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에서 3.1인민봉기가 있은 때로부터 87년이 되였다.
20세기 초 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한 일제의 야만적인 무단통치로 말미암아 쌓이고쌓인 민족적울분과 사무친 원한은 마침내 주체8(1919)년 3월 1일 전민족적반일항쟁으로 폭발하였다.
3.1인민봉기는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독립만세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하여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장대재에 있던 학교운동장에서는 수천명의 군중이 지켜보는가운데 한 청년학생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랑독하고 조선은 독립국가라는것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이날 서울에서도 반일시위투쟁이 일어났는데 그 수는 수십만명에 이르렀다.
총독 하세가와는 무력을 동원하여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서울거리는 삽시간에 피바다로 변하였다. 시위군중은 앞대렬이 쓰러지면 뒤대렬이 그자리를 메우며 앞으로 전진하였다. 나어린 한 녀학생은 국기를 들었던 바른팔이 놈들의 칼에 잘리자 왼손에 국기를 바꿔쥐고 왼팔마저 떨어져 더는 움직일수 없는 순간까지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만세를 불러 원쑤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봉기의 불길은 계속 확대되여 마침내 전국의 13개 도에 번져졌다.
점차 폭동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 봉기에는 5월말까지만 하여도 200여만명의 각계층 인민들이 합류하였다.
12월까지 전국각지에서 일어난 시위와 폭동은 3,200여회나 된다.
거의 1년동안이나 계속된 반일인민봉기의 전기간 10여만명에 달하는 시위자들이 일제군경들의 총칼에 쓰러졌다. 그리고 5월 31일까지 국내에서만도 약 4만 6,700명의 애국적인민들이 체포투옥되였다.
일제의 야수적인 탄압으로 실패로 끝난 3.1인민봉기는 조선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에게 무장한 원쑤들과는 조직적인 무장투쟁으로 맞서야 한다는 피의 교훈을 남기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