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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고려시기 왕궁인 대화궁터유적 새로 발굴
(평양 12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평양에서 고려시기 왕궁인 대화궁터유적이 새로 발굴되였다.

대화궁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가 12세기초 수도를 개성(당시 개경)으로부터 평양(당시 서경)으로 옮기기 위하여 건설한 왕궁이였다.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에서는 평양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 그 전통적지위 그리고 고조선,고구려와 고려의 계승관계 등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하여 지난해 3월부터 올해 8월까지의 기간에 대화궁터유적에 대한 현지조사와 전면적인 발굴사업을 진행하였다.

룡성구역 룡추1동에 위치한 대화궁터유적은 총부지면적이 수십만㎡에 달하는 매우 큰 왕궁성으로서 크게 두개의 궁전구역과 그를 둘러싼 궁성으로 이루어져있다.

제1궁전구역에서는 2개의 건물터가 발굴되였다.

그중 중심부분에 정면길이 46m,측면너비 20m의 궁전터와 마당, 둘레에 회랑터가 있는 1호건물터는 국가적인 의식과 의례행사들이 진행되던곳으로 보고있다.

제1궁전구역에서 약 300m 떨어진곳에 제2궁전구역이 자리잡고있다.

제2궁전구역에는 중심축선을 따라 4개의 건물터가 배치되여있고 그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또 하나의 건물터가 있다.

이 구역에는 당시로서는 매우 큰 궁전건물이 자리잡고있던 건물터가 있는데 그 크기는 정면길이 71m, 측면너비 40m에 달한다.

이곳에는 좌우에 나래채가 달린 큰 규모의 중심건물이 있고 건물전체를 둘러막은 회랑,중심건물과 이어지는 회랑들이 질서있게 배치되여있으며 바닥에는 벽돌이 규모있게 깔려있고 둘레의 회랑선을 따라 배수시설이 정연하게 갖추어져있다.

중심건물의 좌우에 나래채가 달린것은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져온 우리 민족고유의 전통적인 건축형식이다.

한편 둘레가 약 3,000m인 궁성에서는 여러개의 성문터들이 확인되였다.

발굴과정에 궁전건물의 지붕에 씌웠던 수많은 기와,잡상쪼각들과 여러가지 벽돌,자기쪼각 등 유물들이 발견되였다.

기와유물들가운데는 고려시기의 전형적인 동심원무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진 막새들도 많이 포함되여있으며 글자가 새겨진것도 있다.

또한 쇠기와쪼각도 있어 매우 주목되고있다.

대화궁터유적의 건축규모와 이곳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물들은 이 궁전이 매우 장중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건축물이였음을 시사해주고있다.

이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고조선시기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발전하여온 우리 민족사의 기본흐름을 보다 명백히 밝힐수 있게 되였다.

특히 지난날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가장 강대하였던 고구려와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와의 계승관계를 론증할수 있는 또하나의 위력한 물질적자료가 마련되였다.

그리고 12세기초 고려의 높은 건축술과 우수한 문화발전면모를 실물그대로 생동하게 보여줄수 있게 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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