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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력사를 무시하는자들에게는 앞날이 없다》-조선문화재 략탈
(평양 4월 12일발 조선중앙통신)12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력사를 무시하는자들에게는 앞날이 없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얼마전 서방의 어느 한 나라 수도 경매시장에서 중국의 력사유물인 《청동상》이 경매되였다. 이 《청동상》은 중국 청나라시기 별궁이였던 《원명원》에서 서방렬강들에 의해 략탈당한것이다.

모든 민족은 자기의 력사를 가지고있다. 력사를 자랑할 때면 력사유물이 자주 화제에 오르군 한다. 그것은 력사유물이 나라와 민족의 재보이며 자랑이기때문이다.

중국인민들은 《청동상》경매행위를 자기의 문화와 민족적감정을 훼손시키는 비렬한 행위로 비난하면서 격분을 표시하였다.

《청동상》경매와 관련하여 중국은 《그들은 좀더 력사를 알아야 한다. 이 문화재는 본래 중국의것으로서 서방렬강들에 의해 략탈당하여 비법적으로 해외로 루실된것이다. 모두 이를 대하는데서 문제의 본질에서 리탈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여기에는 과거의 침략, 략탈과 관련한 문제를 옳게 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담겨져있다.

력사기록에는 다른 나라와 민족을 침해하고 지배, 략탈하면서 그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 죄악사도 있다. 력사는 거울과 같다.력사를 외곡한다고 하여 자기의 과거죄행을 감출수는 없다.

오늘 국제적으로 과거범행을 성실히 반성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던 도이췰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과거범죄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실지행동으로 자기의 잘못을 씻고있다. 그것은 죄악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현시대와 력사의 흐름에 발을 맞추려는 의지를 보여주는것이다. 력사를 무시하면 앞날이 없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과거사를 진심으로 총화하기를 싫어하는 속이 검은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조일간에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력사적문제들이 수다하다. 여기에서 과거 일제의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 략탈범죄는 철저히 결산되여야 할 핵심문제들중의 하나이다.

지난날 일제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보인 문화재들을 무참히 파괴하고 략탈하였다. 우리 나라 문화재에 대한 일본의 파괴와 략탈은 전대미문의 파렴치하고 악랄한것이였다.

몇가지 사실만 놓고보자. 임진왜란을 놓고 일본사람들자신이 《도자기전쟁》이였다고 말하고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이 창조한 도자기문화는 세상사람들의 절찬과 부러움을 자아냈다. 이에 눈독을 들인 일본침략자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난 첫날부터 쌍심지를 켜고 우리 나라의 도자기략탈에 몰두하였다. 그들은 마을과 야산은 물론 인적드문 깊은 산속까지 발칵 뒤져가며 도자기략탈에 피눈이 되여 돌아쳤다. 당시 일본에서는 고려말기의 차종지(공기) 1개가 쌀 1만석과 바꿀 정도의 비싼 값으로 거래되였다고 한다. 그후 20세기초에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점한 일제는 우리 나라의 도자기를 닥치는대로 대량 략탈해갔다. 1909년 일본의 도꾜에서 고려자기대전람회가 열렸었다. 여기에는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여있는 청자련꽃당초돋을무늬정수병(12세기)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려자기들이 출품되였다. 이 전람회에서 처음 공개된 전시품들의 대부분은 모두 무덤도굴품으로서 불법적으로 조선에서 일본에로 반출된 고려자기들이였다. 그 다음해에 간행된 전람회사진첩의 해설글에는 《이런 고려자기는 단 한점도 지상에서 그것을 볼수 없고 모두 고분에서 파내고있다. 지금 우리 일본인들이(조선의) 어디라도 들어가있으니 만일(고분에)있는 물건이라면 반드시 출토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씌여있었다. 서울에 있던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시장에서는 일본도적들이 갓 도굴하여 흙이 더덕더덕 묻은 고려자기들이 거래되였다. 이를 두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고적조사과 주임을 지낸 후지다 료사꾸는 《고분을 파괴하고 그 유물을 백주에 점방에서 파는것과 같은 현상은 세계가 넓다 하더라도 조선이 유일한 례에 속한다.》고 실토하였다. 고려자기만이 아니라 청화, 진사, 철사로 이름높은 리조자기들도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일본각지로 대량 흘러들어갔다. 일본의 지방도시에 불과한 오사까의 오사까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는 지금도 근 800점의 조선도자기들이 전시되여있다. 지방도시의 한개 미술관에 이렇듯 많은 우리 나라의 가치있는 도자기유물들이 있을진대 일본의 전국각지에 널려있는 우리 나라 도자기유물은 얼마나 많겠는가. 자료에 의하면 고려자기만 하여도 일본 전국각지에 약 3만~4만점이나 있으며 도꾜국립박물관에는 도자기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이 4만점이나 비치되여있다고 한다.

실로 일제의 조선문화재략탈은 그 규모와 내용에 있어서 력사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날강도적인 범죄행위였다.

민족문화재에는 력사발전과정에 형성되고 계승된 민족의 성격과 전통,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 민족을 거세말살하기 위하여 민족문화재파괴와 략탈을 닥치는대로 감행하였다.

일제는 조선강점초기에 벌써 이름난 고적유물탐험가 세끼노를 두목으로 한 단체를 구성하여 10년간에 걸쳐 전조선령토에 있는 조선민족유산에 대한 전면적이며 전문가적인 조사를 진행하였고 총 15권에 달하는 《조선고적도보》를 작성하였다. 이 목록에 기초하여 《통감》 이등박문은 조선문화유물《조사, 수집》령을 발포하고 조선민족유산략탈을 법적기초우에서 제도적으로 단행하였다.이등박문은 공민왕릉에서만도 10여차량의 보물을 파갔다.일제가 조선강점시기 200여기의 왕릉, 1만 1,000여기의 고분에서 파낸 보물의 량은 막대하였다.이등박문의 뒤를 이은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찌는 《고적 및 유물보존교칙》을 추가발포하고 《총독부》의 권력을 발동하여 현장봉쇄 등으로 계엄상태를 조성한 속에서 조선민족유산에 대한 략탈을 단행하였다. 일제의 도자기략탈행위는 그 수법에 있어서도 교묘하고 음흉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수집》 및 《수매》형태였다. 교활하고 간특한 일제는 우리 나라의 산간오지에까지 《고물상》을 만들어놓고 여기에 《골동품애호가》, 《골동품수집가》라고 하는 저들의 심복들을 앉혀놓고 그들을 내세워 헌병, 경찰들의 비호밑에 개인집에서 가보로 내려오던 유물까지 긁어내거나 사람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리용하여 《저당》의 형식으로 귀중품들을 공짜나 다름없이 빼앗아내기도 하였다.

일제는 이렇게 훔쳐간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일본의 《국보》로 등록하고 박물관까지 차려놓고 뻐젓이 전시하였다.일제는 《보물의 소유자는 <조선총독>의 명령에 의하여 그것을 관립 또는 공립박물관과 미술관에 바칠 의무가 있다.》는 법령을 발포하고 조선에서 략탈하여간 금관, 장신구, 고려상감자기, 청동거울, 불상 등을 도꾜 우에노박물관에 가져다놓은 후 뻔뻔스럽게도 그것을 저들의 《국보》, 《중요문화재》, 《중요미술품》 등으로 세상에 공개하였다.

일제가 패망한지도 반세기가 훨씬 넘는 오늘까지 그들이 략탈한 공개되지 않은 우리 나라의 문화재는 그 얼마인지 모른다. 현재 일본에는 우리 민족유물이 수십만점이나 박물관들과 전시대, 서점들과 응접실 등에 비치되여있다. 오죽하면 일본사람까지도 《일본국보라고 세계만방에 자랑하고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다 그 미를 찬양하고있는 작품의 거의 모두가 대체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인가.그중에서도 국보중의 국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될 거의 모두가 실로 조선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 아닌가.이는 력사가들도 립증하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다.》라고 고백하였겠는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정신, 물질적유산인 우리 민족의 문화재에 대한 일제의 무지막지한 파괴, 략탈범죄는 조선민족의 문화전통과 넋을 짓밟고 민족자체를 말살할것을 노린 천추에 용납 못할 죄악이다.

민족문화재는 그것을 창조하고 계승한 사람들의 후손들에 의하여 대대손손 전해져야 할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나라와 민족의 귀중한 재보이다.

우리 인민은 일본의 과거 우리 나라 문화재파괴, 략탈죄악에 대해 잊지 않고있으며 그 대가를 단단히 받아내고야말 의지를 가다듬고있다.

일본은 우리 인민의 대일원한과 의지를 똑바로 보고 우리 나라 문화재파괴, 략탈범죄를 포함한 과거 모든 죄악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루빨리 배상하여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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