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1월 22일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신 날이다.
일찌기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받드시고 만경대에 나와 공부하시던 주석께서는 주체14(1925)년 1월 어느날 아버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시였다.
아버지의 원쑤, 조선민족의 원쑤를 갚기 위하여 사생결단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신 주석께서는 열네살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천리길에 나서시였다.
기차로 평양에서 개천까지 가신 주석께서는 줄곧 북방의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시며 걷고 또 걸으시였다.
빼앗긴 조국을 한시바삐 되찾을 철석의 의지를 안으시고 정든 고향집을 떠나신지 13일째 되는 날인 2월 3일 포평나루터에 이르신 주석께서는 설음과 비분을 안고 조국산천을 몇번이고 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면서 천천히 강건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굳게 다지시였다.
《광복의 천리길》에서 다지신 이 맹세를 지켜 주석께서는 20성상 항일의 불바다, 피바다를 헤치시고 비로소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시였다.
주석께서 걸으신 혁명의 천리길로정을 따라 해마다 수많은 청소년학생들의 답사행군대오가 흐르고있다.
1975년 1월 1만여명의 청소년학생들의 《광복의 천리길》답사행군이 진행된 때로부터 지난 30여년간 이 력사의 로정으로 전국각지의 근 100만명에 달하는 청소년학생들이 답사행군을 진행하였다.
조선의 새 세대들은 혁명의 천리길을 강성대국건설의 천리길, 만리길로 줄기차게 이어갈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안고 행군길을 억세게 이어가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