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강원도예술단 안무가 인민예술가 고창수는 어머니조국의 품속에서 수십년간 나라의 무용예술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일본 오사까에서 태여난 그는 이국땅에서 눈물겨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되여 다른 아이들이 모두 밥먹을 때면 그는 홀로 남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운동장 한구석에 쪼그리고앉아 허기진 배를 달래야 했다. 학습장도 제대로 살 돈이 없어 연필로 글을 쓰고 다시 지우고 그우에 또 쓰군 하였던 불우한 소년이였다.
이러했던 그의 운명에 조국의 사랑이 비쳐들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보내주신 귀국선을 타고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기였다.
고창수는 조국의 품속에서 평양예술대학(당시)을 졸업하고 강원도예술단 안무가로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쳤다.
그는 20대에 첫 작품으로 혁명가극 《남강마을녀성들》의 여러 무용작품들을 창작완성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분에 넘친 평가를 받았다.
또한 강원도 회양군의 농민들속에 들어가 민속춤가락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여 민속무용 《회양닐리리》를 창작하고 금강군의 명경대앞에서 침식도 하면서 전설무용 《명경대》를 완성하였다.
그가 고산군에서 어랑타령춤가락을 발굴하고 정리하여 창작한 녀성5인무 《신고산의 풍년맞이》는 독특하면서도 묘한 춤가락으로 하여 무용예술계의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후 전설가극 《금강산팔선녀》의 여러 무용장면들을 훌륭히 창작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드린 무용《통신병과 처녀들》을 비롯하여 녀성군무 《준마처녀들》, 전설무용《망장천》, 녀성군무 《왕바구니춤》, 혼성군무 《승전무》, 남성군무《탄전의 청춘들》등 그가 창작한 작품들은 100여편에 달하며 전국적인 축전에 입상한 작품들만도 15편이나 된다.
특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과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창조에 참가하여 자기의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