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에 벌써 대중전취를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적문제로 보시고 실천투쟁으로 가장 공고한 단결의 전통을 마련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업적은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있은 봄명월구회의(1931.5)와 더불어 빛나고있다.
1930년대 초엽 정세는 참으로 엄혹하였다.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면밀한 계획과 조직적대책도 없이 일어난 5. 30폭동과 8. 1폭동을 계기로 시작된 일제의 백색테로가 1931년에 들어서면서 더 심하게 만주를 휩쓸었다.
일제는 조선의 혁명가들과 애국자들이 여러해동안 품을 들여 키워온 혁명력량을 뿌리채 뽑으려고 도처에서 폭압소동을 악랄하게 벌리였다.
핵심들은 물론 폭동대렬을 따라나섰던 사람들까지도 모조리 잡혀가거나 처형되는 등 간도의 혁명조직들이 거의다 파괴되였다.
5. 30폭동의 후과는 엄중하였다.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동만지방으로 활동무대를 옮기신 주석께서는 혁명성이 강한 그곳 인민들을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리시는 한편 여러 혁명조직들의 사업도 지도하시였다.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정비하시며 현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신 주석께서는 마침내 주체20(1931)년 5월중순 명월구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주석께서는 회의에서《좌경적모험주의로선을 배격하고 혁명적조직로선을 관철하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연설에서 5. 30폭동의 본질을 심각하게 분석총화하신 그이께서는 혁명의 기본군중을 튼튼히 결속하고 그 주위에 각계각층 반일력량을 굳게 단결시켜 전민족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단합시킬데 대한 혁명적조직로선을 제시하시였다.
혁명적조직로선은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고 광범한 군중을 혁명의 편에 튼튼히 결속시키기 위한 가장 정당한 로선인것으로 하여 회의참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후 명월구는 물론 안도의 혁명조직들이 빠른 시일에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며 련이어 여러 일대의 지방조직들이 활기를 띠고 활동하였다.
하여 단시일내에 동만과 나아가서는 국내전지역에서 혁명을 앙양시키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조직적인 무장투쟁에로 발전시킬수 있는 공고한 기초가 축성되게 되였다.
참으로 봄명월구회의는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대중전취를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인 회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