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의 의지로 농업전선을 지키는 선군시대 농민의 조국수호정신
재령군 김제원협동농장 제6작업반 반장 김대성동무
(평양 10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7일부 《로동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높이 내세워주신 4명의 선군시대 숨은 공로자들중의 한 사람인 황해남도 재령군 김제원협동농장 제6작업반 반장 김대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선군시대는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투쟁하고 전진하며 승리하는 영웅적인 시대이다. 이 성스러운 시대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인민군대를 닮아 혁명적군인정신으로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시대의 영웅들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불타는 우리 당의 충신들이며 견결한 혁명가,열렬한 애국자들이며 기적과 혁신의 창조자들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선군시대 숨은 영웅,숨은 공로자로 높이 내세워주신 재령군 김제원협동농장 제6작업반 반장 김대성동무는 쌀로써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며 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하고있는 선군시대 애국농민의 전형이다.
김대성동무는 지난 20여년간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고향땅에 순결한 량심과 뜨거운 애국의 마음을 바쳐왔다. 특히 그는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에 반제군사전선의 후방을 지켜간다는 높은 자각을 안고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과 마음도 숨결도 같이하며 포전에 사생결단의 의지로 불타는 마음을 심어왔다. 우리는 김대성동무의 소행을 통하여 선군시대 농민들이 어떤 신념과 의지를 지니고 어떻게 살며 투쟁해나가야 하는가를 가슴깊이 새기게 된다.
땅의 참된 주인이 되자
주체67(1978)년 여름 김제원중학교를 졸업한 김대성동무는 고향땅에 뿌리내릴 굳은 결심을 안고 학급동무들과 함께 농장에 진출하였다. 희망도 포부도 컸던 그가 농장에 진출한것은 단순히 고향에 대한 애착심때문만이 아니였다. 광복후 몸소 이곳을 찾으시여 농사를 잘 지을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며 농민들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높은 뜻을 대를 이어 꽃피워갈 불타는 지향이 그로 하여금 농장에 뿌리를 내리게 하였던것이다. 김대성동무와 청년분조원들은 다진 결심대로 고향땅에 청춘의 열정을 다 바쳐나갔다.
그 이듬해 어느날 여느때보다 하루일을 일찍 끝낸 김대성동무와 청년분조원들은 새로 나온 예술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즐겁게 웃고 떠들며 문화회관으로 향하였다. 그들이 자기들이 맡은 포전곁을 지나려 할 때였다. 김대성동무는 문득 포전머리에 엄한 기색을 한 아버지가 서있는것을 보았다. 김대성동무는 청년분조원들을 먼저 보내고 아버지앞으로 다가갔다. 당시 제1작업반 당세포비서로 일하던 그의 아버지 김근찬은 청년분조에 자주 나와 농사일을 착실히 배우도록 차근차근 가르쳐주군 하였다. 아들이 가까이에 오자 김근찬은 등뒤로 가져 갔던 손을 아들앞에 쑥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한줌이 될가말가한 김이 쥐여져있었다.
《이게 너희들의 일본새냐?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야 사로청초급단체위원장이 아니냐? 날 따라오너라.》
김근찬은 아들을 어느 한 포전으로 이끌었다. 그 포전은 방금 김대성동무와 청년분조원들이 영화관람이 늦어질세라 바삐 일손을 놀린 포전이였다. 김근찬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나서 논판에 성큼 들어서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따라 들어서라는 말없는 요구였다. 그들부자는 한동안 말없이 김을 매나갔다. 고요한 벌판에 우줄우줄 자라는 벼포기사이를 헤치는 그들의 발자욱소리만이 들리였다. 이윽고 그 포전의 김을 말끔히 매고난 그들은 풀벌레소리 유정히 들려오는 뚝우에 나란히 앉았다.
《얼마나 좋은 고장이냐!》
김근찬은 소중히 두손에 흙을 그러쥐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네는 광복전부터 대대로 이 땅에서 살아왔지만 제 땅 한뙈기 없어 밥대신 피눈물을 삼키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라가 광복되여서야 비로소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땅을 분여받고 사람대접을 받으며 마음껏 농사를 지을수 있었다. 그래서 <아 장군님 주신 땅>이라고 노래하며 늘 논벌에서 살다싶이 하며 일하였다. 미국놈들이 또다시 우리 인민을 노예로 만들려고 덤벼들었을 때 목숨보다 귀중한 장군님 주신 땅을 지켜 고향사람들은 피흘리며 싸웠다. 김제원농민도 바로 그 길에 자기의 목숨을 서슴없이 바친거다. 진짜로 고향의 주인이 되자면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며 선렬들의 피가 스민 이 땅의 귀중함을 잘 알고 자기 마음을 바칠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대성동무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
땅의 주인,지금까지 그는 이 말을 많이 해왔다. 하다면 내가 과연 주인구실을 지금까지 똑바로 해왔던가.
땅의 주인이라는 이름은 땅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하여,고향땅에 뿌리를 내렸다고 하여 지니게 되는것이 아니다. 그 이름은 땅에 대한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시고 나라의 쌀독을 맡겨주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늘같은 은덕을 한시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누가 보건말건 포전에 순결한 량심을 바쳐가는 농민들만이 지닐수 있는 이름인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에게는 자기가 다루는 땅이 새로운 의미로 안겨왔다. 어제까지 범상하게 보아왔던 땅 한뙈기한뙈기가 자기 살점처럼 여겨졌고 그앞에 설 때면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에 쌀로써 보답하기 위하여 순결한 량심과 헌신의 땀을 바쳐온 전 세대들이 자기들에게 하는 절절한 부탁이 가슴을 치며 안겨오는것이였다.
그후 김대성동무와 청년분조원들은 새로운 결심을 다지고 직심스럽게 일하였다. 자기들이 맡은 포전을 기름지게 걸구기 위해 땀을 아끼지 않았고 모든 포전을 꽃밭처럼 가꾸어나갔다. 사람들은 고향땅을 그처럼 귀중히 여기며 진심을 바쳐가는 그들을 보며 우리 당이 키운 새 세대들이 과연 다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달이 가고 해가 바뀌였다. 그 나날에 김대성동무도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당의 크나큰 믿음에 의하여 그는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 농장에서는 고향의 믿음직한 주인으로 자란 그에게 분조장사업을 맡겨주었다.
당시 그와 한분조에서 일한 농장원들은 김대성동무가 《진심+정열=열매》라는 글발을 적은 수첩을 늘 품에 지니고 포전에서 밤을 새워가며 일하던 때의 일을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다.
《진심+정열=열매》
비록 소박한 표현이였으나 거기에는 그의 깨끗하고 뜨거운 마음이 비껴있었다. 그가 수첩에 적은 진심이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티없이 순결한 마음으로 받들어갈 깨끗한 량심이였으며 정열이란 한알의 쌀이라도 더 생산하여 나라의 쌀독을 채우려는 불타는 애국의 마음이였다.
농장벌에 바쳐가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깨끗한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해 봄 모내기가 한창이던 어느날 하루일을 마친 분조원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대성동무는 로력일평가에 앞서 자기비판부터 하겠다고 하는것이였다. 농장원들은 어리둥절해졌다. 농장에서 손꼽힐 정도로 일 잘하는 분조장에게 비판할 정도로 잘못이 있다니? 모두가 숨을 죽이고있는데 김대성동무가 말하였다.
《난 오늘 모내기를 한 포전에 빈 포기가 생긴것을 알면서도 그냥 일을 내밀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뒤따라 분조원들이 그걸 메꾸면 된다고 자기위안을 하였습니다. 이건 당을 받드는 제 마음에 빈 구석이 생겼다는것을 말해줍니다.》
농장원들은 머리를 숙이였다. 말그대로 전투인 모내기를 할 때 빈 포기가 생기는것은 있을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분조장이 너무 심각해서 그러지 않는가.
그러는데 김대성동무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한알의 쌀이라도 더 많이 생산하여 나라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겠다고 맹세한 제가 이렇게 주인답지 못하게 행동했으니 오늘 동무들앞에 분조장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오늘 저의 로력일점수는 0점입니다.》
분조장의 말을 들으며 농장원들은 김대성동무가 땅을 다루는 긍지를 못가지고 포전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사람,주인다운 자각이 없이 일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왜 그토록 참지 못해하였는가를 새롭게 느끼면서 분조장처럼 티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영광의 땅을 가꾸어갈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그후부터 그들의 일본새는 나날이 달라졌다. 그들은 포전을 제 살붙이처럼 여기고 알심있게 가꾸어나갔다. 그리고 소출이 적어 사람들이 머리를 젓던 포전에 거름을 듬뿍듬뿍 내여 땅을 걸구었다. 그의 분조는 농장에서 손꼽히는 분조로 되였다. 사람들은 그의 분조를 《실농군분조》라고 불렀다. 땅은 속이지 못한다. 김대성동무와 분조원들이 가꾼 포전에는 알찬 열매가 실리였다. 그것은 땅의 참된 주인된 자각과 애국의 열정으로 불타는 마음을 자양분으로 받아들인 대지가 안아올린 소중한 열매였다.
《우리는 <총알>을 생산하는 전투원이다》
선군시대의 참다운 일군은 인민군대를 닮은 선군형의 일군이다. 시련과 난관앞에 주저앉지 않고 혁명적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실적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을 받드는 사람이 바로 선군형의 일군이다.
김대성동무가 작업반장으로 일하던 주체85(1996)년 초봄이였다. 저녁해가 진지도 오래였지만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포전을 떠날줄 몰랐다. 미제의 악랄한 고립압살책동과 련이은 자연재해로 하여 그의 작업반에도 애로와 난관이 적지 않았다. 비료가 제때에 공급되지 못하는데다가 긴장한 전기사정으로 양수기가 자주 멎어 포전에 물을 충분히 댈수 없었다. 논농사는 물농사라고 하였는데 물이 부족하니 농사에 주는 영향은 참으로 컸다.
어떻게 할것인가. 손으로 물을 퍼서 논에 댈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전기가 올 때까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수는 없었다.
그는 생각하던 끝에 오랜 농사군들인 마을의 늙은이들과 무릎을 마주하였다. 그러나 신통한 방도가 서지 않았다. 얼굴이 꺼멓게 죽어 돌아서는 작업반장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한 늙은이가 혼자소리처럼 《허참,재령강을 옆에 끼고도 물고생을 하다니.》하는 말이 등뒤에서 들려왔다. 그 말에 김대성동무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재령강은 작업반을 가까이 끼고 흐르고있었다.
인민군대의 투쟁기풍을 따라배운다고 하면서 내가 왜 자체의 힘으로 재령강의 물을 끌어올 생각을 못했을가.
그후 그는 어떻게 하면 전기를 쓰지 않고도 재령강물을 포전에 대겠는가 하는 생각에 밤잠을 잊고 골몰하였다.
재령강은 작업반의 포전보다 수위가 높기때문에 과학적으로 안전성만 담보되면 자연흐름식으로 얼마든지 논에 물을 댈수 있을것 같았다. 그는 해당 일군들과 마주앉아 토론을 거듭한 끝에 자기의 생각을 초급일군들앞에 터놓았다. 초급일군들은 작업반장의 대담한 발기에 놀랐다. 한 초급일군이 조심스럽게 《이 어려운 때에 우리 힘만으로 그 공사를 해낼수 있겠는지…》라고 하며 말끝을 흐리였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농사일을 하는 때에 이제 굴을 뚫고 물길을 째는 공사를 하자면 모두가 말그대로 결사의 의지를 가지고 떨쳐나서서 두몫세몫씩 해야 할것이였다. 그렇지만 기어이 해내야 하였다. 우리 인민은 지금 자주적인민으로 되느냐,아니면 또다시 식민지노예가 되느냐 하는 판가리결사전을 벌리고있다. 이 결사전에서 이기자면 우리가 쌀을 많이 생산하여야 한다. 김대성동무는 확신성있게 말하였다.
《동무들도 방송을 통하여 인민군군인들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눈물겹게 듣지 않았습니까. 지금 군인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높은 뜻을 받들고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우리가 다 맡아하자고 하면서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투쟁하고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지켜본다고 생각합시다. 그러면 우는 소리가 나올수 있겠습니까. 난 이 공사를 봄씨붙임전으로 와닥닥 끝낼 결심입니다.》
작업반원들은 그때 그의 말을 들으며 이 공사가 단순히 물길을 내기 위한 공사가 아니라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며 그후 모두가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발을 들고 앞장에 서는것이 인민군대지휘관들을 닮은 일군의 자세이다. 김대성동무는 굴을 뚫고 많은 량의 흙을 처리해야 하는 어려운 공사의 앞장에서 대중을 힘있게 이끌었다. 전투장에는 붉은기가 펄펄 나붓기였고 혁명가요,전시가요가 작업반원들의 힘을 돋구어주었다. 밤이면 홰불이 타올랐다.
어느날 청년들과 함께 굴뚫기작업에 여념이 없던 김대성동무가 굴밖으로 나와 물길을 내는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작업반원들이 말없이 일손을 놀리고있었다. 한눈에도 지친 기색이 알리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리다나니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아픈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있던 김대성동무는 이윽하여 삽을 틀어쥐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
결심 품고 싸워가는 우리 혁명군
작업반원들은 놀라운 눈길로 작업반장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말수더구가 그리도 적은 작업반장이 뜻밖에도 스스로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였다. 구절마다 어버이수령님을 따라 항일의 혈전만리,눈보라 수십만리길을 헤쳐온 혁명선렬들의 불굴의 투쟁정신이 비껴있는 노래는 피방울마냥 작업반원들의 가슴마다에 스며드는듯 하였다. 작업반원들모두가 새 힘을 얻고 일손을 다그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천신만고 모두다 달게 여기며
피와 땀을 흘린자가 그 얼마냐
…
그들은 이렇게 일하였다. 김대성동무와 작업반원들의 이악한 노력과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몇달이 걸려야 한다던 물길공사는 짧은 기간에 끝났다. 농장원들의 땀과 노력이 슴배인 수천m의 물길로 재령강물이 포전을 적시며 풍성히 흘러들던 날 마을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한 로인은 김대성동무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애국자란 저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테지…》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농민의 본분을 다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 이것이 없소,저것이 부족하오 하면서 우는 소리를 하는것은 선군시대 농민이라고 말할수 없다. 사생결단의 의지로 사회주의수호전을 벌리고있는 오늘 누구나 간고분투의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난관을 뚫고나가야 한다.
김대성동무는 식량을 위한 투쟁을 조국을 위한 투쟁,전선의 승리를 위한 투쟁으로 여기고 식량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린 전화의 나날의 농민들의 불굴의 투쟁정신으로 농사를 지었다.
농장원으로서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길은 농사를 잘 짓는것이라는것을 깊이 자각하고있는 그는 알곡증산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작업반에서 질좋은 거름을 더 많이 생산할 높은 목표를 내걸고 풀베기전투를 할 때였다. 어느날 김대성동무는 안해와 함께 이른새벽에 재령강쪽으로 나갔다. 강기슭에는 풀이 한벌 쭉 깔려있었다. 그들은 쉬임없이 풀을 베여 단으로 묶어가지고 뚝에 올려놓군 하였다. 그러다나니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둘이 잠간 마주앉아 점심밥을 먹은 후에도 내처 풀을 베였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 무렵에 안해가 오늘은 이만하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그러자 김대성동무는 머리를 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우리는 오늘 전투를 하러 나왔지 바람이나 쏘이자고 나오지 않았소. 저 뚝우에 피흘리며 미국놈들과 싸우는 전사들이 있다고 생각해보라구. 전사들은 지금 탄약이 오길 애타게 기다리고있소. 당신이 늘 외우던 남강마을녀성들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했겠소?》
그 말에 머리를 번쩍 든 김대성동무의 안해는 다시 일어나 풀단을 안았다.
이렇게 그들은 해마다 집에서 150t씩의 질좋은 거름을 생산하여 포전에 실어냈다.
김대성동무의 가정에는 돼지,오리,게사니,토끼 등 없는 집짐승이 없다. 그들이 이렇게 집짐승을 많이 기르는데는 고기문제를 자체로 풀자는데도 있지만 보다는 거름을 많이 생산하자는데 있다. 김대성동무와 그의 안해는 광복후 이곳을 찾으시여 집짐승을 잘 길러 거름을 많이 내야 한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현지교시를 심장에 새기고 농사일을 하느라 몹시 바빴지만 집짐승을 직심스레 길러 해마다 거름더미를 높이 쌓아올리군 하였다. 그리하여 당의 방침대로 두벌농사도 힘있게 내밀게 되였다.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선군시대 농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김대성동무의 투쟁기풍에서 사람들이 뜨겁게 받아안게 되는것은 결사관철의 정신,사생결단의 의지이다.
김대성동무는 작업반장사업을 시작했을 때 우선 필지별로 토양분석을 구체적으로 하였다. 그가 맡은 작업반의 포전들은 오랜 세월 부쳐온 땅이여서 지력을 높이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김대성동무는 매 포전의 토양성분에 맞게 거름을 내는것과 함께 유기질비료성분이 많은 강바닥의 감탕흙을 포전에 내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어느해 1월 감탕흙을 포전에 내기 위한 전투를 벌릴 때였다. 작업반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감탕흙을 날라다 포전에 내는 일은 몹시 힘겨웠다. 뜨락또르를 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기름이 아까와 그럴수는 없었다. 게다가 날씨는 살을 에일듯이 맵짰다. 전날에 파놓았던 감탕흙이 죄다 얼어붙었다. 그러나 김대성동무는 조건이 불리하다고 하여 일을 뒤로 미루는 법을 몰랐다. 그는 작업반원들과 함께 질통을 지고 쉬임없이 감탕흙을 포전으로 져날랐다. 어지간히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추위는 점점 더 기승을 부리였다. 찬바람이 뼈까지 얼구는것만 같았다. 이때 농장원들의 질통에 감탕흙을 담아주던 한 젊은 농장원이 허리를 펴며 말하였다.
《해마다 하는 일인데 정말 농사에 보탬이 될런지?》
김대성동무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전쟁로병의 아들인 그는 어려운 일이 제기되면 몸을 아끼지 않는 농장원이였다. 해종일 허리를 펼새없이 일하자니 그도 이젠 맥이 진했을것이다. 하지만 김대성동무는 문제를 그렇게만 보지 않았다. 그는 그 농장원에게 다가가 질통을 들이대며 말하였다.
《오늘 동무를 보니 지난해 가을 벼 한이삭을 들고 총알같이 잘 여물었다고 기뻐하던 일이 생각나누만. 옳은 말이지.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총알>을 생산할 준비를 하고있다고 말할수 있소. 우리가 나르는 이 흙은 그 <총알>을 만드는데 쓰일 화약이라고 할가. 미국놈들이 왜 지난 전쟁시기 우리 도에 기여들어 악착한 만행을 했는가. 그 목적의 하나가 바로 이 <총알>이 많이 생산되는것이 두려워 그런거라고 나는 생각하오. 오늘도 우리는 바로 그 가증스러운 원쑤들과 총부리를 맞대고있소. 그러니 우리가 이 <총알>을 많이 생산해야 미국놈들과 싸워이길수 있는것이 아니겠소.》
이렇게 말하고난 김대성동무는 큼직한 흙덩어리들을 가리키며 어서 담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머리를 숙이고 작업반장의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그 농장원은 다짜고짜로 김대성동무에게서 질통을 벗기며 말하였다.
《작업반장동무,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버지의 피가 스민 이 땅을 끝까지 지키자면 불발을 모르는 <총알>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것을 오늘 다시금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오늘 작업반이 모든 면에서 도적으로도 손꼽히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김대성동무는 이렇게 말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일하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한알한알의 쌀에 애국의 량심이 비끼게
조국수호의 결사전을 벌리고있는 오늘 우리 농민들은 자신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하며 생산해내는 한알한알의 쌀에 애국의 량심이 비끼게 해야 한다.
김제원협동농장 3대혁명붉은기 제6작업반을 두고 사람들은 《자그마한 사심도 없는 집단》,《애국심으로 뭉친 집단》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김대성동무가 작업반장사업을 시작하던 10여년전까지만 해도 농장원들의 지향은 하나같지 않았다. 농사일에 열성이 부족하고 일터에 대한 애착심이 없어하는 농장원들이 일부 있었다. 김대성동무는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였다.
작업반을 하나의 마음과 지향으로 단합시키자면 무엇부터 해야 할것인가.
그는 일을 하면서도 자리에 누워서도 이런 생각을 거듭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농장원이 김대성동무를 찾아왔다.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것이였다. 리유인즉 농사일이 마음에 붙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김대성동무는 가슴이 아팠다.
깊은 생각을 안고 포전길을 걷던 그는 흙 한줌을 집어들었다. 갓 물을 댔는지 흙은 축축해났다. 그 흙을 어루쓸며 포전을 바라보던 그의 눈앞에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이다!》라는 구호의 글발이 안겨왔다. 순간 그의 가슴은 불같이 달아올랐다. 눈앞에 《조국의 고지는 나의 고지다!》라고 웨치며 조국의 한치한치 땅을 피로써 지켜싸운 영웅전사들의 모습이 뜨겁게 안겨왔던것이다.
농장포전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빛내가시는 목숨보다 귀중한 사회주의조국의 한부분이다. 농장의 포전을 나의 포전으로 여기고 가꾸어간다는것은 전화의 그날의 영웅전사들처럼 조국의 운명과 자기 운명을 하나로 이어놓고 결사의 각오로 포전을 지켜가며 오로지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작업반원들의 가슴에 자신과 가정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하는 애국의 마음을 깊이 심어주자. 그럴 때 집단의 단합도 이룩할수 있고 농사도 잘 지을수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농사를 지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에 더욱 깊어졌다. 김대성동무는 늘 분조들에 내려가 살다싶이 하면서 농장원들이 누가 보건말건,알아주건말건 포전에 조국을 위하는 깨끗한 마음을 바치며 한알한알의 쌀에 애국의 량심이 비끼게 일해가도록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주었다.
그러던 어느해 봄 모내기전투때였다. 모내기를 당장 해야겠는데 모내는기계운전공이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시간이 흘러서야 그가 숨이 턱에 닿아 뛰여왔다. 그가 배를 곯고있는 가족을 위해 식량을 얻으러 갔댔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김대성동무는 그렇다고 그를 어루만질수는 없었다.
《한해농사의 성과를 좌우하는 이 책임적인 시각에 모내는기계운전공이 초소를 비우다니,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흘려 싸운 전 세대들이 동무의 행동을 본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하겠소?》
그의 말에 모내는기계운전공은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운전공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였다. 웬일인지 같은 분조에서 일하는 안해가 눈물이 글썽해서 남편을 바라보는것이였다. 그의 손에는 그리 크지 않은 두개의 자루가 쥐여져있었다.
작업반장네 집에서 보내온 쌀과 강냉이였다.
《그걸 가져온 딸에게 뒤쫓아가 물으니 반장이 쓰러지면 안된다고 하면서 자기 할머니가 얼마간 보태준거랍니다. 작업반장네는 저녁에도 풀죽을 먹는다는데…》
그는 격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어 되돌아 작업반장의 집으로 달리였다. 등잔불빛이 창문가에 가느다랗게 비쳐나오는 집안에서는 저녁식사를 하는지 수저를 놀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이윽고 작업반장이 아들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은혁아,풀죽이라고 탓하지 말고 많이 들어라. 오늘은 비록 어렵지만 이제 꼭 옛말할 때가 올게다. 지금도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찬눈비를 맞으시며 험한 전선길을 걷고계신단다. 그러니 아버지,어머니가 농사를 더 잘해 아버지장군님을 받들어야 할게 아니냐.》
모내는기계운전공은 가슴속에 뜨거운것이 꽉 차올랐다. 그처럼 자각이 없이 일해왔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한없이 저주스러웠다. 그는 마음속으로 되뇌이였다.
(반장동무,내 그 마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고향땅을 꽃피우는 길에 나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는 빈말을 하지 않았다. 그후 그는 맡은 일을 잘하여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선물도 받아안게 되였다. 이런 이야기는 맡은 일을 잘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표창장을 받아안고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분조장 림광국동무와 장군님의 은정어린 선물을 받아안은 양화실,리규현동무들에게서도 들을수 있다.
나라를 받드는 김대성동무의 량심이 얼마나 깨끗한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어려웠던 고난의 시기의 어느해 가을이였다. 저녁무렵이 되여 집으로 들어선 김대성동무는 안해로부터 한 분조장이 찾아와 어려운 때에 한해농사를 짓느라 누구보다 수고많은 작업반장의 생일에 흰쌀밥 한그릇 대접하라고 하며 먼저 탈곡한 분조의 쌀을 얼마간 보내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김대성동무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고마운 일이였다. 하지만 그 쌀에 손을 댈수 없었다. 그는 안해를 시켜 그 쌀을 작업반의 창고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 분조장이 찾아와 몹시 섭섭해 하였다.
《후에 분배몫에서 덜기로 농장과 다 토론이 되여 한 일인데 농장원들의 성의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우기 반장동무야 전달에도 몹시 앓는 몸으로 주사를 맞으며 포전에 나와 일하지 않았습니까.》
무뚝뚝해보이는 분조장이 진정을 담아 하는 말에 김대성동무는 조용히 대답하였다.
《분조장동무. 지금 온 나라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기대를 돌리고 발전소를 일떠세우고있지 않습니까. 우리 장군님께서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푸시기 위해 험한 길을 걷고계시는데 쌀을 생산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낟알에 먼저 손을 대면 되겠습니까? 이제 탈곡을 빨리 끝내고 나라의 쌀독을 채운 다음 나도 마음편히 밥을 지어먹겠습니다.》
분조장은 이윽토록 작업반장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무한히 돋보이는 사람!어쩌면 사람의 마음이 저렇게도 아름다울가!)
김대성동무는 동지우애심이 높고 인정미가 뜨거운 참된 인간이다.
수십년을 묵묵히 농사일에 바쳐온 한 농장원의 60돐 생일상을 차려주고 새 옷감도 안겨준 이야기며 전사한 아들의 몫까지 합쳐 농사일을 성의껏 도와주군 하는 마을의 한 로인부부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고있는 사실 그리고 어느 한 분조의 처녀가 결혼식을 하게 되였을 때 안해에게 주려고 마련했던 새 옷감을 서슴없이 안겨준 이야기,농장원들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 바친 그의 마음은 또 얼마나 뜨거운가. 농사일의 그 바쁜 속에서도 작업반원들과 함께 빈땅을 일구어 해마다 수십t의 남새를 생산하여 세대마다 골고루 나누어준 이야기며 농장원들이 고기문제를 자체로 풀도록 하기 위해 먼길을 걸으며 집짐승종자도 마련해온 이야기…
참으로 마을의 그 어디에나 작업반원들을 위하는 그의 뜨거운 마음과 지성이 깃들어있지 않은 곳이란 없다. 그래서 농장원들은 그를 두고 《우리 작업반장》,《우리 대의원》(그는 도인민회의 대의원이다.)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따르고있는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자신보다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을 먼저 생각하는 김대성동무의 티없이 깨끗한 애국충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더하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의 어느해였다. 어느날 리당위원회에 들리였던 김대성동무는 일군으로부터 이제 얼마후면 어버이수령님께서 광복후 부강한 새 조국건설을 위하여 알알이 가꾼 낟알을 나라에 바친 김제원동지와 재령군 농민들에게 감사편지를 보내주신 때로부터 50돐을 맞게 된다는것을 전해듣게 되였다. 그때 그는 마음속충격이 컸다. 그의 발걸음은 저도모르게 리소재지에 세워져있는 김제원동지의 반신상으로 향하였다. 그는 반신상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쩐지 김제원동지가 자기를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것만 같았다.
- 동무는 이 어려운 시기에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끊임없이 걷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깨끗한 량심으로 받들고있는가!
김대성동무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는 반신상을 바라보며 굳게 다짐하였다.
- 김제원동지,우리는 언제나 위대한 장군님과 뜻도 마음도 숨결도 함께 하며 조국과 인민을 위한 애국충정의 길을 걸을것입니다.
그날 그는 안해와 토의하고 가정에 여유로 가지고있던 알곡을 나라에 바칠것을 당조직에 제기하였다.
그의 소행에 감동된 농장원들이 너도나도 따라나섰다.
김대성동무는 그후에도 여러차례 절약한 알곡을 나라에 바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쌀로써 받들어갈 확고한 결의안고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농장벌을 지켜 땀과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는 나무리벌의 애국농민 김대성동무,
경애하는 장군님의 손길에서 자라난 이런 선군형의 숨은 영웅, 숨은 공로자들이 있기에 반제군사전선의 후방은 굳건하고 주체의 강성대국으로 비약하는 내 조국의 발구름소리가 높이 울리고있는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