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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보상대책위 대를 이어 과거청산 기어이-박영심《위안부》서거
(평양 8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 일본군《위안부》 및 강제련행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은 14일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지난 8월 7일 평안남도 강서군에 살고있던 일본군성노예피해자 박영심이 일제에 대한 피맺힌 원한을 풀지 못한채 8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아마 여러 출판물들을 통해 만삭이 된 몸을 산비탈에 기대고 맥없이 서있는 녀성을 비롯하여 땀과 먼지에 절은 4명의 조선인《위안부》들이 찍힌 사진을 많이 보아왔을것이다.

바로 사진의 그 임신한 《위안부》가 박영심피해자이다.

1921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여난 그는 1939년 8월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일본인순사의 말에 속히워 중국 남경의 《리제항위안소》에 끌려가 일본군성노예의 고역살이를 시작하게 되였다.

《리제항위안소》에서 3년동안 고역을 치른 그는 일본군의 전선이 남방으로 확대됨에 따라 먄마의 양곤과 중국 운남성 송산으로 끌려다니며 총폭탄이 튀는 속에서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던중 1944년 9월 송산을 점령한 《운남원정군》(중미련합군)에 포로되여 겨우 살아나게 되였다.

박영심은 이에 대하여 지난 2000년 도꾜에서 진행된 《녀성국제전범법정》에서 명백히 증언하였으며 미국립공문서관에는 그의 포로심문기록이 그대로 보관되여있다.

뿐아니라 2003년 11월 우리 나라와 중국,일본의 활동가들로 무어진 공동조사단이 박영심과 함께 중국의 남경과 운남성을 방문하여 그가 끌려다닌 《위안소》건물과 그 자리를 확인하였으며 당시 박영심을 구원한 중국인 리정조를 만나 그때의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이 박영심의 피해사실은 론박할수 없는 증빙자료들과 증인들로 립증된 일본군성노예범죄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였으며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에게 단 한마디의 사죄도 한푼의 보상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대로 피해자에게 고뇌와 울분을 더해주어 건강의 파괴를 초래하였으며 그의 생명을 앗아간 근본요인으로 되였다.

오늘 이 시각에도 박영심뿐아니라 여러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이 끝없는 정신육체적고통과 불명예의 나락에 자신들을 몰아넣은 일본, 너무도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수치조차 모르는 일본을 한없이 저주하며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가고있다.

20만명의 일본군《위안부》들에게 인간이하의 치욕과 고통을 강요하고도 그 죄과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들을 모독하고 우롱하는 일본의 처사는 한생을 고통속에 모대겨온 그들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괴롭히고있다.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듯이 지금 일본정부는 저들의 반인륜적과거범죄의 산 증견자들인 피해자들이 모두 사망하게 되면 과거청산의 책임도 저절로 사라지게 되리라고 타산하고 시간을 끌기 위해 집요하게 책동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오산이다.

우리 조선인민은 모두가 일제에 의한 피해자이며 유가족들이다.

우리는 대를 이어가면서라도 장장 40여년동안 일제의 중세기적인 군사파쑈통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강요당한 그 모든 인적,물적,정신적피해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낼것이며 일본이 패망한지 60여년이 지나도록 과거청산의 책임을 뒤전에 밀어놓고 극심한 반공화국소동으로 우리 인민의 존엄과 리익을 침해한데 대하여 똑똑히 계산할것이다.

일본정부는 과거청산을 회피해보려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을 버리고 자기의 모든 중대인권유린범죄를 성근히 반성하고 명백히 밝힌데 기초하여 하루빨리 그 청산에 나서야 하며 살아있는 피해자들뿐아니라 이미 사망한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까지도 철저히 보상하여야 할것이다.

주체95(2006)년 8월 14일
평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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