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19일발 조선중앙통신)김보현선생님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생을 빛나게 사신 열렬한 애국자이시다.
선생님께서는 미제무장침략선《셔먼》호를 격침시키는 투쟁의 앞장에 서시여 용감하게 싸우신 김응우선생님의 아드님으로 1871년 8월 19일 만경대에서 탄생하시였다.
일찌기 아버님을 여의고 피눈물나는 소작살이를 하시며 온갖 고초를 다 겪으신 선생님께서는 남달리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는 애국심과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정신이 강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어려운 살림살이속에서도 항상 《돈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인덕이 없으면 살수 없느니라.》고 자제분들을 가르치군 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일제에게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롱락되여가는것을 통탄하시면서 《남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어야 마땅하다.》고 하시며 아드님들과 손자분들을 결연히 혁명의 길에 내세우시였을뿐아니라 자신께서도 원쑤들을 반대하여 견결히 싸우시였다.
항일의 나날 일제의 앞잡이들이 돈뭉치를 내놓으며 회유하려고 할 때에도 선생님께서는 이 천하에 고현놈들, 그래 우리보고 제 손자의 목숨을 돈과 바꾸라는거냐, 그런 개수작질은 싹 걷어치우고 당장 물러가라고 불호령을 내리시였다.
이렇듯 원쑤들과는 추호의 타협도 모르시는 선생님이시였기에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할 때에도 맞아죽으면 맞아죽었지 절대로 이름을 일본말로 고칠수 없다고 하시며 만경대가문의 성과 이름을 고수하도록 하시였다.
김보현선생님께서는 해방후에도 사람들이 손자분을 일국의 수령으로 두신분이 험한 일을 하셔야 되겠는가고 만류하였지만 한평생 손에서 농사일을 놓지 않으시고 소박하고 근면하게 사시였다.(끝)