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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조선침략전쟁에 가담한 씻을수 없는 죄악》
(평양 5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30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조선침략전쟁에 가담한 씻을수 없는 죄악》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최근 일본에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선제공격》주장을 비롯한 전쟁폭언들이 왕왕 튀여나오고 위험한 군사적움직임들이 더욱 강화되고있다.

일본반동들의 무분별한 반공화국행위를 놓고 우리 인민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국에 적극 추종하여 전쟁에 가담협력한 일본의 죄행에 대하여 상기하면서 대일적개심으로 가슴을 불태우고있다.

패전국인 일본은 법률상 군대를 가지지 못하게 되여있으며 해외에서의 군사활동이 금지되여있다. 그러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의 비호밑에 재생재무장을 다그치면서 미국의 조선침략전쟁에 가담할 의사를 표명하고 실질적으로 전쟁에 가담하였다.

1949년 10월 당시 일본국무상이였던 야마구찌는 《우리는 전쟁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일본은 기어코 자기의것을 이룩해야 한다.》고 떠벌였으며 당시 일본수상의 친구였던 호전광 히로가와는 《일본사람들의 임무는 자기의 노력을 미국의 전쟁준비에 합치는것》이라고 줴쳤다.

일본반동들은 1950년 2월 도꾜에서 미국, 남조선괴뢰들과 함께 조선전쟁을 도발할데 대한 모의에 직접 참가하였으며 1950년 5월까지 조선전쟁에 가담할 모든 준비를 완료하였다.

조선전쟁이 터지자 당시 일본수상은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전쟁도발을 쌍수들어 지지환영하면서 일본병사들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일본국회에서 《시정방침》을 제기하면서 《조선전쟁은 공산세력의 <위협>이 일본에 얼마나 다가왔는가를 실증해주며 일본으로서는 이에 적극 대응해나설것》이라고 떠벌였다. 뒤이어 일본외무성은 《조선전쟁과 일본의 립장》이라는 문건에서 일본이 《유엔군》에 《협력》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일본의 《안전》을 지킬수 있겠는가고 지적하고 일본은 조선전쟁에 참가할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도서 《일본력사》 22권에는 《조선전쟁시기 일본은 스스로 미국의 아시아반공정책의 일익을 담당해나섰다.》라고 씌여있다.

일본반동들은 1950년 7월 내각회의를 열고 조선전쟁에 가담하여 미국에 적극 협력할데 대한 방침을 확정하였다. 이 방침에서 그들은 미군의 조선침략전쟁수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행정적조치 즉 선박, 륙상수송력의 강화, 전화통신의 가설, 해상보험의 림시적조치 및 여기에 필요한 금융조치를 취한다는것 등을 밝히였다.

일본반동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전쟁에 저들의 무력을 직접 투입하는 길로 나아갔다.

일본은 조선전쟁이 개시되자 미국의 명령, 지시에 따라 제1진으로서 일본군 200명을 급히 조선전선에 파견하였다. 조선전선에 파견된 일본군은 남조선괴뢰군군복을 입고 괴뢰군의 군사고문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제2진으로 조선전선에 파견된 4,000여명의 일본군은 미군특수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미 제24사단, 미 제1기병사단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1950년 7월까지만도 일본군의 조선전쟁참가자수가 2만 5,000명에 달하였다고 보도하였으며 1951년 2월 한 외신은 일본은 조선전쟁에 파견할 《대포밥》을 14만명이나 징집하였다고 전하였다.

일본반동들은 항공《자위대》와 해상《자위대》도 조선전쟁에 적극 내몰았다.

일본정부는 전투경험이 풍부한 일본군비행사들을 미군비행부대들에 파견하였다.일본군비행사들은 미군비행기들을 타고 군사작전에 참가하였다.

일본반동들은 해상에서도 미제와 적극 협력하였다.

1950년 10월부터 12월 중순까지 일본의 46척의 함선들이 미해군에 소속되여 각종 전투임무를 수행하였다. 일본해상《자위대》는 미군의 인천, 원산상륙작전에 직접 참가하였다. 이때 일본소해정들은 배이름과 부대번호들을 지워버리고 기뢰해제에 적극 나섰다. 일본도서 《일본방위정책과 현실》(1989년판)에는 일본의 특별소해정들이 1950년 10월 2일부터 12월 12일까지의 기간에 인천, 원산, 군산, 해주, 남포 등지에서 소해작업을 진행하였다고 씌여있다.

일본은 미제침략군의 전쟁물자수송도 맡아하였다. 일본수산성 선박국이 종합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일본은 1950년 7월부터 10월말까지사이에만도 미군의 전쟁물자수송을 위해 248척의 선박을 동원하였다. 일본반동들은 내각결정으로 여러 항들을 군항으로 전변시켜 조선전쟁에 전적으로 복무하도록 하였다. 일본도서 《륙전사집》(1975년판)에 의하면 일본선박들이 부산으로 운반한 화물은 하루평균 1만 660t에 달하였다. 1950년 7월 한달동안 일본에서 부산항에 도착한 전쟁물자는 무려 30만 9,000t에 달하였다.

사실상 조선전쟁시기 일본의 모든것이 미국의 침략전쟁수행에 총동원되였다. 일본반동들은 미군에 필요한 전쟁물자들을 대량생산보장하였다. 조선전쟁개시후 첫 3개월동안 조선전선에서 미군이 소비한 탄약은 모두 일본에서 생산된것이였다.

1952년 6월에 이르러 군수생산에 참가한 일본의 대규모공장만도 근 400개에 달하였다. 일본땅은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수행을 위한 완전한 병참기지로 전락되였다.

일본은 조선전쟁시기 자기 땅을 미군의 작전, 출격, 보급기지로 내맡겼다. 미국은 조선전쟁기간 일본에 610여개의 군사기지들과 군사시설물들을 설치하고 리용했다.

일본반동들은 미군의 치떨리는 세균만행에도 공모하였다.

미국은 조선전쟁에서 참패를 거듭하자 국제적으로 금지된 세균무기까지 사용하면서 어떻게 하나 우리 인민을 굴복시켜보려고 발광하였다. 여기에 이전 일본관동군 《731부대》에서 복무하였던 악명높은 세균전문가들이 동원되였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비밀리에 연구개발한 세균무기들을 미국에 넘겨주어 그것을 조선전쟁마당에서 써먹도록 하였으며 직접 현지에서 미군의 세균전을 도와주었다. 미군은 일본에서 생산된 세균무기들을 강원도와 당시의 황해도일대 등 여러 지역에 살포하여 수많은 우리 인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이러한것들은 일본이 지난 조선전쟁에 적극 가담협력하였다는것을 립증해주는 자료들중의 일부에 불과하다.

일본은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의 공범자이다. 일본이 조선전쟁에 가담협력하지 않았더라면 미제가 그렇게 오래동안 전쟁을 치를수 없었을것이며 우리 나라가 그처럼 참혹한 재난을 당하지도 않았을것이다.

오늘 일본반동들은 미제에 의해 감행된 지난 조선전쟁에 가담하여 저지른 범죄를 재현하려 하고있다. 그들이 미국과 공모결탁하여 우리 나라를 압살하기 위한 전쟁책동에 광분하고있는 사실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반동들은 똑똑히 명심해야 한다. 만일 조선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터지고 일본이 거기에 뛰여든다면 그들에게는 무자비한 징벌이 가해지게 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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