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18일발 조선중앙통신)5월 18일은 영웅적광주인민봉기 24돐(1980)이 되는 날이다.
미제와 남조선군사파쑈분자들의 통치를 반대하고 민족의 자주권과 사회의 민주화,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떨쳐나선 남조선인민들의 이 대중적투쟁은 피의 란무장으로 되였다.
광주의 대규모 류혈사태는 전적으로 미제의 배후조종에 의하여 빚어졌다.
광주인민봉기가 날로 확대되는데 당황한 미국무장관,미국방장관 등 주요인물들은 《폭도》들을 《무쇠주먹》으로 다스리라고 폭언하며 《신군부의 광주무력진압을 지지한다》는 최종결론을 내렸다.
주체85(1996)년 2월말 남조선《련합뉴스》의 전신인 《련합통신》에 의하면 광주사태때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 사령관이였던 윅캄은 한 공식석상에서 당시 자신이 남조선군 20사단의 《광주투입을 승인》했다고 실토하였다. 그리고 1997년 5월 상순 남조선의 《제1라지오》 워싱톤특파원이 전한데 의하면 당시 서울주재 미국대사 글레이스틴은 미국무성에 보낸 전문에서 남조선당국이 《광주에서 군병력을 사용하도록 하는데 동의하였다》고 밝혔다.
미국신문 《져널 오브 코미스》 1996년 2월 27일부는 남조선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투쟁이 봉기에로 넘어가게 되리라는것을 감촉한 서울주재 미국대사가 1980년5월 7일 미국무성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남조선군부를 사촉하여 시위진압경찰무력을 군병력으로 증강 또는 교체할 의도를 밝히고 5월 9일에는 미행정부가 그것을 승인하였다는것을 남조선당국에 직접 통보하였다고 하면서 모든 흉계가 이미 봉기전에 꾸며졌다는것을 폭로하였다.
미제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남조선에 있는 전체 미군무력에 경계령을 내리는 한편 봉기자들과 인민들에 대한 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광주사태의 목격자들인 미국《평화군》성원들이 광주봉기가 한창일때 미8군소속 직승기들이 광주상공에 나타나 주민들이 모인 장소들에 기총사격을 가했다고 폭로한바 있다.
남조선인민들은 광주대학살만행의 장본인인 미국과 반드시 결산하고 미국의 지배를 끝장내기 위해 과감히 싸워나갈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