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련합 북측본부는 30일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공동성명은 다음과 같다.
지금 북녘의 전체 청년학생들은 최근 남조선에서 6.15시대에는 상상도 할수 없는 반민족적,반통일적 범죄행위가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는데 대해 치솟는 분노를 금치 못해 하고있다.
이미 보도된바와 같이 남조선당국은 지난 20일 그 무슨 공판놀음이라는것을 벌려놓고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를 《리적단체》로 규정하였으며 이 단체 의장에게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부의장과 집행위원장들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는 망동을 부리였다.
결국 남조선당국은 다른 때도 아닌 《우리 민족끼리》의 시대에 공공연히 반통일악법 《보안법》을 휘둘러 또 하나의 《리적단체》를 만들어냈다.
더우기 우리를 격분케 하는것은 남조선당국이 이 단체가 우리의 선군정치를 선전했다는것을 구실로 내대면서 이러한 파쑈폭압만행을 감행한것이다.
온 세계가 공인하고 온 겨레가 지지찬양하는것처럼 우리의 선군정치는 외세의 핵전쟁도발책동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줄뿐아니라 민족공동의 번영을 군력으로 담보해주는 정치이다.
이렇듯 애족애민의 선군정치를 따르고 선전하는것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응당한 소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당국이 우리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보안법》에 매달려 통일운동청년단체들과 그 핵심성원들을 탄압하다 못해 우리의 존엄높은 정치체제까지 시비중상하고 모독해나선 이 처사야말로 6.15공동선언을 부정하고 북남관계를 불신과 대결로 되돌려세우려는 음흉한 기도의 발로이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와 범청학련 북측본부는 남조선당국의 이러한 탄압만행을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자주통일에 대한 남녘청년학생들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7천만 겨레의 자주통일진군에 전면도전해나선 반민족적,반통일적깡패행위로 락인하면서 이를 북녘의 전체 청년학생들의 이름으로 준렬히 규탄한다.
남조선당국은 온 민족의 저주와 규탄을 받았던 《문민독재정권》의 악행을 그대로 재현하고있다.
알려진바와 같이 남조선당국은 민족공조가 대세로 된 6.15시대에 와서도 여전히 《보안법》과 《주적론》을 제창하면서 얼마전에는 11기 《한총련》의장을 비롯한 애국적학생청년들에게 중형을 들씌웠으며 《통일련대》사무처장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하였고 민족공동행사들에 범민련 남측본부,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과 같은 단체들이 참가하는것을 가로막았다.
진보적이고 애국적인 청년단체를 탄압하다 못해 오늘은 또 하나의 《리적단체》로 감투를 씌우고 손발을 묶어놓았으니 이것이야말로 천추에 용납못할 반민족적,반통일적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과연 이것이 남조선청년학생들의 통일선봉조직인 《한총련》을 우리와 억지로 련결시켜 《리적단체》로 규정하고 《마녀사냥》을 해대던 《문민》파쑈무리들과 무엇이 다른가.
어제는 7천만이 그토록 갈망하는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철창속으로 끌어가고 오늘은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어머니조국을 배반하고 도망간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을 긁어모으고있는 남조선당국의 행위를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제반사실은 우리 민족끼리 시대에 와서도 반통일파쑈집단,《리적단체창안명수》로서의 남조선당국의 성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변하였다면 그 악랄성과 포악성이 더욱 교활해진것뿐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정의와 량심은 총칼로도 철쇄로도 꺾지도 묶을수도 없다.
남조선당국이 제아무리 《보안법》을 휘두르면서 피비린내나는 칼부림을 해도 선군정치를 지지하고 따르는 민심은 절대로 막을수 없으며 선군의 위력에 의해 전진하는 겨레의 민족자주통일운동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지금이라도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구시대악법 《보안법》을 철페하고 통일애국단체들에 대한 《리적단체》규정을 철회하여야 하며 부당하게 구속한 통일애국인사들과 청년학생들을 무조건 석방하여야 한다.
만일 남조선당국자들이 화해와 단합,통일을 바라는 온 겨레의 념원에 역행하여 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반통일집단,민족반역무리의 오명을 쓰고 민족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것이다.
주체93(2004)년 7월 30일
평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