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19일발 조선중앙통신)19일부 《로동신문》은 후보원사, 교수, 박사 김동인이 기고한 글 《옛 지리서와 지도들을 통하여 본 독도》를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끝없는 령토팽창야욕에 들떠 남의 땅을 엿보며 우리 나라의 신성불가침의 령토인 독도를 제《땅》이라고 생억지를 쓰는 일본의 파렴치한 행위는 지금 전체 조선민족의 치솟는 증오와 분노를 자아내고있다.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5~6세기이전에 우리 민족에 의하여 발견되고 개발되여왔으며 이 섬들이 우리 나라에 소속되여 대대로 관리되여온 우리 민족의 고유한 령토라는것은 우리 나라의 옛 지리서(지지)와 옛 지도들은 물론 일본의 지리서와 지도들을 통하여서도 론박할 여지없이 확증되였다.
이에 대하여서는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언급되였지만 여기에 력사적증거자료를 몇가지 더 첨부하여 론증하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옛 지리서들은 국가관리를 위한 주요참고수단으로서 국가에 의하여 편찬되였고 거기에는 주권령역, 일반행정관계, 자연 및 군사관계, 일반주민관계, 경제 및 조세, 건축시설, 교육, 문화, 종교, 력사 등 여러 항목들이 전국적으로나 지역별로 종합기록되여있다.
한편 지지의 변종인 《여지승람》(지방의 명승을 적은 책)에는 명승들과 명인들의 시까지 종합기록되고 지지들의 부도들에도 세계지도, 국가적인 총도, 지방별지도, 주요도읍지도들이 포괄되여있다. 그러므로 지지를 통하여서도 어떤 지역의 국가소속과 경계, 특징, 통치관리정형을 잘 알수 있다.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로 이루어진 우산국이 512년에 신라의 울진현(고구려의 우진야현)에 소속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 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 등은 우산도(독도)가 우리 나라의 령토이며 울릉도와 뗄수 없는 기본섬과 부속섬의 관계에 있다는것을 확증해주고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그 부도인 《팔도총도》, 《강원도지도》 그리고 일본의 구끼 요시다까가 만든 《팔도총도》(1592년)등에도 모두 독도가 우리 나라의 령토로 표시되여있다.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의 가장 중요한 한개 편인 신경준의 《여지고》는 《력대국계》, 《군현연혁》 등 력사지리에 관한 부분과 《산천》, 《관방》 등 군사지리에 관한 부분으로 구성되여있는데 《관방》편에서는 《성곽》, 《해방》(해안방위), 《해로》(항해로정) 등에 관하여 서술되여있다.
《해방》편은 우산도와 울릉도에 대해 《이 두 섬은 다 본래부터 우리 나라의 땅으로서 처음에는 여기에 우산국이 있었고 다음에는 신라, 고려, 리조가 대대로 그것을 내려받으면서 관리해온 사실들이 뚜렷이 남아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후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왜인들은 갑자기 제멋대로 우리 울릉도에 이른바 <의죽도>(이소다께시마)니 무엇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 그것을 강점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나중에는 <우산도>(독도)를 제멋대로 <송도>(마쯔시마)니 <죽도>(다께시마)니 하는 괴상한 이름으로 지어불렀으며 울릉도는 본래 조선땅이지만 <죽도>는 원래 <일본땅>이였다는 엉터리없는 수작을 하면서 여러가지 만행을 감행하기까지에 이르렀다.》고 서술하면서 동래어민 열혈청년 안룡복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하였다.
《만기요람》(1808년)을 비롯하여 이와 비슷한 내용이 담긴 지지가 수많이 편찬되였으며 1899년 구한국학부편집국에서 발행한 지리교과서인 김건증의 《신편대한지지(전)》의 강원도편도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나라의 령토로 표기하고 부도까지 첨부하였다.
이처럼 15세기이래 력대로 우리 나라에서 편찬된 지지와 지도들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어김없이 우리 나라의 령토로 표기되여있다.
우리 나라 옛 지도들중에서 대표적인것들을 보면 15~16세기의 《팔도총도》, 《조선도》, 《조선팔역도》, 《천하도》 등과 17~19세기의 《조선본동아시아지도》, 《여지도》, 《동국여지도》, 《해동지도》, 《해좌전도》, 《동국지도》, 《대조선국전도》 등인데 이 지도들에는 례외없이 독도가 우리 나라의 령토로 표기되여있다.
신라시대때부터 《우산국》(울릉도와 독도)이 우리 나라 령토였다는것은 일본에서 만든 지리서와 지도들을 통해서도 증명되고있다. 실례로 1956년에 출판된 《고대일한교섭사단편고》의 《조선강역지》 상권에 소개된 신라국지도와 1996년에 출판된 《표준세계사지도》(보증판) 24페지의 《11~12세기의 고려》지도에도 우산국이 우리 나라 령토로 명기되여있다.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로 이루어진 우리 나라의 소국이였다는것은 우리 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공인된 사실이다.
일본에서 1667년에 나온 일본관리 사이또 호센이 은주(오끼)섬에 대한 시찰중에 보고 들은 내용을 묶어서 쓴 보고서인 《은주시청합기》에서 필자는 《은주는 북해(일본본토북쪽바다)에 있다. …두날 한밤을 가면 마쯔시마(독도)가 있다. 그리고 한낮거리에 다께시마(울릉도)가 있다. 이 두 섬들은 무인도인데 이 두개 섬으로부터 조선을 보는것이 마치 운주(일본본토의 이즈모지방)에서 은주를 보는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경계는 은주에서 끝난다.》라고 씀으로써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령토가 아니라 우리 나라의 령토라는것을 분명히 하였다. 바로 이 글을 그대로 써넣은 일본의 옛 지도들은 1775년 나가꾸보 세끼스이의 《일본여지도전도》로부터 1882년 기무라분죠의 《동판조선국전도》에 이르기까지 10개나 된다.
뿐만아니라 1941년에 발행된 《메이지 년간 조선연구문헌지》에 소개된 20건이상의 조선지도들과 19세기말~20세기초에 일본에서 만든 조선 및 아시아지도들에도 독도가 우리 나라 령토로 밝혀져있다. 지어는 일제가 《시마네현고시 40호》를 날조한지 3~5년후인 1908년과 1910년에 이또 세이죠가 만든 국가지도첩인 《대일본분현지도》(현별지도)에서조차 독도가 시마네현이 아니라 조선에 소속된 섬으로 그려져있으며 일본에서 《권위》있다고 하는 《륙지측량부발행지도》(1936년판)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나라 령토에 포함시켰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해군수로국(부)과 해상보안청에서 발행한 법적성격을 띠는 배길안내서인 《수로지》를 1883년부터 《환영수로지》(세계바다수로지)라는 이름으로 발행하다가 1889년부터는 국가별로 나누어서 표제를 달아 발행하였는데 여기에서 독도와 울릉도를 모두 《조선수로지》에 포함시켜 소개하였다. 그러다가 일제가 우리 나라를 불법강점하고 식민지화한 후인 1911년 12월부터 독도를 《일본수로지》에 망라시켜 출판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후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다시 《조선연안수로지》에 포함시켰다가 1952년부터 《조선남동안수로지》에 울릉도만 포함시켜 발행하는 망동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독도(다께시마)는 슬그머니 《일본수로지》에 포함시켰다.
일본은 이밖에도 여러종의 《대일본백과사전》들의 《독도》(다께시마)라는 올림말해설을 1960년도까지는 비교적 력사적사실을 객관적립장에서 쓰다가 1960년대 하반기부터 그 내용들을 완전히 뒤집어 독도가 원래 《일본땅》인것처럼 날조하여 쓰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의 여러 출판물들에 실리는 지도들에서도 독도를 시마네현에 소속시키기 시작하였다.
이상의 몇가지 사실만 놓고보아도 일본반동들의 집요하고 악랄한 독도《령유권》주장이 얼마나 허황하고 강도적인 생억지인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일본반동들의 독도강탈야망은 언제 가도 실현될수 없는 망상중의 망상이다.
일본이 독도강탈책동에 매여달리면 달릴수록 그것은 전체 조선민족의 치솟는 분노와 적개심을 더욱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국제적고립을 촉진시키게 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