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기사 달력>>2005년 6월 23일기사 목록
력사학학회 남조선일본《협정》40년 《한나라당》의 친일매국행위 단죄
(평양 6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22일 매국적인 남조선일본《협정》이 체결된지 40년이 되는 날을 계기로 일제의 100년 죄악과 《한나라당》의 친일매국죄악을 폭로단죄하기 위하여 고발장을 발표하였다.

고발장은 다음과 같다.

1965년 6월 22일,매국적인 남조선일본《협정》이 조인된 때로부터 40년이 되였다.

일본이 미국의 조종밑에 남조선의 친일보수세력을 매수하여 체결한 남조선일본《협정》은 강도적인 조선강점 40여년의 죄악우에 또 하나의 죄악을 덧쌓은 제2의 《을사5조약》이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매국적인 남조선일본《협정》이 체결된지 40년이 되는 날을 계기로 일제의 100년 죄악과 《한나라당》의 친일매국죄악을 폭로단죄하기 위하여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천인공노할 일본의 100년 죄악

1905년으로부터 2005년에 이르는 지난 100년간은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의 날강도적인 침략과 략탈,학살범죄로 얼룩진 죄악의 력사이다.

조선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인 일본의 100년 죄악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은 총칼을 들이대고 《을사5조약》을 강압 날조하여 감행한 국권강탈행위이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침략의 마수를 뻗쳐왔다.

1868년 《명치유신》후 이른바 《일본의 번영과 천황국가를 위하여 무력으로 조선을 정복하여야 한다.》는 《정한론》을 정책화한 일제는 조선강점을 위하여 청일,로일전쟁을 일으키고 1905년 4월 8일 전시각료회의에서조선《보호권확립의 건》이라는 날강도적인 결정을 채택하였으며 1905년 10월 27일 각료회의에서는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데 대한 《합의》를 끝내고 《조약》 강요날자를 11월초로 정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일제는 보병과 기병,포병 등 방대한 무력을 서울에 집결시키였고 《특사》로 파견된 이또 히로부미는 고종황제앞에 《조약》 초안을 내놓고 《본안은 …단호히 움직일수 없는 확정안이니 오늘의 요는 다만 페하의 결심 여하에 달려있다. 그것을 승인하는가 안하는가 하는것은 제 마음대로이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제국정부는 이미 결심한바가 있다.그 결과는 어디에 이를지 모르며 귀국의 지위는 이 조약을 체결한것이상으로 곤난한 지경에 이르고 일층 불리한 결과를 각오해야 한다.》(《일본외교문서》38권 제1책 502페지)고 리조정부를 협박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수많은 헌병들로 조선왕궁을 포위하고 대신들을 총칼로 위협하였으며 《조약》 초안에 외부대신의 인장을 훔쳐다가 제멋대로 찍고 고종황제의 서명과 국새날인이 없는 강도적인 《을사5조약》을 날조해냈다.

최근 미국 뉴욕에 있는 꼴롬비아대학도서관 등에서는 1906년 고종의 수표와 함께 국새가 찍혀진 친서가 발견되였는데 거기에는 황제인 고종이 그 어느 대신에게도 《을사5조약》체결을 위임한바 없으며 일본측이 대신들을 감금한채 《조약》을 날조하였다는것, 그러므로 《조약》은 《당연무효》라는것을 폭로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1963년 유엔국제법위원회 제15기회의 특별보고자의 보고 (일명 월도크의 제2보고서)에도 《…체결 당시부터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 조약이 세계적으로 4개》인바 그중 하나가 바로 《강박과 위협》으로 얻어진 《을사5조약》이라고 지적하였다.(《유엔국제법위원회 년례보고서》1963년 197페지)

일제는 이처럼 20세기 초엽 《을사5조약》은 물론 《정미7조약》, 조선일본《합병조약》 등 수많은 비법적인 《조약》들을 날조하여 세계적으로 공인된 주권국가인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국가적침략범죄를 감행하였다.

《을사5조약》을 날조하고 무력으로 조선을 타고앉은 일제는 악독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야만적인 조선인학살과 민족말살,강제련행,강도적인 략탈로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불행을 들씌웠다.

일제는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떠벌이면서 전국도처에 살인폭압기구들을 설치하고 10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대중적으로 학살하였다.

반일의병과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학살, 1919년 3.1인민봉기자들에 대한야수적인 대량학살,1920년의 간도대《토벌》, 1923년 일본 간또대지진때의 대학살, 광주학생운동탄압, 6.10만세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집단학살 등은 일본의 조선인학살정책에 의해 조직적으로 감행된 대표적인 만행들이다.

또한 일제는 1930년 이후 우리 인민의 항일무장투쟁을 탄압하기 위하여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략탈하라》는 《3광정책》을 실시하면서 수십만명의 애국적인민들을 닥치는대로 검거,투옥,학살하였다.

가장 야수적인 방법으로 조선인대학살만행을 감행한 일제의 죄악은 천인공노한것이였지만 조선민족말살범죄 또한 악랄하고 간교하기 이를데 없는것이였다.

일제는 강점초기부터 조선민족말살을 노리고 자기 나라보다 3,000년이상이나 앞선 조선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없애버리기 위해 력사와 관련한 서적들을 20만부 이상이나 불태워버리고 단군조선을 비롯한 고조선의 력사를 잘라버린 《조선사》를 조작하였다. 뿐아니라 《동조동근》,《내선일체》를 떠들며 《황국신민화》책동을 강행하면서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1940년부터는 《창씨개명》의 미명하에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마저 강제로 빼앗았는가 하면 조선민족의 기를 꺾기 위해 백두산을 비롯한 우리 나라의 명산들에 쇠말뚝을 박고 조선의 국호와 바다 이름,지명들을 제멋대로 표기하거나 없애버리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그리고 고구려의 벽화무덤을 비롯하여 백제,신라,가야의 고분들과 평양의 락랑고분들,동명왕릉과 왕건왕릉,공민왕릉 등 수백기에 달하는 우리 나라의 민족문화유물들을 파괴하고 도굴하였으며 귀중한 문화유물들을 훔쳐가는 강도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지금까지 력사유물과 문화재에 대한 외래침략자들의 파괴략탈행위에 대해 적지 않은 비화들이 전해지고있지만 일제의 조선문화재 파괴략탈만행과 같은 날강도적인 범죄행위는 일찌기 없었다.

일제는 조선 강점기간 《징병령》,《특별지원병령》,《학도병령》,《징용령》 등 각종 악법들을 조작하고 840만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하여 침략전쟁의 대포밥으로 내몰고 일본 본토와 만주,기타 강점지역들에서 가혹한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강제련행,노예화범죄행위 가운데서도 절정을 이룬것은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화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을 여지없이 유린한것이다.

정부와 군부의 직접적인 조직,지휘밑에 녀성들을 강제련행하여 군《위안부》로 만들고 전쟁판에 끌고다니면서 성노예생활을 강요하고 무참히 학살한 것과 같은 반인륜적범죄행위를 감행한 나라는 일본외에 그 어느 나라도 없다.

일제는 조선 강점기간 우리 나라의 귀중한 자연부원을 닥치는대로 빼앗아갔으며 우리 인민에 대한 전대미문의 략탈을 감행하였다.

일제가 조선에서 략탈해간 자원은 근 400t의 금을 비롯하여 1,798만t의 철과 3,000만㎥의 목재, 3,900만t의 쌀 등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다. 일제는 심지어 놋그릇과 숟가락,저가락을 비롯한 각종 놋제품들과 문손잡이에 이르기까지의 쇠붙이는 물론 녀성들의 머리비녀와 가락지까지 깡그리 빼앗아갔다.

참으로 일제침략자들이 감행한 조선인학살과 민족말살책동, 강제련행과 략탈만행이야말로 타민족에 대한 차별과 멸시, 학대와 살해, 침략과 략탈을 생존방식으로 하고있는 일본만이 감행할수 있는 특대형범죄행위이다.

8.15후에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미제를 등에 업고 조선에 대한 재침책동을 끊임없이 벌렸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할 야망을 품고 미국의 아시아지배전략에 편승하여 반공화국침략책동의 돌격대로 나섰으며 특히 1950년대 미제가 도발한 조선전쟁에 적극 가담하였다.

조선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관방장관 오끼자끼는 일본이 《점령군(미군)의 명령에 의하여 (조선전선에서) 전투행위 및 기타에 종사하는것은 당연하다》고 떠벌이였으며 7월 4일에 내각회의를 소집한 일본정부는 《미군의 군사행동에 …협력할 방침》을 토의하고 일본의 조선전쟁참가를 결정한데 이어 재빨리 국내의 경제군사적잠재력을 조선전선에 총동원할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따라 전쟁 초기에 벌써 일본은 미군의 군사기지,보급기지,수리기지로 개편되여 미군의 침략전쟁행위를 적극 지원하였다.수많은 구일본군 장교들이 미군참모부에서 미군의 작전을 도왔고 길 안내도 하였으며 《의용군》,《지원대》 등의 명목으로 보병으로부터 비행사,해병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군종,병종의 전투원들로 조선전선에 파견되였다.

또한 인천과 원산앞바다에 소해정들을 파견하여 미군의 상륙작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기뢰해제작업과 수로안내를 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시기 《731부대》에서 개발한 세균무기까지 미군에 넘겨주고 그것을 써먹도록 현지에서 도와주었다. 이와 함께 일본정부는 《특별조달청》이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미군병참사령부에서 요구하는 군수품과 무기류들을 생산보장하였으며 자동차,렬차,선박,비행기 등 운수수단을 총동원하여 군수물자를 직접 조선전선에 수송하였고 파손된 미군 땅크와 함선,자동차, 포 등 군사장비들을 수리하였다.

전쟁개시후 1년동안에 일본이 미군에 생산공급한 군용자동차만도 1만 385대나 되였으며 조선전선에서 파괴된 미군자동차의 80%,땅크의 38%, 각종 포의 68%, 저격무기의 70%를 수리해주었다.(미국신문《뉴욕 헤랄드 트리뷴》1952.6.7)

하기에 당시 일본주재 미국대사였던 머피는 《일본사람들은 놀라운 속도로 그들의 4개의 섬을 하나의 거대한 보급창고로 전변시켰다.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조선전쟁을 할수 없었을것이다》라고 하였고 맥아더는 《그들은 전략상,경제상,금융상 그리고 어떠한 한도에서 정신적으로 우리의 진영에 속하고있다》고 하면서 일본의 적극적인 전쟁가담과 협력에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였다. (《더글라스 맥아더》1952년 176페지)

이처럼 일본은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여 미군과 함께 조선인민을 살해하고 평화적인 마을과 도시, 공장과 농촌, 학교와 병원을 재더미로 만든 특등범죄국이였다.

조선전쟁이 미제의 참패로 끝난후에도 일본반동들은 38°선을 압록강까지 올려미는것이 《일본외교의 의무》라고 하면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재침책동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다. 일본은 미국의 조종밑에 1960년대에는 《세개 화살작전》,《달리는 황소작전》,《날아가는 룡작전》계획을 작성하고 미국이 조선전쟁을 일으키는 경우 《자위대》의 전쟁참가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절차들을 규정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일본의 조선전쟁참가를 위한 종합적인 작전계획을, 1980년대에는 《전수방위전략》을 작성하고 전쟁에 대비한 전략전술적인 조치들을 계획적으로 취하여왔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미싸일위협》과 《지하핵시설의혹》을 떠들면서 우리의 《미싸일발사기지》를 공습하기 위한 연구와 모의시험까지 하였다.

일본반동들은 우리 공화국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하자 그것을 《탄도미싸일발사》라고 우겨대면서 1990년대 말에는 조선반도에서의 군사활동령역을 보다 확대할것을 노린 《주변유사시법》을, 2003년에는 실제상 전시법인 《유사시관련법》을 제정하였으며 최근에는 일본의 전쟁참가를 합법화하는 전쟁헌법제정책동까지 벌리고있다.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죄악은 조일간의 경제,문화교류와 인사래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탄압을 악랄하게 감행한데서도 집중적으로 발로되였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부터 조선과의 《정치분야의 교류는 허용하지 않는다》는것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공화국의 고위인사들에 대해서는 입국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조일 두 나라 인민들의 인사교류에 대해서도 극력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조일평양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도 일본반동들은 우리의 《핵문제》,《미싸일문제》를 꺼들고 이미전에 해결을 본 《랍치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가짜유골》소동을 일으키고 《외환법개정안》과 《특정선박입항금지법안》 등 《대북경제제재법안》들을 련이어 조작하면서 반공화국소동에 광분하였다.

침략력사부정과 력사교과서외곡은 일본의 파렴치성과 교활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지금 일본반동들은 《과거지사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무라이식《력사관》을 주장하면서 과거 일제의 조선침략력사와 범죄행위를 《합리화》,《정당화》해 나서고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검정통과시킨 력사교과서들에서는 일제의 조선강점을 그 무슨 《조약》에 의한 《합법적인 합병》으로, 조선과 중국침략을 《대륙에 대한 진출》로, 침략전쟁을 정의의 《해방전쟁》으로 외곡서술하였는가 하면 조선인강제련행사실과 그로 인해 당한 조선민족의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지어 일제의 식민지통치가 《조선의 근대화를 도왔》고 일제시대 《창씨개명》이 《조선인들의 희망》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강제《징용》도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한것처럼 외곡서술하였다. 더우기 일본반동들은 저들의 그릇된 범죄행위를 단죄규탄하는 우리 민족과 국제사회의 정당한 항의에 대해 《일본의 내정에 대한 간섭》이라고 하면서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고있다.

일본의 파렴치한 력사외곡책동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군국주의사상을 주입시켜 또다시 해외침략에로 내몰기 위한 재침계획의 한 고리이다.

일본반동들의 독도강탈책동 역시 도수를 넘어서고있다.

독도가 6세기 초부터 우리 민족이 점유하고 효과적으로 경영하여온 조선의 고유한 령토라는것은 이미 력사적으로,법률적으로 완전히 확증되였으며 일본의 중세 막부정부와 근대 명치정부도 그것을 인정하였고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본은 정부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지휘밑에 파렴치하게도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면서 독도강탈책동을 집요하게 벌리고있다.

지난해 11월 관방장관 호소다를 비롯한 정부고위관리들은 독도침탈을 획책하는 시마네현의회에 공식적으로 참가하였으며 여기서 외상 가와구찌 요리꼬는 《기념축사》를 통해 독도가 《일본 령토》라고 하면서 정부가 이에 적극 관여할 의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 놓았다.

정부의 사촉밑에 시마네현의회는 올해에 《다께시마(독도)의 날》제정조례안이라는것을 통과시켰고 일본 함정들과 비행기들이 독도주변에까지 출동하였으며 일본 《외교청서》에 독도를 《일본 령토》라고 서술하는 날강도적인 행위를 감행하였다.

북과 남에서 일본의 독도강탈행위에 대한 분노가 용암처럼 분출하던 지난 5월에도 문부과학상 나까야마 나리아끼는 도꾜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도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다께시마는 일본 령토라는 사실을 확실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는 망발을 서슴없이 내뱉았다.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며 조선에 대한 식민지강점의 력사를 재연하려는 침략행위이다.

참으로 일제가 지난 100년간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은 천추만대를 두고도 다 씻을수 없는것이다.

《한나라당》의 친일매국행위

일본은 오늘도 의연 우리 민족의 백년숙적으로 남아있다.그러나 우리 민족 성원들속에는 일본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비호두둔하면서 일본과의 이른바 《친선》에 대하여 떠들며 굽신거리는 역적의 무리들도 있다. 그것이 바로 《한나라당》 족속들이다.

친일매국은 《한나라당》이 조상때부터 물려받은 체질적특성으로 되고있다.

《한나라당》의 전신들인 리승만역도의 《자유당》, 《유신》독재자의 《민주공화당》, 《5공》때의 《민주정의당》, 《6공》때의 《민주자유당》, 김영삼역도의 《신한국당》 등이 한 짓이 바로 그것을 잘 보여준다.

특히 14년동안이나 끌어오던 남조선일본《회담》을 서둘러 매듭짓고 매국적인 남조선일본《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나라와 민족의 리익을 송두리채 팔아먹은 《민주공화당》의 친일매국죄악은 천추를 두고 저주를 받을 특대형범죄이다.

원래 5.16군사쿠데타로 4.19인민봉기의 열매를 짓밟고 《정권》을 강탈한 군사독재집단의 《민주공화당》은 구성부터가 일제에게 복무한 《특등일본인》들로 이루어졌었다.

친일매국적기질이 골수에까지 들어찬 자들이 《정권》을 강탈하였으니 그들이 무슨 짓부터 하였겠는가 하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것이였다.

남조선일본《협정》체결 당시 《민주공화당》일당은 《일본에 의탁하지 않고서는 래일이 없다. 제2의 리완용이 되고 매국노라는 말을 듣는 한이 있어도 협정은 꼭 체결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면서 남조선인민들의 반대와 강력한 항의투쟁을 총칼로 탄압하는 한편 협상탁에서는 물론 뒤골방에서까지 검은 인맥을 통해 추악한 흥정놀음을 벌리였다.

김종필을 비롯한 친일분자들은 협상과정에 응당 우선시해야 할 일제의 강제《합병》에 대한 원천무효와 식민지통치에 대한 사죄보상은 요구조차 하지 않았으며 겨우 5억US$의 《경제협력자금》을 구걸하는것으로 배상청구를 포기하는 굴종행위를 하였다. 지어 일본이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면서 《차라리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강경하게 나오자 협상결렬을 《우려》해 미국 상전에게 빌붙는 추악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남조선일본《협정》체결 당시 《외무부차관》이였던 정일영은 《협상은 사실상 미국이 연출했다고 보면 된다. 일본측이 버티여 협상이 막히면 주일미국대사관에 가서 얘기하고 그러면 미국이 <알았다. 우리가 얘기하겠다>고 하면서 해결해주군 했다.》고 실토했다.

이밖에도 친일매국의 무리들은 략탈문화재반환문제에서도 일본이 반환을 거부하자 미국의 배후조종밑에 극히 일부 문화재에 한하여 그것도 《기증》형식으로 반납한다는 《합의》로 락착지어 버렸다.

최근 남조선의 《외교통상부》가 공개한 《청구권관계자료》와 《청구권위원회 회의록》,《청구권관계회의보고》와 훈령 등 5건의 남조선일본《협정》관련문서들에서도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공화당》이 강행한 남조선일본《회담》 전 과정이 대일굴종외교로 일관되였으며 철저한 반민족적,반력사적행위였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남조선이 일본과 맺으려는 《협정》이 너무나도 매국적이고 굴욕적이였기때문에 친일매국노들조차도 내외의 항의규탄이 두려워 《조인》을 앞두고 일본상전들을 찾아가 《국민들속에 반일감정이 높아지고있으므로 일본이 먼저 손을 내밀어 국민이 납득할만한 성의를 표시》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추태를 부렸는가 하면 매국문서가 《가조인》된 후 남조선 언론계도 《협정》전문을 공개하지 못하고 많은 부분을 잘라서 보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남조선일본《협정》의 굴욕성과 매국배족적성격은 《협정》의 매 조항마다에서 그대로 드러나고있다.

우선 《협정》 서문은 1910년 조선일본《합병조약》과 일맥상통한 내용으로 일관되여있다.

《량국간의 특수하고 친밀한 관계를 돌이켜보면서 상호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원히 확보하려고 하는바…》 이렇게 시작된 날강도적인 과거의 조약과 《량국국민간의 관계의 력사적배경을 고려하여 량국의 상호 복지와 공동의 리익을 증진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라고 별반 차이가 없이 서두를 뗀 남조선일본《협정》에는 우리 나라에 대한 일본의 교활하고 변함없는 침략적야심과 친일매국노들의 비굴한 노예적근성이 뚜렷하게 표현되여 있다.

남조선일본《협정》의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조선일본《합병조약》이 조인된 날) 또는 그 이전에 조선과 일본사이에 체결된 조약과 협정들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제함으로써 일제에 의해 날조된 《을사5조약》과 조선일본《합병조약》을 비롯한 모든 구《조약》과 《협정》들이 원천적으로 불법,무효인것이 아니라 1965년 이전에는 《유효》하였다는것, 즉 과거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가 《합법적》이였다는것을 인정하고 명문화하였다. 그리하여 이 《협정》은 결국 일본이 죄많은 과거를 청산할 법적의무가 없다는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면죄부》로 되였다.

남조선일본《협정》을 통해 드러난 친일매국노들의 죄악가운데서 엄중시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통치와 민족분렬정책의 산물인 남조선《정부》를 매국적인 《협정》문 제3조에 《조선반도에 있어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밝혀줄것을 일본에 애걸하여 성사시킨것이다.

그것은 침략자들에게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팔아주는 대가로 저들의 파쑈적,반통일적통치에 《정통성》의 외피를 씌워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해보려는 비렬한 술책이였으며 미일상전들의 뒤받침밑에 어떻게 해서나 《승공 통일》야망을 실현해보려는 악랄한 반공화국대결책동의 산물이였다.

40여년간에 걸치는 일제식민지통치의 대가를 어느것 하나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일본의 천인공노할 죄악을 덮어준 매국문서, 상전의 고자세와 주구의 저자세로 일관된 남조선일본《협정》의 체결이야말로 굴욕과 치욕의 수치스러운 을사년력사의 반복이였으며 그 《협정》은 말그대로 《제2을사조약》이였다.

하기에 당시 저들의 흉악한 요구를 실현하고 《협정》문건에 서명한 일본측 대표 시이나는 《1905년의 <조약> 이래 60년만에 다시 돌아온 이해 을사년을 영광의 을사년으로 하자》고 상전다운 기염을 토했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필은 수치를 느낄 대신 그에 맞장구를 치면서 《을사년에 리완용은 영광의 력사를 열어놓았다면 우리의 협정은 향후 백년의 영광의 력사를 열것이다.》라는 망언까지 늘어놓았다.

《을사5조약》의 재판인 남조선일본《협정》은 일본에 아부굴종한 친일역적들의 사대매국적죄악을 폭로하는 고발장으로서 오늘도 온 겨레를 분노로 끓게 하고있다.

《한나라당》의 다른 한 조상인 《민주정의당》역적들은 5.18폭거와 광주대학살로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자마자 일본과 남조선은 같은 《령토》이고 《운명공동체》이며 군사분계선이 일본의 《방위선》이라는 랑설을 퍼뜨리면서 《의원외교》와 남조선일본《친선》에 미친듯이 열을 올렸다.

1982년 12월 도꾜에서 열린 남조선일본《의원련맹합동총회》에 남조선측 《의원》대표단 성원으로 참가한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라는 자는 일본총리와 외상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과거 일제의 《내선일체》론의 재판인 《운명공동체론》을 념불처럼 외워대면서 그 대가로 40억US$의 《경제협력》을 애걸하는 추태를 부리였다.

1983년 일본총리 나까소네를 서울에 끌어들인 전두환과 《민주정의당》의 친일파 족속들은 40억US$의 차관을 받기 위해 청와대뒤골방에서 기생향연을 차려놓고 일본군가도 서슴없이 불러 대는 너절한 굴종외교를 벌리였다.

전두환역적은 1984년의 일본행각기간 일본왕의 형식적인 사죄발언을 가지고 《이제는 과거의 책임을 가지고 추궁할 마음이 없으며 또한 그럴 여유도 없다》느니, 《조선민족이 과거 침략과 전화에 의한 고난과 시련을 수많이 겪어왔는데 구태여 일본에 대해서만 책임을 따지겠는가》고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쓸개빠진 발언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늘어놓았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조상인 《민주자유당》도 대일굴종과 일본섬기기에서는 첫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으며 반공화국고립압살정책에서는 앞장서 뛰여다니였다.

이 친일매국의 무리들은 《북방정책》의 간판을 내걸고 우리 공화국을 대외적으로 고립,질식시키기 위해 대일《청탁외교》에 총력을 집중하면서 《북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조일관계개선은 불리》하며 《조일국교정상화는 북의 태도변화를 유도하는 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조일관계정상화를 필사적으로 방해해나섰으며 1991년에 일본상전과 마주앉은 로태우는 우리에 대한 《개혁》,《개방》과 《핵사찰》을 운운하며 조일관계정상화회담은 물론 일본의 전후 보상에 대한 요구에도 응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하였다.

뿐아니라 미국과 일본사이의 군사작전협의기구로 조직되였던 《일미안보협력소위원회》의 이름을 미국,일본,남조선《3개국 지역안보정책협의회》로 바꾸도록 간청하고 일본과 함께 우리를 침략하기 위한 군사적결탁책동을 본격화해나섰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시기에 이르러 대일굴종과 친일매국행위는 극도에 달하였다.

한때 남조선일본《협정》에 도장을 찍은 김종필을 두고 《을사5적》보다 더한 친일매국노라고 비난했던 김영삼역도는 일본총리를 초청해다 놓고 매국적인 남조선일본관계에 관한 《기본조약》을 재확인했을뿐아니라 일본의 과거죄행을 《백지화》하는 사대매국행위를 저질렀으며 일본의 력사위조사실이 드러난것을 계기로 과거청산을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있을 때에는 일본총리의 《력사인식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면서 일제의 죄행을 감싸주고 일정에 오른 일본의 과거청산문제를 력사의 망각속에 묻어버리려고 하였다.

이 친일매국무리들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에서도 아시아의 피해국들은 물론 일본내에서도 전면적인 진상공개와 사죄,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울려나오고있는 때에 일본군《위안부》들에 대한 보상을 완전포기하고 이 문제를 《백지화》했으며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남조선일본관계》를 확립하자고 하면서 일본에 대한 추종정책에 더욱 발벗고나섰다.

이뿐이 아니다.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역도가 《우리에게는 이어받을 문화도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도 없다》고 민족을 모독하면서 남조선문화를 《국적없는 문화》, 일본과의 《병합문화》로 만들려고 미쳐날뛰였으니 오죽하면 남조선잡지 《신동아》까지도 《결국 남조선은 서양화,일본화가 되고말것이다》고 개탄하면서 역도의 죄악을 비난해 나섰겠는가.

오늘의 《한나라당》도 친일매국적체질에서 달라진것이란 하나도 없다.

《한나라당》을 조작하고 《총재》의 감투를 썼던 리회창은 역적가문의 피줄을 타고나 일본에 혈서로 《충성》을 맹약했던 애비처럼 특등친일주구로서의 기질을 남김없이 발휘하고 친일행위를 일삼은 민족반역자이다.

2002년 3월 초 일본을 찾아간 리회창은 일본상전들에게 허리를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추다 못해 《공동력사연구》니 뭐니 하면서 일본의 력사외곡죄악을 감싸주는 추악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본상전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조선반도의 안정을 위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얼빠진 소리를 줴치고도 부족하여 그 누구의 《대량살상무기의 위협해소가 남북협력의 핵심》이라고 떠들면서 일본과의 공모결탁으로 동족을 압살할 흉계까지 꾸미였다.

《한나라당》의 친일굴종행위는 온 민족의 일본반동들에 대한 적개심이 활화산처럼 터져오르고있는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친일인명사전출판》과 《친일매국노명단》발표를 비롯하여 과거사진상조사에로 흐르는 대세의 흐름을 막아보려고 온갖 모지름을 다 쓰는 《한나라당》패거리들은 이것은 《야당대표 죽이기》이고 《국론분렬》이라고 하면서 생떼를 쓰다 못해 나중에는 《색갈론》의 감투를 씌워 그 무슨 《친북용공》도 《조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악의에 찬 나발을 불어댔다.

《한나라당》이 력사적으로 감행하여온 친일매국죄악을 덮어버리려고 발버둥치고있지만 그것을 무마하기에는 저지른 죄악이 너무도 엄청나고 추악하여 그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참으로 《한나라당》과 같은 민족의 피와 넋이 없는 제2의 《을사5적》집단이 우리 민족안에 있다는것은 겨레의 수치가 아닐수 없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끼친 100년 죄악과 《한나라당》의 친일매국죄행은 깨끗이 청산되여야 한다.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는 거족적인 반일,반외세투쟁으로 일제의 조선강점 100년이 되는 올해를 일제의 죄악을 총결산하는 력사적심판의 해로 만들어야 하며 제2의 《을사5적》의 무리들을 단호히 제거해버려야 할것이다.

주체94(2005)년 6월 22일
평양(끝)


Copyright (C) 2005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