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16일발 조선중앙통신)16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수산자원을 깡그리 략탈한 날강도무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인류력사에는 침략자들의 수많은 략탈죄행이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일제침략자들과 같이 그처럼 지독하고 악착한 방법으로 남의 나라 자원을 깡그리 로략질해간 날강도무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날 40여년동안에 걸친 식민지파쑈통치기간에 감행한 일제의 파렴치한 략탈죄행은 우리 나라 수산업을 파탄시키고 바다자원을 깡그리 긁어간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일제는 1933년에 《어촌진흥운동》을 들고나와 그것이 마치도 조선어민들의 《생활안정》과 연안어촌의 《자연적생산력보호》에 있는것처럼 떠벌이면서 우리 나라 어민들을 물고기생산에로 내몰았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의 략탈적야욕을 가리우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일제의 《어촌진흥운동》은 우리 나라의 바다자원을 대대적으로 략탈해가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야망밑에 일제는 우리 나라 령세어민들에게 먼바다어업을 강요하면서 그들을 무작정 바다에로 내몰았다. 이것은 사실상 당시 쪽배밖에 가지고있지 못한 우리 어민들을 죽음터로 내모는것과 같은 살인행위였다. 실제로 숱한 우리 나라 어민들이 일제의 강요로 먼바다에 나갔다가 생죽음을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렴치한 일제는 《원해어업》의 《수익성》을 떠벌이면서 《원양어업감시선》까지 띄워놓고 우리 나라 어민들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바치도록 강요하였다.
수산자원략탈에 피눈이 된 일제는 심지어 《조선어선특수규칙》, 《항로제한의 페지》, 《중간검사의 페지》 등 규칙과 규정들을 새로 조작하여 종래의 어로작업에서 《안전과 수산물자원보호》를 위해 설정했던 여러가지 제한조치마저 취소하는것으로 저들의 끝없는 략탈적야욕을 채우려고 하였다.
1937년 5월에 일제는 《수지의 균형》, 《어민들의 부채조절》, 《저축》, 《어업의 진흥》, 《어가의 재생》의 미명아래 각 지방에 《어업조합》을 뭇고 여기에 령세어민들을 강제로 망라시키였다. 한편 일제는 이 《어업조합》에 대한 통제기관으로서 《어업조합중앙위원회》까지 내왔다. 《어업령》에 따라 만들어진 《어업조합》은 일제가 수산자원략탈을 손쉽게 감행하고 일본수탈자들에게 큰 리득을 가져다주기 위한것이였다.
일제는 수산자원략탈을 위해 본토의 어민들을 우리 나라에 대대적으로 들이밀었다. 1912년부터 1916년사이에 우리 나라의 바다에 기여들어와 물고기잡이를 한 일본고기배수는 5,650여척으로부터 1만 620여척으로 늘어났으며 1927년에 우리 나라에 이주한 일본어민수는 1만 7,800명이상에 달하였다. 1910년부터 1920년사이에만도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략탈해간 총어획고는 그들이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무려 268만 8,880t(해마다 200~300마리씩 잡아낸 고래는 제외)이나 되였다.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수산물을 략탈하여갔는가 하는것은 1910년경 조선어장에서의 일본어민 1인당 어획고가 일본어장에서의 1인당 어획고의 7~8배에 달하였다는 사실과 일본의 《하야시가네》생선운반선이 한번 운반을 마치고 시모노세끼에서 우리 나라로 다시 돌아올 때에는 거기에서 얻은 순리익금으로 사들인 새 운반선을 한꺼번에 7척이나 더 끌고온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일제는 이밖에도 까다로운 《검사규정》들을 만들어놓고 우리 나라의 질좋은 미역, 다시마를 비롯한 막대한 량의 바다나물들을 략탈하거나 헐값으로 빼앗아 국제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팔아 폭리를 얻었다. 당시 일제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김, 굴양식장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양식장들을 강탈하였는데 1921년에 벌써 일본인의 양식어장몫은 조선인의 양식어장몫에 비해 4배이상에 달하였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의 어촌들은 나날이 황페화되고 어민들은 피땀흘려 잡은 물고기들을 일제에게 모조리 빼앗김으로써 그들의 처지는 날로 더욱 악화되였다.
일제는 특히 우리 나라 수산자원에서 경제적가치가 큰 물고기였던 정어리의 략탈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당시 정어리는 우리 나라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로서 수산물 총생산액의 절반을 차지하고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정어리를 모조리 잡아갔다. 당시 일제는 정어리잡이량을 급속히 늘이기 위해 그것들이 많이 회유하는 북부조선연해에 략탈력량을 집중배치하고 새끼정어리들까지 깡그리 잡아갔다. 결과 그 량은 금액상 1930년에 비해 1936년에는 무려 5배이상으로 증대되였다.
일제는 침략전쟁확대를 위해 정어리를 비롯한 수산물략탈에 더욱 광분하였다. 그것은 정어리를 가지고 비누, 초, 글리세린, 류산, 화약 등 군수용원료를 생산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일제는 이처럼 날강도적인 략탈수법으로 우리 나라의 풍부한 물고기자원을 말리웠으며 그로 하여 우리 어민들은 도탄에 빠져 죽지 못해 살아갔다.
일제가 지난 세기 전반기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수산자원략탈죄행은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일본은 그에 대해 인정하고 대가를 치르어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