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지금 조선인민은 조국해방 62돐이 되는 뜻깊은 날을 맞이하고있다.
이날을 맞으며 각계층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이 조선혁명박물관을 끊임없이 찾고있다.
참관자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한 당시의 사료들을 주의깊게 보면서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혁명업적과 항일혁명투사들이 발휘한 혁명정신을 가슴깊이 새기고있다.
조국해방을 앞둔 주체34(1945)년 8월 9일 주석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시였다고 하면서 강사 김경희는 참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있다.
간백산밀영을 최후공격작전의 출발진지로 차지하고있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대오를 늘이면서 작전계획에 예견된대로 진격하였다.
두만강연안에 집결한 부대들은 일시에 적의 국경요새들을 돌파하고 경원, 경흥일대를 해방하였으며 웅기(당시)방향으로 계속 전과를 확대하면서 국내의 넓은 지역을 해방하였다.
해안상륙부대의 선견대로 활동하던 일부 부대들은 지상부대와의 긴밀한 협동작전으로 웅기에 상륙하였으며 청진일대에로 진격하였다.
이미 국내에 파견되여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은 인민무장대들과 무장봉기조직들, 광범한 인민들을 무장폭동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다.
이 격동적인 나날에 주석께서는 력사적인 조국해방작전을 총지휘하시며 불면불휴의 활동을 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동해안으로 진격하는 해안상륙부대들과 압록강, 두만강 대안의 작전지대로 진격하는 륙상부대들을 비롯하여 각 전선의 부대들에서 들어오는 전투보고를 받으시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황에 따라 새로운 대책들을 세우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격에 합세하여 지방혁명조직들의 지도밑에 일어나는 인민들의 반일봉기들에 대해서도 제때에 방향적지도를 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총공격전이 개시된후 1주일만에 일본제국주의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