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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들의 기개를 떨친 광주학생사건
(평양 11월 5일발 조선중앙통신)주체18(1929)년 11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여 조선의 광주에서 일어난 청년학생들의 대규모투쟁은 청년들의 애국적기개를 힘있게 과시한 력사적계기였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라주사이를 달리는 기차칸에서 일본인학생들이 조선녀학생을 희롱한 사건을 계기로 조선인학생들과 일본인학생들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였다.

피해자쪽인 조선인학생들만을 구금한 일제경찰의 부당한 처사와 이틀후인 11월 1일에 감행된 일본인교직원, 학생들의 집단적폭행에 격분한 광주시안의 전체 조선청년학생들은 11월초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대중적반일시위를 벌렸다.

그들은 《일제를 타도하자!》, 《식민지노예교육을 철페하라!》, 《피검자들을 우리의 힘으로 탈환하자!》, 《조선독립 만세!》 등 구호를 웨치면서 삐라를 뿌리고 가두연설을 하였으며 사건을 외곡보도한 일제의 어용언론기관인 《광주일보사》를 포위하고 인쇄기를 파괴해버렸다.

광주의 학생들이 지펴올린 투쟁의 불길은 평양과 서울, 신의주, 함흥, 개성, 대구, 부산 등 도처에 세차게 확대되였다.

일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30년 4월까지 근 6개월동안에 전국각지 194개 학교의 6만여명의 학생들과 각계층 애국적인민들이 이 투쟁에 참가하였다.

광주학생들의 애국적투쟁은 비록 일제의 야수적탄압만행으로 무참히 진압되였지만 나라를 사랑하고 정의를 지향하는 조선청년들의 불굴의 의지는 총칼로도 꺾을수 없음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조선인민은 오늘도 무고한 청년들의 피로 얼룩진 광주학생사건을 잊지 않고있으며 과거죄행을 사죄하고 배상할대신 재침책동에 미쳐날뛰는 백년숙적 일제와 반드시 결산하고야말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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