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6월 27일발 조선중앙통신)27일부 《로동신문》은 개인필명의 론설에서 오늘 미제의 대조선핵압살책동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추구한 핵전쟁전략의 연장이라고 하면서 이 시기 핵공격을 기도한 미제의 죄행을 구체적으로 까밝혔다.
신문에 의하면 1945년 7월에 원자탄을 개발한 미제는 조선전쟁도발이전에 당시 미국대통령이였던 트루맨의 지시에 따라 조선전쟁에서의 원자탄사용계획을 처음으로 세웠으며 조선전쟁도발전까지 원자탄 수백개와 그 운반수단인 전략폭격기 수백대를 보유하였다.
핵전쟁준비를 갖춘 미제호전광들은 조선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른 다음 곤경에 처할 때마다 핵무기사용을 기도하였다.
미극동군 총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1950년 7월 7일 트루맨에게 조선전쟁에서의 원자탄사용문제를 제의하였다.
트루맨은 1950년 11월 29일 국가안전보장리사회 특별회의와 국무성회의를 련이어 소집하고 조선전쟁에서의 핵무기사용을 들고나왔으며 《북조선에 원자탄을 사용할것》이라는 성명까지 발표하였다. 미제는 원자탄을 실은 전략폭격기를 오끼나와미공군기지에 배치하였다.
미제호전광들은 1951년 1월 모험적인 《제한공세》를 감행하기 위하여 원자탄사용을 떠들어댔으며 이해 4월부터 모험적인 이른바 《대공세》를 준비하면서 철원,김화,평강을 련결하는 《철의 삼각지대》에 원자탄을 투하하려고 획책하였다.
남조선도서 《미국현대외교사》(《비봉출판사,1998년판,232페지)에 《근년에 확인된데 의하면 1951년에 이미 30∼40개의 핵탄두가 남조선에 반입,저장되였다. 한때는 공격목표도 정해놓고있었다.》고 씌여져있다.
아이젠하워도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인 1952년 12월 2일부터 5일까지의 기간에 남조선에 기여들어 《조선전쟁에서 군사적교착상태를 뚫고나가기 위한 역전전략》으로서 원자탄사용을 추구하였으며 1953년 2월 2일에 한 첫 《국정연설》에서 《신공세》때 핵폭탄을 사용할것을 제기하였다.
아이젠하워의 각본에 따라 미합동참모장회의에서는 1953년 4월 20일 《영예로운 정전》을 실현할수 없는 경우 원자탄을 사용할데 대한 계책이 꾸며졌다. 미국방성은 1953년 5월 19일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또다시 원자탄사용문제를 제기하였다. 미 3개 군종 참모장들은 1953년 5월 20일에 있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전략,전술적으로 원자탄을 널리 사용할데 대한 안을 제출하여 비준까지 받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무장관으로 새로 임명된 덜레스는 정전담판에서 《상대측이 고분고분해지도록》하기 위하여 미국의 핵무기시험결과를 공개하면서 조선에서 원자탄을 쓸것이라고 공공연히 지껄여댔다.
신문은 이렇듯 미제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핵공격을 집요하게 기도하였었다고 하면서 지금 조선반도에는 호전적인 부쉬일당의 모험적인 핵선제공격책동으로 하여 핵전쟁위험이 조성되고있다고 지적하였다.
신문은 미제가 우리의 힘을 오판하고 대조선핵선제공격전략을 강행한다면 만회할수 없는 패배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라고 강조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