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인권연구협회 대변인는 7일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최근 리명박패당은 5.1절과 룡산철거민참사 100일, 초불투쟁 1년을 계기로 인권과 북남관계개선을 요구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불법》으로 몰아 야만적인 폭압을 가하고있다.
역적패당에 의하여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참가자들은 물론 길가던 시민들까지 곤봉과 방패에 맞아 피흘리며 쓰러졌고 목을 졸리우고 손목을 비틀리우며 철창속으로 끌려갔다.
전쟁시기의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탄압광풍속에서 룡산철거민학살때 생때같은 남편과 혈육들을 잃은 원한과 분노를 참을길 없어 진상규명과 살인자처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여 투쟁의 거리에 나섰던 녀인들도 파쑈경찰의 구두발에 참혹하게 짓밟혔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어린아이까지 폭압에 미친 야수들이 던진 유리병에 맞아 생사기로에 놓이는 처참한 사태가 빚어졌다.
리명박패당의 이러한 탄압만행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란폭한 유린으로서 집권후 지금까지 감행되여온 몸서리치는 파쑈통치의 연장이다.
조선인권연구협회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주와 통일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정의의 투쟁에 전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며 리명박패당의 파쑈탄압책동을 준렬히 단죄규탄한다.
인권은 사회적존재인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로서 그것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권을 지키고 행사하는데서 표현된다.
그러나 리명박《정권》의 출현후 남조선은 인민들의 자주적권리와 존엄이 무참히 짓밟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폭압의 왕국》, 세계최대의 인권불모지로 화하였다.
역적패당의 《실용》독재통치로 남조선인민들이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초보적인 열매는 여지없이 짓밟히고 《청와대》와 《정부》의 요직, 《정보원》, 법무부,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들에는 전부 극우반통일분자들과 파쑈독재의 하수인들이 들어앉았으며 《국회》는 인민들의 정치적권리와 자유를 유린하고 눈과 귀를 막기 위한 각종 《MB(리명박)악법》들을 조작하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되였다.
리명박《통치체제》구축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리적단체》로 규정되여 가차없이 탄압당하고 민주를 지향하고 통일을 바라며 독재를 배격하는 각계층 인사들과 인민들이 보복의 대상이 되여 숙청당하거나 체포구속되고있다.
남조선인민들은 정치활동은 물론 경제활동의 자유와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무참히 유린당하고있다.
친미사대에 환장하여 인민들의 생명을 섬겨바치며 미국산 미친소고기시장을 개방하고 그에 항거하여 초불을 들고 나선 각계층 인민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대고 곤봉과 방패로 내리치며 무차별적인 탄압에 피눈이 되여 날뛴것도 리명박패당이며 《미친소병》의 위험성을 알린 언론들에 《허위보도》니 뭐니 하는 딱지를 붙여 자갈을 물리고 검거소동을 벌린것도 다름아닌 역적패당이다.
역적패당은 친재벌정책과 《재개발》의 미명하에 룡산을 비롯한 각지 인민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고 그에 항의하며 초보적인 생계조건보장을 요구해나선 무고한 인민들을 참혹하게 학살하는 귀축같은 만행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고 최저생계비보장을 요구해도 《불법》, 《폭력》이 되여 탄압당하고 진실을 말해도 《죄》가 되며 동족을 찬양하고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주장해도 《범죄자》로 되여 감옥으로 끌려가는곳이 바로 역도가 집권한 오늘의 남조선이다.
실로 남조선인민들은 지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인간생지옥에서 고통과 불행만을 강요당하고있다.
이러한 민주와 인권의 유린자, 교살자들이 그 누구의 《인권문제》에 대해 떠들어대는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며 적반하장의 극치가 아닐수 없다.
오늘 남조선에서 날로 거세차게 타오르고있는 대중적항쟁의 불길은 리명박패당에 대한 분노한 민심의 폭발이다.
남조선보수당국은 인민을 등진 자들에게 차례질것이란 비참한 파멸밖에 없다는것을 똑바로 알고 민주주의적인 새 정치, 새 생활을 위해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파쑈적탄압만행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은 리명박패당을 그대로 두고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주통일은 물론 자기의 목숨도 지킬수 없다는것을 명심하고 굳은 련대와 단합된 힘으로 역적패당을 쓸어버리기 위한 투쟁에 더욱 과감히 떨쳐나서야 할것이다.
주체98(2009)년 5월 7일
평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