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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통 고발장 미국은 6.15공동선언 부정,북남관계개선 방해의 주범
(평양 6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11일 6.15북남공동선언발표 4돐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고발장을 발표하였다.

미국은 6.15공동선언을 부정하고 북남관계개선을 가로막는 반통일행위를 걷어치워야 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고발장

미국은 력사적으로 북남관계개선을 방해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위업에 장애를 조성하여온 주범이다.

미국은 특히 6.15공동선언발표이후 좋게 발전하는 북남관계의 전진을 가로막고 민족적화해와 통일의 기류를 역전시켜보려고 더욱 횡포한 강권과 전횡,로골적인 간섭책동을 일삼고있다.

민족의 단합과 나라의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념원에 역행하는 미국의 민족분렬과 리간책동에 의하여 오늘 6.15와 더불어 시작된 우리 민족의 통일대행진은 엄중한 도전과 위협을 받고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발표 4돐에 즈음하여 공동선언을 전면부정하고 북남관계개선을 악랄하게 방해하는 미국의 범죄적책동을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의 조장자

지난 2000년 6월 력사적인 평양상봉에서 6.15공동선언이 채택된것은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은 의의깊은 사변이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단합하여 자주와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는것을 달가와하지않는 미국은 처음부터 6.15북남공동선언을 전면부정하고 그 리행을 음으로 양으로 가로막아나섰다.

특히 2001년 1월 부쉬정권이 출현한 이후 북남관계를 불신과 대결로 역전시키기 위한 미국의 책동은 더욱 로골화되였다.

권력의 자리에 들어앉기전부터 《무분별한 북과의 협상타결은 없는것만 못하다》고 떠들면서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내놓은 부쉬일당은 백악관에 들어앉자마자 《북과의 관계를 전면재검토할것》이라는 폭언을 연방 내뱉으며 힘의 론리에 기초한 강경정책으로 조선반도의 정세를 최악의 국면으로 몰아갔고 화해와 협력에로 나가는 북남관계에 빗장을 질렀다.

2001년 6월 6일에 발표된 부쉬의 《대북정책성명》은 남조선당국이 저들의 대조선강경고립압살정책에 《공조》하도록 강박한 정치몽둥이였다.

《핵과 미싸일,재래식무기문제를 묶어서 협상대상》으로 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감시,검증체제하에서만 대화를 재개》하며 《이 세가지 문제가 해결된 조건에서 정치,경제관계를 개선해나가겠다.》는 부쉬의 《대북정책성명》에 대해 당시 미국의 조선반도문제전문가들은 그것은 《북미간의 관계개선을 차단하는것으로 남북간의 관계개선을 막기》위한것이라고 찍어 말하였다.(남조선신문《한겨레》 2001년 6월 8일)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조선당국으로 하여금 저들의 반공화국압살정책에 《공조》해나서도록 압력을 가하고 공갈하였다.

2001년 3월 당시 남조선집권자를 미국에 부른 부쉬는 《이 사람》,《이 량반》이라는 심히 모욕적인 언사까지 써가며 《당신은 북조선을 잘못 보고있다, 북조선은 믿을수 없다,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바꾸라, 한국의 통일열기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리해관계를 지키는것이 필요하다.》는 등 갖은 협박을 다 하였다. 그리고는 앞으로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따라 전진시키고 대북정책속도를 미국의 요구에 따라 조절하며 대북정책추진과정에서 단계마다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다짐까지 받아냈다.(미국신문《뉴욕 타임스》 2001년 3월 8일, 남조선잡지《신동아》 2001년 4월호, 카나다에서 발행되는 교포신문《뉴 코리아 타임스》 2001년 5월 5일)

내외를 경악케한 이 사실을 놓고 남조선언론들은 《부쉬행정부는 우리가 평화와 통일문제를 스스로 결정할가봐 눈을 부라리고있는 판이다.》라고 조소하였다.

부쉬집권층은 지난해 5월에도 새로 당선된 남조선당국자를 미국에 불러 핵문제를 걸고 우리 공화국에 경제봉쇄와 군사적공격을 가하려는 저들의 기도에 편승해나설것을 강요해나섰고 그것을 《추가적조치》라는 문구로 남조선미국《공동성명》에 박아넣음으로써 북남관계를 불신과 대결에로 몰아갔다.

또한 지난해 말에는 남조선《외교통상부》에 핵문제해결정도에 맞추어 북남관계속도를 조절할것을 강박하는 《메쎄지》를 보내여 핵문제를 구실로 북남관계를 전면차단하려고 하였다.

미국은 횡포한 정치적압력과 협박으로 남조선을 우리와의 대결에로 내몰았을뿐아니라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한 핵전쟁도발책동에 남조선을 깊숙이 끌어들이는것을 통해 북남관계를 랭전시대의 대결상태로 돌려세우려고 각방으로 획책하였다.

부쉬행정부는 백악관에 들어앉자마자 우리의 《핵 및 미싸일위협》,《테로위협》,《상용무기위협》설을 내돌리면서 《작전계획 5027우발계획》,《작전계획 5030》,《신작전계획 5026》 등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선제타격을 노린 새 전쟁계획을 짜놓고 남조선군부호전세력들과 함께 북침전쟁연습들을 매일과 같이 발광적으로 벌려놓았다.

부쉬가 백악관에 들어앉은 첫해인 2001년에만 하여도 미국이 남조선군부호전세력과 함께 벌린 북침전쟁연습건수는 그 전해에 비하여 공식발표된것만도 무려 2배가 넘는다.

극악한 전쟁광신자이고 악의 화신인 부쉬일당은 집권 2년째인 2002년 정초에는 국회에서 한 《일반서신연설》이라는데서 우리에 대해 《악의 축》이니 뭐니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악담을 퍼부어댔으며 2월에는 서울에 날아들어 군사분계선일대까지 싸다니면서 남조선당국을 반공화국대결에로 부추기였다.

또한 3월 21일부터 27일까지의 사이에는 미제침략군과 남조선군을 포함한 수십만의 방대한 병력을 총동원하여 《련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합동군사훈련을 통합한 사상최대규모의 북침전쟁연습을 미친듯이 벌려놓았다.

미국의 이러한 반공화국전쟁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선반도에는 전쟁의 기운이 무겁게 떠돌았고 화해와 단합의 방향에로 흐르던 북남관계는 또다시 대결의 위험에 처하게 되였다.

2002년 6월에 있은 서해무장충돌사건은 미국이 북남관계발전을 차단하기 위하여 조작한 대표적인 군사적도발책동의 하나이다.

미국은 북남관계에 쐐기를 박기 위한 충격적인 사건을 조작할 목적으로 충돌이 발생하기전부터 남조선군을 저들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강도적이며 비법적인 선인 《북방한계선수호》에로 로골적으로 부추겼으며 조선반도상공에 《KH-9》, 《KH-11》등 첩보위성과 《U-2》고공전략정찰기 그리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24시간 띄워놓고 남조선호전계층에게 필요한 정보를 넘겨주면서 사태발전을 은밀히 조종하였다.(남조선《제1라지오》 2002년 7월 4일)

그러던 부쉬호전계층은 충돌사건이 터지자 때를 만난듯이 환성을 올리면서 《미군의 정찰기와 군사위성의 정보를 통해 북의 도발이 선제공격임을 립증하는 결정적증거를 제공할수 있다.》느니,《서해교전에서 북 함정이 국경을 넘어 먼저 도발했다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있다.》느니 하면서 남조선호전분자들에게 대결을 고취해나섰다.(남조선《제1라지오》 2002년 7월 1일, 《제2라지오》 2002년 7월 4일)

원래 미국은 력사적으로 북남관계가 개선의 기미를 보일 때마다 무력증강과 전쟁소동으로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수법을 써왔다.

지난 세기 90년대초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와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채택발효되였을 때에도 미국은 앞에서는 이를 환영한다고 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남조선에 핵전쟁장비들을 대량 투입하고 남조선호전분자들과 함께 우리를 반대하는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소동을 광란적으로 벌리는것으로 북남합의사항들의 리행을 가로막아나섰다.

미국은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조장시키기 위해 비렬한 반공화국모략책동도 꺼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지난 2002년 4월 남측특사의 평양방문과 4.5공동보도문의 발표로 일시 동결되였던 북남관계가 다시 회복되게 되자 미국은 당시 남조선《외교통상부 장관》이였던 최성홍을 백악관에 불러다 《워싱톤의 강경정책이 있었기때문에 북이 대화에 나오게 되였다.》고 우리를 자극하는 망발을 늘어놓게 하고는 그 발언내용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류포시키는것을 통해 북남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고 하였다.

또한 그로부터 얼마후에는 위성촬영자료라고 하면서 우리의 안변청년발전소언제에 《3곳이 패여 무너져내렸다.》는 허위보도자료를 남조선의 일부 언론단체들에 넘겨주어 《어마어마한 피해가 예상되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수 있다.》느니 뭐니하는 복닥소동을 일으키고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조장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남조선출판물들은 《보도가 나온 시점(남북리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지고 <아리랑>축전이 시작되기 하루전날 그리고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회담을 한주일 앞둔 날)이 문제》였다고 하면서이것은 1990년대초 북남고위급회담 등 북남관계가 적극 추진될 당시 미국이 이를차단할 목적밑에 녕변지역에 대한 위성사진을 공개한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폭로하였다.

미국은 남조선에 《북인권시민련합》,《북민주화 네트워크》와 같은 반공화국단체들을 조직하고 이 모략단체들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북의 민주화와 인권》에 관한 미의회청문회에 참가시키는 등 각종 반공화국대결행사를 연출하고있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보수언론들을 동원하여 대결분위기를 조성하는 놀음도 계속 벌리고있다.

특히 미국은 당시《한나라당》을 비롯한 남조선의 친미주구들을 내세워 《북과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인물은 <문제인물>》이라는 《색갈론》까지 들고나오게 함으로써 남조선사람들이 우리와의 화해와 협력에 나서지 못하도록 코코에 훼방을 놀았다.

미국은 비렬한 모략과 간교한 술책으로도 자주와 통일로 나아가는 남조선사회의 흐름을 가로막을수 없게 되자 지난해에는 새해벽두부터 《국회의원》들까지 동원하여 《분노의 초점을 미국이 아닌 북에 맞추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벌이게 하면서 날로 높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과 련북통일기운을 짓눌러버리려고 발악하였다.

이 모든 사실들은 미국이야말로 저들의 탐욕적리익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서슴지 않는 깡패국가,북남사이의 신뢰와 화해,단합을 가로막고 불신과 대결을 조장시키는 장본인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북남사이의 대화와 접촉의 파괴자

6.15공동선언을 전면부정하고 북남관계개선을 악랄하게 방해하는 미국의 범죄적책동은 북남사이의 대화와 접촉을 사사건건 가로막고 방해해나서는데서도 여실히 나타나고있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파탄시키기 위한 간섭과 모략책동이 물거품으로 되고 평양에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룩해나갈데 대한 6.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되자 미국은 남조선이 미국의 머리너머로 북과 만나는 문제는 《그냥 두어서는 안될 심각한 사태》라고 하면서 《대북정책의 추진과정을 정치,군사협상은 물론 정부차원의 대북지원까지 포함하여 단계마다 미국의 승인밑에 할것》을 남조선당국에 강요해나섰다.

또한 저들의 대조선적대시강경정책실현에 남조선당국을 끌어들이는것을 통해 6.15공동선언리행을 위한 북남사이의 대화와 접촉에 제동을 걸었다.

북남대화를 가로막아보려는 미국의 책동에 의하여 2001년 3월에 열리게 되였던 제5차 북남상급회담이 제 날자에 개최되지 못하였으며 수개월간이나 북남사이의 다른 대화의 문도 막히게 되였다.

제6차 북남상급회담과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회의 그리고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한 제2차 북남당국회담도 미국이 《9.11테로사건》을 구실로 남조선을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가게 하고 미국본토로부터 기동무력을 남조선에 긴급투입하면서 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킴으로써 제날자에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남조선언론들은 《미국의 대테로전쟁이 남북대화의 발목을 다시 잡은것이다.》(남조선잡지《민족21》 2002년 1월),《이번비상경계령발동사태에서 드러난것은 6.15공동선언의 리행을 가로막고있는 방해책동의 주범이 부쉬정권이라는 사실이다.》(남조선잡지《민》2002년 1월)라고 평하였다.

그후에 열린 제6차 북남상급회담조차도 미국의 침을 맞은 남측수석대표라는 자가 저들이 취한 《비상경계조치》에 대해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쌍방 실무자들이 애써 합의해놓은 공동보도문내용을 제멋대로 뒤집어놓는 무례한 행동을 한것으로 하여 북남대화력사에 일찌기 없는 6박 7일간이라는 시간을 기록하였지만 아무런 결실도 없이 끝나고말았다.

미국은 이라크침략전쟁을 도발한 지난해 3월에도 《한반도에서 있을수 있는 긴장상태의 대비》라는 구실밑에 남조선이 《데프콘 -2》라는 초경계태세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5차회의와 북남경제협력제도분과 제2차회의가 자기 일정대로 개최되지 못하게 하였다.

제4차 북남상급회담 합의에 따라 2001년 2월 7일부터 10일까지의 사이에 평양에서 진행된 북남전력협력분과회의가 단 한차례의 접촉으로 끝나고만것 역시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핵압살책동과 직접 관련된다.

당시 미국은 남조선당국에 《북조선에 전기를 주면 핵사찰카드를 잃어버리기때문에 절대로 안된다.》고 하면서 이에 대하여 집요하게 주입시켰다.

미국대외관계리사회 아시아담당국장 로버트 매닝은 남조선이 《북에 전력을 지원하는것은 제네바합의문 위반이다. 그것은 전력을 제공할 경우 과거 핵활동을 조사하려는 국제원자력기구에 북이 협조할 필요가 없어지기때문이다.》라고 로골적으로 말하였다.

결국 미국의 압력에 굴종한 남측이 회의에서 우리측 전반적지역에 대한 전력실태부터 조사하자는 부당한 주장을 계속 고집한것으로 하여 회의는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고 결렬되고말았다.

남조선《정보원》의 한 고위인물은 이에 대해 남조선잡지《극동문제》에 기고한 글에서 《전력문제는 남측에서도 협의할 용의가 있었으나 미국의 요청으로 론의가 보류돼있는 상태》라고 하면서 그것은 남측이 《전력지원을 약속하고 실천에 들어가는 경우 미국의 대북협상력이 약화될수 있다는 판단때문이였을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사실을 까밝혔다. (2001년 7월 31일 남조선《제1라지오》)

우리 공화국에 전력뿐아니라 단 한푼의 자금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미국의 악랄한 경제제재와 봉쇄책동에 의하여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해 2차에 걸쳐 진행한 북남당국회담은 상정된 문제들에 대한 원칙적합의를 해놓고도 대가지불에 대한 문장표현문제로 하여 결렬되고말았다.

남조선잡지 《시사져널》2002년 5월 23일호가 《될만하면 꼬이는 남북관계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보도한바와 같이 지금까지 북과 남사이에 여러 갈래의 수많은 대화와 접촉들이 있었지만 단절과 교착상태가 거듭되고 때로는 똑똑한 공동문건조차 내놓지 못하고 공회전을 거듭한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파탄책동에 기인된다.

미국은 저들이 직접 나서서 북남대화와 접촉을 가로막았을뿐아니라 남조선의 전《한나라당》을 비롯한 친미보수세력들을 내세워 북남사이의 대화와 접촉에 장애를 조성하였다.

미국의 사촉밑에 리회창,최병렬을 비롯한 친미주구들은 북남당국사이의 대화에 대해서는 《북에 끌려다닌다》느니,《북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한다》느니 하고 훼방해나섰고 민간급접촉에 대해서는 《북에 리용당한다》느니,《북의 통일전선술에 속지 말아야 한다》느니 하며 뒤다리를 잡아당기였다.

그런가하면 친미보수세력들이 다수를 차지하고있는 《국회》에 우리와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문초를 하고 협박을 가하였으며 제6차 북남상급회담에 참가하였던 당시 《통일부 장관》의 실례가 보여주는것처럼 우리와의 대화를 결렬시키고 돌아간 자들에 대해서는 극구 추어주는 추태까지 부리였다.

하기에 일본출판물 《아까하다》 2002년 6월 18일부는 《북과 남이 공동선언을 실천하고 서로의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는데서 최대의 장애물은 야당과 보수언론에 의한 대북정책비난》이라고 지적하였다.

미국은 지난 3월 12일에는 전《한나라당》을 비롯한 남조선의 우익보수세력들을 사촉하여 《대통령탄핵》이라는 정치쿠데타까지 일으키고 남조선호전세력들과 함께 북침을 노린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벌려놓음으로써 북남청산결제거래 실무분과회의와 북남림진강수해방지분과회의,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실무접촉이 예정대로 열리지 못하게 하였다.

현실은 미국이야말로 북남사이의 대화와 접촉의 파괴자,우리 민족끼리 서로 마주앉는것을 달가와하지않는 방해군이라는것을 여실히 실증해주고있다.


북남사이의 협력과 교류의 차단자

미국은 북남사이의 대화와 접촉뿐아니라 협력과 교류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가로막아나섰다.

미국은 《상호주의와 검증을 원칙으로 북을 견제하면서 핵과 미싸일을 중단시키려 하는데 한국이 북에 퍼주고 앞서나가면 공조가 되느냐》고 남조선을 강박하면서 《386콤퓨터도 여러대 련결하면 군사용으로 전용될수 있다.》,《화학비료는 재래식폭약을 생산할수 있기때문에 안된다.》,《식량은 군량으로 들어갈수 있기때문에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북남경제협력사업전반에 차단봉을 내리우고있다.(남조선신문《동아일보》 2001년 1월 20일,29일, 남조선잡지《민》 2001년 8월)

부쉬행정부는 2002년 1월 2중용도품목의 수출을 통제하는 관리규정을 수정하여 일부 나라들에 대한 고성능콤퓨터수출을 완화하면서도 우리를 비롯하여 저들이 《테로지원국》의 딱지를 붙여놓은 나라들에 대해서는 콤퓨터반입금지조치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은 온 민족과 세계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진행되는 북남사이의 철도 및 도로련결사업에 대해서도 오만무례하게 간섭하면서 방해하였다.

지난 2002년 11월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비무장지대 지뢰제거작업이 마감단계에 이르게 되였을 때 미국은 북남쌍방의 합의에 따라 량측성원들이 호상검증을 위해 오가게 되여있는 문제를 얼토당토않게 걸고들면서 《유엔군사령부》에 검증성원들의 명단을 제기하라는 생뚱같은 문제를 들고나와 공사진척에 빗장을 질렀다.

또한 2001년 11월 26일 판문점 조미군부장령급회담 미군측 대표인 남조선강점 미군사령부 부참모장 제임스 쏠리건은 북남철도,도로가 련결되면 그 통로가 《남침목적에 리용》될수 있다는 망발을 늘어놓은데 이어 28일에는 그 무슨 《간담회》라는데서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면 군인은 물론 민간인까지 <유엔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금강산륙로관광 등 남북교류협력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것》이라고 폭언해나섰다. (남조선 《KBS》방송 2002년 11월 29일)

미국은 북남사이의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해서도 방해해나섰다.

금강산관광사업이 시작된지 한달도 못되던 1998년 12월초 당시 미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이였던 윌리암 페리는 서울에 기여들어 《현대가 금강산관광료금을 북에 지불하는 경우 그것은 북의 군사비로 전용》될수 있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였으며 금강산관광이 정상화단계에 들어선 2000년 11월에는 당시 미태평양포럼 대표 제임스 켈리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루어질 대북투자는 정당한 투자근거가 없다.》고 떠벌이면서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해 시비해나섰다.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한 미국의 방해책동은 부쉬행정부가 백악관에 들어앉으면서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되였다.

2001년 3월에만도 미중앙정보국 장관 테네트,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 슈워츠,미의회조사국 아시아전문담당 연구원 닉시,미외교협회 북전문특별위원회소속 연구원 알렌 등 미군부와 대조선정책관계인물들이 정상적인 경제거래형태인 금강산관광대가지불문제를 가지고 큰 일이나 난것처럼 련이어 떠들어대면서 《북조선미싸일지원역할》을 한다느니,《미국의 안보를 해치는 결과를 낳을것》이라느니 뭐니하고 악담질을 하였다.

지어 미국은 2000년 11월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을 비롯한 현지 우두머리들을 시켜 《현대자금의 군사적전용의 우려》(2001년 2월 2일 일본 《산께이신붕》)에 대하여 떠벌이면서 현대그룹에 금강산관광중지를 강박해나서는 횡포까지 감행하였다.

1999년말까지만 하여도 남조선에서 가장 큰 재벌로 인정되였던 현대그룹이 그후 커다란 경영위기를 겪게 되고 금강산관광사업에서 애로를 겪지않으면 안되게 된것은 딸라를 거머쥐고 금융적압박을 가해온 미국의 비렬한 음모책동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남조선에서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의로운 일에 기여한 평양상봉관계자들이 처형의 대상으로 되고 북남협력의 길을 개척한 기업가가 비명의 죽음을 강요당하는 통분할 참극까지 빚어낸 《대북송금사건》도 미국의 모해와 모략책동에 의하여 발단되고 부풀어 오른것이다.

2002년 3월 미중앙정보국과 남조선강점 미군사령부는 《북은 지난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사업의 대가로 받은 현금을 군사용으로 전용하는것으로 믿고있다.》는 거짓자료를 미의회조사국에 제출하고 그 내용을 전《한나라당》것들에게 쥐여주었으며 (남조선《KBS》방송 2002년 3월 26일) 지난해 7월에는 《한나라당》을 사촉하여 허황한 《북의 핵고폭실험》과 《대북송금과의 련관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떠들게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한나라당》은 2002년 9월 《국회》대정부질문때 현대의 《대북송금의혹》이 저들의 판단에 의한것이 아니라 《미의회조사보고서에 따른것》이며 그 《조사보고서》라는것도 과학적으로 확증된 자료가 아니라 어느 한 신문에 난 근거없는 기사내용에 의한것이라고 하면서 미국의 앞잡이노릇을 한데 대해 털어놓았다.(남조선《KBS》방송 2002년 9월 26일)

개성공업지구건설문제가 북과 남이 첫 합의를 이룩한 때로부터 4년동안 제자리걸음을 한것도 다름아닌 미국의 방해책동때문이다.

지금까지 북남쌍방은 여러차례의 상급회담과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 각이한 급의 회담과 접촉들에서 거의나 빠짐없이 개성공업지구건설문제들을 협의하고 원칙적인 문제로부터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합의들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쌍방의 합의사항을 존중하여 개성공업지구관련법을 제정하여 세상에 발표하는 등 할바를 다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남측에 온갖 압력을 계속 가하여 해놓은 일은 없이 개성지구로 많은 남측 인원들과 차량들만 드나들게 만들었으며 지어 남조선기업들에 《랑만적》인 생각을 한다는 등으로 불안한 심리를 심어주었다.뿐만아니라 통행,통신을 비롯한 우리와의 일련의 문제토의들에서 일반적인 관례에도 어긋나는 천만부당한 조건들을 내들며 불성실한 태도를 취하게 하였다.

지난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미국무성 동아시아 및 태평양문제담당 차관보 켈리,백악관국가안보회의 아시아국장 마이클 그린 등 부쉬행정부 고위인물들의 참가하에 워싱톤에서 《북핵의 평화적해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된 미국-남조선《쎄미나르》에서는 《부쉬행정부의 한 인사가 개성공업지구사업과 관련하여 <북핵해결>전에 또다시 북에 대규모현금이 들어가는 사업에는 반대한다.》고 공식선언함으로써 여기에 참가한 남측성원들을 아연케했다.(남조선신문《문화일보》 2004년 2월 27일)

《쎄미나르》에 참가한 남조선 연세대학교 교수 문정인은 부쉬행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두고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미국의 회의적립장이 재차 표명된것이다. 때문에 이 사업은 해결되기 어려운 상태이다.》라고 개성공업지구건설전망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였다.

결국 미국의 방해책동으로 민족경제의 균형적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한 거창한 사업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는 개성공업지구건설문제는 합의와 협의는 무수히 하였지만 온 겨레에게 제2의 《경수로》건설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를 가지게 하고있다.

제반 사실들은 미국이야말로 우리 민족끼리 하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면서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북남협력사업을 가로막고있는 차단자라는것을 뚜렷이 확증하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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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을 부정하고 북남관계개선을 방해하는 미국의 범죄적책동은 날로 더욱 교활하고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어떤 방해책동으로써도 자주와 통일로 향한 북과 남 우리 겨레의 힘찬 진군을 멈춰세울수도 되돌려세울수도 없다.

현 시대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평화와 통일,민족번영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는 6.15시대,민족공조의 시대이다.

북과 남의 온 겨레는 북남관계개선의 최대의 장애물,민족공동의 흉적인 미국의 횡포와 도전을 단호히 물리치고 우리 민족제일주의기치밑에 민족공조로 자주통일의 활로를 더욱 힘차게 열어나가야 할것이다.

주체93(2004)년 6월 11일
평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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