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1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6일부 《로동신문》은 《민족교육의 화원을 마련해준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이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글을 실었다.
올해는 총련애국운동의 년대기에 빛나는 자욱이 아로새겨진 뜻깊은 해이다.
얼마전 총련은 온 동포사회의 커다란 관심속에 력사적인 재일조선인중등교육실시 60돐을 성대히 기념하였다. 이 뜻깊은 날을 맞으며 절세의 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민족교육이 걸어온 자랑찬 로정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는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가슴속마다에서는 민족교육의 찬란한 앞길을 열어주시여 애국위업의 만년토대를 마련해주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세차게 불타올랐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해외에서 사는 동포들을 더 생각하시고 걱정하시는 뜨거운 동포애의 정으로 재일동포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그들의 운명을 보살펴주시였으며 동포들에게 온갖 배려를 다 돌려주시였습니다.》
재일조선인운동의 력사는 곧 민족교육이 찬란히 개화발전해온 력사라고 말할수 있다. 해방직후 이역땅에서 민족재생의 날을 맞이한 재일동포들은 희열에 넘쳐 존엄높은 삶을 누릴 신심에 넘쳐있었으며 그로부터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배워주려는 열망으로 가슴불태웠다. 이것은 지난날 나라가 없던탓에 자기의 말과 글, 성과 이름마저 빼앗기고 이역땅에서 피눈물나는 식민지노예살이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동포들이 자녀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어 자주독립국가의 어엿한 역군으로 내세우려는 애국적열의의 분출이였다. 그 소원과 열의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으나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이러한 때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문제를 그들의 운명과 관련되는 근본문제로 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극진한 관심과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재일동포들은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며 지혜있는 사람은 지혜를 내여 우리 학교를 세우자!》라는 구호밑에 학교건설사업을 전동포적인 운동으로 힘있게 벌리였다.그리하여 주체37(1948)년 그때 벌써 민족교육은 541개의 초등학교와 9개의 중학교, 36개의 고등학교에 1,300여명의 교원들과 6만여명의 학생을 망라한 위력한 토대를 갖추게 되였다. 하지만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사업은 걸음걸음 커다란 난관과 장애에 부딪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재일조선인들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던 일본반동들은 민족교육을 탄압말살하기 위해 갖은 파괴음모책동을 다하였다. 원래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민족교육사업은 우리 동포들을 《징용》과 《징병》으로 강제로 끌어다 마소와 같이 혹사한 일본이 도의적으로 응당 책임지고 풀어야 할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우리 동포들이 자녀교육에 대한 념원을 안고 세운 조선학교들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탄압파괴하려들었다. 이런 파쑈의 광풍속에서 민족교육은 시작부터 모진 시련과 난관을 겪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사태를 꿰뚫어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들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쟁취한 민주주의적민족교육권리를 옹호고수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전체 동포대중을 민족교육권리사수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맞으며 조국을 찾아온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사업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일본반동들의 탄압을 박차고 민족교육사업을 보다 힘있게 밀고나가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관심과 보살피심은 총련결성이후 더더욱 뜨거워졌다.
나라에서 나라에서 돈을 보낼줄은
꿈결에도 꿈결에도 생각을 못했지요
…
오늘도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재일동포들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깃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을 생각하며 눈굽을 적시군 한다.총련결성직후 민족교육사업은 여러해에 걸치는 일본반동들의 가혹한 탄압책동과 사대주의자들이 끼친 해독적후과로 말미암아 어려운 상태에 있었다. 걸리는 문제도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가운데서도 제일 심각한것은 자금문제였다. 동포들이 극심한 생활난을 겪는 속에서도 술과 담배를 끊고 생계비를 절약하여 한푼두푼 모은 돈을 민족교육사업에 바쳤지만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되지 않았다. 민족교육이 존재하느냐 마느냐 하는 엄혹한 때에 바다건너 어머니조국땅에서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이 미쳐왔다.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가 펼쳐진것이다.
주체46(1957)년 1월 어느날 그해의 국가예산초안을 토의하는 내각전원회의를 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사업을 단순히 교육사업이라고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민족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민족적애국사업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 말씀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어머님께서 마련하여주신 20원의 돈을 마안산의 아동단원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신 우리 수령님의 후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비껴있었으며 행복에 웃는 자식보다 불행에 우는 자식을 더 생각하고 제 집에 끼고 사는 자식보다 집떠난 자식을 더 생각하는 친부모의 심정이 그대로 어려있었다. 이리하여 그해부터 우리 나라의 국가예산에는 《재일동포자녀교육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동서고금 그 어느 나라 재정력사에도 있어본적이 없는 새로운 예산항목이 태여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았을 때 재일동포들의 감격과 흥분은 참으로 컸다.온 동포사회가 격정의 눈물천지로 변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친어버이사랑에 감동된 재일동포들은 애국적열성을 발휘하여 우리 학교들을 더 많이 일떠세웠으며 애국운동을 우리 학교를 중심으로 더욱 힘차게 벌려나갔다. 참으로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이역땅에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대화원을 활짝 꽃피워준 은혜로운 젖줄기,위대한 사랑의 생명수였다.
총련민족교육발전의 자욱마다에는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육친적인 보살피심이 뜨겁게 어려있다. 돌이켜보면 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기울여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로고는 참으로 끝이 없었다. 때로는 집무실에서, 때로는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때로는 달리는 렬차안에서 총련민족교육이 나아갈 길을 환히 열어주시기 위하여 그토록 마음을 쓰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해마다 총련에 보내는 거액의 교육원조비에는 총련동포자녀들을 생각하시는 수령님의 자애로운 사랑이 담겨져있다고, 총련에 교육원조비를 보내는것은 총련동포자녀들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마음을 보내는것이라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련의 후대들을 키우는 일이라면 나라의 재부를 다 보내주고싶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돈을 벌었다가 이런데 쓰지 않고 어디에 쓰겠는가고, 총련에 보내는 교육원조비라면 아까울것이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절세의 위인들의 뜨거운 사랑과 세심한 보살피심이 있었기에 총련은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민주주의적민족교육체계를 정연하게 세워놓고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애국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튼튼히 키워올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람홍색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리는 민족교육의 화원들에서 자라난 새 세대들은 중앙본부로부터 분회에 이르는 총련의 각급 조직들과 애국의 여러 초소들에서 애국위업의 역군으로 활약하고있다. 하기에 세상사람들은 총련의 자랑중의 자랑은 민족교육이며 총련의 위력도 민족교육에서 나온다고 한결같이 말하고있는것이다.
정녕 총련의 민족교육을 위해 바치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은 총련의 무한한 힘이였고 더없는 영광이였으며 애국위업의 영원한 승리의 담보였다. 하기에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누구나 말한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어린 손길아래 개화만발한 민족교육이야말로 자본주의일본땅에서 우리 동포들이 민족의 대,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 민족애국운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