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지금 남조선과 서방보도수단들이 우리 공화국이 그 무슨 《화학무기인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허위보도를 하고있는것과 관련하여 그 보도자료로 악용되고있는 가짜 문건을 직접 작성한 당사자들인 강병섭과 그 가족이 30일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있은 기자회견에서 그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밝혔다.
기자회견 요지는 다음과 같다.
-강병섭의 발언
이 자리에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무슨 망녕이 들었댔는지 나 자신에 대한 저주와 환멸만이 지금 온 머리속에 꽉 차 있다.
지금 적들이 악용하여 불어대고있는 《화학무기인체실험》과 관련한 문서들은 이미전에 월남도주한 맏아들녀석과 우리 가족이 만든 허위문건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앉아서도 불안한 마음을 진정할수 없으며 이런 엄청난 가짜 문서를 만들어낸 자신들에 대한 환멸과 증오로 몸서리치게 된다.
특히 우리가 조작한 허위문서를 가지고 최근 남조선과 서방이 우리 공화국에서 《화학무기인체실험》을 한다고 그처럼 악랄하게 떠들어대고있다니 이 가짜 문건의 작성자,목격자,증견자인 저희들로서는 이 사건의 진상을 만천하에 폭로하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어 오늘 이렇게 기자회견을 요청하였다.
나와 우리 가족을 소개하겠다.
나는 지난해 8월 중국에 비법월경하였다가 돌아 와 현재 함경남도 흥남시 2.8비날론련합기업소 경로동직장 로동자로 일하고있는 강병섭이다.
사는곳은 함경남도 흥남시 소나무동 3반이다.
우리 가족은 나와 처,현재 남조선에 나간 맏아들 강성국,둘째아들 강성학, 그리고 이미 출가한 딸 이렇게 5명이다.
우리가 비법월경할 생각을 하게 된것은 이미 7년전에 행방불명되여 소식하나 없던 맏아들로부터 지금까지 부모들에게 걱정을 많이 끼쳤는데 자기가 얼마간의 돈을 주겠으니 중국에서 만나자고 여러차례의 련락을 받은 후부터였다.
그래서 나는 로친네와 함께 2003년 8월 29일 비법월경하여 맏아들 성국이를 만났으며 11월초에는 성학이까지 중국에서 만나게 되였다.
맏아들 성국이와 우리 가족이 가짜 문건을 날조하게 된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하겠다.
그때가 아마 2003년 11월 25일경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이날 중국 연길시 영빈교에 있는 어느 한 아빠트 5층집에서 아침 식사랑 다 하고 10시경이 되였는데 여느때 같으면 우리에게 남조선에 가면 어떻게 잘 산다,어떻게 대우받는다, 어디어디 구경가자고 하며 별의별 말을 곧 잘 하던 그 녀석이 그날아침에는 별로 정색해가지고 하는말이 《지금 남조선경제도 하강해서 살기가 힘들다는것, 특히나 우리 집 경우에는 아버지의 등이 구불어졌지, 어머니도 이젠 늙어서 어쩌지 못하지, 이런 상황에서 성학이를 어떻게 하나 대학공부를 시켜서 인재로 양성시킬 때만이 우리 집이 일어설수 있는데 그 많은 돈을 얻자면 무슨 수를 써야 되겠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나와 성학이가 영문을 몰라 벙벙해하면서 그 녀석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며칠전까지만 하여도 남조선에 나가면 서울 강남구 목동이라는 경치좋은 곳에 훌륭한 아빠트 3층에 자기 집이 있고 자가용 승용차까지 있다고 별의별 구수한 소리를 다하더니 오늘은 왜 저런 소리를 하는가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였다.
이런 우리의 눈치를 보던 성국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버지 재간이 없소.아무리 내가 생각해봐두 아버지 그 허리는 해당기관에 들어가 얻어 맞아서 그렇게 되였다구 합시다. 그렇게 하면 장애자대우를 받는것이 아니라 북조선에서처럼 영예군인대우받듯이 된단말이요, 아버지허리는 그렇게 하면 되겠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되겠습니다.》고 하면서 무엇인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아버지,아버지네 기업소에 공장과 떨어져 산골짜기 같은데 있는 직장이 없는가요?》하고 묻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별생각이 없이 《응, 직장 하나가 산골짜기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성국이가 하는 말이 《됐습니다. 아버지, 그곳에서 화학무기인체실험을 한다고 합시다. 그런 중요 비밀을 우리가 알아가지고 왔다고 해야 남조선인권단체에서 뭉치돈을 받을수 있습니다.》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야! 이 도깨비야 우리 공장 산하에는 화학공장이라는것이 없다. 특히나 화학무기생산같은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조금이라도 그런 건덕지가 있어야지 어떻게 생판 뚱딴지 같은걸 지어내니?》하고 말하니까 성국이가 《야! 아버지,아버지는 늙어서 사고력이 그게 다요,내가 문건을 만드는걸 좀 보오. 그따위 남조선인권단체놈들이 이러는지 저러는지 알게 뭐요? 2.8 이화학공장이니까 그런걸 만드는가 하겠지. 잘 몰라요》하면서 우겨댔다.
이렇게 말씨름을 하다나니 10시 30분경이 되였다. 그때 성국이가 이불장문을 벌컥 열더니 마분지통을 하나 꺼내였다. 그 안에서 모조지 여러장을 꺼내였는데 이미 인쇄한 종이였다. 제일 웃쪽중심에 《이관서》라고 씌여져 있었고 그 아래 왼쪽옆에 《성명,성별,생년월일》로 되여있었으며 그 밑에 《출생지》, 또 그 아래에 《거주지》라고 인쇄되여 있었으며 그 사이에 10센치정도 비여있었다. 그리고 밑부문에 《2.8비날론련합기업소 해당기관에 이관함》라는것과 제일 밑부문에 《주체 년,월,일》라는 글자가 찍혀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다 무엇을 쓰느냐?》하고 물으니 자기가 다 생각이 있으니 《아버지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나 생각해보라요》하는것이였다. 내가《야 아무때 죽은 사람도 일없느냐?》하고 물었더니 《옛날 죽은 사람말고 지금부터 그래도 1-2년내에 죽은 사람들 말이요》하는 것이였다.
정작 죽은 사람을 골라내자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성국이가 무릎을 탁 치면서 《옳지, 림춘화 형님이 죽었으니 춘화형님을 하나 넣어야지》하였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림춘화로 말하면 여기에 있는 우리 로친네 언니의 둘째아들이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군 동흥리에서 농장원으로 일하다가 병으로 사망했는데 그를 이런데다 리용하겠다고 하는것이였다.
그 다음 3~4명을 더 써넣었는데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주소도 나이도 알지 못하여 생각나는대로 마구 지어내여 써넣었다.
집주소들은 다 함경남도 사람이 되면 안된다구 하기에 아들녀석이 자기 생각나는대로 써넣었다.그렇기때문에 지금 아무리 기억을 되살리재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초안을 다 만들어 놓았다.
내가 이 초안용지를 보면서 성국이녀석에게 《야, 이놈아 지금 우리 공화국에서 쓰는 문건들은 <성명>,<생년월일> 이런말을 쓰지 않는다. 이름,난날,이렇게 쓴다》고 하니《아버지 제발 말시키지 말라요, 성명이면 어떻구 이름이면 어떻나, 그게 그 내용이지》하면서 고집을 쓰는것이였다. 계속해서 내가 《그래도 문건이라면 갖추어야 할 초보적인것은 갖추어야지 세살먹은 애들도 보구서 가짜라고 할 문서를 만들어서 뭘하겠다는거냐》고 하였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한창 웃어대더니 《아버지, 되였어요,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으니 아버지는 좀 쉬라구요》하면서 제딴에 나를 나무라는것이였다.
그리고 나를 보고 글씨를 좀 써보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성국이가 하는 말이 《내 필체는 그놈들이 만약 나를 보고 써보라구 하면 들키기때문에 아버지 필체를 좀 보자는것이예요》하였다. 그래서 내가 글자를 몇자 썼는데 마음에 안든다구 하면서 텔레비죤을 보고있는 성학이를 오라고 하면서 그애에게 아무 글을 좀 써보라구 하였다.
그 글을 보더니 성학이 글이 괜치 않다구, 대학생이 다르다고 하면서 성학이에게 정서를 시켰다.
내가 그때라도 좀 제정신을 차리였다면 성학이를 이런데까지 끌어 들이지말라고 하였겠건만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에 아무대꾸도 없이 성학이가 그 초안을 정서하는것을 쳐다만 보았다.
이렇게 위조문건이 다 정서되자 성국이는 다시 옷장을 열고 지함안에서 마분지통안에 있는 도장과 인즙을 꺼내가지고 기관명판은 청색마지크에, 공인은 인즙에 묻혀 여러번 눌러보더니 정서된 위조문건에 찍었다.
그 도장을 보니 국장 같은것만 보아도 공인이라고 말하기는 정말 엉터리라는것이 알리였다. 가운데 수력발전소, 산이 진짜 국장처럼 백두산이 아니고 그저 산이였으며 언제만 있고 발전실은 없는 그런 도장이였다.
그래서 《야,성국아, 이도장이 너무 엉터리다. 내용은 그놈들이 속아 넘어 간다고 해도 이 도장을 보고는 나도 속히우지 않겠다.》고 하였더니 《일없소, 그깐 놈들이 그림을 그리 뜯어 보겠소?》하면서 거두어 자기 가방안에 넣었다.
원래 성국이녀석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지 않고 말썽만 부린 깡통대가리였는데 우리와 헤여져 7년사이에 이렇게 발전해서 이런 허위문서도 척척만들어 내고 있으니 그것이 믿어지지도 않았고 누가 뒤에서 조종해 이런 놀음을 벌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이였다. 그집 아주머니가 무엇이 좀 미타한지 《야,성국이, 인제는 그 도장이 필요없겠지?》하고 물으니까 성국이가 《예,필요없소》하니주인집녀자가 식칼을 가지고 올라와서 도장들을 꺼내서 칼로 갈기갈기 썰어 버리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지도 않는 《화학무기인체실험》을 한다는 엉터리없는 허위문서가 만들어지게 되였으며 성국이녀석을 통해 남쪽으로 나가게 되였다.
결국 우리의 허위문서날조행위는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은혜로운 조국의 품속에서 평생 근심걱정없이 화목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일순간에 저버리고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의 영상에 먹칠을 하는 범죄행위를 초래하게 되였다.
정말 사람이 돈에 환장하고 허황한 망상에 빠지면 조국을 배반하는 엄청난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다는것을 저는 이번 계기를 통하여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다.
-강성학의 발언
내가 바로 형 강성국의 꾀임에 넘어가 최근 남조선과 서방이 떠들고있는 우리 공화국의 소위《화학무기인체실험》에 대한 허위문건을 직접 정서한 강성학이다.
이 문건을 쓸 당시 저의 형은 많은 돈을 벌자고 문건을 만든것처럼 말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저희들이 중국에 가기전에 이미 꾸며진 정치적모략극,날조극이라고 생각된다.
형으로 말하면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싫어 하고 놀고먹기 좋아하다나니 글이라면 아예 깡통인데 저의 형 머리로 이런 문건을 생각해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형도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한 그 어떤 자들에게 속히워 우리 부모형제를 꾀여가지고 있지도 않는 《화학무기인체실험》에 대한 허위문건을 작성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들을 당과 수령,조국앞에 씻을래야 씻을수 없는 대반역죄를 짓도록 만들어 놓은 형과 그를 뒤에서 조종한 악랄한 원쑤들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하여 터무니없는 위조문건작성의 진상을 까밝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수 없다.
그 위조문건을 쓸 당시 경위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다.
그날 아침 밥을 먹고나서 10시30분~40분경이였다. 내가 텔레비를 보고 있는데 형이 나를 찾더니 글 몇자를 써보라는것이였다.
그래서 제가 종이우에다 글 몇자를 썼더니 그걸 보고 저의 형은 《네 글씨가 보기 좋구나, 대학졸업생이 다르긴 다르구나.》고 저를 취주면서 내가 이 문건을 써야겠다는것이였다.
그래 내가 무슨 문건을 쓰는가고 물으니 《이제 남조선에 가든 어디에 가든 돈이 많아야 하는데 일을 해서 돈을 벌자면 힘들다.그래서 내가 생각나는것이 있어 하는것이니 너는 내가 부르는대로 받아 쓰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내 앞에다 문건양식을 내놓았는데 문건양식은 《이관서,성명,성별,생년월일,출생지,거주지》로 되여있고 공간이 좀 있으며 그 밑에 《2.8비날론련합기업소해당기관에 이관함,주체 년,월,일》이라고 이미 찍혀져있었다.
이 문건양식에다 제가 형이 부르는대로 받아쓰기 시작했다.
앞서 아버지도 이야기했지만 저의 외사촌형 림춘화에 대한 《이관서》를 비롯하여 총 5장을 썼는데 나머지 4명의 성명,생년월일,출생지,거주지는 저의 아버지와 형이 앉은 자리에서 생각나는대로 막 지어서 불러주었기때문에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문건이 다 작성된 다음 형은 이미 준비해두었던 공인,명판을 꺼내서 문건에 찍었다.
그 다음 문건에 찍은 도장자리가 마를 때까지 한참 뒀다가 이 문건을 마구 구겨가지고 물에 담그었다가 꺼내여 펴서 말린후 다시 거두어서 자기가 건사하는것이였다.
제가 왜 그렇게 하는가고 물으니 누가 봐도 이 문건이 위조문건이 아니라 진짜 문건처럼 보이게 하자고 그런다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저는 영화에서나 본 나치스도이췰란드가 지난 2차세계대전시기 포로들을 상대로 감행하였던 화학무기인체실험을 우리 공화국에서 한다는 무시무시한 허위날조문서를 내 손으로 직접 정서하게 되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몇푼도 안되는 돈에 눈이 어두워 저를 이날 이때까지 먹여주고 입혀주고 대학공부까지 시켜준 고마운 어머니조국, 장군님의 사랑을 배반한 자신에 대한 환멸과 자책으로 하여 우리 조국의 맑은 하늘을 바라볼수 없었고 다정한 친우들과 이웃들을 대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 공화국은 조국에 돌아온 저희들이 대대손손 씻을래야 씻을수 없는 대역적죄를 솔직히 다 이야기하고 용서를 빈데 대하여 관대성을 베풀어 주고 우리 가족이 새로운 출발을 할수 있도록 해주었다.
저는 꿈에서도 생각할수 없는 《화학무기인체실험》에 대한 허위날조문서를 직접 정서한 본인으로서 이 날조문건의 허위성을 세상에 까밝히는것이 고마운 우리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으로서의 의무와 본분을 다하는 길이라는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이어 가족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아들 강성국이가 월남도주하게 된데 대해 강병섭은 그는 함흥에 있을때 부터 생활을 깨끗하게 하지 못했고 일하기 싫어하고 놀고 먹기를 좋아했다고 하면서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 생활이 곤난해지자 일도 나가지 않고 사기행위만 하던 그가 많은 남의 돈을 협잡의 방법으로 빼앗아 가지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다가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저주를 받게 되자 부모와 조국을 버리고 월남도주하였다고 말하였다.
허위날조된 문건을 정서한 둘째아들의 필체를 보여달라는 기자에게 강성학은 그때 자기가 쓴 위조문서의 내용을 자필로 써서 보여주었다.
강병섭의 허리가 구부러진데 대해 묻자 그는 젊어서부터 축구를 몹시 좋아한 자기가 한번 축구를 하다가 허리를 상한 다음부터 차츰 허리가 휘여들기 시작했다고 대답하였다.
위조문건에 찍은 공인,명판들을 누가 만들었는가의 질문에 강병섭과 강성학은 성국이는 그런 명판을 새길만한 재간이 조금도 없어 누가 만들어준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딸 강혜영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가족이 진 죄는 정말 대를 두고 씻고씻어도 씻을수 없는 대역죄이다.
그러나 고마운 조국에서는 우리 가족이 이 모든 죄과를 솔직히 얘기하고 용서를 빈데 대하여 관대하게 받아들여 조국으로 돌아온후에는 종전처럼 함께 생활하도록 해주었다.
세상에 태여나 오늘까지 당과 조국의 인덕정치,광폭정치를 직접 체험하면서 살아왔지만 지금처럼 페부로,심장으로,뼈저리게 절감한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또 한사람도 아닌 우리 부모형제들 모두가 진 죄를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개진의 길을 열어주었으니 지금 저의 심정을 무엇이라고 표현할수 있겠는가.
저와 우리 온 가족은 오늘의 이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고 자식들대에까지 두고두고 전해갈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마운 조국을 위해 자기의 피와 땀을 다 바쳐 나갈것을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굳게 결의하게 된다.
끝으로 저는 자기 부모형제들은 물론 어머니조국까지 배반한 오빠 강성국이를 저주하며 또한 그를 부추겨 우리 온 가족을 이런 구렁텅이에 몰아넣으려고 했던 자들을 증오한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 기자 여러분들이 우리 부모형제들을 모해하고 우리 조국을 감히 헐뜯으려고 이런 너절한 사건을 조작하고있는 자들의 비렬한 행위에 대하여 진실그대로 만천하에 폭로해 주시기를 부탁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