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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일제의 강도적인 문화재파괴략탈범죄》
(평양 11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9일부 《로동신문》은 《일제의 강도적인 문화재파괴략탈범죄》라는 제목으로된 개인필명의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이 그릇된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는것은 남을 위해서보다도 자기자신을 위하여 필요한것입니다.》

일제는 지난날 우리 인민에게 백년,천년이 가도 아물수 없는 상처를 입힌 극악한 원쑤,략탈자였다. 지난 세기 40여년간이나 우리 나라를 불법강점통치한 일제는 수많은 인적 및 물적자원을 강탈하였을뿐아니라 우리 인민이 조상대대로 창조하고 물려받은 귀중한 문화재들을 무참히 파괴하고 략탈해 갔다.

우리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일제의 파괴와 략탈은 가장 파렴치하고 악랄한것으로서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20세기초에 우리 나라를 침략한 일제는 조선문화재략탈을 명령하고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략탈하였다. 일제는 조선민족문화유물을 《취재》,《조사》,《수집》,《보존》한다는 명목하에 헌병과 경찰은 물론 온갖 불량배들까지 동원하여 왕릉을 비롯하여 고적,고분들을 마구 파헤치였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릉에 대한 도굴,파괴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놈들은 릉의 봉분을 파헤치고 무덤칸천정들을 파괴하였으며 유골이 들어있는 관까지 헤쳐버리는 범죄를 감행하였다. 일제는 단군릉뿐아니라 공민왕릉을 비롯하여 각이한 시대의 각종 고분들을 모조리 파헤치고 수많은 유물들을 략탈하여갔다. 자료에 의하면 일제는 1904년부터 몇년동안에만도 개성,강화도,해주 등지에서 약 2,000기의 고분에 대한 대규모적인 도굴행위를 감행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평양의 대성산을 비롯하여 대동강류역일대의 고구려고분 1,400여기가 도굴당하고 거기에 있던 문화재들이 파괴되고 략탈당하였다.

1917년 경상북도 선산군의 고분들을 조사하는데 참가하였던 한 일본인은 선산군에 남아있던 약 1,000기의 고분들이 2∼3년전부터 모조리 무뢰한들에 의하여 도굴당하였다고 하면서 《떼지어 모여있는 고분들이 도굴에 걸려 파괴되고 황페화된 참상은 보기 딱할 정도이고 실로 잔인하고 혹독함이 극도에 이르러 정치적으로나 종교상으로 보아도 심히 몸서리칠일이다.》(《대정 6년도 고적조사보고》일문 1920년판 30페지)라고 실토하였다.

우리 나라의 민족문화유물들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강탈한 일제의 죄행을 꼽자면 끝이 없다.

일제는 강점초기에 우리 나라의 고적 및 유물의 《보존규칙》,《보존령》,《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 등 허울좋은 악법들을 만들어놓고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들을 공개적으로,합법적으로 강탈해갔다. 그리고 소위《유물보존》이라는 미명하에 《조선총독부박물관》,《경주유물보존회》 등 각종 전문문화재략탈기구들을 조작해놓고 문화재략탈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일제는 조선의 왕릉들을 비롯한 옛 무덤들과 성과 비석,옛 건물들과 석조물 등 력사유적들을 파괴하고 금관,각 장신구,고려상감자기,청동거울,불상 등 수십만점의 값진 문화재들을 략탈해갔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는 1921년 12월에 경상남도 량산의 신라시기 부부무덤을 파헤치고 금동제관,목걸이,귀걸이 등 세계적인 우수한 문화재 100여점을 략탈해갔다. 일제는 또한 1924년 10월에는 경찰들까지 동원하여 평양부근의 옛 무덤들을 파헤치고 우리 인민의 발전된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들을 모조리 략탈해갔다. 지어 1,800여권에 달하는 《리조실록》을 비롯한 수만권의 국보적인 장서들까지 가리지 않고 마구 빼앗아갔다. 1928년 12월 일제가 황해북도 귀진사 한곳에서 훔쳐간 불교경전목만 해도 200여점에 달한다.

일제가 우리 나라의 문화재략탈에 얼마나 미쳐날뛰였는가 하는것은 일본인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요사이와 같은 참상(고분도굴)이 벌어지게 된것은 일본인이 조선의 시골까지 들어오게 된 때부터의 일로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조선에 건너온 그들이 황금사발이 묻혀있다든가 정월 초하루에는 황금닭이 무덤속에서 운다든가 하는 전설이 있는 고분을 지금의 류행인 금광이라도 파는 심산으로 돌아가며 팠다.》(일제강점시기 《평양박물관》관장 고이즈미)

《당시 평양에 살던 일본인치고 락랑고분에서 나온 옛 거울이나 질그릇과 같은것을 가지고있지 않으면 머저리취급을 당하였다.》(《락랑과 전설의 평양》 1934년판 9페지)

력사에는 수다한 전쟁과 략탈의 행적이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일제와 같이 한 나라의 문화재들을 그처럼 야만적으로 파괴하고 깡그리 략탈하여 자기의 재부로 만든 파렴치한 침략자,파괴자,략탈자를 력사는 알지 못하고있다.

극악한 파괴자,략탈자로서의 일제의 파렴치성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온갖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들을 강탈해간 일제는 그것을 보관,처리하는데서도 강도적본성을 낱낱이 드러내놓았다.

일제가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훔쳐다 저들의 《국보》로 등록하고 박물관까지 차려놓고 뻐젓이 전시한 사실은 공인되여있다. 일제는 《보물의 소유자는 조선총독의 명령에 의하여 그것을 관립,또는 공립박물관과 미술관에 바칠 의무가 있다.》는 법령을 발포하고 조선에서 략탈하여간 금관,각 장신구,고려상감자기,청동거울,불상 등을 도꾜 우에노박물관에 가져다놓은 후 뻔뻔스럽게도 그것을 저들의 《국보》,《중요문화재》,《중요미술품》 등으로 세상에 공개하였다. 이밖에도 우리 나라의 수많은 력사유물들이 특등 《선사품》으로,《가보》로 개인들의 수중에 넘어갔다. 일제강점시기 첫 조선총독이였던 데라우찌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을 략탈하여 자기 집 《전시품》으로 갖추어놓는 파렴치한 행위까지 감행하였다.

사실들은 일제야말로 전대미문의 민족문화재파괴자,략탈자일뿐아니라 력사의 위조자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오죽하면 일본의 한 학자까지도 《일본국보라고 세계만방에 자랑하고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다 그 미를 칭찬하고있는 작품의 거의 모두가 대체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인가. 그중에서도 국보중의 국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될 거의 모두가 실로 조선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이는 력사가들도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다.》라고 고백하였겠는가.

우리 인민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정신,물질적유산인 문화재에 대한 일제의 파괴략탈행위는 그 기간으로 보나,수법과 처리정형으로 보나 력사에 류례없는 날강도적인 야만행위였으며 조선민족의 넋을 빼앗고 민족말살을 노린 천추에 용납 못할 죄악이였다.

문화재는 그를 창조하고 계승한 민족의 후손들에 의하여 대대손손 전해져야 할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만년재보이다. 유구한 조선민족의 력사와 재능,문화발전수준을 자랑하는 문화재는 더없이 귀중한것이다.

우리 인민은 지금도 지난날 일제가 감행한 강도적인 문화재파괴략탈죄악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다.

일본은 우리 인민의 피맺힌 원한을 똑바로 보고 문화재파괴략탈범죄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며 사죄보상하여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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