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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무덤벽화는 세계에 자랑할 조선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
(평양 6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에서 발표한 《고구려무덤벽화는 세계에 자랑할 조선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제목의 글이 6월 27일부 《민주조선》에 실렸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민족사에서 고구려는 동방의 천년강국,선진문명국으로 그 이름을 세상에 떨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옛날 고구려무덤벽화만 보아도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뛰여난 미술적재능을 가지고있었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벽화들은 그 묘사의 생동성과 다양한 생활세부, 변하지 않는 색갈로 하여 세계적으로 관심을 크게 집중시키고있습니다.》

지난 날의 우리 나라 력사에 존재하였던 고구려는 발전된 경제력과 넓은 령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대강국이였으며 중세초기 동방문화발전에 특출한 기여를 하고 우리 민족문화의 개화기를 열어놓은 발전된 나라였다.

고구려의 강대성과 높은 문화발전수준을 실물 그대로 생동하게 보여주는것이 바로 당시의 벽화무덤이다.

우수한 회화술과 건축술의 종합체라고 할수 있는 고구려벽화무덤들은 다양하고 풍부한 벽화내용들과 건축구조적완벽성으로 하여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전해가며 자랑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고유하고 풍부한 내용과 높은 예술성,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갈, 힘있고 우아한 화풍으로 이름 높은 고구려무덤벽화는 우리 나라 중세 회화미술의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민족의 재보인 동시에 세계문화사를 찬연히 빛내인 인류공동의 고귀한 재부로 된다.

1.고구려무덤벽화는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귀중한 문화재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조선민족은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우수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여 세계문화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크게 기여한 재능있는 민족이다.

단군을 민족의 원시조로 하여 B.C.30세기초에 세워졌던 고대국가 고조선(단군조선)의 후손들이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들을 계승하여 B.C.277년에 우리 나라에서의 첫 봉건국가 고구려를 세웠다.

고구려사람들은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있었으며 대담하고 진취적인 투쟁정신과 랑만적인 성격,통이 크고 담차며 패기와 정열에 넘치는 밝고 명랑한 성격을 소유하고있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탐구심과 정의감이 강하였으며 근면하고 고상한 도덕품성을 소유하고있었다.

고구려사람들이 지닌 민족적인 성격과 기질, 감정과 정서는 당대 회화미술작품들에 그대로 반영되여 고구려특유의 담대하고 생기발랄하며 진취적인 기상이 넘치는 우수한 무덤벽화를 창조해낼수 있게 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벽화무덤들은 100여기에 달하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들에서 사용해오던 돌무지무덤,고인돌무덤,돌관무덤들이 발전하여 돌칸흙무덤이 출현하면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무덤내부를 지상건물처럼 꾸리려는 고구려사람들의 욕망을 실현하는데서 가장 효과적인 방도는 무덤칸의 벽면에 벽화를 그리는것이였다.

고구려의 왕과 왕족들,상층귀족들의 무덤을 호화스럽게 꾸리는데 리용된 무덤벽화에는 고구려인민들의 창조적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당시의 높은 회화발전수준이 그대로 반영되여있다.

고구려사람들은 무덤의 내부벽면에 주인공의 화상과 함께 생전생활에서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그림으로 재현해놓았고 천정에는 해와 달을 비롯한 천체들과 구름 그리고 신앙과 관련된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려 무덤안을 하나의 축소된 지상세계,천상세계로 형상하였다.

고구려의 무덤벽화들을 보면 초시기에는 회를 바른 벽면에 나무꼬챙이나 굳은 물체들로 선을 긋는 방법으로 어떤 대상을 형상하다가 점차 색갈을 칠하는 채색화로 발전하였는데 채색화인 경우 초기에는 검은색,누런색 등으로 색갈이 단순하고 그림형상수준도 그리 높지 못하였다.

평양시 승호구역 금옥리벽화무덤, 평안남도 남포시 우산리2호무덤, 집안 만보정1368호무덤들은 무덤벽화발생시기의 대표적인 유적들이다.

이 무덤들에는 벽면에 회미장을 하고 굳은 물체로 그어서 인물의 얼굴모습을 새겨 그린 선각화도 있으며 검은색 하나만으로 건물의 기둥과 들보를 그려놓은 벽화와 구름무늬를 형상한 그림들도 있다. 이것들은 묘사수법이나 기교,그림내용으로 볼 때 고구려무덤벽화발생초시기에 해당하는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고구려무덤벽화는 무덤내부를 지상건물처럼 꾸리려는 당시 사람들의 지향에 의하여 벽면에 기둥과 들보,두공을 그리는 단계를 거쳐 점차 무덤주인공이 정사를 보는 그림, 위풍넘치는 대행렬그림, 사냥그림, 씨름그림, 부엌생활그림, 환상적인 동물그림, 장식무늬그림을 비롯한 다양하고 풍부한 주제의 그림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이와 달리 다른 나라의 무덤벽화는 발생초기에 무덤주인공이 죽은후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나 천상세계에서의 전설적인 옛이야기를 묘사한 그림들이 간단하게 그려지다가 점차 현실세계에서의 생활과 환상적인 동물들을 그리는 방향으로 변천되였다.

발생초기 무덤벽화주제내용에서의 이러한 차이는 그것을 창조한 사람들의 지역적차이, 생활풍습에서의 차이, 신앙의식과 《래세관》에서의 차이를 반영한것으로서 고구려무덤벽화와 이웃나라 무덤벽화가 서로 다른 주민집단들에 의하여 각기 독자적으로 창조되고 발전하였음을 말하여준다.

일본렬도에서도 벽화무덤들이 일부 알려지고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내용이 단순하고 화풍이 고졸한 초기형식의 무덤벽화가 없이 비교적 발전수준이 높은 무덤벽화들이 돌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벽화의 주제내용과 형상수법이 고구려의것과 비슷하기는 하나 같은 주제의 고구려벽화무덤들과 대비하여볼 때 시기적으로도 훨씬 뒤떨어진다. 이것은 사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일본렬도의 무덤벽화가 독자적으로 발생발전한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문화적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임을 보여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에 따라 인물풍속을 그린것,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는 환상적동물들인 사신을 그린것, 인물풍속과 사신을 함께 그린것, 장식무늬를 그린것으로 나뉘여진다.

벽화의 주제내용은 무덤축조시기와 주인공의 요구에 따라 일정한 차이를 나타내는데 초기에는 인물풍속도가 다수를 차지하다가 점차 인물풍속도 와 사신도가 주류를 이루며 고구려 말기에는 사신도일색으로 바뀌여졌다.

인물풍속을 그린 벽화무덤으로서 가장 대표적인것은 고국원왕무덤,덕흥리벽화무덤,수산리벽화무덤,씨름무덤,련꽃무덤 등이다.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자리잡고있는 고국원왕무덤(안악3호무덤)은 4세기 중엽에 축조된것으로서 방대한 규모와 풍만한 내용의 벽화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고국원왕무덤의 인물풍속도에는 무덤주인공이 정사를 보는 그림, 대행렬그림, 춤그림, 수박희그림을 비롯하여 생전생활모습이 세부에 이르기까지 생동하게 묘사되여있으며 심지어 우물과 부엌,방아간,외양간,마구간,푸주간 등 경리생활그림까지 그려져있다. 이 그림들은 권세있고 호화로웠던 생전의 생활을 죽어서도 계속 누리려는 주인공의 요구와 신앙관념을 반영하고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인물풍속도와 함께 동,서,남,북 네 방위의 수호신들인 청룡,백호,주작,현무가 무덤속의 《령혼》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면서 점차 무덤벽면에 사신도를 그리였다.

사신도는 처음에 인물풍속도와 함께 그려지면서 무덤의 천정구석에 자그마하게 나타나다가 당시 사람들의 사신에 대한 관념이 깊어지면서 벽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게 되였다.

사신도무덤들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은 강서세무덤,호남리사신무덤,집안사신무덤,집안다섯무덤의 4호,5호무덤들이다.

사신도의 청룡,백호,주작,현무는 비록 환상적인 동물들을 그린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 사람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정신문화의 일면이 그대로 반영되여있다.

고구려무덤벽화는 그 하나하나에 고구려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폭넓게 담고있으며 여기에는 우리 민족고유의 생활세부들이 진실하고 생동하게 형상되여있다.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사람들의 옷차림들은 민족적특성을 뚜렷이 표현하고있다.

고구려사람들은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저고리우에 허리띠를 띠였으며 곧은 깃을 달고 소매끝,깃,도련에 선을 두른 민족옷차림을 하고 다니였다. 특히 쌍기둥무덤벽화,감신무덤벽화,수산리무덤벽화,덕흥리무덤벽화들에서 보이는 녀인들의 색동저고리와 여러가지 색갈의 무지개색주름치마,머리꾸밈새는 다른 나라의것과 완전히 구별되는 고구려고유의것이다.

이웃나라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거의다 도포를 입은 모습으로 형상되여있고 저고리소매가 넓은것이 고구려사람들의 옷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또한 소매끝에 여러가지 색의 끝동을 단 색동저고리나 무지개색의 주름치마들은 전혀 찾아볼수 없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구들을 놓은 방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것을 전통적인 풍습으로 여겨왔다.

고국원왕무덤,사냥무덤,쌍기둥무덤의 벽화들에는 방밖에 신발을 벗어놓고 구들에 편안히 앉아 생활하는 고구려사람들의 민족적인 방안생활모습이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그러나 이웃나라에서는 난방시설이 방안 한쪽구석에 있으며 구들고래가 높아 걸터앉게 되여있는 《캉》이라고 하는것으로서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써오는 구들과는 다른것이다.

고구려의 구들에 대하여 중국력사기록에 《…겨울이면 방안에 긴 온돌을 놓고 그밑에 불을 때서 난방을 삼았다.》고 씌여져있다.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와 방바닥에 편안히 앉아서 생활하는 조선민족의 생활풍습에 맞는 구들에는 민족적색채가 짙은 우리 민족고유의 생활모습이 비껴있으며 이러한 구들이 무덤벽화에 생동하게 그려진것은 바로 무덤벽화의 고구려적성격을 뚜렷이 강조해준다.

씨름무덤,고국원왕무덤을 비롯하여 많은 무덤의 벽화들에는 씨름과 수박희장면들도 그려져있다. 씨름과 수박은 고구려의 전통적인 무도로서 고구려는 물론 그 이후에도 널리 보급되여 조선민족의 전 력사에서 련련히 이어져왔다.

리조시기에 출판된 책 《무에도보통지》의 수박-권법을 설명한 그림은 고구려무덤벽화의 수박희그림과 신통하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체육경기들인 씨름이나 수박-권법이 고구려시기에 널리 진행되였고 력사적으로 계승되여왔다는것을 말해준다.

고구려는 상무정신이 강한 나라였다. 고구려사람들은 군사를 배우는것을 의무로 여기고 어려서부터 체력단련과 무술련마에 힘썼으며 민간오락과 경기들도 모두 무술을 기본으로 하였다.

약수리벽화무덤,덕흥리벽화무덤,장천1호무덤,춤무덤,사냥무덤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고구려벽화무덤들 내부벽면에는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사냥을 하는 장면들이 빠짐없이 그려져있다.

덕흥리무덤벽화에는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아 승부를 겨루는 경기장면이 있고 씨름무덤의 벽화에는 주인공이 방안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칼과 활을 몸가까이에 두고있는 모습이 있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에서 무술을 숭상하는 기풍이 전 사회적인 풍조로 생활화되여있었음을 말하여준다.

이처럼 무덤벽화는 고구려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진실하고 생동하게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고구려문화의 개성과 특유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 인민의 민족적특징이 뚜렷이 반영되여있는 고구려의 무덤벽화는 바로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조선민족고유의 귀중한 문화적재부인것이다.

2.고구려무덤벽화는 중세동방회화미술의 최고정화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내용의 다양성과 형상에서의 비반복성, 풍부한 예술적환상과 현실에 기초한 묘사의 생동성,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색갈로 하여 우리 민족의 커다란 자랑으로, 세계적인 보물로 되고있다.

일반적으로 회화미술의 우수성은 크게 주제내용과 미술적인 형상수준 두가지 측면에서 고찰할수 있다. 높은 형상수준도 물론 중요하지만 고구려무덤벽화와 같이 어느 한 력사적시대를 반영하고있는 그림인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내용이 중시되여야 한다. 그것은 력사적인 회화미술작품의 가치-우수성은 그 그림이 당대사람들의 생활을 얼마나 폭넓고 진실하게 반영하고있는가에 따라 규정되기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고구려무덤벽화는 우선 주제가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한것으로 하여 중세동방회화미술의 대걸작으로 손꼽히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외에도 동방의 여러 나라들에 여러가지의 조각상이나 벽화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당대 사람들의 생활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나타내지 못하고있다.

하지만 고구려무덤벽화에는 정치,경제,군사,문화,신앙 등 모든 분야의 생활이 폭넓고 깊이있게 반영되여있다. 특히 고국원왕무덤,덕흥리벽화무덤,약수리벽화무덤,장천1호무덤을 비롯한 많은

벽화무덤들에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들이 종합적으로 그려져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여러 측면에서 진실하게 보여준다.

정치생활주제의 벽화에는 무덤주인공이 정사를 보는 장면과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아가는 대행렬장면을 형상한 그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덕흥리무덤벽화의 정사도를 보면 무덤앞칸에는 주인공인 고구려의 유주자사 진이 자기 관할하의 13개 군 태수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를 주며 정사를 토의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위엄있는 자세로 틀지게 앉아있는 무덤주인공의 눈길과 몸가짐에서는 대강국 고구려의 서북방 넓은 령역을 지배한 지방행정장관의 위풍과 담대한 기상이 한껏 풍기고있다. 무덤주인공의 앞에 경건한 자세로 서서 어떤 일을 보고하거나 축하하는 13군 태수들의 그림도 매우 인상적이다. 13명의 태수들중에는 만족한 자세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서있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송구스러운듯 한 표정을 짓고있다. 13군태수들의 앞에는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손을 맞잡고 유주자사 진에게 태수들이 찾아왔음을 아뢰는 관리의 모습도 보인다. 고구려의 유주진출과 이 지역을 통치하던 당시의 사실을 생동하게 반영하고있는것이다.

고국원왕무덤의 안쪽《ㄱ》형으로 된 회랑의 벽에는 250여명이 등장하는 대행렬이 그려져있다. 고취악대의 장중한 주악이 울리는 가운데 황제의 행차임을 알리는 《성상번》기발을 휘날리며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개마무사들과 기마병들,활과 창,칼과 도끼를 든 무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위풍 당당히 나아가는 고국원왕의 웅건한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이 그림은 고국원왕의 황제적지위를 보여주는 력사적인 화폭이다.

고구려무덤벽화들은 경제생활을 반영한 그림, 군사물주제의 그림, 체육 및 예술활동을 반영한 그림, 신앙관계를 반영한 그림 등 주제령역이 다양하다.

세칸무덤에는 사람과 말이 모두 쇠갑옷으로 무장한 개마무사들이 창을 휘두르면서 성을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통구12호무덤의 전투하는 그림에는 중무장한 고구려무사가 긴 칼로 적병의 목을 내리쳐 베여버리는 모습이 형상되여있다. 고구려사람들의 씩씩하면서도 용맹스럽고 담찬 기상이 어려있는 그림이다.

이밖에도 군사물주제의 그림에는 개마무사,문지기장수,호위무관들과 의장대렬의 모습들이 있는데 여기에 그려진 무기,무장만으로도 고구려의 군사적위력을 잘 알수 있다.

고구려사람들의 신앙관계를 보여주는 그림들에는 단군관계 전설과 견우직녀전설을 반영한 그림, 신선과 비천그림, 불교의 칠보행사, 불공 드리는 모습을 형상한 장면들이 있다.

집안다섯무덤의 5호무덤천정에는 해를 머리우에 떠이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듯 한 선인의 모습이 그려져있고 씨름무덤의 벽화에는 큰나무아래 곰과 범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있다. 장천1호무덤의 벽화를 보면 큰 나무아래 굴속에 곰 한마리가 웅크리고 앉아있고 굴밖에서 범 한마리가 서성거리고있다. 이 그림들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오래전부터 숭앙되여오던 선인 왕검-단군에 대한 신화를 련상시킨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속에 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숭상하는 단군숭배의식이 지배하고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중세 우리 민족문화의 보물고라고 말할수 있는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의 다양성과 내용의 풍부성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인류문화의 귀중한 재부이다.

고구려무덤벽화는 당대 사람들의 사상감정과 정서를 우수한 회화기법으로 높은 수준에서 생동하게 형상하고있다.

억센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고구려무덤벽화는 세련된 선, 선명한 색채, 째인 구도로 특징지어진다.

고구려화가들은 무덤벽화에 선과 색채, 밝고 어두움, 구도 등 회화미술의 기본형상수단들을 훌륭히 구현하였다.

고구려화가들은 선을 매우 중시하였으며 대상의 형태와 양상에 맞게 다양하고 기발하게 리용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단숨에 그어내린 굵고 힘있는 선과 가늘고 부드러운 선 등 여러가지 선으로 묘사대상의 특징과 성격,운동감까지도 잘 살리였다. 춤무덤의 살림집그림과 쌍기둥무덤의 련꽃무늬장식그림, 세칸무덤의 힘장사그림들만 보아도 대범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선,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선, 유연하면서도 탄력 있는 선 등으로 대상의 형태를 방불하게 묘사하고있다.

청룡이나 백호의 부릅뜬 눈, 휘여든 잔등, 억센 발과 같이 힘을 넣어 강조할 부분들은 굵고 진한 선으로 단숨에 그려내였고 날개,털,수염과 같이 가볍고 휘날려야 할 부분들은 가늘고 연한 선으로 재치있게 처리함으로써 대상의 성격과 운동감을 잘 표현하였다. 특히 현무그림에서는 뱀이 거부기를 감으면서 몸을 비틀 때 비늘이 꼬이는것까지도 가는 선으로 생동하게 형상하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에서는 색이 또한 기본형상수단의 하나로 중요시되였다.

고구려무덤벽화에는 검은색,흰색,붉은색,푸른색,노란색과 함께 밤색,풀색,회색 등 여러가지 색들이 효과적으로 쓰이였다.

같은 색에서도 진하고 연한 정도가 다른 여러가지 색들을 풍부하게 리용하였는데 붉은색만 하더라도 다섯가지이상에 달하였다. 그런가하면 고구려화가들은 금분,은분과 같은 현란한 색감을 써서 무덤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짐승의 눈에 구슬을 박아 진실하고 생동한 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안악2호무덤의 비천그림에서는 몸을 휘감은 얇은 날개옷의 가벼운 흐름까지도 연한 색으로 표현함으로써 부드러운 률동과 하르르한 맛을 강조해준다.

강서세무덤과 집안다섯무덤의 4호무덤,5호무덤에 그려진 사신그림과 황룡그림들은 색감의 풍부성과 진실성, 선과 색의 일치, 화면이 물기를 받았을 때 나타날수 있는 동물들의 미끄럽고 윤기있는 피부색의 질감까지 능숙하게 표현해냄으로써 고구려무덤벽화형상에서 절정을 이루고있다.

고구려화가들은 대상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색채에서 허구를 적용하는 높은 기교도 발휘하였다.

고국원왕무덤벽화의 외양간과 마구간그림에는 소와 말이 각각 세마리씩 그려져있는데 검은빛소와 누런빛소사이에 초록빛소가 있고 흰빛말과 검은빛말사이에 분홍빛말이 끼여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초록빛소와 분홍빛말은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그러나 화가는 소와 말의 실지색을 그대로 그린다면 소와 말들이 어둑컴컴한 외양간과 마구간속에 잠겨버릴수 있다는것을 고려하여 색채의 허구를 리용한것이다. 그리하여 그림전반의 양상을 밝게 하면서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처리하였다.

기발한 화면구성은 화가의 능력을 가늠할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징표로 된다. 고구려화가들은 무덤벽화에서 화면의 전반적구도를 조화롭게 맞추면서도 대상의 특성에 맞게 함축과 집중,생략수법들을 능숙하게 리용하였다.

고국원왕무덤의 회랑에 그려진 대행렬도에는 왕이 탄 수레를 중심으로 하는 행렬의 앞부분만이 그려져있다. 물론 화가는 높이 2m, 길이 10m이상의 긴 회랑벽에 고국원왕의 장엄한 행렬전모를 빼곡이 그려넣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화면에서 왕이 탄 수레는 벽면의 가운데가 아니라 무덤칸에 들어서면서 인차 한눈에 바라보이는 회랑의 어구에, 그것도 웃부분에 그려져있다. 화가는 자연스러운 눈높이에서 행렬의 중심부에 있는 무덤주인공을 바라볼수 있도록 뒤부분을 대담하게 생략하고 아래부분에는 공간을 조성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넓은 들판을 지나는듯 한 행렬에 스스로 끌려 들게 하였고 행렬의 앞부분을 감상하면서 뒤공간에 그와 같은 규모의 위엄있게 꾸려진 행렬이 계속 뒤따르고있을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화가는 집약된 행렬의 한부분만을 그려 이와 관련된 다른 많은 부분을 련상케 하는 회화에서의 함축과 집중,생략의 수법들을 높은 수준에서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던것이다.

고구려사람들은 무덤벽화에서 부감법,원근법과 같은 회화기법들도 적용하여 대상의 특징을 더욱 강조해주기도 하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천 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자기의 선명한 색채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있다.

일반적으로 동양화에서는 좋은 종이에 그림을 그렸을 때 그 수명은 천년, 명주에 그린것은 500년이라고 한다. 고구려무덤벽화가 천 오백년이 지나도록 변색없이 보존되고있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고구려사람들은 무덤의 구조와 무덤안의 습도, 겨울철과 여름철의 기온차이, 무덤칸을 덮은 흙의 두께, 외부와의 온도차이로 인한 이슬맺힘까지 다 고려하여 그속에서도 견딜수 있는 안료와 점착제,접착기법을 창안하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회를 바르고 그것이 채 마르기전에 그린것과 완전히 마른 다음에 그린것, 매끈하게 다듬은 돌우에 직접 그린것이 있다. 회가 굳기전에 그리는 방법은 오늘날의 후레스코법과 같은것인데 회벽의 누기가 적절할 때 일정한 시간안에 빨리 그려야 하며 일단 그리면 고치기 어려운 점은 있으나 그림이 견고하고 회벽면이 마르면서 이루어지는 특유한 빛갈도 얻을수 있다.

고구려사람들은 돌벽우에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대체로 화강암판돌로 된 벽면을 리용하였다. 화강암은 매끈거리는 대리석과는 달리 면을 수평으로 맞추었다 하더라도 표면이 토들토들하여 그림의 우아함과 립체감을 나타내는데 아주 효과적이였다.

색감에 못지 않게 바탕면에 주의를 돌려 그림을 보다 생동하게 묘사하려고 한 여기에 고구려화가들의 높은 기교와 창조적재능이 어려있는것이다.

특히 습기가 찬 무덤안에서 벽화의 손상을 막으면서도 오히려 물기를 머금었을 때 나타낼수 있는 오묘한 립체감과 령롱한 빛갈까지 고려하여 그림을 그린것은 당시 고구려회화미술의 높은 발전수준을 그대로 과시하고있다.

천 수백년이 지났지만 금방 붓을 뗀듯이 선명하게 안겨오는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내용이 아주 풍부하고 다양하며 묘사 또한 생동하고 진실한데다가 오늘까지도 그 모습을 훌륭하게 보존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조선민족의 귀중한 재부로 되고있으며 세상사람들의 한결같은 찬탄을 자아내고있다.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고구려무덤벽화는 동방회화미술의 최고정화, 세계회화사에서 손꼽히는 대걸작으로서 전 인류적가치를 가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3.평양은 고구려무덤벽화의 발상지,중심지

평양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곳이고 민족문화의 중심지이다.

인류려명기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산수가 수려하고 기후가 온화하며 생업에 유리한 평양일대에서 자기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며 살아왔다. 고구려사람들은 앞선 시기의 발전된 문화를 토대로 하여 평양일대에서 높은 예술성과 풍부한 내용을 가진 무덤벽화를 독자적으로 창조하였다.

고구려벽화무덤들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의것으로 인정되고있는 무덤들이 바로 평양일대에서 알려지고 있는데 금옥리벽화무덤은 A.D.1~2세기경에 해당하며 우산리 2호무덤은 A.D.2세기이전에 축조된것이다.

집안일대에서 벽화무덤의 시초형으로 알려진 만보정 1368호무덤은 그 구조와 벽화내용으로 보아 A.D.3세기 전반기의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이것은 고구려무덤벽화가 평양일대에서 먼저 발생하여 다른 지역으로 보급되여갔음을 력사적사실로 보여주고있다.

평양일대에서 일찌기 발생한 무덤벽화는 3세기에 만들어진 대성구역 고산동 20호무덤, 강서군 태성리 2호무덤, 남포시 우산리 1호무덤에 이어 4세기 전반기의 평양역전벽화무덤, 감신무덤에도 그려지면서 련련히 계승되여갔다.

이러한 무덤벽화는 4세기 중엽에 축조된 고국원왕무덤과 4세기말~5세기초의 약수리벽화무덤, 5세기초의 덕흥리벽화무덤에 이르러 비할바없이 풍부한 내용으로 무덤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고구려말기에는 강서세무덤으로 하여 고구려무덤벽화발전의 최절정을 이루었다. 이처럼 고구려무덤벽화는 평양일대에서 먼저 발생하여 고구려 전기간 평양을 중심으로 높이 발전하여갔다.

100여기에 달하는 무덤벽화들은 고구려의 수도들이였던 환인,집안,평양일대에 분포되여있는데 그가운데서도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재령강류역에 가장 많이 집중되여있다.

환인일대에서는 미창구1호무덤 1기만이 알려졌고 집안일대에서는 통구12호무덤, 통구사신무덤, 세칸무덤, 거북잔등무늬무덤, 미인무덤을 비롯하여 20여기의 벽화무덤들이 발견되였다.

이에 비하여 평양일대에서는 동명왕릉, 쌍기둥무덤, 호남리사신무덤, 동암리벽화무덤, 개마무덤 등 근 80기에 달하는 벽화무덤들이 조사발굴되였다.

이것은 평양일대에 환인, 집안일대보다 훨씬 많은 고구려벽화무덤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평양일대에 분포되여있는 고구려벽화무덤들은 그 수가 많을뿐아니라 벽화의 내용이 풍부하고 형상수준은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르고있다.

환인,집안일대 벽화무덤들도 고구려사람들이 창조한것이고 이지역이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던만큼 다양한 주제내용과 생동한 형상으로 높은 발전면모를 보여주고있다.

그러나 무덤주인공의 초상과 관리들을 만나는 장면, 위풍넘치는 대행렬장면들이 그려진 고국원왕무덤과 덕흥리벽화무덤, 사냥경기장면의 규모와 생동한 묘사에서 으뜸이라고 할수 있는 약수리벽화무덤, 높은 예술적기교로 여러가지 교예장면을 펼쳐보이는 수산리벽화무덤을 비롯하여 주제별 내용과 형상에서 걸작이라고 할만한 벽화무덤들의 대부분이 평양일대에 집중되여있다.

사신도를 보아도 집안다섯무덤의 4호. 5호무덤들은 무덤칸의 벽면전체를 화려한 장식무늬로 가득 채우고 각종 채색은 물론 금분과 보석으로 청룡,백호를 비롯한 사신과 황룡을 현란하게 장식하였지만 평양일대의 강서세무덤에 그려진 사신도에는 이르지 못하고있다.

강서세무덤의 청룡과 백호는 균형잡힌 몸자세, 기운차게 추켜올린 앞발과 예리한 발톱, 불날개가 달린 앞가슴, 마디마디에 힘이 맺혀있는 구불구불한 꼬리들로 하여 맹수의 특성을 생동하게 보여준다.

여의주를 물고 날개를 한껏 펼치고 있는 주작은 금시 하늘로 나래쳐오르려는 봉황을 형상하고있으며 현무는 거부기와 뱀이 얽혀있는 모습을 그린것이지만 생신한 기운과 약동감이 넘친다. 이 그림들은 억세고도 힘찬 기상과 자유분방하고 박력있는 운동감, 우아하고 부드러운 률동으로 하여 고구려무덤벽화의 대표작으로, 세계적인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렇듯 평양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높이 발전한 고구려무덤벽화는 동족의 나라들과 주변나라들의 회화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였다.

백제의 벽화무덤들에서 알려진 사신도와 련꽃무늬,구름무늬그림들은 고구려무덤벽화에 그려진것들과 류사하며 신라,가야의 무덤벽화들에 형상된 주작,련꽃그림들과 달리는 말의 모습에도 고구려적화풍이 짙게 어려있다.

일본의 다까마쯔무덤에 그려진 인물들의 저고리와 무지개색의 주름치마, 머리꾸밈새 등은 고구려벽화무덤들에 형상된 사람들의 차림새를 그대로 닮고있다. 기도라무덤벽화에서 보이는 사신그림은 삼석구역 내리 1호무덤과 력포구역 룡산리 9호무덤의 사신도를 방불케 하며 특히 무덤의 천정에 있는 별자리 그림은 평양의 밤하늘을 그린것으로서 고구려문화의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보여주는것이다.

고구려의 무덤벽화는 이후시기 발해와 고려의 무덤벽화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발해의 정효공주무덤에는 문지기와 여러명의 인물들이 무기와 악기를 들고 걸어가는듯 한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 그림들은 고국원왕무덤의 문지기장수와 장천 1호무덤, 세칸무덤, 강서세무덤에 보이는 인물들을 련상시킨다. 정효공주무덤벽화에 묘사된 인물들은 시대변천에 따라 일정한 변화를 나타내고있으나 중심대상을 뚜렷이 하면서 률동감을 강조하여 그린 수법은 고구려말기 무덤벽화의것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며 동시에 발해회화의 사실주의적특징과 고구려적성격을 잘 보여준다.

고려태조 왕건왕의 무덤과 공민왕무덤의 벽화에도 고구려적성격이 잘 나타나고있다. 왕건왕릉의 무덤칸에 그려진 소나무는 고구려의 룡산리 1무덤에 있는 소나무의 형상과 비슷하다. 고려 수락동 1호무덤 사신도는 고구려 사신도의 풍격을 이어받으면서도 고려말기 사람들의 미적정서와 신앙관념에 맞게 묘사되여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발생발전한 고구려무덤벽화는 당대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백제,신라,가야를 비롯한 동족의 나라들과 주변나라들의 회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을뿐아니라 중세 우리 나라 무덤벽화의 시원으로,원형으로 되였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자랑높은 평양을 중심으로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하여온 고구려무덤벽화는 앞으로도 영원히 조선민족의 재보로, 인류공동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세계문화사에 찬연한 빛을 뿌릴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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