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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일본의 어지러운 정국을 파헤쳐본다》
(평양 5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7일부 《로동신문》은 《일본의 어지러운 정국을 파헤쳐본다》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글을 실었다.

아마 일본정계처럼 그칠줄 모르는 당파싸움으로 날과 달이 흐르는 소란스러운 정계는 없을것이다. 일본에는 각양각색의 정당, 파벌들이 많다. 집권당인 자민당안에만도 아소파, 쯔시마파, 야마사끼파, 마찌무라파, 니까이파, 고무라파 등 파벌들이 있다.

목수가 많으면 집이 기울어진다고 일본정국은 파벌정치와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각 당파들사이의 끊임없는 정쟁으로 하여 어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그러면 일본의 정국이 얼마나 어지러운가를 파헤쳐보자.

《료리》는 없고 《접시》만 깬다

묘한 일이였다. 최근년간 일본에서는 1년이 멀다하게 수상이 사임하고 정권이 교체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9월이 그 시점이였다. 현 아소정권이 발족한 달도 지난해 9월말이였다. 그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수 없으나 일본에서 이처럼 1년을 주기로 벌어지는 정권교체놀음을 두고 외신들은 《<료리>는 없고 <접시>만 깨는 일본의 정치인들》이라고 야유조소하고있다.

《료리》는 무엇을 의미하고 《접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외신들의 표현대로 한다면 《료리》는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고 《접시》는 그러한 정책을 내놓는 정부이다. 력대 일본정부들의 행적을 더듬어보느라면 이런 비평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다.

지난 20년기간을 보아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1993년이후 15년동안에 9명의 수상이 바뀌였다. 이를테면 이전 수상 고이즈미집권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해마다 수상이 교체된 셈이다. 그런가 하면 1989년 6월부터 1994년 7월까지 5년사이에 무려 5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이 기간 대부분 정권이 집권하여 1년을 넘기지 못하였으며 지어는 집권후 몇달 유지하지 못한 정권이 둘이나 된다. 우노와 하따내각이였다. 1989년 6월에 집권하였던 우노는 수상취임후 2주일도 못되여 그의 《애정추문》이 드러나 그해 7월에 사임하였다. 1994년 4월에 수상으로 선출되였던 하따는 권력싸움의 소용돌이속에 말려들어 집권 59일만에 수상직에서 밀려났다. 이러한 사실은 부정부패와 치렬한 권력싸움으로 소란스러운 일본정국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년간 일본의 정치흐름을 주도하는것은 자민, 민주량당이다. 당쟁의 주요적수들도 자민당과 민주당이다. 권력을 둘러싼 그들사이의 대결은 정치적견해나 로선상의 문제에 앞서 당리당략에 의한 감정상대립으로 특징지어진다. 2007년에 《역전의 여름》이라는 구호를 들고 국회 참의원선거에서 승리하여 참의원에서 제1당자리를 따낸 민주당은 기세등등하여 지난해에 《정권교체의 가을》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국회 중의원조기해산과 총선거를 요구해나섰다. 이에 화가 치민 자민당은 민주당을 과거 도이췰란드나치스로 비난하였다. 그러자 민주당은 용서할수 없는 폭언이라고 분개해하며 자민당이 《올해(지난해)중에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으면 수상이 개죽음을 면치 못할것》이라는 험담까지 퍼부었다.

권력쟁탈을 위해 민주당세력과 자민당세력이 서로 혹독하고 쌍스러운 욕지거리를 하며 골받이를 하는 꼴은 그들의 더러운 정치적야심과 도덕적저렬성, 량당사이의 뿌리깊은 모순의 집중적인 표현이다. 여당이 내놓은 정책안이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곡절과 좌절을 겪고 야당이 들고나오는 문제를 정부와 여당이 권력으로 막아버리는가 하면 같은 문제를 가지고도 당파들이 저마끔 제 리속을 앞세우며 갑론을박하기때문에 늘 싸움이다. 그런즉 일본의 정치는 기름을 치지 않은 수레바퀴가 아츠럽게 삐거덕거리며 굴러가듯이 가까스로 운영되고있다.

국제사회의 화제거리가 되여 여론의 말밥에 오른 일본의 최근 3년간의 어지러운 정치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자. 2006년 9월에 출현한 아베내각은 정객들의 잇달은 부정부패추문과 망발 등에 의해 《망나니내각》이라는 혹평을 받고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존재를 끝마쳤다. 그뒤를 이어 2007년 9월 자민당의 로장파인물로 알려진 후꾸다가 집권하였다.

그러나 년금기록분실사건, 고령자의료제도 등 선임자가 남겨놓은 《부정유산》을 처리해야 하고 《불균형국회》(《불균형국회》란 국회 중의원은 여당에 의해, 참의원은 야당에 의해 각각 통제되고있는 현상을 말함)와 사업해야 했던 그는 집권후 얼마 안있어 《정치산송장》으로 취급되였다. 그는 수상자리를 놓고 벌린 당파들사이의 암투의 희생물이 되여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났었다. 산 사람을 놓고 관을 짜는 식의 권력쟁탈전에서 《월계관》을 차지한것이 현 당국자이다. 비록 3차례의 실패끝에 그가 요행 권력의 단상에 올랐지만 집권후 일곱달 지난 오늘날 벼랑끝에 선 단명집권자의 운명에 처해있다. 그가 이제 얼마동안이나 권력을 유지하겠는지는 미지수이다. 일본정국이 이처럼 불안정하니 어떻게 똑똑한 국가전략이 서고 정치가 옳바로 실시되겠는가. 《접시》만 깨는 재간밖에 없는 정객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 일본국민들은 언제 가도 맛좋은 《료리》를 먹어볼수 없을것이다.

《권력승차권》

일본에서 정치무대에 나서려면 《3방》이 필요하다고 한다. 즉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간판》, 《지반》, 《가방》이 필요하다는것이다. 《간판》은 집안래력이나 학벌, 정당을 말하고 《지반》은 지역기반을 의미하며 《가방》은 돈지갑을 말한다. 이것들이 일본어발음으로는 《간방》, 《지방》, 《가방》이여서 《3방》이라고 한다. 이 《3방의 금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여나는 정객을 세습의원이라고 한다. 세습의원은 선대가 해당 지역에서 관리하던 후원회조직을 모조리 물려받을뿐아니라 후원단체들의 돈줄도 고스란히 상속받으므로 돈걱정이 없다. 일본국회에는 이런 세습의원이 3분의 1을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정계에도 놀라울 정도로 랭정한 하나의 법칙이 작용하고있다. 그 법칙이란 조상의 후광을 받으며 정계의 문턱을 쉽게 넘어선 세습의원이건 아니건 그리고 여당이건 야당이건 차별없이 매 사람의 금새를 따져 그들에게 권력의 자리에로의 《승차권》을 발급해주는것이다. 일본의 력대 수상들이 받은 《권력승차권》에는 하나와 같이 《우익보수파》라는 다섯글자가 찍혀있다.

일본에서 정계의 핵심, 주도세력으로 등장하여 정치를 좌지우지하는것은 우익보수파들이다.

아베만 놓고보아도 그렇다. 그는 태평양전쟁말기 일본의 전쟁내각에 들어가있었던 특급전범자의 외손자이다. 일본의 해외팽창로선을 적극 제창하였던 아베의 외할애비 기시 노부스께는 1940년대 일본의 악명높은 도죠내각에서 상공상, 국무상 겸 군수성 차관으로 있으면서 군국주의우두머리 도죠의 전쟁경제정책집행에 앞장섰으며 국회 중의원 의원으로도 있었다. 일제패망후에는 수상직까지 차지하고 일본을 《평화헌법》의 멍에를 벗어던진 《군사적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처음으로 내걸고 추진한 군국주의의 대표적인물이였다. 아베는 이런 외할애비의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자신도 《나는 부친의 DNA(데핵산)보다 외조부의 DNA를 더 많이 물려받았다.》고 말하였다. 어려서부터 사무라이의 물을 진하게 먹은 외할애비로부터 《정한론》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란 아베의 성장과정은 하나의 군국주의교육과정이였다. 이로 하여 아베에게는 《우익보수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귀공자》라는 딱지까지 붙었었다.

아베가 권력을 쥐고 일본의 모습을 얼마나 군국주의색채가 짙게 변화시켰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의 몇가지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아베정권하에서 우선 방위청이 방위성으로 승격되고 《자위대》가 해외군사작전을 기본임무로 삼게 되였다. 또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이 조작되였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범죄가 공공연히 부정되였다. 보다 엄중한것은 광란적인 랍치소동이 벌어져 사회적으로 대조선적대시바람이 세차게 몰아친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현 수상 아소에게서도 우익보수의 피가 진하게 흐르고있다. 평론가들이 아소를 두고 《그의 매파적인 정치관은 아베와 일부 자민당내 보수파들의 눈에 들었다. 그는 당내 보수파세력의 미래의 별이다.》라고 평한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독사는 독사를 낳기마련이다. 아소내각에서는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기어이 실현하려는 군국주의적망발들이 거리낌없이 튀여나오고있다. 아소는 집권후 일제가 도발한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묘사하였는가 하면 《일본에 자랑스러운 력사도 있다.》는 소리도 줴쳤다. 지난해 10월 당시 일본《자위대》의 항공막료장이란자는 조선 등에 대한 일제의 침략과 강점을 뻐젓이 부정하는 반동론문을 발표하여 내외의 격분을 자아냈다. 보는바와 같이 일본에서의 《권력승차권》은 우경화행《승차권》이며 정국의 군국화축도이다.

장기집권의 《주패장》

일본에서 수상들이 집권하는 기간은 보통 6개월부터 1~2년에 불과하다. 그런 조건에서 4~5년이상 집권하면 장기집권이라고 할수 있다.

1980년대에 권력의 자리에 앉은 나까소네는 5년간 집권함으로써 전후 사또, 요시다 다음가는 장기집권자로 되였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대미일변도정책의 강행에 있었다. 대미추종은 나까소네정책의 기본특징이였다. 전후 력대 일본내각들중에서 나까소네내각만큼 미국에 극성스럽게 맹종맹동한 내각은 없었다. 나까소네는 그의 선임자들이 접수하기를 꺼려했던 미국의 대일군사적요구를 주저없이 다 받아물었다.

그는 집권후 인차 미국을 행각하여 당시 미국대통령 레간앞에서 일미의 군사적《동맹관계》와 《운명공동체》에 대하여 떠들면서 일본을 미국의 《불침항공모함》으로 내맡길것을 다짐하였다. 나까소네는 약속대로 재임기간에 일본렬도를 미국의 《불침항공모함》으로 전변시켰다. 그리하여 핵무기를 적재한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국의 핵함선들과 비행기들이 일본의 항구와 비행장들에 제집처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핵무기의 반입, 보유, 생산을 금지한 일본의 《비핵3원칙》은 나까소네정권하에서 허울만 남게 되였다.

나까소네는 지어 미국의 《별세계전쟁》계획에까지 일본이 발을 들이밀게 하였으며 《무기수출3원칙》을 무시하고 미국과의 군사기술적협력을 강화하였다. 한마디로 나까소네는 일본을 미제의 침략적대조선, 대아시아정책의 부속물로 더욱 전변시켰다. 《일미관계강화는 일본외교의 주축》이라고 제창하며 일본렬도를 미국에 통채로 섬겨바친 나까소네는 그 대가로 미국상전의 적극적인 지지후원을 받으며 장기집권할수 있었던것이다.

사실상 일본정객들치고 미국상전을 업지 않고서는 정치적잔명을 오래 부지할수 없게 되여있다. 왜냐 하면 수십개의 미군사기지가 나라의 곳곳에 도사리고있는 일본에는 미국의 검은 마수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거미줄같이 뻗쳐있기때문이다. 정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후 대륙침략에 미쳐날뛰였던 일제전범자들중에서 저들의 침략과 전쟁정책실행에 쓸모가 있다고 간주되는자들을 골라 살려주고 음모적인 방법으로 권력계통에 복귀시켜줌으로써 일본정계를 친미화하고 거머쥐였다. 이와 함께 일본독점재벌들을 보존육성하고 군국주의부활을 조장, 뒤받침해주었으며 일본사회전반을 장악, 통제하여왔다.미국도 이에 대해 숨기지 않고있다.

이런 실정에서 미국에 굴종, 추종하지 않고 엇서나가는 일본정객들의 정치적운명은 례외없이 오래 가지 못하였다. 1970년대초에 미국보다 앞질러가며 여러 나라들과 다각적인 외교를 벌리던 이전 일본수상 다나까가 뢰물추문사건에 걸려들어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난것,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미국의 어깨너머로 조일관계정상화를 실현해보려고 시도한 일본정계의 거물급이였던 이전 자민당 간사장 가네마루 싱이 정계에서 밀려나 매장된 막후에는 미국의 검은 촉수가 뻗쳐있었던것이다.

일본에서 장기집권의 《주패장》은 적극적인 대미일변도 다시말하여 일본외교의 《초석》으로 되고있는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굴종, 추종정책에 있다. 이것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장기집권을 실현할수 없다.이것은 미국의 손아래동맹자이며 하수인인 일본의 피할수 없는 현실이다.

취약하고 부정부패한 일본정계는 권력야심 등으로 언제나 충돌의 불씨를 안고있으며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어지럽고 악취풍기는 일본의 정치풍토는 어느때 가도 개변될수 없다.

일본의 현 집권자들이 대미굴종, 추종정책을 극성스럽게 강행하며 권력유지를 추구하지만 머지않아 반드시 민심의 버림을 받고 정치적파멸을 면치 못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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