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9월 27일발 조선중앙통신)고구려벽화무덤들의 세계문화유산등록은 날이 갈수록 북과 남,해외의 전체 조선인민에게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있다.
B.C.277년부터 A.D.668년까지 근 천년동안 존재한 고구려는 지난날 조선력사에서 가장 강대하였던 나라이다.
고대조선족의 후예들에 의하여 조선에서 제일 먼저 봉건국가로 형성된 고구려는 광대한 령역을 차지하고 선진적인 경제와 문화를 창조하였다.
5세기말-6세기초에 고구려의 령역은 동서 6,000리, 남북 4,000리로서 백제,신라,가야를 다 합친것의 근 10배나 되였다.
고구려가 이처럼 강대한 나라로 될수 있은 요인은 인민들의 높은 애국심과 그에 기초한 상무적생활기풍에 바탕을 두고있다.
고구려건국설화에 의하면 시조인 동명왕은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았기때문에 《주몽》으로 불리웠다.
당시 어느 마을에나 경당이 있어 결혼전 청년들이 모여 글도 읽고 무술도 련마하였다.
사람을 평가하고 등용하는데서도 용감성과 무술을 중요하게 보았다.
이로부터 고구려사람들은 높은 민족적자부심과 씩씩한 기상을 지니고있었으며 사대와 굴종을 모르고 수십,수백만의 침략대군과 맞서 근 천년동안이나 민족의 영예와 자주권을 빛나게 고수할수 있었다.
기원전후 몇세기동안에 봉건적제관계가 공고발전되고 제반 봉건제도가 정연하게 서게 됨으로써 고구려는 뒤늦게 선 봉건국가들의 국가사회체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문화분야에서도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여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들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선진문화를 자랑하는 문명국으로 되였다.
세계적인 걸작으로 알려진 고구려무덤의 벽화에 그려진 복식그림은 고구려의 복식제도가 민족의상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조선사람의 독특한 온돌생활방식도 이시기에 더 한층 발전하였고 민족고유의 건축양식은 고구려의 높은 건축술에 기초하여 자기발전의 길에 확고히 들어서게 되였다.
고구려의 문화는 해외에까지 널리 퍼졌는데 특히 일본의 고대문화형성과 발전에서 거대한 역할을 놀았다.
고구려의 력사는 앞으로도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전해질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