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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파렴치한 독도강탈기도를 버려야 한다》
(평양 2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28일부 《로동신문》은 《파렴치한 독도강탈기도를 버려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론설을 실었다.

우리 나라의 령토를 강탈하려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이 날로 더욱 로골화되고있다.

얼마전 일본 《요미우리신붕》은 일본국토지리원이 2만 5,000분의 1의 정밀한 독도지도를 제작하여 내돌리고있는 사실을 보도하였다. 지구관측위성과 미국상업위성의 자료를 리용하여 만들었다는 이 지도는 앞으로 교통지도와 관광지도 등을 제작하는데 리용된다고 한다.

일본반동들이 독도정밀지도를 만들어 내돌리는것은 독도강탈야망의 발로로서 매우 엄중하고 위험하다. 그들은 독도를 《일본령토》로 기정사실화하여 내외에 인식시키고 저들의 독도지배를 합법화하려 하고있다. 이것은 령토팽창에 환장이 된 일본특유의 강도성, 침략성의 극치이다.

독도정밀지도까지 만들어 내돌리는 일본반동들의 망동은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력사외곡행위이며 공공연한 조선재침책동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한강토에서 단일한 민족으로 살아왔다. 독도 역시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살아온 우리 나라의 고유한 령토이다.

지리적위치를 놓고보아도 독도는 명백히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이다. 독도는 비교적 큰 2개의 섬(서도, 동도)과 그 주변의 수십개의 로출암들로 이루어져있다. 독도와의 거리는 우리 나라 울릉도남단의 간령말로부터 87.4㎞이다. 그러나 독도로부터 제일 가깝다고 하는 일본의 오끼섬은 그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있다.

독도가 우리 나라의 령토라는것은 지난 시기 력사적사실들과 문헌자료들이 증명해주고있다.

독도를 제일먼저 발견하고 개척한것은 우리 선조들이였다. 고대시기부터 동해를 개척한 고조선, 진국사람들은 울릉도, 독도에까지 진출하여 이곳에서 물고기잡이를 비롯한 생업활동을 벌리였다. 1882년 부호군 리규원이 울릉도를 조사하러 갔을 때 이곳에 고대조선사람들의 주요무덤형식인 고인돌무덤이 남아있었다고 한것(《울릉도검찰일기》)이 그 증거의 하나이다. 울릉도에 고대조선사람들이 살았던것만큼 그곳으로부터 제일 가까운 독도에 건너가 물고기잡이를 한 사람은 조선사람들밖에 없었다. 이 시기 일본인들은 독도에 건너올수도 없었다. 력사적으로 볼 때 당시 일본은 원시사회말기에 있었거나 고대문명의 첫 문어구에 있었다.

삼국시기에 와서 조선동해가를 차지한 고구려, 신라의 주민들도 울릉도와 독도에 진출하여 어로활동을 적극 벌리였다. 특히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위한 남방진출을 강화하면서 5세기~6세기초에는 동해안의 청하(경상북도 포항시)에까지 진출하여 동해안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 시기 울릉도, 독도는 고구려사람들의 활무대로 되였다. 울릉도에서 고구려유물로 보이는 고배(굽높은 잔)가 발견된것은 이곳에서 우리 선조들이 생활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한마디로 5세기~6세기초에 울릉도와 독도는 고구려사람들이 물고기잡이를 하면서 생활을 펴간 삶의 터전이였다. 그후 신라가 령토를 확장하면서 512년에 우산국을 병합하여 자기의 령토에 포함시키고 조공국으로 만들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는 무릉도와 우산도를 렬거하고 이 두 섬의 위치와 호상관계를 《우산, 무릉 두 섬은 현(울진) 정동쪽 바다가운데 있는데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할 때는 서로 바라볼수 있다.》고 밝혔다.

독도에 대한 옛 이름들의 유래를 보아도 그것이 우리 나라의 령토이라는것이 명백하다. 시기적으로 고찰하여보면 이 섬은 처음에는 우산도로 그 다음에는 삼봉도, 가지도, 독도 등 순서로 불리웠다. 우에서 언급된 독도와 관련된 여러가지 옛 이름들은 모두 조선말로서 우리 나라의 옛 선조들이 이곳을 개척하고 생활을 꾸리면서 붙인것이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울릉도는 삼국시기에 우산국으로, 고려시기에는 무릉 또는 울릉도로 불리워왔다. 울릉도의 명칭이 달라짐에 따라 독도의 이름도 여러번 변경되였다. 이 섬은 리조시기에 와서 우산도 또는 삼봉도로 불리우다가 리조말기에 와서 독도라는 이름으로 고착되였다. 독도라는 이름은 울릉도사람들이 이 섬을 《조선동해상의 고독한 섬》이라고 부른데로부터 유래되였다고 한다. 15세기에 편찬된 우리 나라의 귀중한 민족고전인 지리책 《동국여지승람》에는 울진현소속 섬으로서 우산도와 무릉도가 기록되여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 밝힌 무릉도는 울릉도를, 우산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력사기록들은 독도가 력사적으로 우리 나라의 령토이라는것을 명백히 확증해주고있다.

지난 시기 일본자신도 독도가 우리 나라 령토이라는것을 인정하여왔다. 일본사료 《통항일람》(권 37)에는 안룡복일행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의 소속문제를 담판하고 관백(일본봉건시기의 최고실권자)에게 상소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이 소개되여있다. 당시 일본의 도꾸가와막부는 이 사실을 보고받자 즉시 조선정부에 울릉도와 독도가 엄연한 조선령토라는것을 공식 인정하고 이 섬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침입과 출어작업을 금지시키겠다는것을 담보하는 외교문서를 보내여왔다. 이것은 일본자체가 오래전에 독도가 조선의 령토이라는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력사적증거이다.

일본의 도꾸가와막부가 1618년과 1661년에 각기 오다니와 무라가와가문에 발급한 《죽도도해면허》와 《송도도해면허》는 해상월경을 승인하는것으로서 사실상 독도에 대한 조선의 령유권을 인정한 일본정부의 공식확인서와 같은것이였다.

1667년에 발행된 《은주시청합기》, 1881년에 발행된 《다께시마판도소속고》와 같은 일본책들에도 일본의 서북경계를 오끼섬으로 보고 독도가 예로부터 《일본판도밖의 땅》이였다고 씌여져있다.

일본은 독도가 저들의 섬이 아니라는것을 국제사회앞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1943년에 채택된 《까히라선언》과 1945년에 채택된 《포츠담선언》들은 제2차 세계대전후 독도의 법적지위를 규정해주는 국제법적인 기준으로 된다.

최근시기 일본이 1622년과 1883년에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다가 결국 조선땅임을 시인한 내용이 적힌 일본책이 발견된 사실도 있다. 모두 8권으로 된 《대일본지명사서》는 19세기말~20세기초에 활동한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 요시라 도고가 쓴 책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일본중부지방 시마네현부근의 지명을 소개한 3권 434~435쪽의 《다께시마》를 보면 독도《령유권》다툼이 두차례 벌어졌으나 일본은 그때마다 독도가 조선땅임을 시인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때 왜장이 그린 작전지도와 에도막부때 일본의 유명한 지리학자가 작성한 지도 등에는 우산국이라는 글자옆에 독도를 뜻하는 섬이 표기되여있다. 또 섬옆에는 동해를 의미하는 동녘 동자가 선명히 새겨져있다고 한다.

최근 독도가 조선령토임을 확인해주는 일본명치시대의 지도가 발견되였다. 일본의 한 도서관에서 발견된 《신찬 조선국전도》라는 지도에는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반도와 같은 색갈로 표시되여있다고 한다.

제반 력사적자료와 사실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독도는 명실공히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계속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면서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인 독도를 강탈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다.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께시마의 날》을 제정하였는가 하면 2006년에 일본문부과학성은 고등학교 교과서검정과정에서 《일본고유령토인 다께시마》라는 표현을 넣을것을 지시하였다. 이뿐이 아니다. 일본반동들의 독도강탈책동은 날이 갈수록 본격화되고있다. 이번 독도정밀지도제작놀음은 그들의 력사외곡, 독도강탈책동이 도수를 넘어서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로서 도저히 용납할수 없다.

일본반동들은 독도의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있으며 이곳을 조선재침의 군사적발판으로 리용하려 하고있다. 독도주변에 수산자원과 천연가스를 비롯한 자연부원이 풍부하다는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을 노리고 일본은 지난 시기 《어업협정》체결이요, 공동탐사요 하면서 독도에 검은 마수를 뻗쳐왔다. 일본은 독도를 가로타고앉아 우리 나라에 대한 군사적침략책동을 강화하려 하고있다.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적야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은 조선재침의 서곡이다. 그러나 일본은 오산하고있다. 독도를 강탈하고 조선재침야망을 이루어보려는것은 망상이다.

독도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로 남아있을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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