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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애국자 리보익녀사의 고결한 한생
(평양 5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열렬한 애국자이신 리보익녀사의 탄생일(1876.5.31)을 맞는 조선인민은 견결한 혁명정신과 열화같은 애국의지로 빛나는 그이의 생애를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혁명가의 어머님, 할머님답게 굳세고 대바르게 사신 여기에 녀사의 한생이 집약되여있다.

1911년 봄 어느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시였다.

타개죽도 변변히 잡숫지 못하시는 만경대가정에서 아드님을 중학교에 보낸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월사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김보현할아버님께서와 리보익녀사께서는 낮에 밤을 이어 농사일을 하시였다.

녀사께서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시키신 아드님을 자신의 곁에 두신것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빼앗긴 나라찾는 위업에 내세우시였다.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 녀사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 이제는 아버지가 메고있던 짐을 네가 메야겠다고 하시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나나 어머니에게 효도를 못해도 좋으니 조선을 독립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라고 말씀하시였다.

주석께서는 녀사의 그 말씀에서 큰 충동을 받으시였고 커다란 힘을 얻으시였다.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운 시기 슬하에 든든한 자손들을 두시면 좋은줄 모르시랴만 녀사께서는 어리신 손자분까지도 서슴없이 혁명의 길에 내세우시였다.

주석께서 항일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던시기 그이를 《귀순》시켜보려고 일제는 갖은 책동을 다하였으나 녀사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었다.

조국이 있어야 가정도 있고 조국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이 곧 부모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바로 여기에 녀사의 고결한 정신세계가 비껴있다.

녀사께서는 해방후에도 한 나라 국가수반의 할머님이시였지만 대우를 바라지 않으시고 수수한 평백성으로 생을 보내시였다.

정녕 리보익녀사의 한생은 애국, 애족, 애민의 넋으로 빛나는 한없이 고결한 생애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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