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2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29일부 《로동신문》은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윤성식의 수기 《다박솔초소에서 시작된 선군정치의 위력을 절감하며》를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세월은 류수같다고들 한다. 내가 저주로운 남조선사회와 결별하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에 안긴 때가 어제같은데 그때로부터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남조선사회에서 60평생을 부대끼며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공화국의 품에 안겨 산 6년이란 생의 짧은 한토막에 불과하다. 허나 그사이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것은 그 어느 다른데서는 60평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접할수 없는 격동적인것들이였다.
잊을수 없는 사변들을 안고있는 뜻깊은 이해도 어느덧 저물어가고있다.
12월의 저물녘에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보느라니 문득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참관갔던 때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백수십년전 우리 나라를 침범하였던 《셔먼》호가 수장된 자리에 《푸에블로》호가 묶여있는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컸다. 미제가 우리 공화국과의 대결에서 당한 참패의 전시장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후련하였다.
원산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대동강으로 끌어오는 과정에 있었다는 신화같은 이야기는 더욱 통쾌하였다. 당시로 말하면 미제가 반공화국압살책동에 열을 올리면서 남조선의 호전분자들과 야합하여 남조선과 그 주변해역에서 대규모의 전쟁연습을 벌려놓고있을 때였다. 백두의 천출명장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지략과 담력을 그대로 닮은 우리의 인민군용사들은 적들이 전쟁연습에 발광하고있을 때 드넓은 공해를 가로질러 그 배를 버젓이 대동강으로 끌어왔다는것이다.
미제의 악랄한 전쟁책동을 쉬파리떼의 기승만큼도 여기지 않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무적의 담력과 배짱,장군님의 손길아래 무적으로 다져진 우리의 선군총대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나는 다시금 가슴뿌듯이 절감하였다. 선군조국의 당당한 공민이 된 자부심과 긍지,《유일초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도 발밑에 굽어보는 우리 공화국의 불패의 위력이 벅차게 사무쳐와 그날 밤 잠을 이룰수 없었다.
다가오는 주체94(2005)년 설날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다박솔초소에서 력사적인 선군정치의 포성을 장엄히 울리신 때로부터 10년이 되는 참으로 뜻깊은 날이다.
정력적인 선군령도로 날과 달을 이어가시며 온 한해를 빛내이시고 선군으로 민족의 래일을 기약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로고의 자욱자욱을 더듬을수록 나는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감사의 정에 눈시울이 달아오름을 금할수 없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박솔의 언덕에서 펼치신 선군정치는 포악한 미제국주의의 반공화국압살의 총칼을 꺾어버리고 사회주의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한 위력한 보검이며 민족의 위용을 하늘높이 올려세운 민족존엄의 기치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나는 수령님의 뜻대로 인민군대를 틀어쥐고 선군정치를 하여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시기에 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지켜냈으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고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의 진군로를 열어놓았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84(1995)년 설날 다박솔초소를 찾으신 때로 말하면 공화국의 운명을 두고 우려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울려나오던 참으로 엄혹한 시기였다.
뜻밖의 대국상,날로 악랄해지는 미국의 압살책동,겹쳐드는 자연재해로 공화국의 경제사정,인민들의 생활형편은 몹시 어려웠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지만 그때 남조선언론들도 《3일붕괴설》이니,《3개월붕괴설》이니,《3년붕괴설》이니 뭐니 하면서 공화국의
전도를 두고 제나름대로 떠들어댔다.
공화국을 희망의 등대로 우러르며 살아오던 나와 우리 동료들은 이러한 소식에 접하면서 갈마드는 우려와 불안을 숨기지 못하였다. 불안과 기대가 솟고 스러지는 우리의 심중은 참으로 착잡했다.
그럴수록 나와 우리 동료들은 조미핵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만을 우러르며 장군님께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실것인가 하는데 온 신경을 모았다. 그때 비단 우리뿐이 아닌 온 세계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떤 정치적선택을 내리실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고있었다.
그러던 1995년 1월 우리는 평양방송을 통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해 설날에 다박솔초소에 대한 현지시찰을 하시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지금도 그때의 심정을 무엇이라고 표현할수 없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그러한 형편에서 누구든지 경제문제에 낯을 돌리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숨죽은 거리와 멎은 공장들을 뒤에 두시고 인민군부대부터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중을 그때는 미처 알수가 없었다.
무릇 사회적변혁과 혁명에서 령도자의 정치적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기나긴 인류정치사에는 《어제는 빠르고 래일은 늦으며 바로 오늘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전인민적폭동을 일으킨 정치가도 있었고 《지금은 무쇠와 피가 요구된다》면서 폭력적인 《철혈》정치로 거대한 제국을 만든 정치폭군도 있었으며 국란의 시기에 적에게 굴복하여 나라와 인민의 존엄을 일신의 안락과 바꿈으로써 후날 인민의 준엄한 심판대에 오른 정치배신자도 있었다.
개인의 선택이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것으로 그친다면 령도자의 선택은 한 민족,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것이다.
하다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숨죽은 공장과 허리띠를 조이는 인민들의 정상을 눈물겹게 바라보시며 설날 아침 경제회복의 길이 아니라 인민군부대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을 선택하신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것인가.
이에 대해 그때는 누구도 알수 없었다.
내가 월북을 단행하기 얼마전인 1998년 9월초 어느날 여느날과 다름없이 텔레비죤을 마주하고 앉은 나는 너무도 충격적인 보도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텔레비죤에서는 뜻밖에도 미국 CNN방송이 공화국에서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한 소식을 보도하고있었던것이다. 방송은 공화국의 위성발사소식을 보도하면서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다계단운반로케트로 발사한 인공지구위성이 일본 혹가이도와 혼슈사이의 쯔가루해협방향의 상공을 통과하여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을 그 구체적인 자리길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공화국의 위성궤도진입이 단 한번의 발사로 성공하였으며 이것은 공화국이
당당한 위성보유국임을 보여주는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하는것이였다. 보도를 듣고나서 나는 흥분되는 심정을 걷잡을길이 없어 거리로 달려나갔다.
- 공화국이 당당한 위성보유국이 되였다! 우리 민족은 이제 약소민족의 슬픔을 씻어버리게 되였다.
이것은 비단 나 하나만의 심정이 아니였다. 거리의 어디에서나 공화국의 위성발사소식을 접하고 감격과 격정속에 환성을 올리고 만세를 부르는 시민들로 성황이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이 《지하핵시설의혹》을 떠들면서 반공화국압살책동에 광분하고있을 때 그에 통장훈을 부르며 우리 혁명무력은 미제침략군의 도전을 추호도 용서치 않고 섬멸적인 타격으로 대답할것이라는것을 주체조선의 존엄을 걸고 엄숙히 선언한다,침략자들은 무주고혼의 신세를 절대로 면치 못할것이다라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변인성명이 발표되였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변인성명이 발표되자 즉시에 남조선언론들은 《이북군부 미국의 도전에 섬멸적인 타격을 가할것이라고 경고》,《불을 불로 다스리는것은 이북군의 기질》 등으로 성명내용을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다.
세계여론들도 그것을 두고 벅적 끓었는데 그때 한 외신은 성명이 발표된 날은 《지구가 깨지기 시작한 날》이라고 평하였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변인성명이 발표되자 기고만장하여 반공화국압살책동에 열을 올리던 미,일,남조선당국자들은 너무도 강경한 공화국의 태도에 넋을 잃고 쑥 기여들어가고말았다.
나는 그때에야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총대의 위엄과 그 무게에 대하여 다소나마 느끼며 감탄하고 또 감탄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위력이 바로 무적의 선군총대에 있음을,어이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처럼 엄혹한 때에 공장과 농장길이 아니라 인민군부대시찰의 길에 오르시였는가 하는것을 어렴풋이나마 가늠할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는 말로만 듣고 멀리서 보기만 하던 선군의 위력을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에 안긴 지난 6년간 매일,매 시각 실지로 체험하면서 그에 대하여 확신하게 되였다.
지난해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55돐경축 열병식 및 군중시위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지축을 울리며 보무당당히 행진해나가는 선군병사들의 모습,제국주의아성을 짓뭉개버릴 무적의 위용이 뿜어져나오는 철의 열병대오,그것은 우리를 건드리는자는 지구상 그 어디에 있건 용서치 않는 선군총대의 멸적의 기상을 온 세상에 과시하는 장엄한 화폭이였다.
저 무적의 대오를 대적할 상대가 과연 어디에 있을가. 백전백승 무적의 선군대오가 있기에 공화국의 위용과 존엄은 하늘에 닿았고 온 세계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위력앞에 머리를 숙이고 평양행을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가슴뿌듯이 긍지가 차올랐다.
선군령장의 손길아래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자라난 조선인민군의 모습을 경탄속에 바라볼수록 미국의 예속하에 존엄도 운명도 무참히 롱락당하는 남조선의 현실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민족의 존엄과 위력은 국력에 정비례된다. 총대가 강한 민족은 자기의 존엄과 위력을 온 세계에 높이 떨치며 무궁번영하게 되지만 자기의 총대가 없으면 민족의 존엄도 지킬수 없고 민족의 운명도 외세의 롱락물이 되여버리고만다.
이것은 자주권이 없고 자기를 지켜줄 자위력이 없어서 민족적수치와 식민지인의 수난속에 몸부림치는 남조선인민들의 뇌리에 너무도 뚜렷이 박혀진 인식이다.
물론 외국군대가 강점하고있는 땅에서 인민들의 존엄을 생각하고 자위력에 대해 론한다는것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나는 그 땅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딴에는 무엇인가 해보려고 넋을 바치고 생을 바쳤지만 그때마다 받아안은것은 풀길없는 원한과 지울수 없는 모멸감뿐이였다.
지금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은것은 세상을 놀래운 《윤금이살해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다 아는바이지만 1992년 10월 미2사단 제20보병 5대대의 케네스 마이클이란자가 윤금이녀성을 강간하려다가 실패하자 그를 마구 란타하고는 피흘리며 죽어가는 녀성의 음부에 병을 틀어박고 홍문에 우산대를 꽂아넣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 사건이 폭로되자 동두천의 주민들은 일제히 들고일어나 《살인자를 처벌하라》,《미군은 즉각 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내걸고 격렬한 반미시위에 떨쳐나섰다. 서울과 광주를 비롯한 남조선의
곳곳에서 미국기발을 불태우고 미군을 택시에 태우는것마저 거부하는 등 반미투쟁이 광범히 벌어졌다.
그때 서울에 있던 우리도 원정대를 무어가지고 동두천에 가서 현지주민들의 시위에 합세하였으며 《윤금이 살려내라》,《미군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웨치며 투쟁을 벌렸다. 투쟁으로 한해를 보내고 투쟁으로 새해를 맞으며 우리는 미군살인범처벌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를 비양하기라도 하듯 살인자는 무죄로 석방되였고 본국으로 유유히 돌아가버리고말았다.
동두천주민들은 물론 남조선인민들모두가 여지없이 짓밟힌 자주권과 존엄을 통탄하며 땅을 치고 하늘을 원망하였다.
우리의 존엄을 지켜줄 힘은 어디에 있느냐,우리는 언제까지나 남에게 짓밟히고 유린당하며 살아야 하느냐. 《정부》는 있어도 주권은 없고 군대는 있어도 인민의 존엄과 운명을 지켜줄 자위의 총은 없는것이 이 땅의 현실,내 겨레의 비극이로구나. 그러나 어디에 가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사실 미제침략군이 《수호자》처럼 되여있는 남조선사회에서 멸시와 수모는 응당한것이였고 자기의 총대가 없는 인민이 겪어야 하는 피할수 없는 운명이였던것이다. 망국민의 처지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도 있다싶이 자주권이 짓밟히면 인간의 존엄도 인권도,민족의 자주권과 존엄도 땅바닥에 딩굴게 된다는것을 나는 그때 가슴치며 피눈물속에 절감하였다.
자기의 총대가 없으면 개별적인간의 인격도,존엄도 지킬수 없고 민족의 운명과 미래도 외세의 롱락물이 되여버리고만다.
오직 무적의 선군총대에 우리 민족의 존엄과 운명,미래가 있다.
선군이 있으면 무서울것도,못해낼것도 없으며 선군총대가 위력떨치는 한 누구도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사상과 무적의 선군총대가 있어 조국과 민족의 존엄과 운명이 굳건히 지켜지고 민족의 위력이 온 세계에 떨쳐지고있으며 선군의 기치가 펄펄 휘날리고있기에 이 땅의 평화도,통일도 있고 통일번영하는 래일의 조선도 있는것이다.
그렇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원히 승리할 선군시대에 우리 민족은 자주통일위업을 이루고 통일강성민족으로 존엄과 영예를 높이 떨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