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5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29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살인마들의 피비린 범죄로 얼룩진 임진왜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반동들의 반공화국책동이 우리의 평화적위성발사를 계기로 더욱 우심해지고있다.그들은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를 한사코 《미싸일발사》로 몰아붙이면서 일본국내에서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조성하고있다. 일본은 이러한 광대놀음으로 저들이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력사적죄행을 유야무야하고 일본국민들을 우리 공화국에 대한 재침에로 내몰아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하려 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의 이러한 무분별한 책동은 우리 인민들로 하여금 일본이야말로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철천지원쑤이라는것을 더욱 뼈저리게 새기게 하고있다.
지금 우리 인민의 가슴은 반공화국광증에 열이 올라 무분별하게 날뛰는 일본에 대한 증오심으로 끓고있으며 그들과는 끝까지 맞서 결판을 내고야말려는 비장한 결의로 불타고있다.
일본이 력사적으로 조선에서 저지른 죄악을 다시금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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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 나라를 침략한것은 비단 지난 세기부터가 아니다.그들은 세상을 알기 시작한 때로부터 쩍하면 바다건너 우리 나라에 기여들어 파괴와 략탈, 살인만행을 일삼군 하였다. 일본의 침략만행으로 우리 인민들은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으며 조선의 발전은 큰 지장을 받게 되였다. 그 대표적실례의 하나가 바로 16세기의 임진왜란이다.
1592년 4월 13일 오래동안 침략전쟁준비를 다그쳐온 일본오랑캐들은 저들의 강도적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우리 나라를 침공하였다.일본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에 더러운 발을 들여놓은 첫 순간부터 조선사람들을 마구 살륙하였다.그 첫 대상이 바로 부산성인민들이였다.
당시 약 1,800명의 군사들이 지키고있던 부산성을 막대한 손실을 내고 겨우 차지한 일본침략자들은 성안에서 무고한 인민들에 대한 일대 살륙전을 벌리였다. 침략군무리들은 성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늙은이건 어린이건 가리지 않았다.
일본침략군무리들의 살륙만행은 리조봉건국가의 수도였던 서울에서 가장 참혹하게 감행되였다.
5월초 서울에 기여든 일본침략군무리들은 근 1년동안의 강점기간에 성안에 남아있던 수만명의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살해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1593년 4월 조선군대의 드센 공격과 군량난으로 하여 더이상 견딜수 없어 퇴각하면서 대부분의 성안의 인민들을 죽이는 전대미문의 대량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일본침략군이 쫓겨간 다음날 서울에 돌아온 도체찰사 류성룡은 성안에서 목격한 광경을 《징비록》에 다음과 같이 썼다.
《성안에 남아있는 백성들은 백에 한둘도 안되였는데…사람과 말이 여기저기 마구 죽어넘어져있고 악취가 성안에 차넘쳐서 사람들은 코를 싸쥐고 다녔다.성안팎에는 백골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리조실록》에는 당시 서울장안의 참상에 대하여 《…백골이 무더기로 쌓여있고 성안에는 쓰러져죽은 사람과 말이 셀수 없을 지경이며 냄새가 가득하여 사람이 가까이 갈수 없》다고 씌여있다.실지로 성안은 어디에나 시체가 가득 널려있어 그것을 하나하나 헤치지 않고는 발을 옮겨짚을수 없을 지경이였다고 한다.
1593년 6월말 일본침략군무리들은 진주성에서 전쟁기간중 가장 큰 규모의 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조선침략의 괴수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성을 기어코 점령하며 주민들을 한사람도 남김없이 죽이라는 살인명령을 내리고 12만 3,000명의 병력을 살륙에로 내몰았다.성안의 조선의병과 관군은 3,000명밖에 안되였지만 100여차례나 힘겨운 싸움을 하며 성을 지켰다.그들은 련일 퍼붓는 장마비로 하여 활을 쏠수 없게 되자 칼과 창으로 육박전을 벌리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희생적으로 싸웠다. 쏟아지는 비로 동쪽성벽이 무너지자 성안에 쓸어든 놈들은 무려 6만명이나 되는 인민들을 남녀로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죽였다.간신히 죽음을 면한 사람들은 붙잡아 창고에 몰아넣고 불태워죽였다.이로 하여 진주성안에는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단 한사람도 남지 않았다.
일본침략자들의 살륙만행은 1597년이후 더욱 극악하게 감행되였다.당시 일본사무라이들은 우리 인민들을 마구 죽이였을뿐아니라 지어 조선사람들의 살점까지 뜯어먹는 치떨리는 야만행위도 감행하였다.
1597년 7월부터 9월까지 일본침략군의 한 부대가 울산에 진을 치고 틀고앉아 다시금 전조선에로 전쟁을 확대할 기회를 노리고있었다.당시 그 부대에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잡혀가서 강제로동을 하고있었다.일본침략군무리들은 조선군대의 끊임없는 공격과 봉쇄로 하여 식량이 떨어지자 그들을 먹이지도 않고 채찍을 휘두르며 축성공사와 짐운반과 같은 고역에로 내몰았다.허기진 배를 그러안고 일하다 쓰러져죽거나 매맞아죽을 처지에 놓여있던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적군영을 빠져 달아나군 하였다.그러나 굶주림과 고역에 시달린 몸이여서 도저히 멀리 달아날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다시 붙잡아들인 일본침략군무리들은 그들을 세워놓고 총과 활로 쏘아죽였으며 쓰러진 다음에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서로 다투어가며 살점을 뜯어먹었다. 그중에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람의 살을 군도나 손칼로 뜯어내여 더운 피가 뚝뚝 떨어지는것을 그대로 먹는 놈들도 있었다. 일본침략군무리들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들, 사람의 가죽을 쓴 식인종의 무리였다. 이러한 자료들은 일본침략군무리들이 저지른 살륙만행사실가운데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일본침략군은 잔인하고 포악한 살인귀들의 무리였다.
일본의 교또시 히가시야마구에는 우리 말로는 《귀무덤》, 일본말로는 《미미즈까》라고 부르는 옛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임진왜란때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괴수로 한 일본집권층의 명령밑에 계획적으로 감행된 력사에 류례없는 야수적인 조선인대량살륙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당시 도요도미는 《해마다 군대를 출동시켜 조선사람들을 온통 죽여버려 조선을 빈땅으로 만든 다음 서로(일본의 서쪽지역)의 사람들을 옮겨 조선에 살게 하고 동로의 사람들을 옮겨 서로에 살게 하면 10년후에는 반드시 성공이 있을것》이라고 떠벌이였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도요도미는 1597년 6월 쯔시마 도주의 중신 야나가와 시게노부를 조선에 보내면서 《우선 일본군은 전라도에 진격하여 전라도민을 일시에 남김없이 모두 죽이며 충청도, 경기도와 그밖의 도에서는 알아서 평정하라.》고 하였다. 이때 도요도미는 《사람의 귀는 둘이라도 코는 하나이니 조선사람의 코를 베여 머리를 대신하라.군사 한명이 코 한되씩으로 수량이 찬 후에야 생포하는것을 허락한다.》고 코베기명령을 함께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침략군우두머리들은 병졸 1인당 조선인코 3개씩 벨것을 명령하였으며 베여낸 코수자에 따라 《군공》을 평가해주었다. 일본침략군무리들은 무고한 백성들을 마구 죽이는것을 출세의 길로, 도락으로 여기면서 조선인대량살륙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일본침략군의 우두머리들은 부하들이 자른 조선사람의 코를 모아 도요도미가 파견한 《메쯔께》(위법감찰관)들에게 보냈으며 《메쯔께》들은 살인자들에게 《코확인장》을 내여주고 코는 일본에 보냈다.
도요도미는 조선에서 보내온 코를 받아서는 직접 세여 확인하고나서 수고했다는 《감사장》을 보내여 《격려》해주었으며 그의 측근신하들도 그 본을 따 살인자들에게 《감사장》을 보내주었다.
일본살인귀들의 죄악을 고발하는 이러한 《코수집장》과 《코확인장》, 《감사장》들은 오늘까지도 일본의 야마구찌현 문서보관소, 아마기시의 아끼즈끼향토관, 가고시마현 력사자료쎈터, 도꾜대학 사료편찬소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 보관되여 전해지고있다.
일본집권층의 《감사장》놀음에 열이 오른 일본침략군무리들은 어떻게 하나 《군공》을 세워보려고 조선사람이라면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모조리 죽이고 코를 잘라 그날로 소금에 절여 《코수집관》에게 보냈다.
일본침략자들은 지어 산 사람의 코까지 베여냈다. 전후 수십년간 조선의 이르는 곳마다에 코없는 사람이 수많이 있은 사실은 일본침략자들의 야수적만행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일본침략자들은 그후 《코무덤》이 너무 잔인하다는 인상을 준다는데로부터 《코무덤》이라고 새겨진 비석을 없애고 《귀무덤》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일본사무라이들의 《코베기》만행은 너무도 잔인하여 이처럼 제놈들자체가 속이 켕기여 무덤의 이름을 바꿀 정도로 야수적인것이였다.
임진왜란때 일본침략자들이 감행한 만행은 코자르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조선사람의 눈알까지 뽑아냈으며 이르는 곳마다에서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목을 잘라 매달아놓았다. 어떤 곳에서는 군영앞에 나무를 세워놓고 조선사람들의 머리를 주런이 매달아놓았는데 썩어서 뼈는 떨어지고 머리칼이나 망건만 걸려있었다고 한다.
일본침략자들의 야수적인 만행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가 되고 남편을 잃은 안해는 과부가 되였으며 집들은 불타버리고 마을은 페허로 되였다.
임진왜란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일본침략자들이 우리 인민을 전멸시키고 조선강토를 강탈할 목적밑에 감행한 대량살륙범죄행위였다.
력사적사실은 일본의 력대 통치배들이야말로 해외침략에서 언제나 우리 나라를 첫번째 목표로 삼아온 간악한 침략자, 조선인멸종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우리 인민에 대한 살륙만행을 일삼아온 잔인한 살인마,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철천지원쑤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임진왜란때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쓰러진 령혼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대일복수를 부르짖으며 우리 민족의 대일적개심을 용암처럼 끓어오르게 하고있다.
우리 인민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임진왜란때 일본침략자들이 저지른 살륙만행을 절대로 잊지 않고 피맺힌 원한을 기어이 풀고야말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