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4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태양절을 맞으며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온 강산에 차넘치고 있는 가운데 얼마전 우리는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찾았다.
우리의 취재대상자는 주체64(1975)년 3월 173차 귀국선으로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겨 이 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으로 사업하고 있는 최연화였다.
기악학부 피아노 1강좌 사무실에 들어서니 때마침 그가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연주에 열중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조국을 찾아 주시고
이 행복 안겨 주신 어버이수령님
해빛 같은 미소 그립습니다
따뜻한 그 품 그립습니다
천만년 세월 흐른대도
수령님을 못잊습니다
...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선률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을 못잊어 하는 우리 인민 모두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는것만 같았다.
어느덧 노래 마지막절의 연주를 끝내고 우리를 반겨맞은 그는 해마다 태양절이 오면 대원수님의 해빛 같은 그 미소가 한없이 그리워져 오늘도 이렇게 피아노 앞에 마주 앉았다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그는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던 그때의 감격에 대해 눈물을 머금으며 뜨겁게 회고하였다.
주체61(1972)년 8월 우리 요꼬하마조선초급학교 음악소조원들은 조국에 와서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들은 평양학생소년궁전 극장에서 조국의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예술소품공연준비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대원수님께서 우리 소조원들의 공연을 친히 보아주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꿈같은 소식에 접한 저의 가슴은 커다란 흥분과 기쁨으로 높뛰였다. 혹시 아버지대원수님 앞에서 실수하지나 않을가 걱정도 컸다.
마음을 진정하며 이날 대원수님앞에서 저는 피아노 독주곡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를 연주하였다.
지금도 그때 태양의 존함 그대로 환한 미소를 지으신 대원수님께서 나의 피아노연주를 들으시고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며 재청을 요구하시던 자애로운 영상을 잊을수 없다.
나는 계속하여 《봄노래》를 연주하였다.
이날 아버지대원수님께서는 공연이 끝난다음 나를 몸가까이 불러 주시고 이름은 무엇인가, 몸은 건강한가, 부모들은 다 잘있는가고 친어버이 심정으로 따뜻이 물어주시였다.그러시고는 피아노를 참 잘 친다고,앞으로 조선의 훌륭한 음악가가 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큰 다음에 끼라고 하시며 손목시계를 선물로 주시였다. 저는 그 순간 그 사랑이 너무도 크고 고마와 대원수님의 넓은 품에 와락 안기였다.
대원수님께서는 나를 꼭 껴안아 주시며 울지말라고, 이 기쁜날에 울면 되는가고 갈리신 음성으로 달래시며 저의 두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시였다.
이날 그이께 더 큰 기쁨을 드리지 못할망정 눈물을 보인 자신이 더없이 민망스러웠다.
진정 조국의 미래를 누구보다도 귀중히 여기시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가슴뜨거운 사랑의 전설을 이 땅에 수놓으시고 후대들속에 계시는것을 제일 큰 기쁨으로, 락으로 여기시며 주실수 있는 모든 행복을 다 안겨주신 아버지대원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천만년세월이 흐른다해도 영원히 잊을수 없다.
꿈만같던 그날의 사연깊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고난 그는 아버지대원수님께서는 오늘도 태양의 모습으로 환히 웃으시며 이 땅의 천만군민을 한품에 안으신다고 하면서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속에서 자기가 받아안은 가지가지의 일들에 대하여서도 말하였다.
기자와 헤여지면서 최연화는 자기는 기쁜일이 있어도 대원수님을 생각하고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아도 대원수님의 거룩한 영상을 우러르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영원히 충성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겠다고 말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