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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투사 김일의 서거 20돐 중앙추모회 진행
(평양 3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혁명투사 김일동지서거 20돐 중앙추모회가 9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였다.

추모회에는 내각성원들,당,무력기관,정권기관,사회단체,성,중앙기관 일군들,조선인민군 장병들,과학,교육,문화예술,보건,출판보도부문 일군들, 항일혁명렬사유가족들,근로자들이 참가하였다.

당과 국가,군대의 지도간부들과 우당 위원장들,무력기관,사회단체 책임일군들,항일혁명투사들,로력혁신자들이 주석단에 나왔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인 양형섭동지가 추모사를 하였다.

추모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오늘 우리는 전당,전군,전민이 선군의 기치높이 강성대국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혁명적공세를 드세차게 벌리고있는 시기에 김일동지의 서거 스무돐을 맞이하면서 우리 혁명의 원로투사이며 당과 국가의 저명한 활동가였던 동지의 고귀한 생애와 투쟁업적을 경건히 돌이켜보고있다.

1910년 3월 함경북도 어랑군의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이국땅에서 망국민의 설음과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한 김일동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을 심장으로 받아안고 1930년대 초에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하여 지하당 및 반일대중단체사업에 적극 투신하였으며 그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손에 무장을 잡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보살피심속에서 련대정치위원으로 성장하여 항일대전의 력사적승리에 커다란 공헌을 한 김일동지는 광복후와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민족보위성 부상,전선사령부 군사위원,평안남도당 위원장 등의 중임을 지니고 혁명무력건설과 우리 당의 강화발전,전쟁승리에 특출한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혁명, 사회주 의건설시기에는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내각제1부수상,정무원총리,공화국 제1부주석 등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서 활동하면서 안팎의 원쑤들의 책동으로부터 수령을 결사옹위하고 당과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강화하며 전반적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기 위하여 헌신분투하였다.

김일동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실한 혁명전사,친근하고 미더운 혁명전우였으며 한생을 민족해방과 조국번영의 위업에 바쳐 불멸의 공적을 쌓은 우리 당과 국가의 우수한 활동가였고 조국과 인민의 충직한 아들이였다.

백두산시절부터 오직 위대한 수령님 한분만을 믿고따르며 험난한 혁명의 길을 드팀없이 걸어온 불굴의 혁명투사,애국충신인 김일동지는 전 생애를 통하여 우리에게 조선의 참다운 혁명가는 자기 수령을 어떻게 모시며 자기 당과 자기 계급에게 어떻게 충실하여야 하는가 하는 산 모범을 보여주었다.

혁명하는 사람의 인생관의 근본핵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며 바로 이것이 혁명가의 최고인격이다.

김일동지의 한생을 관통하고있는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절대적인 수령옹위정신은 오래고도 시련에 찬 혁명투쟁속에서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성을 깊이 체득하는 행정에 뿌리내리고 철석으로 다져진 신념이였다.

조선의 남아로서 불타는 애국의 열정,혁명의 포부를 안고 반일의 길에 나섰으나 옳바른 령도자가 없어 암중모색하던 김일동지에게 있어서 주체의 빛발로 우리 혁명의 진로를 밝혀주신 김일성장군님은 애타게 갈망하던 혁명의 태양이시였고 민족운명의 구세주이시였다.

수령의 믿음과 사랑은 혁명전사의 생명선이며 무비의 충성과 위훈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다.

김일동지는 그 시절에 받아안은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을 평생토록 삶과 투쟁의 자양소로 삼고 항일혈전의 나날로부터 광복후 혁명활동의 전 기간에 걸쳐 일심전력 충성의 한길을 걸어왔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여 조국의 광복과 혁명의 밝은 미래가 기약되여있다는것을 절대적인 신념으로 간직한 김일동지에게 있어서 수령님의 안녕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였으며 혁명의 지상의 요구였다.

김일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돌보아 드리는데서 참으로 지극했으며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위해서라면 말그대로 육탄방패가 되여 결사적으로 투쟁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안녕을 위하여 사생결단의 각오로 몸과 마음을 다 바친 김일동지의 헌신적인 모습은 오늘 수령결사옹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철옹성같이 보위하며 선군의 한길로 전진하는 우리 당과 군대,인민의 훌륭한 귀감으로 되고있다.

김일동지는 수령의 사상과 로선의 절대적인 신봉자,견결한 옹호자,철저한 관철자였다.

꾸준하고도 심오한 학습과 혁명실천을 통하여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과 주체적인 로선만이 조선혁명의 백전백승을 담보하는 유일하게 정당한 길임을 심장깊이 받아들인 김일동지는 그와 어긋나게 행동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직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맹호와 같이 맞서 무자비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수령의 사상과 로선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였다.

수령의 충신,참다운 혁명가로서의 김일동지의 위훈많은 생애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당정책을 결사관철하는 혁명성,완강성,자기희생성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당정책관철에서 발휘한 김일동지의 헌신성,완강성,희생성은 년대와 년대를 이어 생의 말년까지 추호도 변함이 없었다.

초년고생의 어혈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모진 병고에 시달리던 김일동지가 끝내 암성질환이라는 무서운 선고를 받았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하나 그의 병을 고쳐주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으며 사업부담을 최대한 덜어주고 절대로 무리하지 않도록 극진히 보살펴주시였다.

하지만 김일동지는 그 하늘같은 은총에 일로 보답해야 한다고 하면서 운신하기 힘든 몸을 지팽이에 의지하고 무산과 김철,흥남과 신포 등 전국각지의 사회주의건설장을 찾아다니며 경제사업을 정력적으로 지휘하였다.

김일동지는 말로써가 아니라 혁명실천,사업실적으로,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당과 수령을 받들어온 진짜배기충신의 전형이였다.

당정책관철과정에 그가 발휘한 견인불발의 혁명정신과 전투적인 일본새,순결한 량심은 오늘 어려운 정세속에서 당의 강성대국건설위업을 실현하기 위해 영웅적인 투쟁을 벌리고있는 우리들이 반드시 따라배워야 할 귀중한 본보기로 된다.

김일동지는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이기전에 조직관이 투철한 성실한 당원이였다.

그것은 그가 사망하기 3일전에 힘겨웁게 출근하여 당세포에 가서 부주석으로서 경공업을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킬데 대한 당의 의도를 더 잘 받들지 못한 부족점을 비판하고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 수령님의 교시관철에서 가장 억센 일군이 될 결심을 피력하는것으로 마지막 당생활총화를 한 다음 전화로 당중앙위원회 한 책임일군에게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잘 모셔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남긴데서도 뜨겁게 느낄수 있다.

사생활을 청렴결백하게 하고 가정을 혁명화하는데서도 김일동지는 남다른 모범을 보여주었다.성품이 소박하고 고지식한 김일동지는 수십년세월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로 사업하였지만 세도와 관료주의란 전혀 몰랐으며 그 어떤 특전특혜를 받게 되면 큰 변고라도 생긴것처럼 여기며 한사코 거절하군하였다.

김일동지가 조국과 혁명,시대와 력사앞에 이룩한 가장 커다란 업적의 하나는 백두에서 개척된 조선혁명의 명맥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할 위대한 령도자를 받들어모시는데서 핵심적역할을 한 공적이다.

김일동지는 다른 혁명투사들과 함께 당의 기초축성시기에 활동한 열정적인 새 세대 일군들을 선도하며 위대한 장군님을 우리 당과 혁명의 수위에 높이 모시고 그이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 기울이였다.

그리하여 혁명투쟁에서 중핵을 이루는 수령의 위업계승문제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빛나게 실현됨으로써 오늘 우리는 희세의 위인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정일동지를 당과 국가,군대의 최고령도자로 높이 모시고 대를 이어 수령복,장군복을 누리는 끝없는 행운을 지니게 되였으며 전당,전군,전민이 위대한 장군님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신심과 락관에 넘쳐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힘있게 다그쳐나갈수 있게 되였다.

참으로 김일동지는 당과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로 하여,확고한 혁명적원칙성과 불굴의 투쟁정신,소박한 품성으로 하여,시대와 혁명앞에 쌓아올린 고귀한 업적으로 하여 우리 인민의 다함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주체형의 견결한 혁명투사였다.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백두산에서 혁명을 시작한 때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 항일의 나날에는 광복성전의 전위투사로서,사회주의건설의 년대들에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1번수의 위치에서 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심신을 다바쳐 투쟁한 김일동지는 그처럼 바라마지 않던 조국통일의 날을 보지 못한채 주체73(1984)년 3월 9일 오랜 병환끝에 일흔네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

김일동지는 비록 혁명의 최후승리를 보지 못하고 우리곁을 떠나갔으나 한생의 진정을 다 바쳐 당과 수령을 충성으로 받든 그의 숭고한 혁명정신과 고귀한 업적은 우리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으며 새 세기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는 전당,전군,전민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해줄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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