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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임진조국전쟁시기 문화재파괴략탈만행》
(평양 6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11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임진조국전쟁시기 문화재파괴략탈만행》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난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사무라이들은 우리 인민이 조상대대로 창조하고 물려받은 력사유적과 유물들, 우리 인민의 애국정신과 민족의 넋, 고상하고 아름다운 민족적정서가 깃든 수많은 국보급문화재들을 파괴하고 략탈하였다.

임진조국전쟁전기간 일본사무라이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보들을 마구 파괴하고 략탈해갔다. 그들의 문화재파괴와 략탈은 시퍼런 대낮에 공공연히 감행되였으며 악랄성에 있어서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전쟁초기 경주의 불국사를 불태워버리는것으로 우리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파괴략탈을 시작한 일본사무라이들은 한성(서울)을 점령한 후에는 종묘를 불사르고 선릉, 정릉 두 왕릉들도 파헤쳐 무덤안의 부장품을 략탈해갔다. 나중에는 그것도 성차지 않아 관을 불태워버리는 만행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일본사무라이들은 우리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국보적의의를 가지는 민족고전들을 략탈하고 불살라버리는 귀축같은 만행도 감행하였다.

그들이 제일 많이 도적질해간것은 《조선본》이라고 하는 서적이였다.

일본사무라이들이 서적략탈에 광분하게 된것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지시에 의한것이였다.

도요도미는 양자이며 침략군의 총대장이였던 우끼다 히데이에에게 조선에 가서 서적을 략탈할데 대한 지시를 주었으며 그에 따라 우끼다는 서적들을 략탈하여 도요도미에게 섬겨바쳤다.

도요도미의 대관으로 활동한 이시다 미쯔나리는 우리 나라의 국보인 《고려대장경》을 략탈해갔다.

일본사무라이들의 서적략탈만행으로하여 임진조국전쟁이전에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서적의 대부분은 일본에 실려갔다.오늘도 그 일부는 뻐젓이 일본의 봉좌문고(3,000권), 남규문고(3,000권), 창고관문고(3,000권), 존경각문고(1,073권) 소장되여장있다 있다.

가고시마도서관과 세이까도문고 등에는 개별적인 일본사무라이들이 략탈한 책들이 수많이 소장되여있다. 그 가운데는 김종서가 편찬한 《고려사절요》의 초간본을 비롯하여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책들이 적지 않다.

일본사무라이들의 서적략탈만행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관청들과 량반집들의 장서까지도 거덜이 나게 되였다.일본사무라이들이 얼마나 서적략탈에 미쳐날뛰였던지 임진조국전쟁이전에 그렇게 많았던 금속활자본과 좋은 목판본들이 전쟁을 겪은 다음에는 거의 찾을 길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전쟁직후인 1600년 2월 선조왕이 그토록 흔했던 《사서언해》, 《손자》, 《력대병요》, 《십구사략》 등의 서적들을 전국각지에서 구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였겠는가.

일본사무라이들이 우리 나라의 민족고전을 얼마나 많이 략탈하여갔는가 하는것은 그들자신이 조선의 민족고전을 찾아보려면 《오히려 도꾜에서 구할수밖에 없다.》고 한데서도 알수 있다.

일본사무라이들은 사고란 사고는 모조리 불태워버리는 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당시까지만 해도 4부씩이나 있던 《리조실록》도 일본사무라이들의 만행으로 불타버리고 유독 전라도 전주사고에 있던것만이 요행 인민들의 애국적소행으로 무사할수 있었다.

일본사무라이들은 서적뿐만이 아니라 동활자와 인쇄기까지 략탈해갔다. 우끼다는 한성에 들어갔을 때 남산기슭의 정부 교서관에서 동활자 약 9만자와 인쇄기계를 략탈하여 일본에 날라가 도요도미에게 바쳤다.

일본에서는 그 활자들을 리용하여 일본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경장판》으로 《권학문》을 비롯한 여러 책들을 찍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략탈해간 활자들을 리용하여 104부 3,081권의 서적을 찍어냈다.그때 사용한 금속활자들은 지금도 기이(와까야마현)와 도꾜대학 중앙도서관의 낭끼문고에 보관되여있다고 한다.

일본사무라이들은 많은 미술작품들도 훔쳐갔다.그가운데서 알려진 국보급미술작품만도 《보살삼존십왕도》, 《당회석가존》, 《명부십왕업심판도》, 《양류관음상》, 《오불존상》 등 수십점이나 된다. 유명한 조선불교미술작품의 대부분도 일본에 있다.

일본사무라이들은 조선종까지 도적질해다가 저들의 절간들에 뻐젓이 내걸었다.

그들은 지어 조선의 동식물까지 빼앗아갔다. 도요도미는 범고기가 로화방지에 좋다고 하면서 잡아바치게 하였다. 당시 함경도에 기여들었던 왜장 가또는 범사냥에 미쳐돌아갔다고 한다.일본사무라이들은 심지어 절간의 문과 목재도 략탈하여갔다.

일본사무라이들의 이러한 무차별적인 문화재략탈만행으로 조선은 쑥대밭이 되다싶이 하였으며 마치도 조선문화가 통채로 일본에 옮겨간것처럼 되였다. 하기에 일본인학자까지도 《히데요시의 침략전쟁은 조선문화를 깡그리 일본에 날라간 문화략탈전쟁이기도 하였다.》고 개탄하였다.

조선의 이름난 도자기들은 일본사무라이들의 좋은 략탈대상이였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이 우리 나라의 가치있는 고려자기, 리조자기들을 수많이 략탈해갔는데 일본에서는 고려말기의 차종지(공기) 1개에 쌀 1만석과 바꿀 정도의 비싼 값으로 거래되였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일본사무라이들은 많은 우리 나라 도자기기술자들을 랍치해갔다.

당시 우리 나라의 발전된 도자기기술에 눈독을 들이고있던 일본사무라이들은 침략의 피묻은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산간오지의 가마터까지 다 뒤져가며 도자기제조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랍치해갔다. 일본의 《이름난 자기》들이라고 하는 《아리따야끼》, 《사쯔마야끼》, 《하기야끼》, 《아가노야끼》 등은 이때 끌려간 우리 나라 도공들이 일본의 아리따, 가고시마, 후꾸오까, 교또 등지에서 만든 도자기들이다. 일본사람들자신이 임진왜란은 《도자기전쟁이였다.》라고 말한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사무라이들이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닥치는대로 빼앗고 훔치고 파괴하고 불태운 죄행은 그 무엇으로써도 씻을수 없다.

문화재파괴와 략탈은 단순히 물질적피해만이 아니라 한 민족의 순조로운 문명발전에 막대한 후과를 미친다.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문화를 말살해보려고 감히 칼질해나선 일본사무라이족속들의 죄행은 천추만대를 두고 계산될것이다.

일본은 지난 임진조국전쟁시기 우리 나라의 수많은 문화재를 파괴, 략탈한데 대하여 공식적인 사죄를 해야 하며 파괴한 문화재에 대해서는 물질적보상을 하고 략탈해간 문화재는 철저히 반환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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