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27일발 조선중앙통신)27일부 《로동신문》은 《조선전쟁에서 당한 미제의 수치스러운 참패》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에 의하여 미제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는 산산이 깨지고말았습니다.》
3년간에 걸치는 조선전쟁에서 미제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로써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의 거만한 코대가 꺾어지고 그들의 내리막길의 시초가 열어지게 되였다.
미제는 조선전쟁을 도발하면서 수적,군사기술적우세에 의거하여 포악한 전법을 쓰면 쉽게 조선을 정복할수 있으리라고 타산하였었다. 미군부우두머리들은 종군기자들앞에서 미군은 72시간내에 《조선전쟁을 결속지을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제의 수적,군사기술적우세를 정치사상적,전략전술적우세로 타승하도록 하심으로써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산산이 깨버리시였다.
미제는 지난 조선전쟁에 자기 륙군의 3분의 1,공군의 5분의 1,태평양함대의 대부분 그리고 15개 추종국가군대와 남조선군을 포함한 200여만명의 병력과 《하늘의 요새》라고 하던 《B-29》전략폭격기를 비롯한 최신형전투기술기재들을 다 동원하였다. 또한 미제는 조선전쟁에 7,300만t이상의 군수물자들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태평양전쟁에서 입은 손실의 근 2.3배에 달하는 막대한 병력과 군사기자재들을 잃어버렸다.
적들은 조선전쟁에서 미군 40만 5,498명을 포함한 156만 7,128명의 병력을 잃고 1만 2,220여대의 비행기,3,250여대의 땅크 및 장갑차,1만 3,350여대의 자동차,560여척의 함선,7,690여문의 포,92만 5,150여정의 저격무기를 손실당하였다.
태평양전쟁의 《개선장군》으로 자처하던 맥아더와 워커,릿지웨이를 비롯하여 악명높은 미제의 《상승장군》치고 조선전쟁에 가담하여 황천객이 되였거나 패전의 책임을 지고 군부에서 쫓겨나지 않은 자가 없었다. 1950년 11월말 미군의 《크리스마스총공세》가 역전되여 《크리스마스총퇴각》으로 번져졌으며 미국내에서 반전항의가 높아졌다. 미국지배층안에서 대통령탄핵,국무장관교체가 물망에 올랐다. 전쟁광신자 맥아더의 철직,워커의 죽음 그리고 미제1,2,7,25사단 등 여러 사단장들이 철직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지상작전에 맨 처음으로 투입되였던 미제침략군 《스미스특공대》의 괴멸에 뒤이어《상승사단》으로 자랑하던 미제24보병사단을 비롯한 많은 부대들이 완전히 녹아났다.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는 공중과 바다에서도 깨여졌다.
1951년 10월 30일 90대의 전투폭격기의 엄호를 받으며 공화국북반부령공에 침입하였던 《B-29》 3대가 격추되고 5대가 격상되였다. 미공군에서는 이날을 《흑색화요일》로 력사에 기록하였다. 그후 1주일사이에 20대의 《하늘의 요새》가 박살났다. 조선전쟁도발이래 총 2,200명의 적비행사들이 공포증에 사로잡혀 비행근무에서 리탈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1950년 7월 2일 조선인민군 해군 어뢰정 4척은 경순양함 1척과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면서 주문진앞바다에 기여든 1만 7,000t급 미제중순양함 《빨찌모르》호를 격침시키고 련이어 경순양함 《야마이카》호를 격상시켰다.
1951년 5월에 열린 미국회청문회에서 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래들리는 《조선전쟁은 잘못 고른 시간에 잘못 고른 장소에서 잘못 고른 적들과 잘못한 전쟁이였다.》라고 실토하였다.
그의 이 말은 전쟁의 두번째 해에 벌써 미제침략자들이 조선전쟁의 실패를 공식 인정한것이였다.
미국의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드》는 조선전쟁에서의 《미군의 손실은 미국이 다섯번의 대전쟁 즉 독립전쟁,1812년전쟁,메히꼬전쟁,미에(미국:에스빠냐)전쟁 및 필리핀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다 합친것보다 2배이상 더 많다.》라고 썼다.
조선전쟁에서 미제가 참패를 당한것은 미군의 정치도덕적부패성과 저렬성에 기인된다.
미제침략군은 정치도덕적으로 부패타락한 군대였다.
염전사상에 사로잡힌 미군은 《동맹군》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자기들은 도망치군 하였다. 프랑스군의 한 중위는 자기 일기에 《프랑스병사들은 조선에서 문자그대로 우둔한 노새처럼 리용》되였다고 썼다. 필리핀의 한 하사관은 자기가《제2부류의 인간》으로 취급받았다고 하였다. 《동맹군》에 대한 이러한 인종차별은 그들간의 모순을 증대시켰고 미제를 더욱 고립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제침략군내부에서는 탈주병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미해군검사총장 맥울리프는 공식발언에서 1952년말까지 《조선전쟁개시이래 미해군의 탈주병만도 4만 6,000명에 달한다》고 고백했고 미륙군에서는 《월평균 2만 때로는 하루에 3,000명의 탈주병》이 생겨났다고 밝혔다.
딸라를 위해 전쟁판에 나선 군대,자기 목숨이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꼬리를 사려 도주하는 군대가 과연 강대할수 있겠는가.
우리 군대와 인민은 1953년 7월 27일 미제를 타승하고 력사적승리를 이룩하였다.
조선전쟁이 끝난 후 미국방장관 마샬은 《신화는 깨여지고말았다. 우리는 남들이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였다.》라고 실토하였으며 미극동군총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였던 클라크는 정전협정을 조인하던 때를 회상하여 《력사상 처음으로 승리하지 못한 정전협정에 서명한 첫 미륙군사령관으로 되였다. 나는 실망의 고통을 느끼였다》고 고백하였다.
조선전쟁에서 당한 미제의 대참패는 미국의 전쟁력사에 류례없는것으로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만회할수 없고 또 지워버릴수도 없는것이다.
미제호전광들은 지난 조선전쟁에서 당한 수치스러운 참패의 교훈을 망각하지 말고 제2의 조선전쟁도발책동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