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6(1917)년 3월 23일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울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다.
조선국민회는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국내외의 조직들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의 하나였다.
여기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걸고 싸울 각오를 가진 로동자, 농민, 교원, 학생, 군인(독립군), 상인, 종교인, 수공업자 등 각계각층이 망라되였다.
조선국민회는 정연한 조직체계를 가지고 회원호상간에는 물론 비밀문서들에도 암호를 사용하였으며 그 이후 조직된 학교계, 비석계, 향토계와 같은 합법적인 외곽단체들로 철저히 위장하고 조직을 확대해나갔다.
그리하여 조선국민회조직은 짧은 기간에 평양과 평안남북도일대, 황해도, 전라남북도, 경기도를 비롯한 국내각지와 중국의 베이징, 상해, 길림, 무송, 림강, 장백, 관전, 단동, 화전 등 국외에까지 퍼지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1918년 11월과 1919년 7월에 청수동회의를, 1919년 8월에는 관전회의를, 1925년 8월에는 무송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국민회앞에 나서는 새로운 투쟁방침과 과업들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조직지도하시였다.
이에 따라 조선국민회는 광범한 군중을 계몽시키고 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선전선동활동을 힘있게 벌렸으며 무장활동에 필요한 자금과 무기를 마련하고 군사간부를 양성하는 사업, 무장대의 군사활동 등을 과감히 조직전개하였다.
조선국민회는 김형직선생님의 지도밑에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시키며 반일독립운동의 단결을 이룩하는데서 중추적역할을 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