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13일부 《로동신문》에는 《조선인민의 피로 얼룩진 군국주의적경제부활》이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론설이 실렸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일본의 경제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가뜩이나 파괴되였던 일본경제는 대전의 종결과 동시에 일본을 타고앉은 미국의 손탁에 주물리우면서 더욱 한심해졌다. 일본경제는 패망후 5년이 지나도록 1937년수준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결과 일본에서는 실업,식량난,주택난,물가폭등 등으로 하여 대다수 주민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당시 일본은 미국이 던져주는 《구제원조》를 받아먹으며 겨우 살아갔다.
그러던 일본경제의 배가죽이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작스레 기름지기 시작하였다. 허수아비처럼 서있던 공장굴뚝들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수많은 일터들이 거리를 헤매던 실업자들을 서로마다 불러들였다.
그러면 죽어가던 일본경제가 어떻게 되여 급속히 되살아나 비대해지고 나아가서 일본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지위에까지 올라설수 있었는가. 여기에는 그 어떤 비밀도,수수께끼도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일관계를 정상화하는데서 해결되여야 할 기본문제는 두 나라사이에 엉켜있는 불미스러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는것입니다. 옹근 한세기에 걸쳐 쌓이고쌓인 원한의 력사를 그대로 덮어두고서는 국교정상화도 실현될수 없고 선린우호관계도 수립될수 없습니다.》
일본은 아직도 지난날 우리 인민에게 끼친 죄악을 청산하지 않고있다. 일본의 죄악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군사강점통치기간에 있은것만을 념두에 두는것이 아니다. 미제가 감행한 지난 조선전쟁시기에 일본이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도 마땅히 계산되여야 한다.
일본경제는 바로 지난 조선전쟁시기에 조선인민의 피의 대가로 부활될수 있었다.
미국이 조선전쟁을 도발하자 누구보다 기뻐한것은 일본이였다. 조선전쟁이야말로 일본에 있어서 죽어가던 경제를 부활시키고 재침의 발톱을 벼릴수 있게 한 절호의 기회로 되였다. 그리하여 일본의 모든것이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수행에 총동원되였다.
일본은 자기 땅을 통채로 미제의 병기창,보급기지로 전변시켰다.
일본은 조선전쟁기간 정부기구로서 《특수조달청》이라는것을 내오고 독점재벌들의 총련합체인 《일본경제인련합체》안에 《방위생산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 기구들을 통하여 미제가 요구하는 군수품의 생산과 수리를 적극 보장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은 공업을 전시체계로 개편하고 국내의 모든 공장들을 전시생산에 동원하였다.
망해가던 일본의 군수독점체들이 제일 큰 덕을 보았다. 재생의 기회를 얻었던것이다.
미제는 조선전쟁에 필요한 수많은 무기와 군수품을 조선반도와 가까운 일본에서 보장받기 위하여 대량적인 《특수주문》들을 하였다. 그 《특수주문》들은 전적으로 일본독점체들에 돌려졌다.
그리하여 일본의 군수공장들에서는 화물자동차,포,땅크,비행기,탄약,통신기자재,연료용탕크 지어는 위장망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전쟁물자들이 대대적으로 쏟아져나왔다. 조선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본의 전시물자생산은 더욱 늘어났다.
일본의 군수독점체들은 막대한 리득을 보게 되였다.
1952년 6월에 이르러 군수품생산에 근 400개의 대규모공장들이 참가하였다. 그후 그 수는 860여개로 대폭 늘어났다.
조선전쟁기간에 돈주머니를 불구는데 환장이 된 일본독점체들은 미국이 요구하는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만들어냈다. 미제가 조선전쟁에서 사용한 세균무기의 대부분과 나팜탄의 거의 전부는 일본에서 생산된것이였다.
세균무기와 나팜탄 등 각종 살인무기들에 의해 우리 인민이 참기 어려운 고통과 희생을 당하고있을 때 일본독점체들은 《신풍》(신이 도와준 호경기)을 맞았다고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미제침략군의 군수품들을 생산보장하는데 더욱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일본의 중소기업들의 돈주머니도 불어났다. 제약공장,옷공장으로부터 시작해서 파철을 수집하는 작은 기업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크고작은 모든 공장,기업체들이 조선전쟁기간에 미제침략군의 각종 군수품들을 생산보장해주는 대가로 뭉치돈을 벌었다.
병기수리를 통해서도 일본의 공장,기업체들은 부유해졌다. 당시 미국과 남조선출판물들이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조선전쟁의 첫 1년간의 전투들에서 우리 인민군대에 의해 파괴된 미제침략군 차량의 80%, 땅크의 30%, 각종 포의 68%, 저격무기의 70%가 일본의 공장,기업체들에서 수리되였다.
하기에 당시 미국의 출판물들까지도 《1951-1953년기간에 일본은 조선전쟁을 위한 하나의 공장으로 되였다.》고 평하였다.
미제의 보급기지,후방기지로서의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은 조선전쟁에서의 미제의 패배를 지연시키고 우리 인민에 대한 살륙만행을 더욱 조장시키였다. 이것은 극악한 범죄행위였다.
일본은 조선전쟁에 동원된 미제의 수송수요도 도맡아 보장해주었다.
당시 일본반동정부는 미국의 훈령에 따라 미제침략군의 군수물자수송을 보장해주기 위해 해운조직들과 그 수단들까지 동원시켰다. 《일본해운조합》은 미제침략군과 그들의 작전물자들을 조선현지에까지 날라다주었다.
미제가 조선전쟁을 도발한 해인 1950년에 일본이 철도로 수송해준 미제침략군의 화물량은 1936년에 수송된 일본군용화물량보다 10배이상이나 더 많았다.
1951년에는 그것이 태평양전쟁시기 일제침략군의 화물수송량과 거의 비슷하였다. 여기에 일본선박과 항공기에 의한 해상 및 공중수송의 몫까지 합치면 일본이 날라다준 미제침략군의 화물량은 헤아릴수 없이 방대하였다.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의 기초는 이렇게 닦아졌다.
일본은 미제의 조선전쟁행위에 경제물질적으로 적극 협력한 《덕》으로 크게 횡재하고 군국주의적경제부활의 도약대를 구축하였던것이다. 만일 미제가 도발한 조선전쟁이 없었더라면 일본의 경제력은 오늘과 같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일본이 지난 조선전쟁기간 미제로부터 받은 군사주문품의 총액수는 25억US$이상에 달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을것이다.
일본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미제는 3년간의 조선전쟁을 간신히 치를수 있었다. 또 그로 하여 우리 인민은 력사에 류례없는 참혹한 고통과 불행,재난을 당하게 되였다. 이렇게 일본은 패망후에도 우리 인민앞에 씻을수 없는 커다란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이 지난 조선전쟁시기에 우리 인민에게 끼친 피해와 죄악은 절대로 스쳐보낼수 없다. 일본은 마땅히 이에 대해서도 성근하게 사죄하고 보상하여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