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기사 달력>>2004년 12월 27일기사 목록
위인들을 모시여 더욱 유명해진 《회령 3미》
(평양 12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유서깊은 만경대,백두산밀영과 더불어 회령은 전설적인 력사의 땅이다.

회령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유명한 《3미》가 있다.

녀미,행미,토미의 《회령 3미》는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중국과 로씨야,일본 그리고 미국에까지 소문이 났다.

《3미》가 널리 알려진 여기 회령에서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이시며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께서 탄생하시였다.

절세의 위인들을 모시여 조선의 《회령 3미》는 더욱 유명해지고 이 고장은 끝없이 빛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회령사람들은 자기네고장을 함북명승이라고 자랑한다.》

회령이 함북명승으로 긍지높이 불리우는데는 《3미》의 의미가 중요하게 깃들어있다.

《3미》의 으뜸인 녀미로는 용모미,숙덕미,지성미를 일러왔다.

회령녀인들은 용모가 뛰여나고 마음이 선량하며 의리가 깊고 근면할뿐아니라 생활력이 강하고 성품이 대쪽같다.

회령녀미를 말할 때 사람들은 녀성이 지닐수 있는 숭고하고 고결한 미를 최고의 높이에서 체현하신 김정숙동지를 그려본다.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인정이 많으시고 강직한 성품을 지니신 그이께서는 늘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였다.

주체11(1922)년 봄 김정숙동지께서 일가분들과 함께 이국땅으로 자리를 옮기시였을 때 마을사람들은 모진 가난속에서도 언제나 화목한 이 일가를 《회령집》이라고 부러워하였으며 부지런하고 마음씨 착한 그이를 《회령집 작은딸》,《회령집 새애기》로 친근하게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 지니신 친화력이 얼마나 강했는가 하는것은 주체26(1937)년 여름 도천리에서 지하공작활동을 하실 때 있은 《량민보증서》에 대한 이야기가 잘 말해준다.

항일혁명투쟁시기 홍기하전투와 대사하치기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격전들에서 사령관동지를 목숨으로 보위하신 이야기며 눈보라치는 겨울날 위대한 수령님의 젖은 옷가지를 몸에 품어 말리워드리신 이야기,전우들을 위해 끓는 죽가마를 머리에 이고 고지로 오르신 이야기,하많은 가슴뜨거운 일화들은 김정숙동지의 고결한 정신세계의 정화이다.

진정 용모에서나 덕망에서나 지성에서나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김정숙동지를 모시여 회령의 녀미는 더욱 유명해지게 되였다.

《3미》의 두번째로 꼽는 행미는 살구중에서 제일가는 살구라 하여 《백행》(맛좋은 살구)이라고도 전해오는 회령백살구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리조초기에 회령의 오봉일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백살구는 피여나는 꽃무리부터가 황홀하고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봄빛이 짙어가는 5월이면 오산덕을 비롯한 회령땅에는 어디라없이 백설같은 살구꽃이 한껏 향기를 풍기며 만발해 이곳 사람들은 물론 타고장에서까지 찾아와 회령천과 팔을천에 발을 잠그고 흐르는 물에 꽃잎을 하나둘 띄워보내면서 만복을 바랐다고 한다.

산과 들에 꽃바다가 펼쳐졌던 계절이 지나 여름에 들어서면 탐스러운 열매들이 가지가 휘도록 주렁진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아름다운 땅에서 5년밖에 생활하지 못하시였으나 언제나 마음속에 고향 회령의 백살구를 안고 사시였고 백살구꽃이 온 나라에 만발할 그날을 그리며 백두광야에서,광복된 조국에서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그이의 념원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하여 활짝 꽃펴나게 되였다.

주체43(1954)년 7월과 주체48(1959)년 3월 회령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미제의 침략전쟁으로 백살구나무가 없어지다싶이 된데 대하여 몹시 가슴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회령이야 옛날부터 백살구가 잘되는 고장인데 이제라도 다시 심어서 맛좋은 과일을 우리도 먹고 후대들도 먹을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며 백살구를 산에는 물론 길가에도 심고 집울타리주변에도 심으라고 가르치시였다.

그후 온 나라에 무성한 숲을 이룬 백살구는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심장을 끓이신 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하며 조국강산에 회령의 행미를 펼치고있다.

《3미》의 세번째에는 토미가 속하는데 이것은 회령의 고령토가 특별한데서 유래된것이다.

고령토를 주원료로 하여 만드는 청회색계통의 시원하면서도 독특한 여러 색갈의 회령오지는 민속공예의 특징으로 보나 실용가치로 보나 참으로 자랑할만하다.

원시시대부터 내려오는 회령오지는 삼국시기에 자기의 독특한 민속공예적풍격을 갖추고 높은 발전단계에 이르렀으며 리조시기에 와서는 부엌세간의 범위를 벗어나 그 품종이 실로 100여종을 헤아렸다.

살균작용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도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아 건강에 좋고 더없이 아름다운 회령오지그릇은 오랜 세월 왕궁에서 리용되였고 함경북도일대는 물론 여러 지역들에서 결혼지참품으로 빼놓지 않았다.

일찌기 회령오지를 류달리 사랑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6(1947)년 9월 경성군의 옹기점(당시)을 찾으시고 옹기업자들이 생산합작사 같은것을 무어 질이 좋고 쓸모있는 단단한 그릇을 많이 만들어 인민들에게 보내주자고 말씀하시였다.

회령오지발굴사업을 몸소 발기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71(1982)년 5월 발굴정형을 보고 받으시고 회령오지공예전시회를 진행하고 책도 출판하며 오지를 많이 생산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김정일동지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회령의 토미가 더욱 유명해진 회령오지는 자기의 특성을 풍만하게 살리면서 인민들의 윤택하고 문화적인 생활에 기여하고있다.

참으로 백두산3대장군을 모시여 예로부터 유명한 《회령 3미》는 선군시대에 와서 더욱 찬연한 빛을 뿌리게 되였다.

우리 인민은 유서깊은 성지 회령의 《3미》를 영원히 자랑하며 세세년년 빛내여갈것이다.(끝)

Copyright (C) 2002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