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기사 달력>>2004년 7월 12일기사 목록
로동신문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은 우리 나라에서 참다운 민족주의와 민족운동의 새 력사를 펼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다》
(평양 7월 12일발 조선중앙통신)12일부 《로동신문》은 김형직선생님의 탄생 110돐에 즈음하여 편집국론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은 우리 나라에서 참다운 민족주의와 민족운동의 새 력사를 펼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다》를 한면에 걸쳐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선군의 기치따라 신심과 락관에 넘쳐 조국의 통일과 주체의 강성대국건설을 다그치고있는 장엄한 환경속에서 다함없는 흠모의 마음을 안고 조선혁명의 려명을 안아오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탄생 110돐을 뜻깊게 맞이하였다.

김형직선생님은 우리 나라에서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의 방향전환의 위대한 선구자로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적발전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룩하신 혁명업적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대를 이어 끊임없이 계승발전하여왔으며 오늘 더욱 찬연히 빛나고있다.

우리 인민과 온 겨레는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의 기치따라 김형직선생님의 열렬한 애국,애족의 념원과 위업을 이 땅우에 더욱 활짝 꽃피워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조선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앞당겨나갈것이다.

1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을 내놓으신 희세의 위인이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원래 민족주의는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진보적인 사상으로서 발생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민족주의는 민족을 내세우고 위하는 진보적사상으로 생겨났다.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을 이루고 살면서 애국,애족의 마음을 가지게 되였으며 나라와 민족의 발전과 함께 그것이 사상과 리념으로 승화되여 민족주의,애국주의가 생겨나게 되였다.

민족주의는 민족성원들의 본성적요구의 반영이다. 민족성원이라면 누구나 자기 민족의 자주권과 리익을 귀중히 여기고 옹호하며 자기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노력하고 헌신하는것이다.

진보적사상으로서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커다란 작용을 한다. 민족주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결합시키며 그들로 하여금 자기 민족을 옹호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가도록 적극 추동한다.

우리 나라에서 민족주의는 근대시기 하나의 애국적인 사조로 력사무대에 등장하였다.

당시 조선의 형편은 부패한 왕조정치의 심연속에서 내우외환이 거듭되고 외세의 강요에 의한 개국의 진통으로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 우리 나라에서 《보국안민》,《척양척왜》를 부르짖으며 력사무대에 등장한것이 민족주의라고 말할수 있다.

이 시기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낡은 봉건제도를 변혁하여 나라의 문명부강을 지향한 개화사상도 민족주의사조의 하나였다.

우리 나라에서 민족주의는 진보적사상으로 생겨나 민족의 독립과 근대화에 일정하게 이바지하였으며 사회발전을 추동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이러한 민족주의사조들은 시대적미숙성과 그 주도적력량으로 나선 몰락한 봉건량반들과 유생들,자산계급출신 지식인들과 부르죠아지들에 의하여 계급적 및 정치적제한성과 변질을 면할수 없었다.

당시의 민족주의는 《보국안민》,《척양척왜》를 호소하였으나 낡은 충군사상과 왕조정치를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국권회복과 사회의 문명개화를 제창하였으나 외세에 의존하여 그것을 실현하려고 헛되이 시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렬강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나라의 근대화를 지향했으나 로동자,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의 리익을 외면하고 자산계급의 리익만을 추구하는 부르죠아민족주의로 변질되기도 하였으며 일제의 총칼에 굴복하여 조선민족은 《렬등한 민족》이기때문에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력설하는 민족개량주의로 전락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발생한 이러한 민족주의는 자체의 제한성과 변질로 하여 점차 그 진보적성격과 생명력을 잃고 인민들의 지지를 받을수 없게 되였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서 생겨난 여러가지 민족주의사조들은 참다운 민족주의로, 민족운동의 지도리념으로 되지 못하고 력사무대에서 밀려나게 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참다운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이 낳은 진정한 민족주의자이시며 애국자이신 김형직선생님에 의하여 비로소 제시되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은 일찌기 《지원》의 사상을 밝히시고 그에 기초하여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할수 있는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을 내놓으시였다.

《지원》이란 문자그대로 뜻을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하여서는 뜻을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선생님의 《지원》의 사상은 개인의 영달이나 립신양명을 념두에 둔 세속적인 인생교훈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는 혁명적인생관이며 대를 이어가며 싸워서라도 기어이 나라의 광복을 이룩해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다.

선생님께서는 《지원》의 사상을 구현하고 전개하시여 우리 나라 민족운동의 기치로 될수 있는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을 내놓으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내놓으신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은 애국,애족,애민의 사상이며 그를 실현하기 위한 옳바른 방략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내놓으신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은 무엇보다도 철저한 반일독립,문명국가를 세우기 위한 사상으로 일관되여있다.

선생님은 언제나 청년학생들과 민족운동자들에게 일제의 학정밑에 굶주리고 천대받는 우리 민족의 살길은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문명한 새 사회를 일떠세우는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내놓으신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은 또한 민족자주,민족단합의 사상으로 일관되여있다.

선생님께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 적지 않은 민족주의자들의 머리속에 자리잡고있던 사대주의적관점을 없애고 조선사람의 정신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모든 힘을 단합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독립운동자들에게 우리들이 단결만 하면 세상에 무서울것이 없고 못해낼 일이란 없다고 강조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내놓으신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은 또한 무산민중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상으로 일관되여있다.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것도 무산민중이고 불의를 쓸어버리고 사회적진보를 이룩하는것도 무산민중이다.

이로부터 선생님께서는 반일투쟁에서 승리하자고 해도 무산민중을 각성시켜 동원해야 하며 일제를 타도하고 독립을 달성한 다음 세워야 할 나라도 무산민중의 리익을 보장하는 사회로 되여야 한다는 신념을 간직하시고 그 실현에 온갖 심혼을 다 바치시였다.

김형직선생님의 민족주의는 바로 이러한 지론으로 일관되여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 생겨난 이여의 민족주의사조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민족주의, 참다운 민족주의로 정립되게 되였다. 이것은 우리 나라 민족주의발전에서 새로운 력사적전환을 이룩한 획기적인 사변이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우리 나라에서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을 내놓으심으로써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고 그 부강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진정한 애국,애족의 기치가 마련되게 되였다.

2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은 우리 나라에서 참다운 민족운동을 개척하신 탁월한 지도자이시다.

우리 나라에서 근대시기 산생된 민족주의영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민족운동이 여러가지 형태로 활발히 벌어졌다.

위정척사운동은 우리 나라 초기민족운동의 중요한 조류의 하나였다. 위정척사운동은 19세기 후반기이래 애국적량반들과 봉건유생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외세의 침입을 막고 몰락의 위기에 처한 왕조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 전개된 민족운동이였다. 이 운동은 19세기말∼20세기초에 전개된 반일의병투쟁으로 이어졌다. 의병투쟁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강도적인 식민지화책동이 로골화되던 시기에 위정척사운동자들의 지휘밑에 농민대중을 기본군중으로 한 각계각층의 인민대중이 손에 무기를 잡고 왜적을 격멸하기 위하여 벌린 적극적인 민족운동이였다.

민족종교운동으로서 동학운동도 우리 나라 민족운동의 한 형태였다. 그것은 19세기말 서학을 반대하고 동방의 학문을 주장하면서 우리 민족고유의 종교인 천도교를 내세우는 운동이였다. 동학운동은 종교적형태를 띠면서 외적의 침략을 물리치고 부패한 봉건통치를 변혁하기 위한 운동으로 전개되였다.

위정척사운동이나 동학운동은 우리 나라 민족운동에서 흔적을 남기였으나 본질적인 제한성으로 하여 실패하고말았다.

우리 나라 민족운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개혁운동으로 벌어진 부르죠아민족운동이였다.

개혁운동은 개화파와 혁신관료들이 외래렬강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나라의 독립을 수호하며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사회의 각 방면에서 봉건적락후성과 페정을 일소하고 나라의 근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일련의 부르죠아개혁들을 실시하기 위한 투쟁으로 벌어졌다.

우리 나라에서 초기민족운동은 자본주의발전의 미숙성과 혁신세력의 취약성으로 하여 실패하였고 부패무능한 왕조정치와 외래침략의 지속으로 결국 우리 민족은 일제에게 국권마저 빼앗기고 식민지로 굴러떨어지고말았다.

일제는 조선을 병합하여 강점하였으나 조선인민은 그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반일운동,독립군운동과 반일정치운동,애국문화운동 등으로 나라의 독립을 찾기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벌리였다.

여러가지 형태로 줄기차게 이어지고 계속되여온 우리 인민의 민족해방운동은 마침내 주체8(1919)년 3월 1일 인민봉기로 활화산처럼 분출되였다.

하지만 3.1인민봉기는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과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의 배신행위로 말미암아 실패하였다. 3.1인민봉기를 계기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 부르죠아민족주의운동의 시기는 종말을 고하게 되였으며 그 잔존세력의 대부분은 해외로 도피하여 여러가지 독립운동을 벌리였으나 그것마저도 분렬와해되여 쇠퇴일로를 걷게 되였다.

중국 동북의 간도지방과 로씨야 연해주지방에서 전개된 독립군운동은 내부의 대립과 반목의 격화로 뿔뿔이 흩어지고말았으며 민족운동상층부들에 의하여 생겨난 상해림시정부는 애국보다 파벌싸움에만 몰두하고 독립운동에는 별로 기여한것이 없었다. 그들의 테로전술은 피만 흘리였고 렬강들의 힘에 의거하는 《독립청원운동》은 《을사5적》이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이번에는 없는 나라를 팔아먹는것이나 같은것이였으며 《실력배양》이나 《리상촌》건설은 실현불가능한것이였다.

국내외의 이른바 독립운동자들이 부르짖은 《자치운동》은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용인하는 반민족적인 행위였다.

이렇게 부르죠아민족운동의 류파들은 전면적으로 쇠퇴몰락하면서 빛을 잃고 사라지는데 3.1인민봉기를 전후하여 김형직선생님께서 조직지도하신 민족운동은 민족재생의 빛을 뿌리면서 민족해방의 참다운 길을 개척해나갔다.

김형직선생님은 조선독립운동에 몸바쳐나서면서 후대교육사업과 군중계몽사업부터 시작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쓸모있는 인재를 많이 키워내고 군중을 각성시켜야 나라도 찾을수 있고 부강한 독립국가를 세울수 있다고 하시면서 후대교육과 군중계몽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몸소 교편을 잡으시고 교육내용과 방법을 혁명적으로 새롭게 개척하시면서 순화학교와 명신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지방의 학교와 야학을 통하여 청소년들과 광범한 군중을 혁명인재로,반일애국력량으로 키우시였다.

김형직선생님은 우리 나라에서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후대교육과 군중계몽의 새 력사를 펼치신 위대한 교육자이시였다.

김형직선생님은 반일민족해방운동에서 승리하자면 그 운동을 이끌고나갈수 있는 혁명조직을 꾸려야 한다는데로부터 그에 주되는 힘을 넣으시였다.

선생님께서는 반일교육과 군중계몽,동지획득을 위한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시여 핵심육성과 군중적지반을 널리 축성하시고 그에 토대하여 주체6(1917)년 3월 23일 평양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다.

조선국민회는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울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로서 당시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국내외의 조직들가운데서 그 규모가 제일 크고 반제적립장이 가장 투철하며 대중적지반이 튼튼한 반일지하혁명조직이였다. 조선국민회는 독립전쟁론을 주되는 방략으로 내세웠고 무력에 의한 항일투쟁을 목표로 하였다.

김형직선생님은 조선국민회조직의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시여 얼마 안되는 기간에 국내각지는 물론 중국 만주의 여러 지방과 베이징,상해 등 국외까지 그 조직을 확대하시였다.

일제에 의하여 조선이 합병된 후 조직된 독립의군부나 대한광복단,조선국권회복단과 같은 단체들은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이무렵에 와서 모조리 해산되였다.

이런 때에 그 목적과 방략,조직력량과 체계에서 그처럼 혁명적이며 진보적인 조선국민회가 태여난것은 조선민족해방운동사에서 특기할 사변으로 되였다.

조선국민회조직이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중추적인 혁명조직으로 국내의 지역과 해외에로 급속히 확대강화되고 그 영향하에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기운이 전례없이 높아지자 일제는 그를 탄압말살하기 위하여 조선국민회 성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투옥하였고 김형직선생님도 이 시기 그만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령어의 몸이 되시였다.

김형직선생님은 옥중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으시고 조선국민회조직을 지도하시면서 조선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이 과정에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이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무수한 피의 자국만을 남기면서 독립운동이 침체상태에서 헤여나지 못하고있을 때 우리 아버지는 그런 방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닫고 민중혁명을 주장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제시하신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하여야 한다는것은 민족을 부정하거나 배제하고 무산자만을 위하는 혁명의 길로 나간다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무산민중을 기본으로 하여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이룩하여 무산민중이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는것이다. 반일민족해방운동에서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의 방향전환은 력사의 필연이다. 식민지나라 인민들은 무산혁명을 하여야 참다운 자주독립을 성취할수 있으며 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진통과 재난을 피하고 민족적번영을 이룩할수 있다.

이로부터 선생님께서는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실현하자면 무산혁명을 하여야 한다는것을 정치적신조로 내세우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출옥후 쇠약하신 몸을 추세울 사이도 없이 압록강연안의 여러 지역에 나가시여 파괴된 혁명조직을 복구하고 3.1운동의 교훈을 심각히 분석하시면서 독립운동자들에게 혁명의 진리를 안겨주어 조선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방략을 더욱 구체화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이에 기초하여 주체8(1919)년 7월 청수동회의에서 무산혁명의 력사적필연성을 론증하시였고 8월 관전회의에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할데 대한 방침을 정식선포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후 혁명활동의 거점을 압록강연안 북부국경지대에로 옮기시고 무산혁명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어려운 사업을 몸소 진두에서 힘차게 벌려나가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조선국민회 회원들을 북부국경일대를 비롯한 국내의 여러 지역과 특히 로동자집결지역과 농촌지역들에 파견하시여 선진사상보급을 여러가지 형태와 방법으로 적극 전개하도록 하시였으며 몸소 자신께서 중요지대에 나가시여 대중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또한 무장활동준비를 정력적으로 벌려나가시였다. 3.1운동실패후 독립운동자들은 지난날 반일의병투쟁을 계승하여 무장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였으나 파쟁과 분산성을 면하지 못하였고 민중으로부터 리탈되여 일제와의 싸움에서 실패를 거듭하게 되였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형편에서 무장활동을 새롭게 준비하시지 않으면 안되였다. 선생님께서는 무산혁명의 방략에 맞게 무산계급출신의 선진적인 청년들을 군사간부로 양성하고 기존무장단체들을 혁명적으로 개조하여 그 대오를 무산민중의 무장력으로 전환시켜나가시였다. 또한 로동자,농민출신의 새로운 무장대의 본보기로 비교적 규모가 큰 광복군 총영과 백산무사단을 잘 꾸리고 적극적인 무장활동을 벌리도록 하시여 압록강연안과 국내의 여러 지역들에서 적들의 경찰기관과 침략군부대들을 습격소탕함으로써 일제침략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시였다.

이것은 3.1인민봉기이후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에서 획기적인 전환으로 되며 조선인민들에게 조국광복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는 고무적기치로 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반일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과 독립운동단체들을 하나의 혁명력량으로 묶어세우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하시였다.

당시 반일독립운동자들은 모든 애국력량을 하나로 합심단결시키지 못하였으며 특히 독립운동단체들과 무장단체들이 파벌로 서로 배척하면서 세력다툼만 일삼고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선진적인 로동자,농민을 기본으로 하면서 민족적량심과 애국심을 지닌 청년학생,지식인,상인,종교인,기업가는 물론 적기관복무자들까지 반일력량에 묶어세워 독립운동에 떨쳐나서게 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간도지방에 있던 반일청년단들을 통합하여 대한청년련합회를 내오도록 이끄시였으며 압록강연안에서 활동하던 각이한 무장단체들을 통합하여 국민단을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련이어 국민단을 다른 무장단체들과 통합하여 광정단을 내오도록 하시였으며 남만의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통의부로,그후 정의부로 통합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만주일대의 반일독립운동대렬을 하나로 결속하기 위하여 민족단체련합촉진회를 조직하도록 하시였으며 모든 반일조직들과 무장단체들을 정치적으로 지도할수 있는 유일당으로서 고려혁명당을 결성하도록 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무산혁명의 기치아래 독립운동대렬의 단합을 위해 생애의 마지막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참으로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은 우리 나라에서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의 방향전환의 위대한 선구자이시였다.

진정한 민족주의자이시며 애국자이신 김형직선생님에 의하여 우리 인민의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참다운 민족운동이 개척되였으며 그 빛나는 전통이 이루어지게 되였다.

3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룩하신 혁명업적은 대를 이어가면서 사회주의 이 강산에 더욱 빛나고있다.

혁명위업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전진하는 력사적위업이며 그 승리적전진과 완성의 결정적담보는 령도의 계승을 확고히 보장하는데 있다.

김형직선생님은 조국광복의 새 아침을 보지 못하시고 애석하게도 일찌기 서거하시였지만 선생님의 필생의 념원과 위업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하여 빛나게 계승발전되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가운데서 특출한것은 일찍부터 아드님을 혁명동지로 여기시고 열렬한 애국자,위대한 혁명가로 키우심으로써 조선혁명의 대를 튼튼히 이어놓으신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혁명의 진두에 서시여 항일혁명투쟁을 자주적으로 조직지도해나가시는 과정에 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숭고한 사상을 구현하여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에 기초하시여 선생님의 참다운 민족주의리념과 민족자주위업을 주체의 사회주의사상과 위업으로 승화시켜 빛나게 계승발전시키시였다.

선행한 혁명리론에 의하면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대립되는 사조인것이다. 선행한 혁명리론에서는 민족주의를 로동계급의 국제적단결과 련대성을 파괴하는 기회주의적인 사상조류로 규정하고 그것을 무조건 이단시하였으며 그 영향하에 우리 나라에서는 초기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대립되여 서로 배척하고 지어는 테로와 학살까지 감행하였던것이다.

이와는 근본적으로 달리 김형직선생님께서 내놓으시고 정립하신 참다운 민족주의리념과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롭게 창시하시고 전개하신 주체의 사회주의사상은 하나로 결합되는 혁명사상인것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내놓으신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은 투철한 애국,애족의 사상이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주체의 사회주의사상은 최고의 애국,애족의 사상이다.

이러한 애국,애족의 공통성으로 하여 김형직선생님의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의 사회주의사상과 하나로 결합되고 빛나게 계승되였으며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김형직선생님의 참다운 민족주의리념은 우리 혁명의 력사를 통하여 빛나게 계승발전되였다.

항일혁명시기에는 량세봉,손정도,리극로 등 민족주의자들이 수령님의 령도밑에 조국광복에 공헌하였으며 조국이 독립된 후에는 허헌,김월송 등 수많은 진보적민족주의자들과 완고한 민족주의자였던 김구,김규식까지도 수령님의 민족자주로선을 지지하여 새 조국건설과 조국통일에 헌신하였다. 사회주의건설시기에는 최덕신,김성락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참다운 지상천국은 공화국의 사회주의라고 하면서 생의 마무리를 값있게 장식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개척하신 참다운 민족위업도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주체의 사회주의위업과 결합되여 우리 나라는 독립되고 번영하는 나라로,자주,자립,자위의 사회주의강국으로 전변되였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변함없이 계승발전되면서 더욱 빛나고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일찌기 《지원》의 원대한 뜻을 신념으로 간직하시고 부모님들에게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사상은 위대한 수령님의 대를 거쳐 자신의 대에 이르렀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혁명의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고 해도 혁명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대대로 애국적인 만경대가문의 혈통과 넋을 천품으로 지니시고 어버이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그대로 이어받으신 우리 민족의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위대한 령도자이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하며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데 대한 독창적인 사상리론을 제시하시고 그를 빛나게 구현하시여 조선민족의 존엄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놓으시였으며 민족적번영의 대전성기를 마련하심으로써 김일성민족의 영예와 긍지를 온 세상에 떨치고계신다.

또한 조국통일3대헌장과 전민족대단결5대방침을 내세우시고 그 실현에로 온 민족을 이끄심으로써 사상과 정견,신앙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북과 남,해외의 7천만겨레를 하나로 단합시켜 조국통일성업에 일떠서게 하고계신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특히 애국,애족의 최고정화인 선군정치를 펴시여 우리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혁명의 주력군으로 키우시고 그 위력에 의거하여 미제의 발악적인 공세를 걸음마다 짓부시고 조국을 수호하시였으며 사회주의건설에서 난국을 극복하면서 강성대국건설에로 전진하는 력사의 기적을 창조하심으로써 우리 조국의 위용을 온 세상에 과시하시였다.

이 승리적전진과정에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위신은 비할바없이 높아졌으며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발표되고 그 리행이 추진되여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계시는 한 김형직선생님의 생전의 뜻과 위업은 대를 이어가며 하나의 혈통으로,혁명사상으로 이어지고 끊임없이 계승발전하면서 삼천리조국강산에 더욱 찬연히 펼쳐질것이다.

* *

력사가 위인을 낳고 빛나게 하는것이 아니라 위인에 의하여 력사가 창조되고 빛나는것이다.

우리 민족의 3대위인들에 의하여 5천년민족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애국,애족의 력사가 창조되고 빛을 뿌리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에 의하여 그 시원이 개척되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끊임없이 계승발전되여온 참다운 애국,애족의 리념과 위업은 우리 조국청사에 찬연히 빛날것이며 우리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함께 영원불멸할것이다.(끝)

Copyright (C) 2002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