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지휘밑에 무산지구전투(1939.5)가 있은 때로부터 70년이 되였다.
무산지구전투는 일제가 전멸당했다고 떠들던 조선인민혁명군이 건재해있을 뿐아니라 고난의 행군을 통하여 더욱 강대한 력량으로 자라나 적들에게 계속 철추를 내리고있다는것을 멸적의 총성으로 확증하여준 력사적인 전투였다.
1930년대 후반기 정세는 엄혹하였다.
《혜산사건》으로 하여 수많은 혁명조직들이 파괴되고 조직성원들이 일제에게 체포되였으며 국내혁명운동은 시련을 겪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는 적들의 악선전으로 사람들은 신심을 잃고있었다.
조성된 정세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신 주석께서는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끄시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력사에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1938.12~1939.3)을 단행하시였다.
남패자로부터 북대정자에 이르는 이 행군은 100년래의 대강설로 눈이 키를 넘고 령하 40℃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식량난까지 겹친 엄혹한 시련의 길이였으며 전투로 낮과 밤을 이은 결사의 혈로였다.
이 기간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소멸》하려고 필사적으로 발광했지만 녹아난것은 오히려 저들이였고 혁명군은 가렬한 전투와 시련속에서 불패의 대오로 더욱 단련되였다.
행군을 성과적으로 마치신 주석께서는 북대정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간부회의(1939.4)를 여시고 일제침략자들을 련속 타격하고 조국으로 진군할데 대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주석의 작전적구상에 따라 국내에로 진출한 조선인민혁명군은 신개척일대와 대홍단벌 등에서 적들을 소멸하고 무산지구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함으로써 고난의 행군에서 백배해진 혁명군대의 위력을 과시하였다.
이 전투가 있은후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은 조선인민혁명군이 있는 한 조국해방의 새날은 반드시 오고야만다는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항일혁명의 흐름속에 뛰여들었다.
력사적인 무산지구전투는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업적과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