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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미제는 조선전쟁도발자,날강도적인 침략자》
(평양 6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25일부 《로동신문》은 《미제는 조선전쟁도발자,날강도적인 침략자》라는 제목의 개인필명의 론설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에서 전쟁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전쟁도발자,전범자로서의 미제의 죄악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50년 7월 8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하신 방송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조국과 우리 인민을 반대하여 무력침공을 개시하였습니다.》

력사에 기록되여있는것처럼 미제국주의자들은 리승만역도를 사촉하여 1950년 6월 25일 새벽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전면적인 불의의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그들의 목적은 공화국북반부를 점령하고 나아가서 전아시아를 정복함으로써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자는데 있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의 한 력사학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라틴아메리카와 함께 월가의 가장 중요한 뒤동산,시장,착취지역으로 되여있었다. 우리가 말하는바와 같이 이것을 되찾으려는 욕망이 1950년 6월 25일에 북조선에 대한 공격을 초래한것이다.》(미국도서 《아메리카현대사》일문 140페지)라고 미제가 조선전쟁에서 추구한 목적을 까밝히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범죄적인 전략적목적으로부터 출발하여 1950년 봄에 이르러 조선전쟁준비를 완전히 갖추었다. 이제는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르는 일만이 남게 되였다.

1950년 4월초에 악명높은 전쟁상인 덜레스는 조선전쟁준비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전쟁도발지령을 하달할데 대한 임무를 받았으며 5월에 서울주재 미국대사 무쵸는 리승만《정부》로 하여금 덜레스를 초청하게 하는 방법으로 그의 남조선《방문》을 실현시킬데 대한 과업을 받았다.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미국무성고문인 덜레스를 특사로 남조선에 급히 파견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방장관 죤슨과 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래들리를 도꾜에 보내여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와 함께 전쟁도발날자,전쟁도발절차 등을 결정하도록 지시하였다.

덜레스의 서울방문목적에 대하여 미국도서 《조선전쟁의 력사》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여있다.

《덜레스의 서울방문은 공격개시신호를 주고 공격개시와 함께 미해공군이 지원해줄것을 최고위급에서 리승만에게 담보해주기 위한것이였다.》

남조선에 기여든 덜레스는 38 선일대를 싸다니면서 남조선군의 배치와 무기,전투기술기재의 동원준비상태를 검열하였으며 지어 경찰들의 싸움준비상태까지 료해하고 현지에서 《북벌》군사전략계획을 검토하였다. 뒤이어 그는 6월 18일 리승만에게 전쟁개시지령을 주었다. 그는 《북조선에서 먼저 침입하였다는 역선전과 동시에 북조선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라. … 만약 2주일만 견디여낸다면 이동안에 미국은 북조선이 남조선을 공격하였다고 제소하여 유엔으로 하여금 그 이름으로 륙해공군을 동원하지 않을수 없게 함으로써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할것이다.》(일본도서 《승리없는 전쟁》29페지)라고 하였다.

6월 19일 남조선《국회》개원식에 나타난 덜레스는 《나는 이번에 북진준비상태를 직접 보고 준비에서 부족점이 없다면 곧 북진을 단행하라는 트루맨대통령의 명령을 가지고왔다. 와서보니 준비는 만족하다. … 준비가 된이상 북진을 하루도 늦출 필요가 없다.》(일본도서 《조선전쟁사론》 8페지)고 하면서 공격하면 승리할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느니, 개전후 모든 일에 대해서는 미국을 믿으라느니 뭐니하고 떠벌이였다.

덜레스로부터 전쟁도발지령을 받은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무쵸는 남조선《정부》의 고위관리들과 남조선군 장성급회의에서 《오늘 이 회의는 우리가 지금까지 모든 힘을 기울여 준비하여온 북진을 개시하기 위한 시간을 확증하는 최종회의이다. 트루맨의 특사인 덜레스의 지시는 곧 미국대통령의 지시다. 그는 우리에게 지체하지 말고 북진을 단행하라는 지시를 주었다.》라고 줴쳤다.

6월 21일 남조선으로부터 도꾜에 도착한 덜레스는 자기를 기다리고있는 맥아더와 만나 남조선군의 전쟁도발준비정형을 놓고 밀담하면서 《적극적인 성과를 기대한다》고 말하였다.

6월 22일 덜레스의 주최로 맥아더,죤슨,브래들리사이의 도꾜4자회담이 있었다. 이 회담은 조선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방법과 절차,전쟁개시날자 등을 규정하는 최후의 비밀작전회의였다.

덜레스는 도꾜4자회담이 있은 다음 도꾜 간다의 공립강당에서 시국강연회에 출연하였다. 강연회가 끝난 다음 그는 일본보수당의 한 사람이 조선전쟁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2∼3일 기다렸다 보라》고 하였다. 덜레스가 《2∼3일 기다렸다 보라》고 한 말의 의미는 6월 25일이면 조선정세를 알게 될것이라는것이였다.

도꾜4자회담에서 락착지은 조선전쟁도발을 위한 군사적방안들은 그후 워싱톤의 《불래어하우스》에서 열린 미국대통령 트루맨과 합동참모본부,국방성,국무성 우두머리들의 련석회의에서 찬동되고 미제의 전쟁두목인 트루맨에 의해 비준되였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전쟁도발방법과 절차,전쟁도발날자까지 확정한 미제는 전쟁도발자의 정체를 가리우고 그 책임을 우리 공화국에 넘겨씌우기 위하여 교묘한 연극을 꾸미였다.

전쟁도발을 직접 조직한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주말휴식》을 보내기 위하여 1950년 6월 24일 미주리주의 자기 고향으로 처와 딸을 데리고 워싱톤을 떠났다고 광고하였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무장관 애치슨도 메릴랜드근처의 자기 고향으로 《휴식》하러 떠났다. 호전광 덜레스는 6월 24일 일본 교또로,남조선강점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는 미국본토로,미군사고문단 참모장 라인트는 일본 도꾜로 려행하는 연극을 놀았다.

한편 미제는 비밀리에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와 참모장 아몬드,참모성원들에게 《특별명령》으로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대기상태에 있도록 하였다.

미제의 각본에 따라 리승만도당은 1950년 6월초부터 실시해온 비상계엄령을 6월 24일 0시를 기하여 해제하고 남조선군의 외출,외박,휴가를 허용하였다고 어용수단들을 통하여 거짓선전을 하였다.

그 내막에 대하여 일본도서 《조선전쟁》은 《남조선에서 일시적이나마 <계엄상태>를 해제할 여유를 가진것은 선제공격을 위한 준비때문이다》라고 밝히였다. 또한 남조선군 륙군본부구내에 새로 세운 장교구락부락성식을 전쟁도발전날인 6월 24일 저녁에 벌려놓고 여기에 1선지구 장교들과 륙군본부의 고위급인물들이 참가한것으로 거짓보도를 날리였다.

이렇듯 미제와 리승만도당은 전쟁도발림박에 기만과 위장공세로 연막을 쳤다.

이와 같이 만단의 준비를 갖춘 미제는 트루맨의 비준에 따라 남조선군에 정식 전쟁명령을 하달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미제침략군 극동군사령부가 남조선군에 전쟁명령을 하달하였다는것은 이 사령부에서 참모로 근무하면서 조선문제와 관련된 일에 정통하였던 에이다의 증언에 의하여 일찌기 세상에 공개된바 있다.

에이다는 이란군 참모들과의 담화시에 《조선전쟁은 일본에 있는 미군총사령부의 직접적명령에 의하여 남조선군이 개시하였다》(인디아신문 《크로스로드》 1950년 12월 23일)라고 말하였다.

북침명령을 받은 남조선군부는 지체없이 관하 련합부대,부대들에 작전전투명령을 하달하였다.

남조선군에서 《작전》과 《용병》을 책임진 참모총장 채병덕은 관하 1,2전투사령부들에 1950년 6월 25일에 북침공격을 개시할것을 명령하였다.

남조선군 17련대의 참모장교였던 한수한대위는 《1950년 6월 24일 토요일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교들은 외출이 금지되고 대기할것이 지시되였다. 24일밤에 25일새벽을 기하여 38 선을 돌파하여 북조선에 대한 군사행동을 개시할데 대한 비밀명령을 받았다.》(일본잡지 《가이조》 1953년 8호)라고 증언하였다.

미국잡지 《라이프》는 1950년 7월 15일호에서 《전쟁개시에 이르러 이번 전쟁만큼 완전히 준비되여있은 일은 우리들의 력사가 시작된이래 없는 일이였다》라고 썼다.

만단의 준비를 갖춘 미제와 리승만도당은 드디여 1950년 6월 25일 새벽 선전포고도 없이 38 선 전역에 걸쳐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전면적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1950년 6월 25일에 미제침략군 극동군사령부의 한 고위장교는 맥아더의 전기를 쓴 미국기자 죤 간서에게 《대단한 소식입니다. 한국군이 북조선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맥아더의 수수께끼》 일문 257페지)라고 말하였으며 죤 간서는 《중요한것은 점령당국(맥아더사령부-필자)의 <요인>이 전쟁개시후 8시간이나 지났을 때 공격은 한국측에서부터 시작되였다는 보고를 받은것이다》(《비사조선전쟁》상 일문 60페지)라고 실토하였다.

력사적사실들은 지난 조선전쟁은 철두철미 미제에 의하여 계획적으로 의도적으로 도발되였다는것을 명백히 실증해주고있다.

미제는 그 무엇으로써도 지난 조선전쟁의 도발자,전범자로서의 정체와 죄악을 감출수 없다.

오늘 미제는 또다시 새로운 조선전쟁을 도발하려고 우리 공화국을 《테로지원국》,《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면서 선제공격을 기도하고있다.

미제가 력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한사코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한다면 그들에게는 지난 조선전쟁때보다 더 큰 패배와 수치,죽음이 차례질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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