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9월 17일발 조선중앙통신)조국통일연구원은 17일 《윁남전쟁때의 악몽을 몰아오는 이라크파병은 무조건 중지되여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된 비망록을 발표하였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는 9월 22일은 미국이 윁남침략전쟁에 남조선군을 내몰아 치욕의 죽음을 강요한 때로부터 40년이 되는 날이다.
남조선군의 윁남전쟁파병은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수치였으며 남조선인민들에게 씻을수 없는 오점과 상처를 남긴 악몽이였다.
윁남전쟁으로부터 시작된 남조선군의 해외파병은 오늘의 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 8개 나라에 연 14차례, 이라크파병은 이번까지 3차례로서 병력규모로 볼 때 윁남전쟁후 최대일뿐아니라 이라크에 병력을 보낸 다른 나라에 비해보아도 미국,영국을 제외하고 첫번째를 차지하고있다.
미국은 수십년전의 그 수법 그대로 오늘 남조선군의 이라크파병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여 수많은 청장년들을 침략전쟁의 희생물로,대포밥으로 내몰고있다.
조국통일연구원은 윁남전쟁때의 악몽을 망각하고 남조선군의 이라크파병을 강행하고있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을 규탄,단죄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윁남전쟁악몽과 그 진상
20세기 중엽과 후반 미국의 해외침략전쟁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참패의 기록으로 된것은 조선과 윁남에 대한 침략전쟁이였다.
조선침략전쟁에서 심대한 참패를 당한 미제는 여기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1950년대말 남부윁남괴뢰정권을 사촉하여 내전을 일으키고 그를 구실로 1960년대에 윁남침략전쟁의 불을 질렀다.
그러나 윁남인민들의 완강한 반미항전과 세계평화애호력량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솟아날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든 미국은 윁남침략전쟁에 추종국가들을 내몰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첫 대상이 남조선이였다. 남조선은 이미 조선침략전쟁때 저들의 대포밥으로 써먹어본 경험이 있을뿐아니라 미국이 마음대로 부려먹을수 있는 특등식민지였다. 미국은 특히 당시 군사파쑈《정권》이 《5.16군사정변》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규탄과 《한일회담》반대투쟁, 경제파탄과 생활난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미국의 정치경제적지원에 목이 말라있던 약점을 리용하여 윁남전쟁터에 파병할것을 요구하였다.
1961년 11월 미국은 《경험많은 한국군이 윁남전쟁에 파견된다면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하면서 남조선당국에 파병을 내리먹였으며 당시 남조선《정권》은 미국상전의 지령에 따라 1962년 4월 《파병승인회신》이라는것을 남부윁남의 느고 딘 디엠괴뢰정권에 보냈다. 그리고 그해 5월 11일에는 15명으로 구성된 시찰단을 남부윁남에 비밀리에 파견하였다.
1963년 여름에는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버거가 남조선당국에 의료단파병을 요구하였으며 1964년 5월에는 미국대통령 죤슨이 직접 윁남파병을 강요하는 서한을 남조선당국자에게 보냈다.
그후 《국군부대의 해외파견동의안》이 남조선《국회》에서 통과되고 마침내 1964년 9월 22일 이동외과병원 의료단 140명과 태권도교관 10명으로 구성된 150명의 남조선군이 《지원단》이라는 간판밑에 첫번째로 윁남침략전쟁에 파병되였다.
그러나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한것은 대규모전투병력이였다. 당시 윁남에서의 미국의 작전은 장기전에 말려들면서 《거점확보》로부터 전지역적인 반미유격전에 대한 《수색섬멸작전》으로 바뀌였으며 이로부터 전투병력수를 1965년 6월의 17만 5,000명으로부터 1년후에는 38만 5,300여명으로 늘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당시 미국방장관 맥나마라는 대통령 죤슨에게 제출한 《군사정치적필요조치》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이 패배하지 않으려면 상당수의 병력을 윁남에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 북부윁남의 베트공으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받는것을 방지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때 벌써 미국이 승산없는 전쟁에서 미군병사들 대신 그 방패막이로 남조선군을 내몰 꿍꿍이를 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남조선잡지 《월간조선》 1983.8)
미국은 저들의 강압적인 전투병파병요구가 남조선에서 《국회》를 비롯한 정계,사회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자 《정부》는 물론 여야당대표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는 작전에 나섰으며 1965년 4월 6일에는 대통령특사까지 서울에 직접 파견하여 압력의 도수를 높이였다.
미국은 남조선미국《호상방위조약》에 사전합의없이 남조선주둔 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킬수 있는 규정》을 넣겠다느니, 《무상군사원조》를 《유상군사원조》로 전환하겠다느니, 남조선에 《군사원조》를 주지않겠다느니 하고 협박을 가하였는가 하면 파병의 대가로 15억US$의 《원조》로 남조선군《현대화》를 보장한다는 《브라운각서》라는것을 체결하고 1억 5,000만US$의 《경제원조》를 약속하는 등 미끼도 던졌다.(남조선잡지 《정경문화》 1986.2)
상전의 미군철수협박에 놀란 남조선당국은 제주도를 미군기지로 내주겠으니 제발 미군철수를 중지해달라고 애걸하였으며 몇푼의 돈을 던져주겠다고 하는데 환장이 되여 미국의 전투병력파병요구를 덥석 받아무는데 이르게 되였다.
1965년 2월 남조선당국은 《비전투부대》라는 외피를 씌워 사실상 전투병력으로 구성된 《비둘기부대》를 두번째로 남부윁남에 파병하였으며 그후 1967년 6월까지 5차례에 걸쳐 《청룡부대》,《맹호부대》,《백마부대》 등 모두 5만여명의 전투병력을 윁남전쟁에 투입하였다. 이리하여 150명의 의료 등 《지원단》으로 시작한 남조선군의 윁남전쟁파병은 9년동안에 걸쳐 연 32만여명에 달하는 대규모파병에로 이어졌다.(남조선잡지 《한겨레21》 2003.9.25)
이렇게 내몰린 남조선청장년들에게 차례진것이란 상전의 총알받이와 비참한 죽음뿐이였다. 남조선군이 첫발을 들여놓은 남부윁남의 항구와 비행장들에서 그들을 맞이한것은 음산한 비바람과 흙먼지 그리고 윁남인민들의 증오의 눈길이였다.
미국은 남조선군을 윁남전쟁판에 끌어가자마자 제일 가렬하고 가장 위험한 전선인 남부윁남 서북부지역에 내몰았다. 윁남전쟁에 투입된 미군은 37%만이 전투에 참가하고 나머지는 후방에서 흔들거렸다. 그러나 남조선군은 파병된 병력전체가 항시적으로 죽음의 사지판에 내몰렸다.
특히 윁남침략전쟁에서의 미국의 참패로 한때 약 60만명에 달하였던 미군이 대부분 쫓겨나간 1971년 11월이후에도 남조선군은 현지에 남아서 대리전쟁을 계속해야 했으며 그러한 전쟁머슴노릇은 《빠리협정》의 체결로 전쟁종식이 선포된 다음에도 몇개월이 더 지난 1973년 3월까지 계속되였다. 남조선군은 이처럼 미국의 충실한 전쟁하수인으로서 말갈데 소갈데 다 내몰렸지만 그들이 받은 봉급은 미군이 받는 액수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남부윁남괴뢰군이 받는 액수의 5분의 1밖에 안되였다.
미군은 남조선군이 전개되여있는 지역들에 《베트공》이 은페되여있는 쟝글을 제거한다는 구실로 치명적인 고엽제를 마구 살포하는 만행까지 꺼리낌없이 감행하였다.
남조선은 윁남전쟁에서 4,960명의 사망자와 1만 1,062명의 부상자를 내였다. 윁남전쟁이 끝난이후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파병군인들중 6만 6,000여명은 미군의 고엽제살포로 인한 후유증으로 하여 계속 죽어가거나 평생을 고생하고있으며 그 후과는 후대들에게까지 미치고있다.
윁남전쟁에 끌려간 남조선군은 미국의 희생물로 되였을뿐아니라 미국에 추종하여 윁남인민들에 대한 야수적인 학살만행에도 가담함으로써 피묻은 살인자,범죄자로서의 악명도 떨쳤다.
윁남전쟁과정에 미군의 야수성에 길들여진 남조선군은 윁남의 무고한 주민들을 무참히 살륙하고 재산을 마구 략탈하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윁남의 타이빙시 고자이 마을에는 《미침략원흉들에 대한 분노를 깊이 새긴다. 1966년 2월 26일 미국의 지휘아래 남조선꼭두각시 군대들이 380명의 무고한 량민들을 학살하였다.》고 새겨진 추모비가 세워져 남조선군의 만행을 대를 이어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남조선잡지 《한겨레 21》 2003.2.13)
미국은 이처럼 남조선군을 윁남전쟁터에 내몰아 윁남인민들에게까지 참혹한 고통과 죽음을 강요하였을뿐아니라 파병을 내리먹이면서 한 약속마저 전혀 지키지 않았다.
남조선군의 《현대화》를 실현시켜 주겠다고 했던 《브라운각서》는 파병요청단계에서는 《합의의사록》이였으나 1966년 2월 남조선《정부》가 4차파병을 결정한 이후에는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수정되여 그보다 법적효력이 떨어지는 《공한》형식의 한갖 종이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의 《군사원조》는 그 부담을 남조선당국에 이관하는것으로 끝나고 1억 5,000만US$의 《경제원조》제공약속도 《군사원조이관》으로 남조선당국이 부담한 1억 3,000만US$의 군수물자구입비와 상쇄되였으며 남조선당국이 《전쟁특수》를 노리고 파병조건으로 제기한 남부윁남에 대한 군수품수출은 미국에 의해 기각당하였다.(남조선잡지 《월간조선》 1983.8)
미국은 윁남전쟁파병이 실현되면 철수하지 않을것이라고 철석같이 약속하였던 미제7사단까지도 남조선당국과 사전협의도 없이 빼내갔다.
오죽했으면 남조선잡지 《한겨레21》(2003.2.13)이 가난한 농촌젊은이들이 머나먼 윁남의 쟝글에 간것은 《자유수호나 반공십자군이라는 거창한 명분》때문이 아니라 《돈,그놈의 돈때문》이라고 하면서 남조선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식》의 가련한 신세가 되였다고 폭로하였겠는가.
남조선당국은 윁남전쟁파병으로 10억US$에 달하는 리득을 보았다고 떠들었지만 윁남전쟁기간 입은 인명피해액만도 154억US$나 되였다.(남조선잡지 《신동아》 1970.10)
이것이 바로 수치스러운 윁남전쟁악몽이고 그 진상이다.
윁남전쟁악몽을 다시 몰아오는 이라크파병
윁남침략전쟁때의 악몽은 결코 어제의 일이 아니다. 오늘 미국은 이라크침략전쟁에 대규모적인 남조선군의 파병을 강요함으로써 40년전의 그 악몽을 다시금 몰아오고있다. 세월은 그때로부터 수십년이나 흘렀으나 남조선의 청장년들을 이라크전쟁터에 내몰고있는 미국의 수법은 예나 오늘이나 달라진것이 없다.
《9.11사건》이후 《반테로전》을 구실로 전쟁광기에 들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이어 지난해 3월 20일 드디여 이라크에 대한 침략전쟁의 불을 질렀다. 미국의 이라크전쟁도발은 아무런 명분도 없는 완전히 불법무도한 침략행위로서 세계적인 비난과 규탄을 받았다. 지어 동맹국들까지 외면하는데 바빠난 미국은 이라크침략전쟁에 저들이 마음대로 쥐고 흔들수 있는 남조선군을 우선적으로 끌어들일것을 획책하고 전쟁전부터 협박과 회유 등의 방법으로 파병압력을 가하였다.
미국은 이라크침략전쟁준비를 한창 다그치던 2002년 11월 미국방성 차관을 서울에 보내여 《이라크전쟁지원》을 남조선당국에 내리먹였으며 당시 남조선주재 미국대사였던 하바드와 미국무성 부장관 아미타지를 내세워 남조선《외교통상부장관》,《국방부장관》에게 파병을 로골적으로 강박하였다.
미국의 파병강요는 남조선에 《참여정부》가 들어선후 정치지반이 취약하고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몰린 약점을 리용하여 더욱 파렴치하게 진행되였으며 이라크전쟁도발과 함께 극도에 이르렀다.
미국은 《참여정부》를 협박하기 위해 내부불안을 적극 조장하는 한편 북핵문제를 구실로 《안보위기》를 고취하였으며 북침전쟁각본들인 《신작전계획 5026》,《작전계획 5030》 등을 련이어 발표하여 전쟁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런가하면 신용평가기관들을 내세워 남조선등급을 낮게 평가하는 등으로 경제적압력을 가하여 《참여정부》의 목을 더 조였다. 이라크전쟁전야에는 미국 대통령 부쉬와 부대통령 체이니가 직접 남조선집권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라크전쟁이 개시되면 남조선이 선참으로 물적,인적지원을 할데 대해 오금을 박았다.
미국의 이러한 강압에 굴복한 남조선당국은 이라크전쟁개시를 알리는 미국의 공식성명이 나오자마자 불과 1시간만에 《대국민담화》라는것을 발표하여 맨선참으로 지지해나섰으며 《국익》이요 뭐요 하면서 공병단과 야전의무부대로 구성된 남조선군의 이라크파병을 서둘러 결정하는 추태를 연출하였다. 남조선《국회》는 이라크전쟁이 개시되여 보름도 안되여 《파병동의안》을 신속히 통과시켰다.
그에 따라 윁남파병때 비전투부대부터 보냈던것처럼 이라크파병도 여론이 두려워 《선발대》라는 이름밑에 먼저 600여명의 공병대대병력과 100명이상의 의료단 등으로 구성된 《지원단》을 《비전투부대》의 외피를 씌워 파견하였다.
미국은 그것으로도 그치지 않고 이라크전쟁이 이라크항쟁세력들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쳐 장기화되여 많은 인적,물적손실을 입게 되자 윁남전쟁때와 마찬가지로 남조선당국에 대규모의 전투병추가파병을 강요하였다.
미국의 공식통계와 반전단체들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미국은 이라크전쟁이 시작된이래 많은 인적,물적손실을 입어 얼마안되는 사이에 1만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1,600억US$의 막대한 전쟁비용을 소모하였다.
미국민주당 상원의원 에드워드 무어 케네디를 비롯한 미지배층은 미국이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하면서 이라크전쟁이 《제2의 윁남전쟁》으로 되였으며 이라크는 《부쉬의 윁남》이 되였다고 아우성을 쳤다. 미국대통령 부쉬도 최근 《전쟁을 이길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실패를 자인하는데 이르렀다.
급해맞은 미국은 당시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하바드 등을 내세워 《우리가 원하는것은 전투병파병》이라고 하면서 남조선당국을 련속 찔러댔는가 하면 미국방장관 람스펠드를 남조선에 급파하여 전투병력파병을 강박하였다.(남조선잡지《한겨레21》 2003.11.27)
미국이 전투병추가파병을 위해 남조선을 얼마나 닥달질했는가 하는것은 부쉬가 남조선집권자에게 무려 8차례나 전화를 걸어 파병압력을 가한 사실과 지난해 9월이후 단 몇달사이에 부대통령과 백악관 안보보좌관, 국방장관과 부차관보, 전 국방장관, 합동참모본부 의장, 국내안전성장관, 국무성 차관과 차관보.부차관보 등이 뻔질나게 남조선을 들락날락하면서 강박한 사실 등에서 그대로 나타나고있다. 나중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까지 워싱톤에 불러들여 전투병추가파병을 적극 추진하도록 내몰았다.
남조선《국회》에서 《이라크추가파병동의안》이 가결되던 2004년 2월 13일을 전후하여서는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 관계자들까지 서울에 날아와 《국방부》와 《통일부》,《외교통상부》,《재정경제부》 등의 요직인물들과 련이어 만나 이라크파병문제와 신용등급조정문제를 련결시켜 압박을 가하였다.(남조선방송 《KBS》 2004.2.12, 2.13)
결국 미국의 강압에 못이겨 이라크파병을 반대한 일부 야당들까지 파병에 찬성하거나 묵인하는 쪽으로 돌아섬으로써 《국회》에서의 《추가파병동의안》은 무난히 통과되게 되였다.
미국은 《추가파병동의안》의 《국회》통과가 남조선 각계층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고 남조선당국이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파병시일을 늦잡는 기미를 보이게 되자 남조선강점 미군 3,600여명을 이라크에 이동배치하며 미군재배치와 《감축》을 앞당겨 실시하겠다는 등으로 최후통첩을 들이대는 협박놀음도 벌리였다.
남조선당국은 미국의 각방면에 걸친 압력에 끝내 굴복하여 《특수전사령부》병력 800명을 비롯한 전투병력 3,000여명을 《자이툰부대》라는 이름을 달아 이라크에 추가파병하기로 하고 올해 8월 3일 그 선발대 900명을 이라크로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국은 지금 이라크로 파병된 남조선군의 규모와 전투준비상태, 장비가 미흡하다느니, 적어도 1만명은 있어야 한다느니 하면서 남조선당국에 파병인원과 장비를 늘일것을 계속 강박하고있다. 남조선군이 파견된 지역을 보아도 이라크의 북부 아르빌로서 미군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는곳이다.
이 모든 사실은 남조선군의 이라크파병이 미국이 수십년전 윁남전쟁때 써먹던 그 수법, 그 각본 그대로 강행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지금 이라크의 반미항쟁세력은 미국에 추종하여 이라크인민들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돌격대로 나서면서 전투병력까지 파견한 남조선당국을 규탄하며 복수와 응징을 선언하고있다.
지난 6월 이라크의 반미항쟁세력들에게 인질로 잡혀 참수된 《김선일사건》은 그 비근한 실례이다. 이라크의 반미항쟁세력은 남조선군의 파병철회를 요구하였지만 남조선당국이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비극적인 희생이 초래되게 되였다.
《김선일사건》은 이라크에 파병된 남조선군의 앞날을 예고해주는 전주곡이다. 이제 수십,수백,수천의 《김선일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구도 담보할수 없다.
지금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에 염전기운과 공포증이 만연하고 자식들을 돌려보내라는 가족들의 항의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나오고있다.남조선군대안에서는 이라크파병 지망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파병을 신청했던 사람들까지 철회하여 당국이 수당금을 더 올리는 소동을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남조선에서 이라크파병반대기운은 날로 높아가고있다.남조선당국은 여론의 눈총이 두려워 얼마전에 있은 이라크파병환송행사도 비공개로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이라크파병으로 그 무슨 《혜택》이라도 입을것처럼 광고하고있지만 그것은 허황한 망상이다.
미국은 이라크에 파병만 하면 핵협상도 성의있게 추진하고 조선반도에서 전쟁도 일으키지 않을것처럼 남조선당국을 유혹하였지만 수천명의 남조선군 전투병력이 파견되고있는 오늘 미국의 반공화국핵소동은 약화된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되고 악랄해져 전쟁위험성은 한층 짙어가고있다.
남조선당국은 이라크파병으로 미국에 조선반도의 《평화》를 구걸하려 하였지만 미국은 여전히 《군사적선택을 비롯하여 모든 방안이 탁상우에 놓여있다》고 떠들면서 조선반도핵문제를 힘으로 해결할 기도를 더욱더 드러내고있으며 이라크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작전계획 5027-04》와 같은 극히 위험천만한 전쟁계획을 새로 작성하고 《전력공백》을 구실로 조선반도에서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며 《을지 포커스 렌즈》와 같은 북침전쟁연습을 더 빈번히 벌리고있다.
전세계적범위에서 침략전쟁계획을 완성하기 위한 미군무력 재배치의 일환으로 남조선강점 미군의 전면개편과 이동배치놀음이 더욱 다그쳐지고있으며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압력도 완화되기는커녕 최근에는 개성공업지구건설에 들어가는 물자와 자금까지 통제하고있는 판이다.
남조선이 이라크파병으로 얻을것은 역시 윁남전쟁때처럼 수치와 개죽음뿐이다.
제반사실은 미국의 이라크추가파병요구에 순종하면 할수록 차례질것은 윁남전쟁때의 비참한 결과의 재연뿐이라는것을 보여준다.
남조선의 윁남파병참가자들은 《윁남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몸도 망가지고 정신도 황페화되였다. 지금도 정신적충격과 생활고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고있다. 심지어 자살하는 동료들도 있다. 이라크에 파병될 우리 후배들도 우리가 겪은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을것이다.》라고 개탄하였다.(남조선잡지《한겨레 21》 2004.7.8)
세계적으로 규탄배격받고있는 명분없는 전쟁에 남조선이 말려들어 미국의 대리전쟁을 수행하는 희생물로 된다는것은 민족의 존엄이 허용하지 않는 일이다. 지금 이라크에 병력을 파견했던 나라들도 련이어 철수시키고있는데 남조선이 이라크파병주둔기간연장과 전투병력추가파병을 계속 강행하는것은 미국의 식민지하수인으로서의 처지를 더욱 드러낼뿐이다.
남조선당국은 남의 나라에 대한 미국의 침략전쟁에 가담함으로써 앞으로 미국이 동족을 치는 북침전쟁마당에 동족을 끌어넣을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주는 반민족적인 범죄까지 저질렀다.
남조선당국은 제손으로 화를 불러들이고 제눈을 찌르는 우둔하고 미련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조선인민들은 윁남전쟁때의 악몽을 잊지 말고 반이라크파병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려야 할것이다.
민족의 수치인 남조선군의 이라크파병은 무조건 중지되여야 한다.
주체93(2004)년 9월 17일
평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