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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혁명의 성지 백두대지의 전변
(평양 6월 3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 답사로정을 개척하신 때로부터 50년이 되였다.

주체45(1956)년 6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조직진행하신 백두산일대혁명전적지들에 대한 첫 답사행군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룩하신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만대에 빛내여갈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시대앞에 엄숙히 선언한 장거였으며 백두밀림에서 시작된 조선혁명의 명맥을 억세게 이어나가는데서 심원한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사변이였다.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 답사로정이 개척된후 50년간 경애하는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과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사가 집대성되여있는 량강도일대가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으로 훌륭히 꾸려지고 백두산일대에 대한 답사가 전당적,전사회적으로 광범히 진행되여 온 나라가 백두의 행군길을 굳건히 이어나가게 되였다.

백두대지의 반세기는 주체위업의 시원이 열린 혁명의 성지를 태양민족의 만년재보로 빛내인 위대한 전변의 력사로서 백두의 혁명전통을 빛나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우리 당 정책의 정당성과 령도의 현명성, 그 거대한 생활력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위대한 계승,불멸의 령도

1950년대 중엽 안팎의 원쑤들의 준동으로 하여 우리 혁명의 정세는 매우 준엄하였다.

이 엄중한 난국을 뚫고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며 계승발전시키는것은 주체혁명위업의 성패와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로 제기되였다.

천리혜안의 통찰력과 백두의 담력을 지니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의 혁명전통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 답사로정을 개척할 대용단을 내리시였으며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로 조직한 첫 행군대오를 이끄시고 주체45(1956)년 6월 5일부터 백두산일대에로의 력사적인 행군을 단행하심으로써 10대의 그 시절에 벌써 혁명의 장래운명을 좌우하는 중대사를 수행하시였다.

이 백두의 행군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숭엄하고 정중하게 모시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을 밝혀주시고 혁명의 수령을 높이 받드는 투철한 자세와 립장을 확립해주신것을 비롯하여 조선혁명을 수령중심,수령옹위의 가장 정확한 궤도우에 올려세우는 특출한 공적을 쌓으시였다.

보천보와 중흥등판,삼지연림산마을과 리명수 등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백두산에로의 답사로정을 열어나가시던 400여리 행군길의 곳곳마다에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어버이수령님의 혁명력사가 깃들어있는 혁명전적지를 잘 꾸리도록 하시고 혁명의 성산 백두산의 력사적지위와 사회주의리상촌건설의 휘황한 앞길도 밝혀주시면서 주체의 혈통을 굳건히 이어나갈 철석의 의지로 가슴불태우시던 백두산장군의 숭고한 뜻이 자욱자욱 어리여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때로부터 량강도를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으로 꾸리기 위하여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지난 50년간 위대한 장군님께서 량강도를 찾으신 회수는 근 40차례나 된다.

주체52(1963)년 8월 백두산에 오르시여 주봉을 《장군봉》으로 부르도록 해주시고 혁명전적지들을 전면적으로 발굴하도록 하시였으며 청봉숙영지와 리명수,삼지연의 답사숙영소들을 찾으시면서 혁명유적,유물보존과 답사를 통한 교양에서 나서는 문제들도 밝혀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가르치심은 혁명사적사업에서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지도밑에 주체56(1967)년 6월 4일에 건립된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은 주체의 혁명전통을 결사옹호보위하시려는 그이의 투철한 혁명적신념과 숭고한 혁명적수령관이 낳은 위대한 창조물이였다.

량강도혁명사적사업을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심화발전시키기 위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만도 주체57(1968)년 7월부터 주체61(1972)년까지 10차례나 찾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7(1968)년 7월 량강도를 현지지도하시면서 《배움의 천리길》답사의 첫 길을 열어주시고 고전적로작 《혁명전적지를 잘 꾸리자》를 발표하시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건설에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지도적지침을 마련해주시였다.

주체60(1971)년 8월과 9월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백두대지를 밟으시며 혁명의 성지를 만년대계로 꾸리실 방도를 무르익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70년대 중엽에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건설의 거세찬 불길을 지펴주시였으며 이 사업을 진두에서 이끄시였다.

이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보천보혁명전적지와 포평,신파혁명사적지건설을 지도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최상의 수준에서 모실데 대한 문제로부터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를 원상원위치에 사적내용에 맞게 꾸릴데 대한 문제, 혁명박물관,혁명사적관의 진렬전시와 혁명사적 보존,관리사업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명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65(1976)년 7월 4일 삼지연을 찾으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위치를 잡아주시고 대기념비건설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신것을 비롯하여 무려 200여차례의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대기념비형성과 설계로부터 구도와 형상,시공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혁명사적발굴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75(1986)년 8월 소백수골에서 밀영자리를 찾아보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드시여 대규모의 백두산혁명전적지조사발굴대를 조직해주시고 백두산지구의 비밀근거지들을 전면적으로 조사발굴하도록 필요한 온갖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주체77(1988)년 8월 경애하는 장군님의 백두산지구현지지도는 이 일대 밀영들의 원상복구에서 혁명사적건설의 원칙적요구를 철저히 구현하고 구호나무를 비롯한 혁명유적,유물들을 영구보존하며 백두산지구자연을 보호하고 답사도로포장도 잘하여 백두산혁명전적지를 더 훌륭히 꾸리는데서 강령적지침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량강도령도실록에는 백두산지상궤도식삭도건설과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에 대한 새로운 답사운영체계를 확립하도록 하시고 답사숙영각건설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주체78(1989)년 3월, 주체79(1990)년 6월과 국사봉혁명전적지를 보시며 구호나무를 통한 교양사업을 잘하도록 가르쳐주신 주체87(1998)년 10월의 사적도 빛나고있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주체89(2000)년 3월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들의 사업을 현지지도하신것은 백두대지를 혁명의 성지답게 더 훌륭히 꾸리는데서 일대 전환적계기였다.

그해 6월 18일 백두산지구건설에 대한 강령적말씀을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건설을 전당적,전국가적으로 진행하도록 하시는 한편 주체91(2002)년 10월과 올해 3월에도 삼지연군사업을 현지지도하신것을 비롯하여 혁명의 성지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일찌기 14살나이에 주체위업을 빛나게 계승완성할 원대한 뜻을 안으시고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행군길을 몸소 열어주시였으며 년대와 세기를 이어 백두산지구건설에 끝없는 심혈을 바쳐오신 불멸의 령도에 의하여 혁명전통계승발전의 영광스러운 년대기가 우리 당과 조국력사에 찬연히 빛나게 되였다.

백두산민족의 만년재보

지난 50년동안 백두산지구를 혁명의 성지답게 꾸리는데서 거대한 전변이 일어났다.

혁명사적사업의 기초로 되는 혁명사적발굴고증사업에서 자랑찬 성과가 이룩되였다.

주체47(1958)년부터 청봉숙영지, 건창숙영지, 대홍단혁명전적지, 5호물동도강장소와 곤장덕휴식터, 구시물동도강장소와 같이 보천보전투와 관련한 전적지들 그리고 후창지구의 포평나루터,연포리주막집,압강려관 등 혁명사적지들이 련이어 발굴고증되였다.

1960년대에는 베개봉숙영지를 비롯한 많은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이,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신파지구에서만도 석전양복점,광선사진관 등 20여개소에 걸쳐 혁명사적들이 새로 발굴되였다.

1980년대 후반기에 항일대전의 나날 조선혁명의 책원지이고 령도의 거점일뿐아니라 백두광명성을 받들어올린 유서깊은 백두산밀영을 소백수골에서 찾아내여 원상대로 꾸린것은 혁명전통계승발전에서 특기할 일대 경사였다.

천고의 밀림속에 묻혀있던 곰산밀영과 간백산밀영,사자봉밀영,선오산밀영,압록강안련락소,소연지봉밀영을 비롯한 백두산지구의 10개 밀영이 발굴되여 원상복구되고 금창,창평,풍산비밀근거지 등 수많은 혁명사적들이 발굴고증됨으로써 백두지구는 그 면모를 더욱 찬연히 빛내이게 되였다.

혁명사적조사발굴의 나날에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원전자료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비롯하여 1,100여점의 혁명사적물이 수집되고 230개의 혁명사적건물들이 고증되였으며 360여대의 혁명적구호나무들이 발굴되였다.

특히 백두산지구 밀영들을 찾아내던 나날에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쓰신 《백두산에 장수별 떴다 백두산장수별 삼천리를 비친다》 등 200여대의 구호나무를 비롯한 3,000여점의 혁명유적,유물들이 발굴됨으로써 온 나라 인민들을 크게 격동시켰다.

혁명사적발굴고증사업이 적극 진척되는데 맞게 백두지구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를 꾸리는 사업이 힘있게 벌어졌다.

주체73(1984)년 11월에 유화 《보천보의 홰불》에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영상이 보천보혁명전적지에 동상으로 훌륭히 형상된것을 비롯하여 포평,신파 등지에 경애하는 수령님과 백두산녀장군의 동상들이 혁명사적내용에 맞게 건립되였다.

백두의 혁명전통을 길이 전하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포평혁명사적탑, 삼지연대기념비,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이 불멸의 대기념비로 솟아오르고 백두산밀영에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송시비와 명제비가, 백두산마루에 사적비가 건립된것을 비롯하여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에 360여개의 혁명사적기념비가 일떠섰다.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에 따라 주체77(1988)년 11월 백두산밀영의 봉우리에 《정일봉》글발을, 주체81(1992)년 9월 백두산의 향도봉에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이라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필글발을 아로새긴것은 백두대지의 성스러움을 한껏 더해주었다.

삼지연혁명전적지가 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꾸려지고 건창,베개봉숙영지, 대홍단과 신사동혁명전적지의 40여개 대상에 7,500여㎡에 달하는 혁명사적들이 원상원위치에 건설되였으며 보천보와 포평,신파 등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이 력사주의적원칙에서 훌륭히 꾸려졌다.

삼지연혁명사적관이 설계로부터 건설과정,내부진렬에 이르기까지 주체적으로 새롭게 꾸려진것을 비롯하여 혁명박물관,혁명사적관 건설과 진렬전시사업에서 혁명적전환이 일어났다.

혁명사적보존사업도 현실적조건에 맞게 개선강화되였다.

1970년대 후반기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에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기 위한 사업을 통하여 동상을 원색으로 보존하는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였으며 혁명사적대기념비들의 보존과 관리사업이 보다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게 되였다.

주체67(1978)년 청봉숙영지의 구호나무들을 자연의 변화와 피해로부터 영구보존하기 위한 사업이 성과적으로 완성되고 다음해 5월 혁명의 만년재보를 지키는 피뢰침들이 숙영지의 밀림우에 세워졌으며 도안의 혁명전적지와 숙영지주변에 3,000여m의 산불막이선이 이루어졌다.

370여개의 영구보존함이 완성되고 영구보존콤퓨터조종실과 같은 현대적인 설비와 장치물들이 마련되여 720여점의 혁명사적물을 안전하게 보존할수 있게 되였으며 혁명유적,유물을 비롯한 170여개의 혁명적재보들을 력사주의적원칙에서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백두대지를 사회주의선경으로 전변시키기 위한 우리 당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새 세기에 들어와 백두산밑 밀림속의 《도시》들에 5,000여세대의 살림집들이 건설되거나 개건보수되였다.

백두산지구에 혁명전통교양에 적극 이바지할 백두관이 특색있게 솟아났으며 천지원,삼지연문화회관.삼지연학생소년궁전,베개봉국수집,백두산지구체육촌 등 연건축면적이 25만 5,700여㎡에 달하는 210여개 대상의 체육,문화 및 공공건물이 새롭게 일떠섰다.

지난 5년간 190여만그루의 나무를 심은것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에 210여만㎡의 원림과 11만여㎡의 잔디밭,2만여㎡의 꽃밭이 조성되고 15만 5,000여㎡의 교양마당이 형성되여 성지의 풍치와 숭엄함을 한층 돋구어주고있다.

답사자들을 위하여 정교한 백두산천지화강석돌계단과 43만 7,500여개의 다듬돌로 포장된 백두산정점도로,백두산혁명전적지 밀영들과 숙영지들에 생겨난 7,100여㎡의 독특한 나무블로크도로 등 20여만㎡에 달하는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도로가 새로 건설되였다.

위대한 당의 령도에 의하여 성스러운 백두대지에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혁명의 만년재보들이 가득찬 혁명전통교양의 위력한 거점들이 도처에 수많이 일떠선것은 조선민족의 영광이며 긍지이다.

백두대지에 굽이치는 일심의 대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열어주신 백두의 행군길을 따라 답사자들의 대오가 혁명전적지들로 끝없이 물결쳤다.

종합된 자료에 의하면 지난 50년간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에 대한 답사자수는 연 6,350여만명에 이르고있다.

1950년대 말까지만 하여도 량강도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에 대한 답사로정은 혜산시에서부터 보천보,청봉과 건창,베개봉숙영지,삼지연못가에 이르는 500여리였다.

당시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이 많이 발굴되지 못하고 답사길을 비롯한 조건이 잘 갖추어지지 못하여 답사자들의 수는 한해 평균 6만명정도밖에 안되였다.

1960년대부터 혁명사적발굴고증사업이 활발해지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이 새로 꾸려져 답사지역과 참관구역이 계속 넓어졌으며 답사로정도 늘어났다.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할데 대한 당의 의도에 맞게 1970년대 중엽부터 혁명전적지답사에서 계절적제한성을 극복하고 겨울철에도 답사를 적극 진행하기 위한 혁명적인 대책이 세워졌다.

이에 따라 우리 인민은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으로 꾸려진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을 마음껏 답사하게 되였으며 답사자수는 급격히 늘어나 1960년대에 비하여 1970년대에는 6배이상으로 장성하였다.

주체63(1974)년부터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이, 주체64(1975)년부터 《광복의 천리길》답사행군이 시작되여 온 나라 학생소년들도 성스러운 답사대오의 성원이 되여 혁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준비해나갔으며 삼지연못가에 소년단답사숙영각이 일떠서고 도안의 가는곳마다에 답사시설들이 새로 꾸려져 1970년대 말부터는 소년단단체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 답사대오는 나날이 확대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70돐을 맞는 주체71(1982)년 한해동안에만 하여도 답사자수는 200여만명에 달하였다.

1980년대 후반기 백두산지구에서 백두산밀영을 비롯한 혁명사적들이 새로 수많이 발굴고증되고 원상복구되여 개영된 소식은 온 나라를 커다란 환희와 감격에 휩싸이게 하였으며 혁명의 성지를 답사하려는 각계층 근로자들의 열망은 날을 따라 높아갔다.

백두산지구 밀영들이 발굴되여 답사로정이 1,000여리로 늘어나고 답사대오가 사철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따라 주체78(1989)년 12월에 착공의 첫삽을 박은 백두산밀영답사숙영각건설이 8개월만에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된것을 비롯하여 보천보,삼지연,포평,신파,청봉,포태,무두봉,신사동 등 곳곳에 수많은 답사숙영소들과 편의봉사시설들이 특색있게 일떠섰다.

그리하여 1980년대에만 하여도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 답사자수는 2,200여만명에 달하였다.

특히 백두산밀영이 개영된 주체76(1987)년 2월 11일 하루동안에만도 4,000여명의 인민군군인들과 각계층 근로자들,청소년학생들이 이곳을 방문하였으며 그후 2년동안에는 2,160명의 삼지연군청소년스키답사행군대를 비롯하여 근 40만명의 답사자들이 혁명의 성지를 찾았다.

이 나날 답사자들은 60여만그루의 나무와 꽃나무들을 가져다 백두산밀영과 그 주변에 정성껏 심었다.

주체78(1989)년 2월에는 전국당선전일군답사행군대가 정일봉으로부터 장군봉,장군봉으로부터 정일봉 그리고 선오산지구,곰산지구,압록강안지구 등 새로 발굴된 혁명전적지들을 답사하였으며 그해 8월에는 정일봉에로의 소년답사행군대가,주체81(1992)년 2월에는 량강도청년들로 무어진 일심단결답사행군대가 백두산밀영을 방문하는 등 각계층 답사대오의 흐름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 사계절 그칠줄 몰랐다.

백두산3대장군의 불멸의 혁명력사와 더불어 빛나는 백두산에로의 답사자들은 날을 따라 늘어나 지난 50년간 1,200여만명에 달하고있다.

이것은 백두산이 자연이 낳은 명산이기전에 주체혁명의 억센 뿌리가 내린 혁명의 성산, 반만년 민족사와 우리 조국의 장엄한 기상이 어린 조종의 산으로 만인을 매혹시키고있음을 뚜렷이 증시하는것으로 된다.

우리 시대의 혁명가라면 누구나 백두산을 알고 백두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고 조선인민군 백두산지구혁명전적지 답사행군대와 전국청년전위들의 답사행군대가 여러차례에 걸쳐 량강도일대를 들썩하게 하며 항일의 전구들을 답사하고 백두산에 오른것을 비롯하여 백두산답사자들은 해마다 수십만명을 헤아리고있다.

백두산을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사는 이 대오에는 직맹원들,농근맹원들,녀맹원들의 답사행군대,각도 답사행군대,대학생답사행군대 등 각계층 군중들과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비전향장기수들도 들어있다.

특히 주체90(2001)년 1월 1일 강추위와 눈보라를 헤치며 백두산에 올라 21세기의 장엄한 첫 해돋이를 부감하며 뜻깊은 《동지애의 노래》모임을 진행하는 우리 청년전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리였다.

이처럼 온 나라 천만군민이 백두산을 끊임없이 찾으며 체득한 백두의 혁명정신은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에도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만난을 이겨내며 선군혁명의 한길에서 백승을 떨칠수 있게 한 사상정신적인 힘의 원천으로 되였다.

지난 50년간 태양민족의 자랑인 백두산을 비롯하여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을 참관한 해외동포는 21만여명,외국인은 12만여명에 달한다.

주체79(1990)년 조국해방기념일을 맞으며 해내외의 수많은 각계층 동포들이 백두산에 올라 조국통일촉진 백두-한나대행진출정식을 가지였으며 이러한 통일행사는 그후에도 계속되였다.

부산에서 있은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와 제주도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의 개막을 선포하며 오른 성화들도 백두산에서 채화되였다.

백두산으로 오르는 민족성원들가운데는 총련의 여러 대표단,방문단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의 해외동포들도 있었고 남조선언론사대표단과 2001년민족통일대축전 남측대표단 성원들,제주도민방문단 등 수많은 남녘의 동포들도 있었다.

주체91(2002)년 2월 백두산밀영지구에서 성대히 개막된 《21세기 태양맞이모임》참가자들과 주체94(2005)년 8월에 진행된 백두산위인칭송모임 참가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외국의 벗들도 백두산밀영고향집을 방문하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참관하였으며 슬기로운 조선민족의 억센 기상인양 거연히 솟아있는 백두산정에도 올라 백두대지의 장엄함에 경탄을 표시하였다.

정녕 년대를 이어 만민이 끝없이 찾고 찾는 백두지구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은 백두산3대장군의 위인상과 항일의 영광찬란한 혁명전통,조선민족의 강인담대한 기상과 고결한 넋을 후손만대에 전하는 주체조선의 크나큰 자랑으로 되고있다.

혁명의 앞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백두성지에 억센 뿌리를 둔 주체의 혈통이 줄기차게 이어져 우리 혁명대오의 순결성과 불패성이 백배해지고 선군조선의 미래가 창창하기에 온 나라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은 필승의 락관에 넘쳐 사회주의수호,조국번영의 위대한 새 력사를 펼쳐나가고있다.

주체의 붉은기높이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길을 개척하시고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을 마련하여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은 백두대지의 전변의 반세기와 더불어 만대에 빛날것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당의 령도따라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선군혁명천만리길을 신심드높이 가고 또 갈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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