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오는 3월 16일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배움의 천리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81돐이 되는 날이다.
주체12(1923)년 이날 김일성주석께서는 조국을 광복하자면 제 나라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12살 어리신 나이에 혼자몸으로 중국 장백현 팔도구에서 고향 만경대(평양)를 향하여 떠나시였다.
주석께 있어서 조국의 북변 압록강을 건너 포평에서부터 만경대에 이르는 천리로정,천고의 수림을 헤치고 찬바람,눈보라 휘몰아치는 계곡을 지나야 하는 《배움의 천리길》은 참으로 멀고도 간고한 길이였다.
하지만 그 길에서 겪으시는 일신의 고달픔보다 더욱 마음 아프고 괴로운것은 일제에게 짓밟히고 뜯기우는 조국의 현실을 보시는것이였다.
화전민의 움막집들과 거기에서 주고받는 기막힌 이야기들,포승에 묶이워 끌려가는 무고한 인민들,어디서나 보이는것은 수난에 찬 겨레의 모습이였고 들리는것은 인민들의 원한에 찬 목소리와 한숨뿐이였다.
주석께서 모진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열나흘만에 고향집사립문안에 들어서시였을 때 일가분들은 깜짝 놀랐다. 열두살 어리신 나이에 산중 천여리길을 혼자걸어오신데 대해 모두가 감탄하는데 그이께서는 나이가 어리다고 두 나라 지경이야 혼자 못다니겠는가고 웃으며 대답하시였다.
그후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면서 조선의 력사와 지리 그리고 조국의 현실을 더욱 깊이 체득하신 그이께서는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기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굳은 맹세와 불타는 애국심을 지니시고 1925년에 만경대를 떠나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시였다.
조선인민은 력사적인 천리길로정우에 수놓아진 주석의 혁명사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포평과 화평,개천 등지에 그이의 동상을 모시고 혁명사적관과 학생소년궁전을 세웠다.
전국의 청소년학생들은 김일성주석을 따라배우며 강의한 의지와 튼튼한 체력을 소유하기 위하여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을 해마다 정상적으로 진행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