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17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족은 15세기말엽에 《조보》라는 신문을 만들어내였다.
《조보》라는 이름은 조정에서 내는 신문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였다.
《중종실록》38권의 중종15년(1520년) 3월 갑인일기록에서는 신문 《조보》의 운영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 밝히고있다.
《조보》는 창간당시부터 일간지였으나 1536년에 나온 이딸리아신문 《베네찌야 가제프》는 비정기신문이였으며 17세기에 나온 영국의 《위클리 뉴스》, 프랑스의 《가제프》 등은 모두 주간지였다.
유럽에서는 1660년에 이르러서야 첫 일간지가 나왔다.
《조보》는 국왕의 명령과 지시,당면정책에 대한 선비나 관리들의 의견, 관리들의 인사문제, 국왕에게 올리는 수도와 지방의 각종 보고서, 희귀한 사건들이나 특이한 자연현상에 대한 기사 등을 편집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조보》의 너비는 35㎝이고 길이는 이보다 길었으나 기사의 량에 따라 규격이 정해졌으므로 일정하지 않았다.
왕에게 올리는 일체 문건을 주관한 승정원이 신문에 낼 자료들을 선택하여 산하기관인 조보소에 내려보내면 여기에서는 그 내용을 편집하여 중앙과 지방의 각 관청서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매일 배포된 《조보》는 봉건지배계급들에게 당시의 정세와 상식,사건을 알려줌으로써 봉건정치에 대한 관심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고종때에 이르기까지 중단없이 나온 《조보》는 1895년 2월부터 《관보》라는 이름으로 계속 발행되였다.
세계최초의 신문들중의 하나인 《조보》를 통해서도 조선민족의 슬기와 지혜를 엿볼수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