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6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1950.6.25-1953.7.27) 신천땅에서 미제침략자들에 의하여 무참히 학살된 애국자들의 유해가 2001년에 이어 최근 또다시 발굴되여 전체 조선인민의 격분을 자아내고 있다.
발굴된 유해들가운데는 두개골들에 총탄구멍이 나있거나 완전히 깨여진것도 있다. 그리고 유해들의 두손목은 직경3.5㎜의 동선으로 2~3회 결박되여 있었고 동선의 두끝은 뻰찌로 20회정도 강하게 비틀리워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지금도 유해들에 남아있는 흔적은 인간살륙을 도락으로 삼는 가장 극악한 살인마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제는 1950년 10월 신천땅을 강점한 첫날부터 저들의 야수성을 드러내놓으며 무고한 인민들에 대한 온갖 치떨리는 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1950년 10월 18일 미제는 900여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체포하여 방공호에 가두어넣고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죽이였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며칠동안에만도 1,550여명의 인민들을 방공호와 그주변에서 무참히 학살하였다.
11월에는 신천군 온천면 운봉리에서 마을 전체주민의 70%에 해당하는 580여명(늙은이와 녀성들,어린이들 포함)을 서슴없이 살해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있는것은 너무도 행복하다》고 지껄이면서 어린이들을 어머니의 품에서 떼내여 따로따로 창고에 가두고 배고파 우는 어린이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으며 그것도 성차지 않아 수류탄을 던져 무참히 죽이였다.
사백어머니묘와 백둘어린이묘는 이렇게 생겨나게 되였다.
미제는 신천군을 강점한 52일기간에 신천군 전체인구의 25%에 해당하는 무려 3만 5,000여명의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가혹하게 고문하고 생매장하여 죽이였으며 목을 매달고 불태워죽이고 머리에 못을 박아죽이는 등 가장 야수적인 방법으로 학살하였다.
오늘도 미제에 대한 사무친 이 원한을 품고 숨진 수많은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의 령혼들은 아직까지 잠들지 못하고 피의 복수를 절규하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