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25일부 《로동신문》은 수령결사옹위에 한생을 바친 오진우동지의 서거 10돐에 즈음하여 론설을 실었다.
론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장 충실한 혁명전사였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가장 친근한 혁명전우,혁명동지였으며 우리 당과 인민의 충직한 아들이였던 항일혁명투사 오진우동지가 서거한 때로부터 10돐이 된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진우동지를 그처럼 아끼고 내세워주시였고 그가 조국과 인민이 기억하는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된것은 한생토록 총대를 틀어쥐고 일편단심 혁명의 수령과 령도자를 충직하게 받들어왔기때문이다.
오진우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백두의 산발들을 주름잡으며 항일혈전을 벌리던 10대의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군복을 입고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우리 혁명의 원로이며 참다운 충신의 전형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오진우동지의 혁명적생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오진우동지는 일생동안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충성다하였으며 우리 혁명무력의 강화발전과 혁명위업의 계승문제를 해결하는데서 특출한 공헌을 한 로혁명가입니다.》
오진우동지는 일제의 극악한 식민지통치로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던 주체6(1917)년 3월 8일 이국땅의 빈농가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망국노의 설음을 통절하게 느끼며 자라난 그는 일제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소년시절에 소년선봉대,반일자위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각별한 믿음에 의하여 16살에 손에 무장을 잡고 반일인민유격대에 입대한것은 열렬한 혁명가,직업적인 군인으로서의 오진우동지의 한생에서 뜻깊은 계기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와 육친적인 보살핌속에서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성장한 오진우동지는 항일무장투쟁의 전행정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대담하고 능숙하게 벌림으로써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고 조국광복위업의 승리를 이룩하는데 빛나는 공헌을 하였다.
오진우동지는 광복후 평양시와 지방의 당 및 보안기관의 책임적위치에서 사업하면서 당을 강화발전시키고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하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인민군대안의 중요한 직무들을 맡아 수행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인 혁명무력건설구상을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미제의 무력침공을 반대하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오진우동지는 인민군련합부대의 지휘관으로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관철하여 적들의 무력침공을 분쇄하고 전쟁승리를 보장하는데서 항일혁명투사의 기개를 남김없이 떨치였다.
오진우동지는 전후의 어려운 시기 당과 국가,군대의 중요한 직책에서 활동하면서 안팎의 원쑤들의 준동을 짓부시고 당과 수령을 견결히 옹호보위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을 중심으로 하는 전당,전군,전민의 정치사상적단결을 반석같이 다지고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다.
오진우동지는 주체56(1967)년부터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우리 당의 주체적인 군사로선을 관철하며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무력으로 확고히 담보하기 위하여 생애의 마지막까지 헌신적으로 사업하였다.
오늘도 우리 군대와 인민은 팔순을 가까이한 고령에도 군복을 입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믿음직하게 보좌해드리던 오진우동지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일찌기 손에 총을 잡고 일생동안 당과 수령을 무장으로 받들며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몸바쳐 투쟁해온 오진우동지는 주체84(1995)년 2월 25일 78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고결한 생애를 마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따라 혁명의 한길을 억세게 걸어온 오진우동지의 생애는 수령과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지니고 언제나 투쟁의 일선에서 총대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한 선군혁명투사의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조국의 자유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끝없이 헌신한 참다운 혁명가의 보람찬 한생이였다.
오진우동지는 혁명의 수령과 령도자에 대한 가장 진실하고 투철한 관점과 립장을 지니고 일편단심 당과 수령께 충성과 의리를 다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
혁명가의 최대의 영광은 혁명의 수령을 끝까지 모시고 받드는데 있다. 위대한 수령님을 총대로 옹위하고 받드는 길에 한생을 고스란히 바치고 영광의 절정에 오른 혁명가의 전형들의 대오에 오진우동지도 서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하였던 오진우동지의 고결한 한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혁명가들중에 오진우동지와 같이 간고한 혁명의 길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보좌하는데 자기의 한생을 다 바친 특출한 혁명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 당에 오진우동지와 같은 로혁명간부가 있었다는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을 따왔던것보다 더 귀중한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개척되고 전진하여온 조선혁명의 력사에는 수령님을 받들어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친 수많은 항일혁명투사들의 모습이 빛나게 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 한사람,한사람이 자신의 곁을 떠날 때마다 끝까지 혁명을 같이하지 못하고 먼저 떠나간데 대하여 못내 애석해하시였다.
오진우동지야말로 소년시절에 어버이수령님의 품에서 혁명의 첫 걸음을 뗀 때로부터 수령님의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장장 60여년세월 그이의 사업을 충직하게 보좌해드린 특출한 혁명가였다.
혁명의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투철한 결사옹위정신은 오진우동지가 지닌 사상정신적특질의 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오진우동지의 열화같은 충실성은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그이의 위대성을 페부로 절감하면서 뿌리내리고 억척같이 다져진 신념이였다.
오진우동지가 그처럼 흠모하여 마지 않던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주체21(1932)년 가을 왕청현 소북구에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그가 소북구아동단 지도원이라는것을 아시고는 아동단지도원이란 말이지,수고가 많겠구만라고 하시며 그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시였다.
조선과 남북만의 각지에 명성이 자자한 백두산의 청년장군이신 김일성동지를 직접 만나뵙고 걸출한 위인상에 접하게 된 오진우동지는 솟구치는 환희와 감격을 금치 못하였으며 이분이시야말로 조선인민이 그토록 갈망하던 민족의 태양이시라는 신념을 굳게 간직하게 되였다.
후날 오진우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올 때마다 가끔 홍안의 소년시절에 그이를 처음으로 뵈옵던 감격에 대하여 말씀올리면서 태양의 광휘로운 빛발을 받아안던 그날이 자기의 일생에서 영원한 좌표가 그어진 잊지 못할 날이라고 추억하군하였다.
오진우동지는 그후 손에 무장을 잡고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북봉오동전투,천교령전투,라자구전투,로흑산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면서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탁월한 령군술,숭고한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설적인 위인상을 직접 목격하고 완전히 매혹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2차북만원정시기 이름없는 신입대원의 행군을 념려하여 《도로기》를 손수 손질하여 신겨주신 이야기도 오진우동지가 수령님으로부터 받아안은 육친적사랑의 한 실례이다.
그 력사적인 나날들에 오진우동지는 조국의 운명이고 미래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권위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죽음판에라도 서슴없이 뛰여드는 투철한 수령옹위정신을 인생관으로 간직하게 되였다.
오진우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하에 진행된 전투들에서 보여준 무비의 용감성과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로선을 헐뜯는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을 반대하여 견지한 원칙적립장,항일혁명대오를 수령의 두리에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묶어세우며 광범한 반일력량을 단합시키기 위한 사업에서 발휘한 무한한 열정은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모시고 조국광복위업을 기어이 성취하려는 전사의 혁명적신념과 의지에 바탕을 두고있었다.
오진우동지는 전후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우리 당을 반대하여 음으로양으로 책동할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을 총대로 굳건히 옹위하였으며 인민군대안에 수령님의 령도체계를 확고히 수립하고 전군을 수령님의 두리에 철통같이 묶어세우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오진우동지는 다년간 인민무력부문의 중책을 지니고 사업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전략전술,독창적인 전법들을 견결히 고수하였으며 그것을 철저히 구현하여 인민군대를 명실공히 위대한 수령님의 군대,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수령의 명령지시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무조건적인 결사관철의 기풍을 떠나 충신으로서의 오진우동지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해인가 오진우동지와 자리를 같이하신 기회에 가렬한 전화의 나날에 목격하신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나는 우리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에서 만났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는 그때 동무가 수령님께서 주시는 전투명령을 받았기때문에 급히 부대로 떠나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식사도 한끼 같이하지 못하고 떠나가는것이 몹시 섭섭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수령님께서 주신 전투명령을 받고 지체함이 없이 전선으로 떠나는 동무를 보면서 수령님을 따라 혁명투쟁을 하여온 혁명투사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진우동지가 전쟁시기 앓는 몸으로 담가에 누워 들려다니면서도 적후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 관철을 위하여 사단을 지휘해나가던 사실에 대하여서도 자주 말씀하군하시였다.
오진우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단 과업을 주시면 아무리 생소한 부문이라 할지라도 지체없이 달려가군하였다. 그는 수령님께서 교육사업을 맡기시면 교육사업에 몸을 적시였고 정치사업을 하라고 하시면 정치사업에 뛰여들었으며 참모일군이 되라고 하시면 즉시 새 직무수행에 착수하였다.
오진우동지는 혁명의 수령을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받든 진짜배기혁명가였다.
그는 과묵하고 내심을 가볍게 내비치지 않는 성격이였지만 그의 가슴에서는 항상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의리심이 용암처럼 끓어번지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오진우동지는 전선에서 소환되여 병치료를 받은적이 있었다. 입원치료를 끝내고 찾아온 오진우동지를 반갑게 맞아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도 동무의 얼굴색이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아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건강한 몸이 되였으니 전선으로 보내달라고 막무가내로 간청하는 오진우동지를 바라보시면서 나야 어제나 오늘이나 사령관이 아닌가,돌심장이 아닌 이상 사령관이 앓는 사람을 전장에 내보내고 어떻게 발편잠을 자겠는가,그러니 근심말고 병원에 돌아가 병이 완쾌될 때까지 치료를 받아야 한다,전선에 나가는 문제는 그 다음에 보자고 딱 잘라 말씀하시였다.
순간 오진우동지는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최고사령관동지,사령관동지의 하해같은 사랑을 제 어찌 받아안기만 하겠습니까. 저는 건강합니다. 얼마든지 싸울수 있습니다. 부디 저의 이 소원만은…》
오진우동지는 그날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새로운 전투임무를 받고서야 방을 나섰다.
오진우동지는 이렇듯 숭고한 의리로 군인들과 인민들을 찾아 언제나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수행하여 여러 공장,기업소,농촌들과 수많은 인민군부대들을 돌아보면서 크든작든 일단 수령님께서 심려하시고 말씀하신 문제에 대하여서는 어떻게 하나 해결하기 위해 밤잠을 잊고 뛰여다니였다.
혁명가의 첫걸음도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서 시작하고 인생의 모든 영예와 행복,보람과 긍지도 그 품에서 찾으며 영광넘친 삶을 누려온 오진우동지에게 있어서 어버이수령님의 서거는 하늘이 무너진것과도 같은 청천벽력이였다. 오진우동지는 가슴찢어지는 비통함에 수령님을 목놓아부르며 오열을 터뜨리였다. 오진우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혁명전우로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곁에서 수령님의 령전을 충직하게 지켜드리면서 혁명의 수령을 끝까지 모시고 따르는 참다운 혁명가적풍모를 우리 혁명사의 갈피에 깊이 새겨넣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잘 받들어 주체혁명위업을 완수하여야 한다고 하신 수령님의 유훈을 다시금 절절히 새기였으며 심장이 고동을 멈추는 순간까지 7월의 맹세를 지켜 헌신분투하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은 오진우동지에게 있어서 삶의 전부였으며 그의 한생을 특징지을수 있는 기본징표였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그 후계자에 대한 충실성으로 이어질 때 가장 진실하고 공고한것으로 될수 있다.
오진우동지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령도자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그이와 뜻도 운명도 함께 한 충신중의 충신이였다.
혁명의 수령을 따라 간고하고도 장구한 투쟁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것처럼 티없는 충성심과 깨끗한 량심으로 혁명의 령도자를 받들고 따른것은 오진우동지의 혁명생애에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한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 금고에서 수령님과 김책동지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감동을 금치 못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사진을 보니 자신께서 언제인가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 함께 사진을 찍던 일이 생각난다고,자신께서는 그때 그와 흰 옷을 입고 흰 구두를 신고 사진을 찍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과 김책동지와의 관계는 나와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은 나와 뜻을 같이하는데서는 철저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진우동지가 서거한 다음에도 그를 잊지 못하시며 《수령님께서 김책동지를 좋아하시였던것처럼 나는 오진우동지를 좋아하였습니다. 당을 따르는 사상의 견결성에서는 오진우동지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라고 감동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오진우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믿음직한 전우로 빛나는 모습을 남긴 김책동지와 같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열화같은 충성심과 순결한 의리로 받들어모실수 있은것은 백두산시절에 벌써 장군님의 위대성을 직접 체험하였기때문이였다.
혁명의 수령을 총대로 받드는 영광스러운 항일혈전의 길에서 또 한분의 걸출한 백두산위인을 맞이한것은 오진우동지의 혁명생애에서 실로 환희롭고 뜻깊은 경사였다.
항일혁명투사들모두가 엄혹한 혁명의 시련속에서도 날을 따라 몰라보게 성장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습에서 창창한 조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힘을 얻던 나날에 오진우동지는 장군님께서 계시는 귀틀집에 찾아가 추운 겨울날 나무도 패주고 불도 때면서 방을 덥혀주군하였다.
어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오진우동지와 어쩌다 자신에게 차례진 한공기의 쌀밥도 꼭같이 나누어 드시면서 살뜰한 정을 나누시였다. 한없이 뜨거운 인정미와 함께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사람들을 끝없이 경탄시키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천출위인상을 걸음걸음 뵈오면서 오진우동지는 장군님이시야말로 백두산이 받들어올린 미래의 찬란한 태양이심을 심장으로 절감하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만이 아니였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전당,전군에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체계를 수립하는 일대 열풍을 일으키실 때에도,그이를 모시고 공장과 농장,인민군부대를 돌아볼 때에도,그이께서 집필하신 로작이나 그이의 손길아래 태여난 명작,명곡들에 접하면서도 조선혁명앞에 펼쳐진 크나큰 행운을 누구보다 깊이 느끼며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받들어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철석같은 신념을 간직한 오진우동지였다.
혁명의 령도자에 대한 오진우동지의 절대불변의 충실성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로,우리 당의 령도자로 받들어모시는데서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주체63(1974)년 2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전원회의장에서 오진우동지가 여러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경애하는 장군님을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우리 당수뇌부에 높이 모실것을 정중히 제의한것은 오랜 력사적과정을 통하여 그의 가슴속에 억척같이 자리잡은 장군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과 충성의 신념의 분출이였다. 전체 참가자들의 일치한 지지찬동속에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리 당의 수뇌부에 모시던 전원회의장의 열광적인 환호성은 세월의 언덕을 넘어 오늘도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을 세차게 격동시키고있다.
혁명위업계승문제해결을 력사앞에 지닌 자신들의 숭고한 임무로 자각하고 조선혁명이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의 한길로 대를 이어 끝까지 이어져나가도록 하는데 고결한 충정을 바친 바로 여기에 오진우동지를 비롯한 항일혁명투사들의 사상적견결성과 혁명적원칙성,인간적성실성이 있으며 우리 당과 혁명앞에 쌓은 특출한 공적이 있다.
오진우동지는 령도자에 대한 불타는 충성의 열정을 안고 김일,림춘추동지들과 함께 고심참담한 노력을 기울여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영명한 김정일동지》,《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영명한 김정일동지께 충성다하자》라는 부피두터운 책자를 두권이나 저술함으로써 우리 당과 혁명대오안에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체계를 확고히 세우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인민군대안에 장군님의 령군체계를 철저히 수립하고 전군이 장군님의 두리에 일심단결하도록 하기 위하여 커다란 심혈을 바쳤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당과 혁명의 밝은 전도가 약속되여있다는것을 철석의 신념으로 간직한 오진우동지에게 있어서 장군님의 안녕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였으며 혁명의 지상의 요구였다. 오진우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건강을 지켜드리는데서 참으로 지극하였으며 장군님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였다.
료양치료를 받고있던 오진우동지가 군인들과 함께 잡은 산천어를 가지고 불편한 몸으로 수천리 길을 달려와 경애하는 장군님께 드린 사실이며 현지지도의 길에서 쪽잠에 드신 장군님의 안녕을 위해 자리를 뜨지 않고 곁에서 지켜드린 사실들은 령도자에 대한 그의 충성심이 얼마나 뜨거운것이였는가를 그대로 말하여준다.
오진우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받드는데서 티끌만한 사심이나 가식도 없었다.
언제인가 료양지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희귀한 남방과일을 받아안은 오진우동지는 그이께 고마움의 인사를 담은 편지를 보낸적이 있다. 즉석에서 편지를 써보내자니 편지종이도 봉투감도 없었다. 오진우동지는 쓰던 학습장에서 종이 한장을 떼내여 큼직큼직한 글씨로 편지를 썼으며 또다시 종이 한장을 떼내여 정성껏 봉투를 만들어 편지를 정히 넣었다.
편지를 받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더없이 기뻐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보라,가식이 없고 진정이 있는 사람은 편지를 써도 이렇게 쓴다,이 편지가 가식이 없다고 하는것은 편지의 봉투와 종이를 놓고서도 말할수 있다,다른 사람같으면 격식을 차릴수도 있었겠는데 이 령감은 아무런 격식도 없다,진정으로 믿는 사람에게만 이렇게 할수 있다,나는 그래서 이 령감을 혁명동지로 존경한다고 애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오진우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보다 나이가 훨씬 우인 로혁명가였지만 언제나 자신을 장군님의 전사로 생각하고 행동하였으며 일군들과 군인들이 장군님과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참다운 동지가 되도록 이끌어주었다.
한 일군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지적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새로운 초소로 떠나갈 때에도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에는 나무 한그루를 잘 키우기 위하여 꼬박 한생을 바치는 원예사도 있다고 하오.
그런데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나무모양을 잡고 곁가지를 잘라주며 풍상을 막을수 있도록 지성을 다하는 원예사처럼 동무를 당에 충실한 일군으로 키워주시기 위하여 왼심을 쓰고계신단말이요.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설사 절해고도에 서있다고 해도 그이의 이 은정만은 잊지 말기를 바라오.》
이런 충정을 지닌 오진우동지였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왕청에서부터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오진우동지가 오늘은 당을 받들어 혁명을 끝까지 완성할것을 맹세하고 자신과 함께 다니고있다고,그는 지금 자신의 가장 친근한 동지이라고 말씀하군하시였다.
오진우동지는 생의 말년까지 혁명의 령도자에 대한 충성의 자세를 변치 않았다.
주체81(1992)년 4월 25일 영웅적조선인민군창건 60돐경축 열병식장에서 주석단에 거연히 서계시는 최고사령관동지께 항일의 백전로장인 오진우동지가 사열보고를 올리던 화폭은 평범한 나날에나,준엄한 나날에나 한본새이고 령도자에 대한 충성의 길에서 첫걸음과 백걸음,천걸음과 만걸음이 자그마한 편차도 없는 충신의 참다운 자세를 군민의 가슴에 새겨주었다.
정녕 오진우동지는 두차례의 혁명전쟁과 여러 단계의 간고한 혁명과 건설의 나날에 자그마한 변심도 없는 가장 순결한 충성의 마음으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받든 우리 당의 로혁명가이며 조선혁명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충신원로이다.
오진우동지는 한생을 총을 잡고 수령과 령도자를 몸가까이 모시고 혁명하는 과정에 백두산위인들의 고매한 혁명가적풍모와 인민적인 사업방법,사업작풍을 따라배워 사업과 생활에 구현하였으며 높은 정치실무적자질을 겸비한 우리 혁명의 유능한 지휘성원이였다.
오진우동지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친숙해진 직업적인 군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대와 함께 시작되고 총대와 함께 흘러온 오진우동지의 일대기를 더듬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진우동지는 왕청에서 어렸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유격대에 들어가 일생을 수령님을 모시고 수령님과 당에 끝까지 충성을 다한 군인이였습니다.》
인민무력부장으로 사업하던 오진우동지가 어느 한 대회에 참가하였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진우동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외국의 국가수반이 어버이수령님께 저분들사이는 무슨 관계인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 질문을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과 군대와의 관계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해주시였다.
당과 군대와의 관계,이것은 오진우동지를 우리 인민군대의 원로로,대표자로 내세워주시는 백두산위인의 크나큰 믿음이며 총대를 힘있게 틀어잡고 당과 혁명위업을 무장으로 더욱 굳건히 받들어가리라는 커다란 확신과 기대의 표시였다.
한생의 거의 전부를 군인생활로 보낸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총대는 곧 조국이고 혁명이며 수령옹위라는 철의 진리를 심장으로 체득한 사람만이 이런 생을 창조할수 있다. 바로 이것으로 하여 오진우동지의 한생이 더욱 빛나며 총대와 같이 억세게 단련되고 세련된 그의 혁명가적풍모가 우리 군민이 따라배워야 할 귀중한 본보기로 되는것이다.
오진우동지는 절도가 있는 무관기질과 세련된 령군술,다방면적인 지식과 정확한 판단력을 지닌 용감하고 능숙한 군사지휘관이였다.
오진우동지는 보고를 하여도 간단명료하게 하였으며 모를것이 있으면 다시 물어보는 일은 있어도 반복보고는 절대로 하지 않는 지휘관다운 품성을 지니고있었다.
오진우동지의 뛰여난 군사지휘능력과 전투적기질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제1차진공시기 적의 배후에 상륙하여 유격전술로 적을 타격하는 전투들과 전국을 전환시키는데 기여한 제2전선적후투쟁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주체적인 유격전법을 체득한 오진우동지의 군사적재능을 뚜렷이 과시하는 마당으로 되였다.
오진우동지는 정치와 군사,외교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상당한 정도로 조예가 깊었고 특히 군사부문에서는 남달리 박식하고 판단이 정확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진우동지가 보고한 자료들은 언제나 분석적이고 정확하였으며 자신의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였다고 회고하시였다.
오진우동지는 혁명의 리익과 요구를 생명보다 귀중히 여기고 언제나 그것을 지켜 견결히 투쟁하였으며 그것을 어기는 현상과는 추호의 양보나 타협을 몰랐다.
계급적자각이 남달리 높았던 오진우동지는 안팎의 계급적원쑤들,딴꿈을 꾸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과의 싸움에서는 남달리 용맹하고 비타협적인 투사였지만 병사들과 인민들을 대하는데서는 더없이 다정하고 친근한 혁명동지였다.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로 태여나 가렬한 전투초소에서 많은 나날을 보낸 오진우동지는 언제나 병사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총기름냄새를 맡으며 침식을 같이하는것을 즐기였으며 마른일,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걸린 문제를 앞장에서 풀어나갔다. 오진우동지는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군대는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언제나 심장에 새기고 인민들과의 혈연적련계를 강화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으며 인민의 생명재산을 목숨으로 지켜싸웠다.
오진우동지는 평생 특전과 특혜를 바라지 않았으며 청렴결백한 생활을 체질화하였다.
언제인가 오진우동지는 인민군대안의 재정과 물자를 다루는 일군들을 사무실로 불러 《황금흑사심》이란 다섯글자의 뜻을 풀이해준적이 있다. 그때 오진우동지는 《어떤 사람이든 황금덩이를 눈앞에 보면 마음이 절로 시꺼매진다는 이 글뜻을 똑바로 새겨두오. 일군들은 언제나 당과 국가앞에 솔직하고 청렴결백해야 하는 법이요.》라고 말하였다.
오진우동지는 겸손하고 소박한 품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아래일군들이 저 아바이가 언제 정치를 배우고 외교를 배웠는가,현대군사과학기술에 어쩌면 그리도 막힘이 없는가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며 그 비결을 물을 때마다 동무들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곁에서 일해보는 기회를 가지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수 있다고 하면서 늘 겸손하게 말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군하였다.
소년시절에 혁명의 길에 나선 오진우동지가 조국청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특출한 혁명가로,인민의 마음속에 충신의 모습으로 영생하게 된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혜로운 보살피심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아직은 너무나도 많은것을 모르는 철부지소년이였던 오진우동지에게 조국과 혁명,총대의 참뜻을 깨우쳐주시고 그가 혁명의 길에서 발을 헛디딜세라 걸음걸음 손잡아이끌어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때 불순한자들이 오진우동지의 정치생활을 헐뜯으며 모해하려 할 때에도 그를 보증하시며 더 큰 믿음을 안겨주시였으며 백두산시절의 사령관동지의 모습으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그의 생활과 건강을 따뜻이 돌봐주시였다.
오진우동지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지적믿음과 사랑은 참으로 각별한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진우동지의 생일 60돐에는 그에게 뜻깊은 《잔치상》을 차려주시여 청춘의 활력을 부어주시였고 인민무력부장은 앞으로 몇십년은 더 버티고앉아있어야 한다고,자신의 곁에 있기만 해도 힘이 된다고 하시며 그의 병치료에 늘 마음쓰시였으며 어느 한 외국방문때에는 그의 건강을 념려하여 일정까지 바꿔주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75(1986)년 9월 뜻밖의 일로 사경에 처한 오진우동지를 끝끝내 살려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열화같은 사랑과 헌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당과 혁명력사에 전설처럼 아로새겨져있다. 당과 혁명의 전반사업을 돌보시는 분망하신 속에서도 친히 병원에 나오시여 환자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의료일군들이 너무나 혹심한 환자의 상태를 놓고 선뜻 손을 쓰지 못하고있을 때에는 마음대로 칼을 대라고 하시면서 용기를 안겨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담한 결단과 뜨거운 손길이 있었기에 죽은 몸이나 다름없던 오진우동지가 다시 소생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같은 동지애에 깊이 감동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죽음의 고비에서 벗어나 자신의 앞에 다시 나선 오진우동지에게 절을 하겠으면 나에게 할것이 아니라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에게 해야 하오,조직비서에게 두귀를 쥐고 절하시오,두귀를 쥐고말이요라고 격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전우,동지로 믿고 내세워주시던 오진우동지가 서거하였을 때에는 참으로 아까운 혁명동지를 잃었다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그가 직업적인 군인이였던것만큼 국가장례와 군대례식을 합쳐 장례식을 성대히 진행하도록 가르치심을 주시고 그의 령구를 발인하기 전에 대성산혁명렬사릉에 그의 반신상을 세우도록 은정을 베푸시였으며 영결식때에는 주작봉마루에서 옷자락을 날리시며 로투사를 추모하며 오래도록 서계시였다.
참으로 오진우동지가 걸어온 혁명투쟁의 전로정은 수령과 전사,령도자와 전사사이에 믿음과 충성,사랑과 보답으로 이어진 혁명가의 참된 삶의 길이였다.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참다운 혁명가인 오진우동지는 비록 우리곁을 떠났으나 혁명의 수령과 령도자에 대한 무한한 충직성과 고결한 혁명가적풍모,조국과 혁명앞에 쌓은 커다란 업적은 오늘도 빛을 뿌리고있다.
한생토록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성다한 특출한 혁명가,충신원로인 오진우동지의 생애는 백두산총대를 억세게 틀어쥐고 선군혁명의 천만리길을 억세게 이어가는 우리 천만군민을 충성의 한길로 끝없이 고무해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총대로 결사옹위하는 길에 한생을 바친 오진우동지처럼 열혈충신,총대충신으로 삶을 빛내일 각오로 심장이 높뛰는 우리 군대와 인민이 혁명의 수뇌부두리에 일심단결되여있는 한 우리의 선군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