격만행가운데서 그 일부를 묶어 이 공동백서를 발표한다.

 1.도시와 농촌파괴와 주민대량학살 만행

 조선전쟁 초시기부터 감행한 미군의 <초토화작전>에 의하여 공화국북반부의 도시와 농촌은 이미 파괴될대로 파괴되여 있었다.
 미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미군은 전쟁을 도발한 이후 330일동안에만 하여도 연 20만 180대의 비행기를 출격시켜 8만 9,400t의 폭탄과 9,052만 5,000발의 기총탄,24만 7,000여개의 로케트탄,700만gal(갈론)의 나팜탄을 공화국북반부지역에 퍼 부어 거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재더미로 만들었다.
 미제승냥이들은 1951년에 접어 들면서부터 조선사람을 멸족시키고 저들의 음흉한 군사적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B29>를 비롯한 각종 폭격기,추격기,전투기들과 미제7함대의 함선들까지 총동원하여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폭격,포격만행을 보다 광란적으로 감행하였다.
 미제는 1951년 1월부터 3월까지의 기간에 함경남도에 연 3,821대의 비행기들을 출격시켜 6,770여개의 각종 폭탄과 수만개의 소이탄을 투하하여 8,464동의 살림집과 339동의 공공건물 그리고 2,896호의 농가를 파괴소각하였다.
 함경북도에는 연 2,149대의 미군비행기들이 날아 들어 6,940여개의 각종 폭탄과 수백개의 소이탄을 퍼부음으로써 6,700호의 농가와 시,군소재지들의 3만 8,269동의 살림집이 불 타게 하였다.
 5월 6일 남포시에 날아 든 미군 <B29>폭격기 12대는 43개의 대형폭탄과 6,000여개의 소이탄을 투하하여 120여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1,698동의 살림집을 완전히 파괴소각하였다.
 원산앞바다에 기여든 미군함선들은 5월 23일 밤중에만도 시내에 6,750여발의 함포탄을 발사하여 65동의 공공건물과 49동의 살림집을 파괴하였으며 주민 11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미제야수들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만행으로 하여 5월현재 남포시에는 6만명의 인구중 3만여명,원산시에는 12만 3,100여명의 인구중 5만 7,0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개천시에서는 8만명이상이였던 인구가 약 6만명으로 줄어 들고 1만 3,000호의 집가운데서 6,500호이상이 파괴되였다.
 6월 10일 미군폭격기 13대는 사리원시의 살림집지구에 70여개의 대형폭탄과 380여개의 소이탄을 떨구어 44명의 부녀자를 포함한 69명의 시민을 살해하고 69동의 살림집을 불 태워 버리였다.
 미군의 만행은 1951년 하반기에 들어 서면서 더욱 악랄해 졌다.
 7월부터 8월 10일까지의 장마철기간에 황해남북도일대에 연 1만 8,685대의 미군비행기가 3,202회에 걸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감행하고 미군함선들이 531회의 함포사격을 가하여 4,458동의 살림집을 파괴소각하고 625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6,894명의 평화적주민을 살해하였다.
 신평군 신평읍에서만도 7월 19일 미군비행기들은 밭에서 일하는 24명의 농민에게 48개의 류산탄을 뿌려 그들중 23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7월 11일부터 8월 20일까지사이 평양시에는 250회이상에 걸쳐 연 1만대이상의 미군비행기들이 날아 들어 4,00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4,000여명의 시민을 살해하고 2,500명이상에게 중상을 입히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7월 30일 하루동안에만도 <B29>폭격기를 포함한 135대의 각종 미군비행기들이 비내리는 날씨를 리용하여 평양시내에 2,000여개의 각종 폭탄을 4시간동안 투하하여 529명의 주민을 즉사시키고 329명에게 부상을 입히였으며 840동의 살림집을 파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조국광복 6돐을 맞이하는 전날인 8월 14일 평양시상공에 날아 든 650대의 미군비행기들은 무차별폭격으로 1,547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2,020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980동의 살림집을 파괴소각하였다.
 또한 미군은 8월 한달동안에 함경북도에 2,120여개의 폭탄과 6,090여발의 함포탄을 퍼부어 2,857명의 평화적주민을 살해하였으며 당시의 라진군에만도 8월 25일 하루동안 27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69명의 시민을 죽이고 150개의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11월부터 12월까지 미제야수들은 함경남도에 연 1,363대의 비행기들을 들이밀어 1,920여개에 달하는 폭탄을 마구 퍼부음으로써 510동의 살림집을 완전히 파괴하고 1,932명의 주민을 죽이는 범죄적행위를 저질렀다.
 미군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평양시에서는 1951년 12월 31일현재 8만여동이던 살림집중에서 6만 4,000여동이 파괴되였으며 1951년 한해사이에 4,768명의 주민이 살해되고 2,438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리하여 전쟁전 46만 4,000명이였던 평양시의 인구가 1951년 12월 31일에는 18만 1,000명으로 줄어 들게 되였다.
 1952년에 들어 서면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미군의 폭격,포격만행은 더욱 우심해 졌다.
 1952년 1월 24일과 27일 미군비행기들은 자강도의 거의 모든 군들의 소재지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였으며 27일 폭격시에만 하여도 자강도의 농촌들에서 138명의 소년을 포함한 242명의 주민이 살해되거나 부상 당하게 하였다.
 2월 18일 미군비행기 34대는 혜산시 주민지대에 21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48명의 주민들을 폭사시키고 400여동의 살림집을 파괴하였으며 3월 25일 하루에만도 63대의 미군비행기들이 연 39회에 걸쳐 평양시 중구역,선교구역,사동구역,력포구역의 주민지대들에 기여 들어 1,370개의 폭탄을 퍼부어 120명이상의 주민을 살해하고 124동의 토굴집과 기타 건물들을 파괴하였다.
 4월 6일 미군은 원산시 중청동에 함포사격을 해댔으며 4월 11일에는 구장군,5월 9일에는 중화군,5월 13일에는 대동군일대에 나팜탄과 지뢰탄을 비롯한 각종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하고 방대한 면적의 논밭과 산림을 황페화시켰으며 관개망들을 파괴하였다.
 미군비행기들은 5월 19일부터 6월 17일 사이에 강동군,청진시,사리원시,평산군,정평군에 날아 들어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밖에서 놀고 있던 어린이 9명을 비롯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수많이 살해하고 농가와 건물들을 파괴소각하였다.
 6월 23일과 24일 이틀동안에 걸쳐 수백대의 미군비행기들은 트루맨과 미합동참모본부가 비준한 계획에 따라 수풍발전소에 대한 폭격을 대대적으로 벌린데 이어 장진강,부전강,허천강발전소들도 폭격하여 혹심하게 파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7월 6일과 13일 미군 <B29>폭격기들은 함흥시내의 밀집된 주민지대에 400여개의 대형폭탄을 퍼부었으며 7월 11일과 12일 새벽까지 사이에는 평양시와 그 주변일대에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잔인무도한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평양시에만 하여도 미군의 6,000여개의 나팜탄,지뢰탄,파렬탄 및 시한탄이 투하되여 1,600개이상의 토굴집이 파괴소각되고 약 6,000명의 부녀자와 로인,아이들이 살해되였으며 주민밀집지대였던 서평양지구가 페허로 되였다.
 7월 11일부터 31일까지의 기간에 자강도에 날아 든 미제공중비적들은 1,000여개의 나팜탄을 비롯한 약 6,000개의 폭탄을 퍼부어 200개이상의 농촌마을을 페허로 만들었다.
 이 도에서 7월 한달동안의 희생자수는 1951년 1년간의 도내 전체 희생자수의 3.5배에 달하였다.
 8월 5일 미극동군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북조선에는 쓸어도 걸릴것이 없게>하기 위해 북조선의 78개 도시를 <지도우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고 하면서 이른바 <타격계획>을 발표한 후 미군의 폭격,포격만행은 더욱 대대적으로 감행되였다.
 미제는 8월 한달동안 강원도에만도 1만 684개의 폭탄을 주민지대에 떨구었으며 8월 10일 새벽 1시부터 4시사이에는 평양시의 주민밀집지대에 10여차의 맹폭격을 가하여 로인,어린이,부녀자들을 포함한 1,000여명의 평화적주민을 학살하고 수많은 살림집과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9월 25일에는 평양시 형제산구역에,9월 26일부터 10월 23일 사이에는 홍원군에,9월 28일에는 랑림군에 각종 폭탄 5,370여개를 떨구어 542명의 주민을 살륙하고 362호의 농가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10월 8일부터 29일까지의 기간에 3,000대이상의 폭격기,전투기들을 동원하여 평양시와 그 주변에 주야간 30여차의 맹폭격을 가함으로써 수많은 시민들을 살해하고 수백개의 토굴집과 살림집들을 파괴하거나 불 태워 버리였다.
 같은 기간 황해남북도 일대의 도시와 농촌들에 날아 든 미제야수들은 5,000여회의 폭격을 가하여 14개의 군소재지와 27개의 부락을 완전히 불 태워 버렸거나 파괴하고 8,000여정보의 농토를 황페화시켰으며 막대한 인적피해를 주었다.
 미제는 10월 9일 하루동안에만 하여도 160대의 비행기로 1,110여개의 폭탄을 강계시에 떨구어 608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242동의 살림집과 많은 토굴집을 파괴소각하였다.
 10월 15일 미군 <B29>폭격기들은 함경남북도의 거의 모든 군들과 리들에 대한 폭격을 일제히 감행하였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군함선들은 함경남북도의 해안지대들에 대한 맹렬한 함포사격을 감행하여 367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7,000여정보의 농경지를 황페화시켰다.
 10월 18일과 19일 200여대의 미군비행기들은 두번에 걸쳐 대동군일대의 농가와 논,수수밭에 약 2,500개의 대소폭탄을 쏟아 부음으로써 전번 폭격에서 파괴되지 않은 살림집의 반수이상을 파괴하고 어린이만도 386명을 살상하였다.
 10월 19일 미군승냥이들은 98대의 중폭격기들을 동원하여 함흥시와 그 주변에 대한 폭격과 기총사격을 주야간 들이댐으로써 시내의 남부지역에서만 하여도 273명의 주민이 죽거나 부상 당하였으며 시내는 완전한 재더미로 변하였다.
 10월 20일,21일,22일,23일,25일,28일 미제는 강원도의 군과 리소재지들에 야간폭격을 들이대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많은 농토와 산림을 황페화시켰으며 8개의 어촌을 완전히 페허로 만들었다.
 10월 29일 밤 2시경 미군야만들은 불 타는 집과 건물에서 간신히 살아 교외로 빠져 나온 수백명의 평양시민들에게 조명탄까지 걸어 놓고 무려 3시간동안이나 폭탄을 퍼붓고 기총사격을 가하면서 류혈적인 참극을 빚어 내였다.
 이날 약 260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되고 284명이 부상 당하였는데 그중에는 2살부터 14살까지의 어린이 247명과 32명의 늙은이가 포함되여 있었다.
 10월 31일 미군 <B29>폭격기 16대는 원산시 주민지구에 16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215명의 주민을 살륙하고 393개의 토굴집을 파괴하였으며 11월 17일 8시 20분부터 무려 10시간동안 청진시에 무차별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했는가 하면 순양함 1척과 10척의 구축함은 240여발의 함포탄을 시내 살림집지구들에 쏘아 대여 225개의 토굴집을 파괴하고 189명의 주민을 살해하였다.
 이외에도 미제야수들은 11월 23일과 28일 평양시와 신의주시,의주군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다.
 미군은 1952년 1년동안에만도 공화국북반부의 평화적도시와 농촌들에 20여만개의 대,중폭탄을 투하하였으며 5억여발의 기총탄을 란사하고 40여만개의 로케트탄,1,500여만개의 나팜탄을 퍼붓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평양시에만도 미제공중비적들은 지뢰탄,소이탄,세균탄을 포함한 각종 폭탄 5만 2,380개를 투하하였다.
 이것은 평양시의 매 당 1,000개의 폭탄을 떨군것으로 된다.
 1953년에 들어서면서 미제침략자들은 아이젠하워의 <신공세>기도를 실현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보려고 전선에서 최후발악하는 한편 후방에 대한 폭격과 포격만행을 더욱 발광적으로 감행하였다.
 1953년 1월 1일과 5일,22일,23일 미군비행기들은 평양시의 주민지구에 깊은 밤중에도 폭격을 련이어 들이대여 148명의 주민들을 살해하고 570여동의 살림집과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1월 2일에는 <b29>를 포함한 약 50대의 미군비행기들이 대동군,룡강군,강서구역일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다.
 이날 남포시 교외에서만도 100여호의 농가가 파괴되고 수많은 농민들과 어린이,녀성들이 무참히 학살되였다.
 1월 7일 새벽 2시 미군폭격기 2대는 정평군 정평읍과 그 주변지역에 각종 폭탄 140여개를 쏟아 부어 47명의 어린이와 33명의 늙은이를 포함하여 잠자고 있던 수많은 주민들을 무참히 살륙하고 190여동의 살림집을 파괴소각하였다.
 미제야수들은 1월 10일부터 5일동안 박천군에 련일 발광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는데 이때 어린이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교활하게도 각양각색 꽃모양의 소형탄이 장치된 지뢰탄을 사용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14일에는 고원군,16일에는 순천시,17일 에는 홍원군,19일에는 사리원시,20일에는 원산시에 집중공습과 함포사격을 들이댄것을 비롯하여 매일과 같이 공화국북반부 각지에서 야만적인 폭격과 포격만행을 일 삼았다.
 1월 21일에만도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야밤삼경에 미군 <B29>폭격기 20대는 10여차에 걸쳐 대형폭탄 200여개를 비롯한 각종 폭탄을 함흥시 주변 농촌들에 퍼부어 320여호의 농가와 많은 량곡을 재더미로 만들고 2,000여명의 무고한 주민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이날 10여명의 가족을 가진 도유친농민을 비롯한 27세대의 가족이 멸살 당하였다.
 1월 24일 새벽 2시경에는 미군폭격기 수십대가 평양을 또다시 폭격하여 36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00여명을 폭사시키고 수백명의 주민이 한지에 나앉게 하였다.
 미제야수들은 3월 7일 밤에는 대동군의 3개 마을에 20분간에만도 500여개의 대소폭탄을 퍼부어 전부 재더미로 만듦으로써 많은 시체를 재더미와 흙속에서 파내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4월 13일 미군승냥이들은 120여대의 각종 전투기를 동원하여 청진시내와 주변 산골짜기들에 파렬탄,소이탄을 포함한 각종 폭탄 400여개를 퍼붓고 60여발의 함포탄을 쏘아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학살하였으며 병원과 소학교,수많은 토굴집과 살림집을 파괴소각하였다.
 미군야만들은 국제협약과 전쟁법규도 란폭하게 유린하면서 관개용 저수지들을 마구 폭격하는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미군은 1953년 5월 13일과 14일 평원군 석암저수지(견룡저수지)에 36대의 전투폭격기를 내몰아 4차에 걸쳐 40여개의 폭탄을 퍼부어 저수지제방과 수문을 파괴하였다.
 결과 당시 대동군과 순안군의 20개리 70여개 부락에서 800여호의 농가가 물에 잠기거나 파괴되였으며 400여명이 사망 또는 행방불명되였다.또한 약 6,000여정보의 농경지가 침수,류실되였으며 5,000여명의 농민들이 농경지와 집짐승 그리고 종곡을 잃고 리재민으로 되였다.
 미제는 5월 15일과 16일에 당시 순천군에 있는 대봉산저수지에도 집중폭격을 들이대였다.
 이틀동안 련이어 날아 든 미제공중비적들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저수지의 제방 60m가 파괴되고 막대한 저수지물이 부근일대를 휩쓸어 60만 9,000여평의 농경지가 침수,류실되였다.
 5월 21일 6대의 미군 <B29>폭격기들은 불과 일주일전에 감행한 석암저수지 폭격으로 말미암아 리재민이 된 대동군 지구의 주민들이 림시로 살고 있는 토굴집들을 야수와 같이 폭격하였다.
 이날 새벽 2시 30분경 리재민들이 깊이 잠든 틈을 리용하여 갑자기 달려든 미군폭격기들은 6차에 걸쳐 600여개의 폭탄을 퍼부어 120여명을 살해하고 수백개의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미제는 그 다음날 새벽에는 대동군의 한 저수지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여 그 일대를 물에 잠기게 하였다.
 6월 12일부터 15일까지 사이에 미제공중비적들은 청진시 주변농촌과 부령,회령,경성,어랑,화성,화대,길주,김책 등 함경북도일대에 끊임없이 날아 들어 수많은 폭탄을 무차별적으로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6월 24일부터 29일에 이르는 6일간 미제는 흥남시와 함주,영광,락원,북청,홍원 등 시,군에만도 각종 전투폭격기들을 들이밀어 폭탄을 마구 퍼부음으로써 100여개의 토굴집과 농가들을 파괴하였으며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였다.
 6월 29일 오후 5시경 염주군 농촌주민지대에 무리로 달려 든 미군전투폭격기 28대는 30여호의 농가와 토굴집을 파괴하고 수많은 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미제침략군은 정전담판이 최종단계에 들어선 시기에도 야수적인 폭격,포격만행을 계속하였다.
 7월 1일 밤 함주군 일대에 날아 든 미군폭격기 7대는 농촌주민지대에 25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200여호의 농가와 토굴집을 파괴하고 1만 5,000여평의 밭을 황페화시켰으며 같은날 이천군 일대에서는 갑자기 날아 든 미군비행기들의 기총사격으로 많은 농가들이 순식간에 불 타버리고 수십명의 농촌부녀자들이 무참히 희생되였다.
 7월 2일 황주군과 안악군 등지의 주민지대를 목표로 날아 든 미군 <B29>폭격기와 전투기들은 400여개의 각종 폭탄을 투하함으로써 근 100명의 어린이와 부녀자들을 살륙하고 80여호의 농가와 토굴집을 형체없이 만들었으며 8,000여평의 농경지에 피해를 입혔다.
 7월 5일 어랑군과 김책시 해상에 침입한 미군구축함들은 함포사격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앗아 가고 살림집들을 파괴하였다.
 미제승냥이들은 7월 6일에는 문덕군에,7일에는 김책시에,8일에는 함주군과 흥남시일대에,10일에는 순천시와 고원군 일대에 련이어 날아 들어 무차별적인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헤아릴수 없는 인적,물적피해를 입혔다.
 7월 12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평양시와 평원군,은천군,안악군,어랑군 등지의 주민지구와 농촌지대들에서는 미군전투기와 <B29>폭격기들의 야수적인 폭격이 하루종일 계속되였다.
 이날 오전 10시 30분경 은천군에 날아 든 미군폭격기 2대는 논밭에서 김매는 농민들을 향하여 2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는 동시에 20여회에 걸친 맹렬한 기총사격을 가하여 무리로 쓰러뜨렸으며 같은 날 오후 1시경에는 안악군 농촌부락들에 소이탄을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10여호의 농가를 불 태우고 수많은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2.교육,문화,보건기관,민족문화유산 파괴만행

 미제침략자들은 조선전쟁을 발발한 첫날부터 공화국북반부의 교육,문화,보건기관들과 문화유적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51년 초에 이르러서는 공화국북반부의 학교,병원,극장,휴양소,구락부 및 문화유적의 거의 전부가 파괴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침략군은 전쟁이 끝나는 마지막날까지 공화국북반부의 교육문화발전을 억제하고 우리 민족이 이루어 놓은 찬란한 문화전통과 그 재부를 말살하려는 목적밑에 파괴행위를 계속하였다.
 미군의 야수적폭격으로 하여 1951년 5월 현재 평양시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과 단과대학 6개,소학교 43개,중학교 20개,전문학교 5개,기술전문학교 4개,야간성인학교 20개 등 99개의 학교가,남포시에서는 각급 학교 24개,개천시에서는 고급중학교 1개와 중학교 6개,소학교 31개,강계시에서는 사범학교 2개,림산학교 1개,고급중학교 1개,소학교 4개,사리원시에서는 11개의 학교가 무참히 파괴되였다.
 6월 10일 미군폭격기 4대는 북청군에 21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4개의 소학교와 1개의 중학교를 완전히 파괴하고 공부하고 있던 수십명의 학생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9월 14일 미군의 폭격으로 원산시 주변농촌에 소개된 제1중학교가 불타 버리는것과 함께 3명의 학생이 숨지였다.
 미제는 9월 21일 천내군 풍전리를 폭격하여 소학교와 2개의 병원을 파괴하고 8명의 학생과 17명의 환자를 학살하였다.
 11월 7일 미군전투기 8대는 숙천군을 폭격하여 숙천고급중학교건물을 페허로 만들고 35명의 학생을 살해하였다.
 1952년 1월부터 11월에 이르는 기간 미군야수들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복구신축된 각급 학교들이 파괴 또는 소각된것은 무려 200여개에 달한다.
 평양시 중구역 지구에서는 1952년 7월 11일부터 12월 31일사이에만도 56개의 분교사가 폭격당하였고 자강도와 평안북도를 제외한 도들에서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1952년에 희생된 학생수는 수천명을 헤아리고 있다.
 교육기관들에 대한 미제의 야수적인 폭격행위는 리원,길주를 비롯한 많은 지역들에서 끊임없이 감행되였다.
 6월 15일 27대의 미군비행기들은 김책시를 폭격하여 도서관과 3개의 구락부를 불 태워 버리였으며 7월 3일에는 함경북도 고무산골짜기에 있는 소학교까지 폭격파괴하고 학생 5명을 살해하였다.
 7월 19일 미제공중비적들은 평양제10소학교에서 국가졸업시험을 치고 있는 학생들과 교정에서 뛰놀고 있는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80여명을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고 6개의 교실을 완전히 파괴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미제는 9월 16일 사리원시 부근에 있는 고아원에도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18명의 고아를 살해하고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29일에는 창성군에 있는 애육원과 유자녀학원에 12대의 비행기로 맹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건물들을 완전히 파괴하였다.이 폭격에 의하여 43명의 어린이가 살해되고 17명이 부상 당하였다.
 10월 16일 미군비행기들은 자강도 강계시에 대한 무차별적폭격을 감행하여 3개의 소학교와 4개의 애육원을 파괴하였으며 17명의 어린이를 살륙하였다.
 10월 18일과 19일 대동군에 대한 폭격시에는 18개의 소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진료소와 종합병원,가축병원들이 파괴되였다.
 10월 20일,21일,22일,23일,25일,28일 강원도의 군소재지들에 대한 야간폭격을 감행한 미군비행기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을뿐아니라 2개의 대학과 3개의 전문학교를 포함한 수십개의 학교와 병원을 파괴하였다.
 미제승냥이들의 폭격,포격만행에 의하여 공화국북반부의 교육시설들은 거의 다 파괴되였으며 남은것은 안전지대에 건설된 일부 가교사와 지하교실뿐이였다.
 미제에 의하여 전쟁기간 파괴된 소학교와 중학교,고급중학교,사범전문학교수는 3,746개이며 교실수는 2만 4,804개이다.
 이것은 전쟁전 학교수의 72프로,교실수의 88프로에 달하는것이다.
 미제침략자들은 우리 인민의 문화정서생활의 중요한 거점의 하나인 극장,영화관을 비롯한 문화시설들에 대한 파괴행위도 서슴없이 감행하였으며 심지어 교회당도 마구 폭격하였다.
 1951년 1월부터 6월까지 사이에 미군폭격기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의하여 평양모란봉극장을 비롯하여 평안남도도립극장,평양국립극장,함흥영화관,함경남도도립극장,원산시립도서관,강원도 철원도서관,황해남도 장연영화관 등이 혹심하게 파괴되였으며 7월 하순부터 8월 중순사이에는 평양시립극장을 비롯하여 평양시내의 2개의 영화관과 원산영화관,강서영화관이 완전히 파괴되였다.
 7월 30일 미제야수들은 평양교외에 있는 국립영화촬영소(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수십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파괴하였으며 8월 14일에는 평양해방투쟁관(조선혁명박물관),평양레코드제작소,국립예술극장을 폭격하여 파괴하였다.
 전쟁기간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평양시에서는 9개의 극장과 20개의 영화관,64개의 교회당이,사리원시에서는 1개의 도서관,4개의 구락부,4개의 교회당이,안악군에서는 2개의 교회당이,강계시에서는 4개의 교회당이 파괴되였다.
 그뿐아니라 미군의 폭격으로 신의주시에서는 17개의 교회당가운데서 2개만이,남포시에서는 1개의 작은 교회당만이 남게 되였다.
 미제승냥이들은 적십자표식이 있는 건물들과 병원은 공격하지 않기로 되여 있는 국제협약마저 짓밟고 보건기관들에 대한 파괴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1951년 1월 3일과 4일 평양중앙병원의 지붕우에는 고도 6,000∼8,000m에서도 볼수 있는 적십자표식이 뚜렷이 띄여 져 있었지만 미제공중비적들은 30m의 저공으로 날며 폭탄을 마구 투하하여 병원을 파괴하고 보건성건물을 페허로 만들었다.
 미제는 2월 강계시중앙병원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여 의사와 환자 200여명을 살해하였으며 9월 23일에는 안변군에 있는 양로원을 완전히 파괴하고 로인 27명을 학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0월 13일 성천군료양소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33명을 살해하고 50동의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16일에는 강계시에 대한 무차별폭격을 감행하여 적십자병원을 파괴하고 치료중에 있던 33명의 환자와 17명 어린이의 생명을 앗아 갔다.
 17일에는 병원과 아동공원이 있는 동창군 대유로동자구에 대한 야간폭격을 감행하여 134명의 어린이와 26명의 환자를 살해하였다.
 미제승냥이들의 날강도적인 폭격에 의하여 1951년 한해에만 하여도 평양시에서는 32개의 병원과 진료소가,사리원시에서는 16개의 병원과 진료소가 파괴되였다.
 미군은 군사적목표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옛절간,고분,루각,성문들도 가차없이 폭격파괴하였다.
 미군야만들은 1951년 1월 3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모란봉의 영명사에 수많은 폭탄과 소이탄,휘발유통을 투하하여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5월 6일에는 고대건축유적인 절간들이 있는 금강산 일대에 많은 량의 나팜탄과 소이탄을 투하하여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있던 옛절간인 장안사의 건물 700간을 불 태워 버렸다.
 6월 13일,14일 2일간에 걸쳐 미제공중비적들은 고산군 설봉리에 대한 맹폭격을 감행하여 석왕사를 파괴소각하였다.
 그리하여 석왕사의 응진전과 호지문,대웅전과 팔상전을 비롯하여 50채에 달하는 웅대하고 호화스러웠던 건물들이 일시에 재더미로 되고 말았다. 
 6월 25일 미제야수들은 또다시 금강산일대를 폭격하여 외금강 특수박물관으로 귀중히 리용되여 오던 대웅전을 비롯한 신계사의 목조건물들을 모조리 불 태워 버리였다.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거대한 절간이였던 백운사도 파괴소각되였으며 내금강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던 표훈사도 심히 파괴되였다.
 특히 미제는 금강산 4대 절간가운데서 가장 컸으며 금강산에 있는 총 60여개 절간의 중심이였던 유점사를 완전히 재더미로 만드는 귀축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그리하여 3,000여간에 달하는 40여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과 돌등,9층탑 등이 완전히 재더미로 되였으며 금강산의 4대절간은 불 타버렸거나 못쓰게 되였다.
 전쟁기간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의 대웅전,만세루,심검당 등 여러채의 중심건물들이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불 타 없어졌을뿐아니라 해주의 부용당과 안주의 백상루,성천의 동명관,강계의 북문과 인풍루,희천의 위성관,평양의 숭령전과 숭인전도 그 형체를 찾아 볼수 없게 되였다.
 이처럼 미군의 야만적인 폭격만행에 의하여 웅장화려하고 우아하던 공화국북반부의 민족문화유산들,절간들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불 타버리고 말았다.
 미제침략자들의 폭격,포격만행에 의하여 공화국북반부에서 입은 인민경제피해액은 초보적인 자료에 의하더라도 약 4,200억원(당시 화페)에 이르렀다.
 공업부문에서는 8,700여개소의 공장과 제조소,생산설비들이 파괴되였으며 농촌에서는 37만정보의 농토가 피해를 입고 농경지가 9만정보나 줄어 들었다.
 그리고 60여만동의 살림집,5,000여개의 각급 학교,1,000여개의 병원과 진료소,260여개의 극장 및 영화관과 수천개의 문화후생시설들이 파괴되였으며 도시와 농촌은 재더미로 되였다.
 도시와 농촌을 페허로 만들고 전쟁력사에 일찌기 있어 보지 못한 온갖 야수적방법과 범죄적수단을 다 동원하여 우리 민족을 멸족시키려고 한 미제의 만행은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가장 극악무도한것이였다.
 조선인민은 천추에도 잊지 못할 미제침략자들의 이 극악한 만행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것이며 그 값을 천백배로 받아 내고야 말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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