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8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하루빨리 청산되여야 할 일본의 과거범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이 그릇된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는것은 남을 위해서보다도 자기자신을 위하여 필요한것입니다.》
일본은 지난날 오랜 기간에 걸쳐 끈질기게 조선에 대한 침략과 략탈을 감행하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한 범죄국이다. 지난날 일본이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죄행을 꼽자면 끝이 없다.
근 반세기에 걸치는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통치는 지구상에서 조선을 영영 없애기 위한 민족말살책동이였다.
일제의 과거죄행에서 가장 큰 죄행은 우리 인민을 야수적으로 학살한것이다.일제는 식민지통치기간 조선인학살만행을 야수적으로 감행하였다. 초대조선《총독》 데라우찌는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지껄였다. 인간백정 일제살인귀들에 의하여 살해된 조선사람들의 수는 100여만명이나 된다.
일제는 식민지통치기간 840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랍치하여 중세기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였거나 전쟁대포밥으로 써먹었다.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강제련행,랍치한 일제는 죽음의 고역장들에서 그들에게 노예제적규률을 적용하였는가 하면 가혹한 장시간의 로동을 강요하면서 무참히 혹사하였다. 로동보호시설이 전혀 없는 군사시설물공사장이나 탄광,광산과 언제,철도건설장 등 가장 위험하고 고된 부문에는 언제나 조선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일하는 동물》,《말하는 도구》로 취급당하였다. 일본에서 발견된 1944~1945년 자료에는 당시 일본전국에 있었던 549개소의 군사시설물공사장들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사람들이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다고 지적되여있다. 일제의 이전 동부군 첩보사관이였던 한 일본인은 극비밀리에 건설을 진행하던 《마쯔시로대본영》지하방공호에서 1945년 4월부터 패전할 때까지의 사이에 일제에게 강제련행,랍치된 약 2,000명의 조선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이운 채로 가혹한 강제로동을 강요당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일제의 조선인강제로동범죄는 그 방법에 있어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건이였다. 일제는 초보적인 로동조건조차 마련해주지 않고 가혹한 로동강도를 강요하면서 조선사람들을 소와 말처럼 혹사하였다. 강제로동으로 고역을 당하는 조선사람들의 참혹한 모습을 목격한 일본사람 쇼지 노베는 《조선사람들은 노예들이였다. 그에 비하면 죄인은 도리여 편안하였다. 밀차를 두명이 미는데 뒤에는 몽둥이를 든 감독이 따라와서 뛰지 않으면 매질을 했다. 나는 말을 가지고있었는데 그 말도 그렇게까지는 부리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일제는 조금이라도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게 행동하는 조선사람들에게는 뺨후려갈기기, 야구방망이로 치기, 각목을 끼우고 꿇어앉히기, 바께쯔를 든채 오래동안 서있기 등의 비인간적인 벌칙들을 적용하였다.
일제의 극악무도한 죄행에서 특대형반인륜적범죄는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화한것이다. 일제는 조선녀성들을 강제련행,랍치,유괴하여 침략군의 성노예로 만들었으며 저들의 추악한 죄행을 은페하기 위하여 그들 거의 모두를 학살하였다. 간신히 살아난 일본군《위안부》들도 불구의 몸이 되고말았다. 이것은 일제살인귀와 같은 흉악한 인간백정이 아니고서는 할수 없는 몸서리치는 죄악이였다. 일제가 감행한 일본군《위안부》범죄는 력사에 류례없는 최대의 조직적 및 제도적인 반인륜적범죄였다.
이뿐이 아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우수성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략탈하여 조선민족의 넋을 뽑아버리려고 미쳐날뛰였다.
단군릉에 대한 일제의 야만적인 도굴,파괴행위는 오늘도 우리 인민의 분노를 자아내고있다. 일제는 단군릉을 파헤치고 무덤칸천정돌을 제낀 다음 유물을 략탈하기 위하여 관을 마스고 지어 유골까지 마구 헤쳐버렸다. 일제의 대대적인 왕릉도굴만행으로 인하여 고려의 력대 왕과 왕족의 릉들이 무참히 파괴되였다. 고려 24대왕 원종의 소릉을 비롯하여 34대로 이어진 고려왕들의 분묘들이 1910년대에 이르러 일제에 의하여 단 1기도 남지 않고 모조리 도굴당하였다. 《리조실록》과 일제가 발간한 《고적조사보고》에 올라있는것만 보아도 1905년에는 고려 15대왕과 20대왕의 릉이 도굴당하였고 (《고종실록》 권46, 광무9년 11월 4일 조,권45, 광무9년 3월 2일 조) 1906년에는 고려태조릉을 비롯하여 6기의 왕릉이 도굴당하였으며 (《고종실록》 권47, 광무10년 6월 17일 조, 10월 15일 조) 1907년에는 2기의 왕릉이 (《고종실록》 권48, 광무11년 4월 17일 조), 1910년과 1911~1912년에는 각각 1기씩의 왕릉이 (《대정5년도 고적조사보고》 1918년판 363,388페지) 도굴당하였다.
일제악한들은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공민왕릉도 파괴,도굴하였다. 일제는 헌병,경찰 등 수십명으로 구성된 도굴단을 조작하고 폭약까지 리용하여 공민왕릉을 파괴하고 수많은 유물들을 략탈하여 10여대의 달구지로 실어갔다. 일제는 왕릉뿐아니라 각이한 시대의 각종 고분들도 모조리 파헤치고 수많은 유물들을 략탈하여갔다. 락랑고분에 대한 일제의 도굴만행이 그것을 증명해주고있다. 1920년대에 일제의 도굴만행으로 파괴된 락랑고분은 일본어용학자들이 실토한것만 해도 약 1,000기에 달한다. 오죽했으면 평양에서 기자생활을 한 일본인이 1934년에 발표한 글에서 《당시 평양에 살던 일본인치고 락랑고분에서 나온 옛 거울이나 질그릇과 같은것을 가지고있지 않으면 머저리취급을 당하였다》고 썼겠는가.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일제의 고분도굴만행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일제의 왕릉,고분도굴은 조선의 력사와 문화전통을 송두리채 없애버리기 위한 악랄한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일환이였다. 우리 인민이 창조하고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수십만점의 귀중한 국보 및 문화재들을 략탈하여간 일제는 유구한 우리 나라의 력사도 제 마음대로 칼질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일제가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발간한 어느 한 출판물에는 우리 나라의 5,000년 력사에서 3,000년간의 력사가 뭉청 잘리우고 그 나머지력사자료들도 모두 외곡날조되여 서술되였다고 한다. 이것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조선민족의 혈통과 명맥을 끊어버리려는 목적밑에 감행된 범죄행위였다. 일제야말로 가장 극악한 민족문화파괴자,략탈자일뿐아니라 력사위조자이다. 하기에 일본의 한 학자까지도 《일본국보라고 세계만방에 자랑하고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다 그 미를 칭찬하고있는 작품의 거의 모두가 대체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인가. 그중에서도 국보중의 국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될 거의 모두가 실로 조선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이는 력사가들도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말과 글,성과 이름까지 강제로 빼앗고 고유한 민족적풍습마저 없애버리려고 하였으며 우리 나라의 막대한 자연부원과 생산물을 깡그리 빼앗아갔다. 력사에는 식민지나라들에 대한 외래침략자들의 착취와 략탈,탄압행위가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지만 일제와 같이 다른 나라와 인민의 자연부원과 재산을 깡그리 빼앗다 못해 성과 이름,말과 글까지 빼앗으려고 피눈이 되여 날뛴 식민주의자들을 알지 못한다.
이상의 자료는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수많은 범죄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야말로 우리 인민에게 백년,천년이 가도 아물수 없는 뼈아픈 원한의 상처를 남긴 철천지원쑤이다.
우리 인민은 과거 일제가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한시도 잊지 않고있으며 반드시 결산할 의지에 넘쳐있다.
일본은 우리 인민의 분노의 감정과 의지를 똑바로 보고 하루빨리 죄악의 과거를 청산하여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