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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손원태선생의 회상록 《김일성과 조선의 투쟁》 미국에서 출판
(평양 5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재미교포 손원태선생의 회상록 《김일성과 조선의 투쟁》(영문판)이 최근 미국에서 출판되였다.

회상록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평양을 방문한 손원태선생을 접견하시는 력사적사진문헌들이 모셔져있다.

손원태선생은 회상록에서 일찌기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조선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다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활동과 빛나는 생애에 대하여 감명깊게 서술하였다.

회상록은 머리글과 4장, 27절로 구성되여있다.

선생은 머리글에서 《하늘의 덕으로 나는 김일성주석과 련결된 나의 한생,젊었을 때 헤여져 60년이 지난 팔순에 가까와 다시 만날 때까지의 보기드문 력사적사실의 증견자로 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세월의 풍상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주석은 길림시절의 다정다감한 소년 김성주이시였다.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위정치지도자께서 위대한 평민 김성주로 남아있다는것이 정말 기뻤다.

나는 주석께서 어린시절 민족구원의 길에 어떻게 들어서시였는지 내 눈으로 보았다. 또 어떻게 조선의 민족적독립을 위하여 만주광야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벌리시였는가에 대해서도 안다. 그리고 광복된 나라의 북반부에 그이께서 일떠세우신 사회제도를 보았다. 그 땅우에는 진정한 애국주의와 민족의 씨앗이 심어져있다.

주석의 민족해방투쟁을 떠나 어떻게 조선을 생각할수 있겠는가. 나는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력사의 진실을 알려주는것이 나의 임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를 친동생으로,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진실한 벗으로 대하여주신 주석의 친근함에 부끄러움없이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손원태선생은 회상록의 제1장 《김일성주석을 처음으로 만나》(1.나의 어린 시절, 2.나의 아버지 손정도목사, 3.중국 길림, 4.조선인길림소년회, 5.민족의 넋에 대한 생각, 6.기억속에 지워지지 않는 모습, 7.안창호석방운동)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일가분들과 자기 가족들 사이에 맺어진 친분관계에 대하여서와 그것이 수령님께서 길림에서 초기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더욱 깊어진데 대해 회고하였다.

선생은 북에서 어떻게 아직도 아버지 손정도목사를 기억하고있는가에 대한 수수께끼를 평양을 방문한 다음에야 풀수 있었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에 반일독립운동가로서 아버지의 애국정신과 공적들을 구체적으로 쓰시여 력사에 남겨주시였다고 썼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길림소년회와 조선인류길학우회를 조직지도하시던 나날에 받은 감동에 대해 서술하면서 선생은 《내가 확언할수 있는것은 주석께서 그때 벌써 령도력을 소유하고 계셨다는것이다. 나의 심장속의 애국주의정신은 조선인길림소년회에서 받은 교양으로 인하여 자라난것이다. 그이는 나의 인생의 길을 가리켜준 형이며 선배이고 스승이시였다》고 서술하였다.

제2장 《김일성장군의 전설을 들으며》(8.인생의 교차점, 9.상해《대공보》에 실린 기사, 10.나가사끼 감옥에서, 11.사랑은 나의 비애를 가셔주다, 12.력사의 진실을 증언하면서, 13.평양으로 가는길)에서 선생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혁명이 나아갈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항일무장투쟁의 험난한 길을 헤치시며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광복하신데 대하여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체험한 사실자료들을 구체적으로 반영하였다.

선생은 보천보전투승리소식과 신출귀몰한 유격전법들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의 미래를 확신하고 보다 큰 희망과 믿음을 가지게 된데 대해서와 조국이 광복된 후 어버이수령님의 서울 입성을 간절히 바라던 시민들의 잊을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미제에 의해 국토가 분렬된 이후 남조선과 해외에서 살면서 절세의 애국자이신 경애하는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해듣고 그이를 못견디게 그리워하던 이야기들을 생동하게 서술하였다.

선생은 제3장 《김일성주석을 다시 만나》(14.《어데 갔다가 이제야 왔소?》, 15.나의 형에 대한 생각으로, 16.산속의 《백악관》, 17.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18.자주성의 진리를 실천에 구현하여, 19.진정한 애국주의, 20.고상하고 깨끗한 나라, 21.변함없는 우정, 22.대동강가에서)에서 주체80(1991)년 5월부터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는 남다른 영광을 지니였으며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자기와 가족들에게 최상의 특전을 누리도록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신데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였다.

선생은 또한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세계자주화위업을 위하여 모든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으며 불멸의 공헌을 하신데 대하여 보고 느낀 사실들을 실감있게 서술하였다.

평양을 방문하던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인민이 사회주의리상사회를 건설한데 대해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하면서 선생은 《북의 인민들은 지금은 어렵지만 이 세상에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땀을 기꺼이 바쳐 이 행성우에 정신적으로,물질적으로 튼튼한 나라를 일떠세우리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썼다.

선생은 첨예한 조미대결전에서 조선이 주도권을 쥐고 련속 승리를 거둘수 있은것은 어버이수령님의 담대한 배짱과 지략의 빛나는 결과였다고 하면서 김일성주석은 세계에서 매우 높은 지위의 정치지도자이시였다고 강조하였다.

제4장 《영생하는 김일성주석》(23.뜻밖의 비보에 접하여, 24.평양에서 치른 나의 80돐 생일, 25.김정일령도자분, 26.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27.나의 형 원일은 기억속에 남아있다)에서 선생은 주체83(1994)년 7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심장의 고동을 멈추셨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접하고 평양으로 달려와 조국인민들과 함께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슬픔으로 오열을 터뜨리며 통곡하던 때를 돌이켜보았다.

선생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비애의 눈물이 대하를 이루는 그 비통한 시각에마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손원태선생의 여든돐 생일상을 잘 차려주시겠다고 여러차례 외우시였다고 하시며 친어버이사랑을 그대로 부어주신데 언급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은 장군님에 의하여 빛나게 계승발전되고있다고 열렬히 칭송하였다.

선생은 글의 마지막부분에서 평양을 두번째로 방문하였을 때 어버이수령님께서 오찬석상에서 하신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라는 말씀의 자자구구를 언제나 심장속에 되새겨보군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썼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가치를 평가할 때가 온다. 나는 비로소 김일성주석을 만나서야 내 인생의 가치를 평가할수 있게 되였다. 나는 로년기에 실현된 주석과의 상봉들이 제일 큰 성과였으며 제일 감격적이며 고귀한 체험이였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인간가치의 상징으로 되였다. 고향을 저버린 사람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바랄수 없으며 생의 진가와 가치를 바랄수 없다. 그러나 나는 주석의 말씀에 깃든 진뜻을 이렇게 해석하려고 한다. 우리의 우정은 주석과 어머니조국에 의해 직접 련결된 우정,다시말하여 그이의 유산과 조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였다.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신 다음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며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겠는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였다.

선생은 남은 인생을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을 널리 선전하며 그이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조국통일성업을 위한 애국의 한길에 바치겠다고 강조 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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