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조국통일연구원은 21일 미국의 비호묵인밑에 감행된 남조선핵무기개발에 대하여 쓴 진상공개장을 발표하였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비호묵인밑에 감행된 남조선핵무기개발 진상은 철저히 규명되여야 한다
조국통일연구원 진상공개장
최근 남조선의 핵연구기지들에서 비밀리에 감행된 우라니움농축과 플루토니움추출을 위한 핵물질실험사건들이 폭로되여 내외를 경악시키고있다.
남조선당국과 관계자들은 저들이 뒤골방에서 핵물질실험을 하면서 딴 장난질을 한것이 들통나자 《단순한 과학실험이였다》느니, 《량이 극히 적다》느니, 《자진신고하였다》느니 하면서 핵무기개발과는 무관한듯이 발뺌을 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철면피한 거짓말이다.
남조선은 이미 수십년전부터 미국의 비호묵인밑에 비밀리에 핵무기개발을 다그쳐왔으며 이번에 드러난 핵물질실험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조국통일연구원은 남조선비밀핵물질실험사건의 진상과 핵무기개발실태 그리고 배후에서 그것을 적극 조장,비호,묵인한 미국의 정체를 내외에 알리기 위해 이 진상공개장을 발표한다.
1. 비밀핵물질실험사건의 진상
지난 9월 2일 미국의 전자우편정보지인 《넬슨 리포트》가 남조선이 2000년초 비밀리에 우라니움농축실험을 하였다는 사실을 공개하였다. 같은 날 남조선 《과학기술부》는 2000년 1월부터 2월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농축우라니움 0.2g을 분리해냈다는것을 국제원자력기구에 통보하였다는것과 그에 따라 8월말부터 기구의 사찰을 받고있다는것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그러면서 문제의 우라니움농축실험은 소수 과학자들이 《호기심차원》에서 진행한것으로서 《정부》는 올해 6월에야 신고대상을 조사하는 과정에 알게 되였다고 천연스럽게 거짓말을 해댔는가 하면 《핵연료국산화》연구를 하던중 우연히 우라니움농축실험이 포함되였을뿐 핵무기용고농축우라니움생산이 아니며 관련장비 모두를 페기하였다고 변명하여 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도 통할수 없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국제기구,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남조선의 비밀핵물질실험사건에 커다란 우려를 표시하면서 핵무기개발의혹을 제기하고 엄중히 규탄하였다.
바빠난 남조선당국은 비밀핵물질실험내막이 드러난지 이틀만에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고 우라니움농축실험은 핵무기개발과 무관하다는 립장을 《재확인》하는 놀음을 벌리였다. 남조선《국회》에서는 《과학기술부》 장관과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을 내세워 이 실험이 《정부》의 승인없이 연구소의 《자체결심》과 《연구사들의 호기심차원》에서 진행되였다고 《증언》하게 하는 연극도 꾸미였다.
그로부터 한주일도 못되여 이번에는 미국의 AP통신에 의해 미국고위관리가 남조선이 이미 20여년전에 플루토니움추출을 위한 비밀실험을 진행하였다는것을 실토한 사실이 또 보도되였다.일본의 《아사히신붕》도 1980년대 초 서울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였던 전직 미국정부당국자의 말을 인용하여 남조선이 1982년부터 1983년에 플루토니움을 리용한 핵개발계획을 극비밀리에 추진했었다는것,계획은 《정부》의 지시밑에 연구기관에서 이루어졌으며 추출된
플루토니움의 량과 순도는 비밀로 취급되였다는것, 1983년 미국대통령 레간의 남조선행각시 레간과 전두환사이에 이 문제가 심중히 론의되였다는것 등을 폭로하였다.(남조선《MBC》방송 2004.9.9)
남조선의 비밀핵물질추출내막이 련속 드러난것과 관련하여 광범한 세계의 여론은 커다란 분노를 표시하면서 《완벽한 진상조사를 촉구》하여 나섰다. 지어 《주요 8개국 군비담당고위급협의회》라는데서까지 남조선의 우라니움농축과 플루토니움추출실험에 대해 《엄정대처》하기로 하는데 이르렀다.(남조선《KBS》방송 2004.9.11)
궁지에 몰린 남조선 《과학기술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의 공릉동에 있는 연구용원자로에서 비밀리에 플루토니움추출실험을 감행한 사실과 이미 국제원자력기구가 1998년에 남조선의 플루토니움추출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적하여 확인하였으며 그동안 기구측과 내적으로 조용히 협상하던중이라는것을 밝히지 않으면 안되였다.(남조선《KBS》방송 2004.9.9)
그러나 남조선당국은 이번에도 플루토니움추출은 과학자 몇명이 순수 연구목적으로 진행하였으며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의 통보를 받기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아닌보살하고 나앉았다. 더우기 핵연료가 얼마나 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라니움을 원자로에 넣었더니 극소량의 플루토니움으로 바뀌였다느니, 당시 연구를 지휘하였던 책임자 2명은 이미 사망하여 없다느니, 안전조치협정상 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되였어야 했는데 신고과정에 플루토니움추출실험부분이 《실수》로 루락되였다느니, 추출한 플루토니움량이 극소량이여서 핵무기개발과는 인연이 없다느니 하는 등 궤변을 또다시 늘어놓았다. 남조선 《과학기술부》 장관 오명은 9월 13일 간담회라는데서 《1982년의 플루토니움추출실험과 2000년 우라니움농축실험 이외에 추가로 의혹을 살만한 사례는 없다》고 강짜로 뻗쳐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실만 보아도 남조선은 1980년대에 3개의 핵시설에서 우라니움금속 150kg을 비밀리에 생산하였으며 그가운데서 2.5kg을 사용하여 2000년에 농축실험을 하였다. 또한 생산된 우라니움금속중 12.5kg이나 행방불명된 상태이지만 이를 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더우기 남조선은 1990년대에도 레이자농축실험의 전단계가 되는 실험을 2번이상 진행하였다.(남조선《KBS》방송 2004.9.13,남조선《MBC》방송 2004.9.11,14)
저들의 꼬리가 련속 드러나는데 극도로 당황한 남조선당국은 《핵연료국산화차원》에서 연구를 하던 중 우라니움금속을 만들었다느니, 천연우라니움의 국제시세가 너무 비쌌기때문에 린광석을 수입해 천연우라니움을 추출하는 연구를 했다느니, 우라니움금속의 활용도를 연구하기 위한 고온실험과정에 12.5kg이 녹아 없어졌다느니 등의 변명을 하였다.
그리고는 비발치는 내외여론을 눅잦혀보려고 핵무기개발의사가 없으며 《핵투명성》을 보장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과 조선반도비핵화선언을 준수하겠다는것과 《핵의 평화적리용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핵과 관련한 4대원칙》이라는것을 발표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추가사찰을 받는 놀음도 벌리였다.
이것이 내외여론을 기만하고 핵무기개발비밀을 숨기기 위한 오그랑수라는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 핵무기개발의 정책화
남조선에서의 핵무기개발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력대 《정권》들에 의하여 근 40년가까이 극비《정책》으로 추진되여왔다.
1960년대초 《5.16군사쿠데타》이후 남조선군사《정권》은 《안보》를 위한 《최종수단은 핵무기보유의 길밖에 없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핵무기를 개발할것》이라고 공언하면서 핵무기개발을 정책화하는데로 나갔다.
군사《정권》의 총지휘아래 《원자력연구개발장기리용계획서》, 《원자핵연료개발계획》, 《원자핵무기개발계획》 등 각종 핵무기개발계획들이 수립되고 《청와대》직속으로 핵무기개발을 위한 비밀특별위원회인 《병기개발위원회》와 《국방과학연구소》가 조직되였으며 해외로부터 핵개발 두뇌진과 기술설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하였다.(《세계일보》 2004.8.2, 《월간조선》1990.4, 《신동아》 1989.4)
당시 군사《정권》은 1981년의 《국군의 날》에 맞추어 핵무기보유를 선포할 계획까지 짜놓고있었으며 1979년 《정권》말기에는 핵무기개발이 사실상 마지막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은 1990년대초 《국회의원》 강창성이 1978년에 남조선집권자로부터 《핵무기개발이 5%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사실과 1979년 1월 남조선집권자가 《국회의원》 선우련을 부산 해운대로 불러 1981년 상반기에 핵폭탄이 완성된다는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의 보고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해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자체개발한 핵무기를 공개하면서 발표할 성명문을 작성할데 대한 비밀지령을 준 사실에서도 확인되고있다.
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도 《핵무기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있었다》고 고백한바 있다.(《월간조선》 1992.4, 1993.3,11)
남조선에서의 핵무기개발은 《10.26사건》이후 전두환,로태우 군사《정권》에 의해 계속되였을뿐아니라 《대체에네르기개발》이라는 외피를 쓰고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전두환《정권》은 1981년 5월에 《청와대》회의에서 핵무기개발을 계속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관련기관 및 기업책임자들을 군부출신들로 새로 꾸린데 이어 《원자력발전》 또는 《산업용》이라는 이름밑에 선행《정권》때부터 건설하여온 《조사후 시험시설》을 1985년에 완공하여 페연료재처리를 위한 공업적토대를 마련하였으며 《핵연료 및 원자로국산화》라는 미명하에 원자탄설계 및 제조에 도용할수 있는 핵연료설계 및 원자로제작기술 등을 외국의 원자로전문업체들로부터 본격적으로 끌어들이였다.
로태우《정권》은 《독자적인 핵무장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남조선군 《합동참모본부》를 중심으로 핵연료순환완성,혼합핵연료개발,방사성페기물처리기술개발,레이자분광기술개발 등 플루토니움추출 및 우라니움농축을 위한 분야별 중점추진사업계획들을 새로 세우고 그 실현에 힘을 기울이였다.
특히 미국과 함께 《북의 핵무기개발의혹》을 떠들면서 그 막뒤에서 북남사이에 채택된 《비핵화공동선언》의 잉크도 마르기전에 영국과 재처리공동비밀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외국으로부터 플루토니움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고 《원자증기레이자농축법》을 비롯한 수십가지의 첨단핵기술들을 도입하여 핵개발속도를 더욱 높이였다.
전 《안기부》(현《정보원》의 전신)부장의 비서실장이였던 서수종은 로태우《정권》이 《핵을 가져야겠다는 판단으로 준비를 해왔던것은 사실》이라고 하면서 이를 위해 《대덕원자력연구소에 전문요원을 상주》시켰다고 실토하였다.(《월간조선》 1991.10, 《동아년감》 1991, 《중앙일보》1994.3.29)
당시 로태우《정권》이 핵무기개발에 얼마나 열을 올렸는가 하는것은 일본잡지 《세까이》(1993.1)가 남조선이《5년이내에 핵병기를 개발하여 조선반도에 배치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였다고 보도한 사실에서도 알수 있다.
군사《정권》의 바통을 이은 김영삼역도의 《문민정권》은 《이제는 우리도 핵능력을 가져야 할 때가 되였다》고 하면서 핵기술개발에 《국가적총력》을 기울인다는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세우고 《핵연구개발인력의 질적향상》, 《핵연료주기기술 완성》, 《원자력외교의 강화》 등을 추구하였으며 《국민의 정부》역시 《제2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이라는것을 채택하고 신형원자로,고속증식로 및 핵융합로 개발을 위한 핵심기술개발,페연료처리장건설계획 등 첨단기술개발을 통하여 핵무기개발능력을 부단히 키워나갔다.(《한겨레》 1996.1.20, 《전기년감》 2004)
이러한 사실들은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이 개별적인 연구단체나 과학자들에 의한것이 아니라 력대《정권》들에 의해 《정책》적으로, 계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추진되여왔음을 보여준다.
3.남조선의 핵무기개발실태
오늘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실태는 핵기술력량으로 보나 핵물질보유량으로 보나 핵탄설계 및 제조기술과 설비,핵무기운반장비로 보나 실로 엄중한 단계에 있다.
남조선의 핵개발기술력량은 잠재적인 핵대국으로 알려진 일본의 핵기술력량보다 더 많다. 남조선은 이미 1990년대초에 벌써 방대한 핵연구개발기지에 큰 규모의 연구소를 20여개나 가지고있었으며 박사급 1,500여명을 포함하여 1만 5,000여명이 여기에 종사하고있었다. 이것은 당시 핵대국들인 프랑스의 2만명, 영국의 1만 6,000명과 거의 맞먹었으며 일본의 핵국립연구소의 핵전문가 8,500여명보다 훨씬 많은것이였다.(《월간조선》 1990.4, 1991.10)
《한국원자력연구소》와 《국방과학연구소》,《한전원자력연료》는 남조선핵개발의 3대기지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플루토니움추출을 위한 재처리기술연구와 우라니움농축기술개발 등을 기본임무로 하는 중추적연구기지로서 40만 1,000평의 부지에 핵연료성형가공시설, 다목적연구로인 《하나로》,《조사재시험시설》등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핵연구시설들을 갖추고있다.
1970년에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는 《핵미싸일개발팀》과 《로케트추진제,탄두,전자사업단》 등을 중심으로 핵무기개발과 함께 상용무기개발을 진행해오다가 1991년부터는 일반상용무기개발을 민간업체에 넘기고 지금은 중장거리미싸일 및 정밀유도탄 등 핵운반수단개발에 연구를 집중하고있다.
《한전원자력연료》는 1976년 당시 집권자가 직접 설립한 《한국핵연료개발공단》의 후신으로서 원자탄제조에 필수적인 핵연료순환기술을 완성하는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있다.(《신동아》1989.4, 《월간조선》 1990.4, 《한겨레》 1991.9.18, 《전기년감》 2004)
오늘 남조선의 대전에 자리잡고있는 840만평의 《대덕연구단지》는 바로 이러한 연구소들을 포함하여 무려 77개의 연구기관 및 교육시설들과 2만여명의 연구직원들로 이루어진 사실상 종합적인 핵연구기지로서 핵무기개발의 《총본산》으로 불리우고 있다.(《한국경제》 2003.9.25)
이외에도 《한국화학연구소》는 원자탄의 기폭제로 쓰이는 《특수폭약》에 대한 연구를,《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핵전쟁수행을 위한 지휘,통제,통신체계개발연구를, 《한국항공우주연구소》는 각종 전투기,우주발사체 및 첩보위성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있다.(《월간조선》 1992.4, 《월간군사비젼》 1989.11,12)
《두산중공업》,《한진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종합기계》,《풍산》 등 20여개의 군수업체들도 핵운반수단들로 리용할수 있는 각종 포탄과 폭탄,야포,전투기,함선,미싸일 등의 연구개발 및 부분품생산에 종사하고있다.
남조선은 핵분렬성물질인 플루토니움과 농축우라니움보유량에서 일본의 뺨을 칠 정도이다. 력대 남조선당국자들은 원자로들에 대한 연료공급의 명분으로 해마다 수많은 량의 농축우라니움을 수입해왔으며 그 과정을 통해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니움과 플루토니움을 얻는데 필요한 핵물질예비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왔다.
1990년대초 남조선은 2기의 연구로를 포함하여 11기의 원자로들에 필요한 핵연료를 한해 평균 200여t정도 반입하였으며 2003년에는 19기의 원자로들에 필요한 핵연료를 3,500t이나 반입하였다. 이것은 같은 기간 원자로설비용량은 1.7배정도밖에 늘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핵연료수입량은 무려 17.5배로 늘어난것으로서 남조선이 얼마나 많은 핵연료를 예비로 차게 되였는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남조선당국은 원자로들에서 타고남은 페연료를 체계적으로 수중저장고에 저축해오고있는데 2002년 12월 현재 그 루적량은 무려 5,982t에 달하고있다. 이 페연료에서는 36t이나 되는 플루토니움을 얻을수 있다. 즉 남조선은 41t의 플루토니움을 보유하고있는 일본과 맞먹는 잠재적플루토니움을 보유하고있는 셈이다. 이 량으로는 일본의 나가사끼에 투하된것과 같은 원자탄 3,000여개를 만들수 있다.(《전기년감》 2004)
남조선은 많은 량의 페연료와 농축우라니움을 저축하고있을뿐아니라 핵연료에서 마음만 먹으면 핵분렬성 플루토니움 및 고농축우라니움을 추출해낼수 있는 재처리 및 농축기술과 설비들을 가지고있다. 남조선의 대표적인 재처리시설로는 1989년에 로태우《정권》이 확장개건한 《조사재시험시설》로서 그 구조 및 작업공정은 재처리시설과 거의 같아 사실상 준재처리공장으로 인정되고있다.(《월간조선》 1990.4)
남조선에 있는 《캔두》형 중수로의 경우 거기에서 나오는 페연료를 재처리하면 경수로에서보다 더 많은 량의 플루토니움을 얻을수 있는 동시에 플루토니움을 빼돌리기가 쉽고 그에 대한 감시도 매우 어렵다. 《한국원자력연구소》가 1995년부터 운영하고있는 다목적연구로인 《하나로》는 중수로와 경수로의 혼합구조를 가지고있는것으로서 20%의 농축우라니움을 사용하지만 시험통로들에 천연우라니움을 넣어 플루토니움을 뽑아낼수 있게 되여있다. 더우기 일반 발전용원자로에 비해 10배나 높은 밀도의 중성자묶음을 내보내기때문에 핵연료의 연소시간을 10분의 1이하로 줄이고 90%이상의 고순도핵분렬성플루토니움을 짧은 시간내에 얻을수 있게 한다.(《신동아》 1989.4, 《동아일보》 1995.4.4, 《월간조선》 1990.4, 《한국경제》 1989.3.25)
또한 남조선은 1984년부터 레이자에 의한 농축기술개발에 달라붙어 1986년에 레이자를 리용한 핵연료원격가공기술을 개발하였으며 1991년에는 《구리증기레이자》를, 1995년에는 《자유전자레이자》를 연구하여 《원자증기레이자》농축기술개발을 완료하였다.(《월간조선》 1991.10, 《련합년감》 1992, 《동아일보》 1995.1.11)
현재 남조선에서는 다목적연구로인 《하나로》와 함께 4기의 가압중수로, 15기의 가압경수로 등 총 20기의 원자로들이 가동되고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무기용 핵물질들이 쏟아져나오겠는가 하는것은 짐작키 어렵지 않다.
남조선의 원자탄설계 및 제조기술도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할수 있다. 원자탄기초설계는 이미 1975년에 완성되였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가 완성한 기초설계는 20kt급 플루토니움탄(공중투하형)이였다.(《세계일보》 2004.8.2)
1980년대에 들어와 핵무기개발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에 대한 내외의 비난이 높아가자 남조선당국은 핵발전연료 및 원자로에 대한 설계 및 제조기술을 개발한다는 구실로 핵탄관련기술개발을 계속하였다.
결과 남조선은 해외기술도입을 통해 이미 중수로 및 경수로의 설계기술을 확보하였을뿐아니라 1999년부터 년간 경수로 및 중수로용 핵연료를 각각 400t씩 직접 생산하는 등 핵연료설계 및 제조기술도 확보한 상태이다.(《전기년감》 2004년)
한편 남조선은 원자탄의 기폭제인 특수폭약 《HMX》도 자체로 생산하고있는데 1990년대에 《한화그룹》의 한 회사에서 그와 성분이 같은 폭약이 생산된 사실이 폭로되여 문제가 된바 있다. 이밖에도 원자탄제작에 필요한 부분품들과 기계장비들은 군수 및 민간업체들에서 일반제품으로 위장되거나 부호가 달린 제품으로 비밀리에 분산제작되고있다.
남조선은 원자탄제작에 필수적인 기폭실험도 정기적으로 진행하여왔다. 이미 1990년대초에 폭발순간을 맞추는데 요구되는 100만분의 1초까지 찍을수 있는 고속촬영기를 구입하여 기폭실험에 리용하였다.
《한국원자력연구소》와 《국방과학연구소》가 자리잡고있는 지역에 기폭실험을 위한 《비밀지하핵기지》가 있다는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남조선잡지 《말》(1992.6)은 이에 대해 《대전시 덕진동의 원자력연구소, 자운동의 금병산기폭실험기지, 신도안리의 계룡산대규모지하기지는 하나로 련결된 핵탄제작기지로 되고있다. 이 대규모지하기지는 륙,해,공군본부 위수구역에 의해 봉쇄되여있으며 여기에서 핵무기가 조립되고있다는 의혹이 나돌고있다.》고 보도하였다.
남조선당국은 핵무기개발과 함께 핵운반수단의 도입과 개발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현재 야포,미싸일,핵적재기,함선 등 각종 핵운반수단들까지 다 갖추게 되였다. 1990년대초 남조선군은 대표적인 핵포탄발사기로서 203mm《M-110》과 40개 대대력량의 155mm《M-109》 등의 미국제야포들을 보유하고있었으며 1998년에는 155mm자행포를 개발하여 실전배치하였다.(남조선잡지《말》1991.3, 《국방과 기술》 2000.8, 《월간군사비젼》 1989.6)
미싸일의 경우 1978년에 미국제 《나이크 허큘레스》를 모방하여 180km의 사거리를 가진 지대지미싸일 《백곰》을 개발한데 이어 1987년에는 그 개량형으로서 사거리가 250km에 이르고 정밀도와 탄두중량이 훨씬 늘어난 2단형 미싸일인 《현무》를 개발하여 실전배치하였으며 미국으로부터 《오네스트죤》과 《나이크 허큘레스》미싸일까지 넘겨받아 1989년에 벌써 552기의 각종 미싸일들을 보유하였다.(《월간조선》 1991.4, 《월간군사비젼》 1989.9, 《영국국제전략문제연구소 보고서》 1989.10)
2001년에 와서는 지대지미싸일 《현무》의 개량형으로 알려진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의 신형미싸일시험발사를 진행하였으며 지금은 북의 종심을 타격하자면 사거리가 적어도 500㎞이상은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보다 사거리가 긴 《천룡》미싸일개발에 달라붙고있다.(남조선《KBS》방송 2001.11.22, 《중앙일보》 2001.11.24, 《시사져널》 1998.9.17)
한편 《우주과학기술연구》 등을 위한 과학로케트를 개발한다는 미명하에 1993년에는 1단 로케트 《KSR-Ⅰ》 1,2호기를,1998년에는 2단 로케트 《KSR-Ⅱ》 2호기를 발사하였다. 이것들은 말이 《과학로케트》이지 여기에 장진된 고체연료들은 군사용으로 리용될수 있는것들이며 중량도 1.2t, 2t씩 나가는것들로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핵탄을 적재할수 있게 되여있다.
남조선은 핵적재전투폭격기도 많이 보유하고있는데 1980년대말에 벌써 《F-4펜톰》,《F-16》전투기를 비롯하여 그 수는 수백대에 이르렀다.(남조선잡지《말》 1991.3, 《국방백서》 1988)
이상의 사실들은 오늘 남조선이 핵물질의 추출로부터 핵탄제조기술 및 핵운반수단에 이르기까지 핵무기개발과 관련하여 필요한것들은 다 가지고있으며 남조선핵문제는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극히 엄중한 현실로 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4.남조선핵문제의 주범은 미국이다
지금 미국은 마치도 《핵무기전파방지》를 위한 《국제검열관》,《세계헌병》처럼 행세하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위선에 불과하다.
미국은 저들에게 고분고분하는 손아래 《동맹국》이나 친미적인 나라와 주구들의 핵무기개발은 비호묵인하면서도 반미적인 나라에 대해서는 일부러 《핵개발의혹》을 조작하거나 부당한 《핵무기개발》소동을 벌리면서 위협공갈을 일삼고있다.
남조선핵문제는 미국의 파렴치한 량면성과 2중기준의 전형적인 례이다. 미국은 저들이 마치도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을 엄격히 통제해왔으며 이번 우라니움농축실험과 플루토니움추출사실도 몰랐던것처럼 시치미를 떼고있으나 이것이야말로 눈감고 아웅하는 격이다. 미국의 철저한 식민지이고 일거일동이 빠짐없이 미국의 통제와 감시속에 들어있는 남조선에서의 핵개발을 미국이 모른다는것은 말도 안된다.
더구나 미국은 1956년에 남조선미국《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남조선에서의 핵개발연구에 깊이 관여하여왔으며 년례적으로 남조선미국《합동원자력에네르기협력위원회》라는것을 통하여 남조선의 핵개발실태를 구체적으로 장악해왔다.
미국이 남조선에서의 핵무기개발을 묵인조장하다가 저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핵무기개발에 참가하였던 남조선계 미국인 핵물리박사 리휘소를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죽이고 나중에는 집권자까지 제거한것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공개된 비밀이다. 이것은 미국이 핵무기개발을 처음부터 알고있었으며 그에 깊숙이 관여하여 왔다는것을 반증해주고있다.
전두환《정권》이 선임자가 추진하던 핵무기개발을 《대체에네르기사업》이라는 미명하에 계속하게 된것도 미국의 비호와 묵인이 있었기때문이다. 미국은 당시 전두환을 워싱톤에 불러 여론앞에서는 《핵비확산정책준수》를 훈시하고는 내적으로는 핵무기개발연구를 계속 추진하되 철저히 미국의 기술지원과 협력에 의거할것을 요구하였다.(《신동아》 2004.8)
미국이 오래전부터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사실을 알고있었다는것은 1987년 미륙군 국방대학 전략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서기 2010년의 세계》라는 보고서에 남조선이 《2010년까지 핵무기 500개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된 사실과 1993년 미국의 핵기술전문가들이 동원되여 미의회의 기술평가처 명의로 작성된 《대량살상무기확산위험평가》라는 보고서에 남조선이 오스트랄리아,카나다,벨지끄 등과 함께 레이자동위원소분리기술을 보유한 대상으로 지적된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고있다.
미국은 또한 1992년에 핵무기나 핵물질개발에 전용될수 있는 이른바 《2중사용품목》 65개를 선정하였는데 바로 이번에 폭로된 남조선의 우라니움농축실험에 사용된 장비와 시설은 그 통제품목에 들어가 있는것들이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1985년에 남조선이 연구용원자로에서 천연우라니움 700kg을 핵연료로 리용한 사실이 국제원자력기구에 통보되고 1998년과 2003년 국제원자력기구가 남조선의 원자로들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플루토니움추출흔적을 발견한 사실도 있었다.(《월간조선》 1991.10, 《시사져널》 2004.9.23, 《경향신문》 2004.9.15)
그러나 이것역시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하여 알고도 모르는척 덮어두었다.
미국은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을 묵인해주었을뿐아니라 그것을 적극 도와주고 뒤받침해주었다. 사실 미국의 기술과 장비의 지원이 없이는 남조선에서의 핵물질실험과 핵무기제조를 생각할수 없다.
남조선이 1982년에 플루토니움추출실험을 한 연구로 《트리가마크 2》와 《트리가마크 3》 도 모두 미국이 기술지원을 하고 설치까지 해준것이다. 미국은 1982년에 저들의 기술용역회사 《번즈 앤드 로》를 내세워 남조선과 고속증식로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그를 도와주도록 하였으며 1985년 5월에는 남조선 《에네르기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소》)가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조사후시험시설》(현 《조사재시험시설》)에 가져다 플루토니움추출시험을 할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회사년감》 1997, 《월간조선》 1990.4)
심지어 미국의 《콤버스천 엔지니어링》회사는 남조선 령광원자력발전소 3,4호기에 대한 공동설계작업을 진행하면서 원자탄설계 및 모의시험,제작 등에 리용되는 무려 201건의 기술자료들을 넘겨주었다.(《월간조선》 1990.4)
미국은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에 전용될수 있는 민감한 기술들을 남조선과의 《과학기술협정》을 통하여서도 체계적으로 이전해왔다. 1988년 10월에는 이 협정의 유효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남조선당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저들이 넘겨준 100건의 핵관련기술을 포함한 미국군사특허비밀이 새여나가지 않도록 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현재 남조선에서 가동중인 원자로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제이며 연료인 농축우라니움의 31%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있다.(《세계일보》 2004.9.22)
미국은 남조선의 핵과학기술자들을 미국에 데려다가 체계적으로 기술을 전습시켰다. 남조선미국 《원자력협정》에 따라 많은 연구인원들이 미국 알곤국립연구소에서 훈련을 받은것과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의 핵기술진 30여명이 미국의 《콤버스천 엔지니어링》회사와 GE사에서 원자력발전소건설관련 기술전습을 받는다는 미명하에 핵무기개발과 관련한 기술을 익힌것 등은 그 대표적인 실례로 된다.(《중앙일보》 1994.8.23, 《월간조선》 1995.4)
남조선의 핵분야에서 주도적역할을 하는 14명의 핵심과학자들을 비롯한 1,000여명의 학자들은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였거나 미국과의 공동연구에 참가한 적이 있다.(《한국인명록》 1992, 《한겨레》 1992.5.28, 《월간조선》 1990.4)
이러한 사실들은 미국이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에 대한 정책적후원뿐아니라 물질기술적,인적지원도 직접 다 맡아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미국은 남조선이 핵무기운반수단을 보유하는것도 도와주었다. 1950년대에 핵무기를 탑재할수 있는 《오네스트죤》미싸일을 반입하여 남조선군에 넘겨준것도 미국이며 1960년대에 핵전쟁연습에 동원되였던 《나이크 허큘레스》,《마타돌》,《호크》미싸일을 비롯한 원자탄 및 유도무기들을 남조선에 그대로 넘겨준것도 미국이다.(남조선잡지 《말》 1991.3)
또한 1970년대초에는 《록키드 마틴》회사를 내세워 남조선에 미싸일추진제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해주었으며 1979년에는 남조선미국《미싸일협정》이라는 허울을 씌워 남조선이 180km의 사거리를 가진 미싸일을 자체로 개발할수 있도록 공식 승인해주고 《나이크 허큘레스》미싸일의 남조선판매를 허용해주어 남조선이 미싸일개발에 나설수 있도록 적극 밀어주었다.(남조선도서 《군》1994.11.17)
1990년 미국은 남조선과 미싸일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과 부분품을 적극 지원해준다는 내용의 《보장서한》을 체결하였으며 2001년에는 남조선에 300km,500km의 사거리를 가진 미싸일의 개발을 허락하고 실전에 배치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경향신문》 1996.6.12, 《시사져널》2002.12.19)
제반 사실들은 미국이 남조선당국의 핵무기개발책동을 오래전부터 손금보듯 알고있으면서도 그것을 비호묵인하였을뿐아니라 적극 조장하고 협력하였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지금 미국은 이번에 터진 남조선의 비밀핵물질실험사건과 관련해서도 엄중히 문제시할대신 저들이 묵인해준 정체가 드러나게 될가바 꺼려 하면서 극력 비호두둔하고있다.
미국무성대변인은 남조선의 농축우라니움이 극소량이여서 핵무기제조는 생각할수 없으며 남조선당국이 농축실험사실을 《자발적》으로 밝히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하고있다고 하면서 《크게 우려할 사항》이 아니라는 립장을 표명하였다. 미국무장관 포웰, 국방장관 람스펠드 등도 련달아 나서서 《우라니움농축실험과 플루토니움추출실험은 학술실험목적에 불과한것이 명백하다》,《핵무기개발과 무관하다》고 떠벌이면서 남조선핵문제를 감싸주고있다. 더우기 미국은 남조선이 《국제원자력기구조사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고 자발적으로 실험내용을 신고한 점은 모범적인 사례》라는 등으로 낯간지러운 소리까지 줴치고있으며 남조선핵연구기지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질질 끌면서 투명성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내외여론을 우롱하고있다.
미국의 조종을 받은 국제원자력기구 역시 남조선핵기지에 대한 기만적인 사찰놀음을 벌려놓으면서 아직 최종사찰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불법적인것은 아니》라느니, 《단순한 소규모의 과학적인 실험에 불과한것》이라느니, 《핵무기개발의도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미국에 발라맞추고있다.
그러나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듯이 남조선핵문제의 진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드러나고있다.
지금 국제사회는 미국의 비호묵인하에 감행된 남조선핵무기개발의 진상과 배후에 숨겨진 미국의 정체를 명백히 가려낼것을 요구해나서고있다.
남조선핵문제는 조선반도정세와 북남관계에 엄중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건이다. 지금까지 핵문제에서 저들은 깨끗한척 하면서 미국상전과 함께 입만 떨어지면 《북핵문제》를 떠들어온 남조선이 지난 수십년동안 뒤골방에서 비밀리에 핵무기개발을 위한 딴 장난을 하였다는것은 그들이 얼마나 철면피하고 속이 검은가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남조선의 핵무기가 누구를 겨냥하겠는가 하는것은 명백하다. 미국과 남조선은 그로 하여 빚어지게 될 위험천만한 후과에 대하여 심사숙고해야 할것이다.
남조선핵문제의 진상은 철저히 규명되여야 한다. 남조선당국은 그 누구의 핵문제를 떠들것이 아니라 자기의 핵문제부터 똑똑히 밝혀야 하며 미국의 비호묵인밑에 범죄적인 핵무기개발을 숨기고있은데 대하여 사죄하고 모든 핵무기개발계획을 백지화해야 할것이다.
주체93(2004)년 10월 21일
평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